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49화 (149/197)

“거기! 빨리 붕대 가져 오라고!”

“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야, 이 새끼야! 팔다리 제대로 잡으라고 몇 번 쳐 말해!”

군인들이 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다면, 최전방의 후방에선 거의 1천에 이르는 군의관들이 막사를 돌아다니며 미친 듯이 밀려오는 부상병들과의 사투를 벌인다.

사방이 피비린내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팔이나 다리가 잘린 병사는 차라리 나았다.

“아, 아아…….”

마수에게 콕피트와 함께 복부가 꿰뚫린 파일럿은 마취제에 절여져 몽롱한 정신으로 자신의 장기가 갈가리 찢어진 걸 보았다.

“끅, 끄으윽…….”

갓 군의관이 된 장교는 엄청난 참상에 눈물을 참지 못하며 손을 떨었지만 그 모습을 본 군의관 중 누구도 그를 위로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여기가 지옥이구먼. 퉤!”

그들로서도 이런 엄청난 전선은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가장 급박하게 돌아가는 곳은 따로 있었으니.

“마취제! 그리고 지혈제랑 수혈할 피 더 가져와!”

“붕대! 붕대 가져오라고!”

그곳은 다름이 아닌, 세로스가 누워 있는 수술대였다.

비록 단테의 등장으로 조금은 빛이 바랬다고 한들, 이번 전장에서 두 번째로 큰 공을 세운 그였다.

전장에 선두에 서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그는 모든 군의관들에게 반드시 살려야 하는 대상이었다.

“쿨럭!”

침상에 누운 세로스의 기침과 함께 엄청난 양의 핏물이 터져 나와 턱과 목을 적셨다.

고통에 미간이 가득 좁혀지고, 동시에 그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리는 절망보다 더 나락에 처박힌 심정으로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제발, 제발…….”

꽉 쥔 손에서 그녀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닌, 이미 치료를 마친 로열 가드와 특임대의 인원들 역시 세로스의 용태를 지켜보며 초조함을 삼켰다.

“……후아.”

군의관들 역시 힘겹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얼마나 조치를 해 나갔을까.

대위 계급장을 단 채로 세로스의 수술을 선두에서 집도한 군의관은 곧 절망스러운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소생 불가다.’

이미 내부의 장기 중에도, 뼈 중에도 성한 게 하나 없었다.

차라리 그뿐이라면 법국의 치유 사제들을 데려오면 방법이 있었겠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마나 하트의 손상이었다.

‘마나 하트가 완전히 깨졌어.’

인간은 모두 미약한 마나를 품고 태어난다.

그 소량의 마나는 핏물과 함께 온몸을 돌아다니고, 그로 인해서 인간들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나 하트는 그 연장선이다.

괜히 이름이 마나 하트(Mana heart)가 아닌 것이다.

즉, 마나 하트가 깨진 세로스는 심장이 부서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었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짧게는 몇 분에서 몇 시간 안에 모든 마나가 고갈되어 죽는 시한부나 다름이 없으리라.

“…….”

그는 묵묵히 갈랐던 세로스의 복부를 봉합했고, 때마침 가져온 마취제를 들며 곁에서 지켜보는 마리에게 말하고자 했다.

세로스의 삶은 이미 끝났고, 길어야 몇 시간이라고.

그러나 그 순간.

“단장께서는.”

군의관이 막 입을 연 그때.

“쿨럭!”

여태까지 마취제에 절어 누워 있던 세로스의 입가에서 핏물과 함께 마른기침이 내뱉어지고, 그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자, 잠시만……!”

때문에 당황한 군의관이 그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려던 그때.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댄 세로스는 자신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마리를 비롯한 모두를 훑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고는 곧, 뭐 그리들 유난을 떠느냐는 듯 너스레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아직, 안 죽었다. 쿨럭!”

고통에 입꼬리가 흔들리고, 눈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그는 겉으로 보기엔 정말로 멀쩡해 보였다.

“아, 아아아……!”

그 모습에 마리는 곧바로 그의 품 안으로 내달려 안겨 눈물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앙……! 나, 나는 정말, 다, 당신이, 주, 죽는 줄 알고……! 흐어엉!”

“……안 죽었잖아. 응?”

세로스는 그런 마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다독였다.

한쪽 팔에 담기는 어깨를 끌어안고, 목가에 흐르는 그녀의 눈물과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거친 숨결을 느낀다.

입술이 마른다.

동시에, 그는 안도하는 주변인들의 얼굴을 훑다가 문득 자신을 집도한 대위와 시선을 마주했다.

“…….”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저 마른세수를 하며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묻는 듯했다.

‘정말로, 괜찮겠느냐고.’

그 눈빛을 마주한 세로스는 시선을 내렸다.

