-키에에에에에!
크라켄의 괴성은 혼란스러운 전장을 가득 메울 듯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일전처럼 분노나 호승심 따위가 아니었으니,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오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파아아아앙!
검은 촉수가 보리스의 기체, 이데아의 장갑을 단번에 찢어 버릴 듯 뻗혀 왔다.
그러나 이미 기세를 잃은 놈의 공격을 보리스는 피하지 않고 되레 마나를 끌어 올렸으니.
〔흐으읍!〕
그의 눈이 진중한 빚을 띠었다.
동시에, 여태까지의 그와는 다른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니.
시그니처(Signature).
낙인(烙印).
쿠우우우웅!
그의 거대한 망치가 이데아를 노리고 뻗어지는 촉수를 그대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촉수는 육중한 망치에 의해 그대로 바닷속으로 찍혀 내려가 가라앉았고, 곧 망치를 기점으로 뻗어진 빛들이 촉수를 따라 푸른빛의 낙인을 찍었다.
-끼, 끼기기기기기!
밀폐된 콕피트 너머로 놈의 살갗이 타들어 가는 역겨운 냄새가 가득 풍겼다.
살갗이 녹아내렸다.
검은 살 속에서 울컥 솟구친 역겨운 핏물은 가뜩이나 오물과 시체, 핏물에 의해 더러워진 바다를 더욱 검게 물들여 갔다.
치지지직!
그럼에도 푸른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긴 촉수를 따라 놈의 육신을 타고 기어 올라가듯 낙인이 늘어 가기 시작했고, 그 순간 보리스는 입이 찢어져라 벌리며 외쳤다.
〔리베라아-!〕
터트리듯 울린 외침은 통신기를 타고 미친 듯이 크라켄의 육신 위를 날아다니던 리베라에게 닿았다.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발악하는 크라켄을 응시했다.
〔이거지! 꺄핫!〕
지금까지 그들이 크라켄을 괴롭힌 이유는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가뜩이나 피해가 누적된 육신과 낙인으로 인한 고통으로 크라켄은 단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터트릴 뿐 어떤 유의미한 움직임도 보이지 못다.
이런 상황이라면 피식자와 포식자의 위치는 역전되는 법 아니겠는가.
클리에의 칼날이 놈의 육신을 디뎠다.
동시에, 그녀는 순간 콕피트 너머로 마주친 시선 속에서 크라켄에게 장난스럽게 손을 까닥거렸으니.
〔잘 가렴.〕
서걱-!
그것이 크라켄이라는 네임드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쿠구구구구구궁……!
리베라의 칼날이 은빛 섬광을 그렸다.
그녀의 은빛 칼날이 긴 선을 그리며 놈의 목을 완전히 그어 내자, 결국 치명타를 허용한 크라켄은 그대로 거대한 육신을 바다 밑으로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족히 작은 섬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크기를 가진 네임드가 죽었다.
〔하아, 하아…….〕
보리스는 시그니처를 황급히 끊으며 거의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 내기에 급급했고, 리베라 역시 지쳤다는 듯이 그대로 크라켄의 시체 위에 기체를 앉히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진짜 힘들어어.〕
그러나 그때.
조금은 지쳤다고는 하나, 둘의 여유로운 태도는 일반적인 군인들이 보기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손끝에 죽은 것이 무엇인가.
네임드다.
네임드란 말이다.
전장에 나타나면, 군단급이 아니라면 후퇴를 하는 게 옳다고까지 말하는 그런 개체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비록 에이스라고 한들 두 명이서 죽였다는 것은 다른 때였다면 전쟁 영웅으로 곱씹어졌을 위대한 업적이었다.
그것을 반증하듯 전투를 지켜보던 법국과 연합 왕국의 군인들은 무슨 말을 골라야 할지 몰라 그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혀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들과 꽤 떨어진 방향에서 지축을 울릴 듯한 폭음이 터지자, 곧 그들은 어째서 리베라와 보리스가 그토록 감흥이 없었는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저, 저게 가능하다고?”
단테 대령의 기체인 벤데타와, 왜인지 나체가 되어 촉수를 뻗는 여왕이 맞닿았다.
어지간한 마력 포 수백 발이 꽂힌 듯한 폭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수없이 반짝거린다.
〔단테 대령…… 인간은 맞겠지?〕
〔그러길 바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베라의 읊조림에 보리스는 무심결 너털웃음을 흘리며 답했으니.
〔만약 아니라면, 희망 따위는 없어 보이니까 말입니다.〕
그것은 사뭇 익살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