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50화 (150/197)

“엄청나네요.”

“그러게 말이야.”

막사 밖으로 향한 세로스의 뒤를 좇은 것은 비단 마리뿐만이 아니라 세실을 비롯한 로열 가드와 특임대원들까지 포함이었다.

그들은 세로스의 말에 답하진 않았더라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마리는 그를 부축하면서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무심결 몸을 떨었다.

그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율에 가까웠다.

콰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엉!

뺨을 스치는 칼날 같은 바람.

압도적인 풍압에 미간을 좁힌 그들은 저 멀리 해안가 너머에서 벌어지는 여왕과 단테의 전투를 눈에 담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로 뻗은 일격에 파도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단테의 주먹과 여왕의 파도가 격돌하는 순간 압도적인 위력이 일대를 뒤덮었다.

-자비를 내리게 해 다오.

푸른 눈과 머리, 물결치는 파도로 빚어낸 듯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채 손끝으로 바다를 조종하는 여왕은 마치 바다의 여신과 같은 자태로 거대한 검은 기체를 두드렸다.

〔건방진 소리를.〕

여왕에게 맞서는 단테의 벤데타는 특유의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일반적인 기체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움직임으로 여왕을 몰아붙이니.

둘의 전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 속 서사시를 옮겨 놓은 듯한 위용을 자아냈다.

“하아.”

세로스는 옅은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는 무수한 것들이 담겨 그를 더욱 짙은 감흥에 빠트렸다.

붉디붉은 피 내음.

어지럽게 타들어 간 마력의 잔향.

마수들의 역겨운 향기.

가죽에 눌어붙은 물비린내까지.

모두는 여왕과 단테의 전투에만 집중했으나, 눈을 감은 세로스의 시야에는 이 전장에서 죽어 간 모든 생명들의 삶이 스쳤다.

……많은 것을 보았다.

또한 많은 것을 잃었다.

세로스는 눈을 떴다.

그러고는 조금은 나아진 고통 속에서 망르의 전경을 응시하며 천천히 붉은 입술을 떼어 내며 읊조렸으니.

“……어쩌면, 우리는 지금 신화 속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쿨럭!”

마른 기침 속에 핏물이 울컥거린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이 눈치챌 새도 없이 침을 삼켰다.

비릿한 핏물이 목젖을 따라 흘러내려 가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당장은 아닌가, 다행히도.’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 그는 단테를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벤데타의 검은 등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겨야 한다, 단테.’

죽음이 성큼 걸어오기에 느끼는 걸까.

아니면, 그저 숱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얻은 직감 때문일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여왕은 이제까지 나타난 여왕과는 궤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직감이자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때.

두근-!

순간적으로 두근거린 심장의 고통에 그는 미간을 좁혔고, 혹여 새어 나간 숨결에 피 내음이 스칠까 애써 숨을 삼키며 자신을 지탱하는 마리의 어깨를 쓸었다.

“세로스?”

그러자 멍하니 전투를 응시하고 있던 마리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왜 그래?”

연인의 촉일까.

아니면 무표정을 가장한 얼굴 속에서 무슨 근심이라도 찾은 것일까.

그녀는 걱정이 담긴 눈으로 세로스에게 물었고, 이번만큼은 세로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괜찮다는 말을 내뱉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는 그저 그 말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속으로 되뇐다.

그래도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 정도로 살았으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은 아니지 않았으리라고 말이다.

‘제발.’

그는 지끈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여전히 자신을 걱정스럽게 응시하는 마리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준 채로 신께 기도했다.

‘부디 버틸 수 있기를.’

아직 제 삶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그래도 이번 전투의 끝은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때.

마치 기적처럼 그의 몸을 갉아 먹던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덕분에 세로스는 안심하며 생각했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겠어.’

정말로 최악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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