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51화 (151/197)

콰아아아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이 터지고, 순간 압도적인 마력에 밀려난 파도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물결쳤다.

-큭!

흑색을 띤 미스릴 소드가 나이트 프레임이 휘두르는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려한 선을 그리며 뻗히고, 머지않아 단테의 공격이 여왕의 뺨을 스쳤다.

하지만 여왕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으니.

파아아아앙!

일전에 세로스를 단번에 날려 버렸던 무색의 파동이 단테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콕피트를 노리고 뻗어졌다.

단번에 그의 목숨을 취하리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우지끈!

단테는 손에 쥔 미스릴 소드를 곧바로 놓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팔을 들어 놈의 파동을 막아 냈다.

〔……허!〕

묵빛 내력이 일렁거리고, 그는 호신강기를 펼쳤음에도 우그러든 벤데타의 장갑을 느끼곤 호승심과 약간의 당혹감이 스친 목소리로 탄성을 내뱉었다.

-강하구나, 예상대로.

그런 단테에게 여왕은 말했다.

스륵.

그녀의 흰색의 손이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

동시에, 그녀가 훑지 않았더라면 그저 땀이라고 생각했을 투명한 핏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순수한 물 같은 그 모습.

〔큭.〕

그것을 본 단테는 무심결 실소를 흘렸다.

본디 마수란 무엇인가.

그 자체로 죽어야 할 죄악이다.

그런 놈 주제에 너무도 순수한 액체를 흘린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일격씩 주고받은 둘은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미 둘은 각자의 생환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서로에게 묻고 있었을 뿐이니.

-이것이 정녕.

〔네놈의 최선이냐.〕

그것은 둘의 뇌리를 관통하는 흐름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같은 답을 도출했다.

‘……그럴 리가.’

여왕의 푸른 눈이 번뜩인다.

동시에, 단테의 붉은 눈 역시 번뜩거렸다.

〔약속하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짙은 숨결을 내뱉었고, 머지않아 단테는 손끝을 한번 말아 쥐며 여왕에게 말하니.

〔반드시 이 바다 아래 수장시켜 주겠다고 말이다.〕

그것은 짐짓, 섬뜩한 선전포고였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10)

〔반드시 이 바다 아래에 수장시켜 주겠다고 말이다.〕

벤데타의 검은 손을 쥐었다 편 단테의 읊조림에 여왕은 순간 몸을 가볍게 떨었다.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기대감이자, 호승심이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의 생명이 죽어 가 핏물이 범람하는 물결에 발을 디딘다.

여왕의 새하얀 발, 단테의 검고 육중한 기체.

서로 모순된 걸음이 대지에 닿는다.

순간, 단테의 붉은 눈동자가 콕피트를 지나 여왕의 얼굴에 닿는다.

‘가면 갈수록…….’

놈들은 인간을 닮아 가고 있었다.

그것에서 오는 짙은 혐오감과 더불어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여왕이란 무엇인가?’

비단 단테뿐만이 아니다.

이 길고 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서도 무수한 군사 관계자들과 학자들이 여왕이란 존재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수많은 가설이 오갔다.

혹자는 여왕이 그저 단순한 ‘네임드’의 연장선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여왕이 벌써 수십 년째 모습을 보이지 않은 대군주의 후계가 아닐지 추측했고.

혹자는 원래부터 여왕은 존재했으며, 그저 그 부화의 시기가 인간의 시간선과는 달랐을 뿐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단테는 단순히 여왕이란 존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응시하며 읊조렸다.

〔우스운 놈들.〕

지배하고자 했던 괴물.

기만하자고 했던 괴물.

마지막으로, 우습게도 자비를 입에 담는 괴물까지.

〔그토록 인간을 미워하는 놈들이.〕

단테는 서서히 뜨겁게 달아오르는 내력이 혈도를 따라 종횡함을 느끼며 달뜬 숨결을 내뱉었다.

동시에 구태여 감추지 않은 비웃음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니.

〔어째서인지 인간을 닮고 싶어 하는구나.〕

그것은 그 자체로 여태까지 흘러간 50년의 전쟁을 관통하는 명제이자, 여태까지 무표정을 고수하던 여왕의 표정이 일순간이나마 흔들리게 되는 화두였다.

-그런가. 그랬던가.

여왕은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푸른 안광을 터트리며 이때까지 일대를 유영하던 마나를 육신 안으로 회수했을 뿐.

휘이잉.

일순간 꿈틀거리던 물결이 가라앉는다.

동시에 쩌저적, 소리와 함께 그녀의 육신을 가리고 있던 푸른 드레스가 너무나도 하찮게 찢어지며 드러난 순백에 가까운 살결에 바닷바람이 스쳤다.

그리고 직후.

꿈틀거리는 푸른 촉수가 그녀의 등에서 솟구쳐 사방으로 어지럽게 뒤엉키니, 그 모습은 흡사 크라켄의 것과 닮았으나 그보단 훨씬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스스스.

잠잠하게 가라앉았던 물결이 다시금 요동치며 물안개가 일렁거렸다.

여왕의 촉수가 허공에서 한 점으로 모여 곧바로 단테를 꿰뚫고자 쇄도했다.

파아아아앙!

공기가 진동했다.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단테는 그런 예측 가능한 공격에 당할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여왕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뻗은 주먹의 끝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압도적인 무언가가 터져 나오리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하아.〕

읊조리듯 내뱉은 단테의 숨결의 끝자락에 따라붙은 건 일전에도 수많은 마수의 목숨을 취했던 그의 무공이었다.

백월신공(白月神功).

만월파멸격(滿月破滅擊).

이름과도 같은, 찬란한 만월이 자리한 그의 주먹의 끝에 빛이 번뜩인다.

쿠구궁!

하나의 거대한 고깃덩어리처럼 뭉쳐진 촉수와 단테의 기체, 벤데타의 육중한 주먹이 맞닿고 어지럽게 뒤섞인다.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터진 일렁거림이 여왕의 촉수 끝을 녹이며 수없이 점멸했다.

그리고 이윽고.

-아.

여왕의 짧은 탄식과 함께, 후대에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질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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