평소엔 그토록 냉철한 모습을 유지하던 마리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 홍조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예쁘네.’

세로스의 큰 손이 그녀의 눈가를 스친다.

눈물이 맺힌 방울이 그의 손을 따라 흐르고, 그는 마지막이 될 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뇌리에 담고는 답했다.

“난 괜찮아.”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그리고 그의 답을 들은 마리는 눈물이 맺힌 환한 웃음으로 답했고, 군의관은 묵묵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진통제를 놓아 주었다.

동시에 군의관과 세로스.

둘은 같은 생각으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이게 제일 잔인한 이별일 수도.’

전투가 시작된 이래, 6시간이 흐른 후였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9)

“끄응.”

“이, 일어나면……!”

군의관이 살며시 놓아준 진통제가 슬슬 몸의 고통을 덜어 준 시점에 세로스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대지에 발을 디딘 순간.

“큽!”

발끝부터 뼈를 타고 흐르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비록 진통제를 놓았다고 한들,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몸을 완전히 제어하기엔 다소 무리였던 탓이었다.

“세로스!”

그의 표정이 고통에 엉망이 되자 울음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안도하던 마리는 놀라며 그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터억.

가녀린 손이 세로스의 몸을 지탱한다.

그리고 그때.

펄럭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막사의 문밖에서 세실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오며 외쳤다.

“오빠, 아니, 단장님은 어디에……!”

“세실 중령님!”

그런 그녀의 뒤를 유엘과 페고르가 뒤따랐고, 그 모습을 본 세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통도 잊은 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척 보기에도 세실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비틀거리며 막사 안으로 들어온 세실은 세로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사색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오빠라고 부르든지, 단장이라고 부르든지 하나만 해라, 세실.”

“아.”

그러나 곧 그녀는 생각보다 세로스의 안색과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곤 안도의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했는지, 그녀는 곧바로 곁에 선 군의관에게 성큼 걸어가 물었다.

“세로스 단장님께선 괜찮으십니까?”

중령이자 특임대의 수뇌인 그녀가 고작 대위 계급인 군의관에게 존대하는 모습은 엄연히 군 기강을 해치는 일일 수도 있었으나, 그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계급을 떠나 혈육을 잃을 뻔한 그녀에겐 그런 사소한 부분은 애초에 생각할 가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군의관은 세실의 말에 곧바로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남들 몰래 고통을 인내하고 있을 세로스와 시선을 맞췄다.

두 남자의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이윽고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몇 번 입술을 달싹였던 군의관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단장님께선 괜찮으십니다.”

“아…….”

그제야 세실은 안도의 탄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비틀거렸다.

“중령님!”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바로 뒤에 서 있던 유엘과 페고르가 그녀의 몸을 지탱했고, 덕분에 균형을 잡은 세실은 드물게 안도가 섞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거참.”

그런 세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로스는 마음 한편이 아려 옴에도 늘 그랬듯이 그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스친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토해 내는 대신 지끈거리는 몸을 애써 무시하며 조금 전 세실이 지나온 길을 향해 걸었다.

“세로스?”

그 모습에 마리는 당황한 듯이 그의 이름을 외쳤으나, 세로스는 걸음을 멈추는 대신 마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부축 좀 해 줄래?”

“그렇지만 일단 지금은 쉬는 게…….”

“아니.”

마리의 걱정에도 세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띤 미소와 달리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봐야지.”

그의 말을 들은 마리는 도저히 그를 막을 수 없었으니, 이 자리에서 그녀만큼 그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그녀는 알았다.

지금의 세로스는 어떤 말을 해도 말릴 수가 없다는 걸 말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를 눕히고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겉에 걸치고 있던 붉은 코트를 벗어 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러고는 으레 그랬듯이 졌다는 듯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환자에겐 날이 추워요.”

“……그래.”

그는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듯 밝게 웃었다.

그러나 그 내면은 끊임없이 썩어 들어가고 있음을 그녀는 알까.

저벅.

그들의 군화가 막사 밖을 향한다.

그러자 한창 혼란스럽던 막사 내부는 순간적으로 정적에 가깝게 변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단테가 합류함으로써 전황이 뒤집혔다고 한들, 그가 도착하기 전까지 세로스가 분투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무너졌을 전장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군인이 몇이었을까.

감히 추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비록 한번 꺾였다고 한들 그에게 손가락질할 군인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스르륵.

그리고 머잖아 세로스가 막사의 천을 걷어 밖으로 향한 직후, 그의 상태를 살핀 군의관은 핏물에 점철된 장갑을 벗고 천천히 경례를 올리니.

“……경의를.”

그것은 일개 군의관으로서, 또한 그에게 목숨을 빚진 제국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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