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으읍!〕
파아아아앙!
세실의 기체가 휘두른 녹색 창의 궤적이 빠르게 원을 그리며 마수들의 머리를 그야말로 터트려 버렸다.
그 모습은 뭐랄까.
그 자체로 반전된 전장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듯한 것이었다.
비단 세실의 특임대뿐만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갱플랭크의 발이 마치 대지에 박히듯 단단히 고정되었다.
비대한 기체의 허벅지가 꿈틀거리고, 곧 기체는 완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하으으으.〕
마나 하트에서 꿀렁거리며 뿜어진 마력은 빠르게 케이블을 타고 갱플랭크의 포대를 빠르게 가열시켰다.
그녀의 주포가 전방을 겨냥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시선에 크라켄의 모습이 담기고, 뻗어진 포격은 단번에 놈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한 공세를 퍼부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열기에 수증기가 된 바닷물이 자욱한 안개로 변해 시야를 어지럽게 뒤흔들고, 일순간 집중된 화력에 크라켄과 그녀 사이를 가리던 중, 하급 마수들의 육신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갈가리 찢어 발겨질 수밖에 없었다.
-끼에에에에!
하지만 크라켄에게 닿은 포격은 놈의 목숨을 거둘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네임드인 놈이 그저 일개 포격에 목숨을 거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세로스, 세실!〕
클리에의 외침과 함께, 푸르스름한 장갑의 플라네스와 세실의 아틀라스가 거의 동시에 기체의 무릎까지 잠긴 바다를 도약했다.
파과과과과!
푸른 물결이 흰색으로 뒤섞이며 어지럽게 흔들리고, 곧 둘은 클리에가 만들어준 찰나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세이렌에게로 향했다.
원래의 계획.
그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흐으읍!〕
〔성가시게!〕
세실의 녹색 창이 원을 그리며 앞을 가로막는 마수의 팔을 단번에 베었고, 뒤이어 뻗어진 세로스의 렌스가 놈의 심장을 꿰뚫고 그대로 육신을 터트렸다.
수증기에 피 안개가 뒤섞였다.
동시에,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둘이서 세이렌을 보호하고 있는 거북이에게 닿기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으리라는 건 이미 예상한 일.
-끼에에에에!
세실과 세로스의 돌진을 뒤늦게 확인한 듯한 크라켄의 검은 다리가 둘을 향해 뻗어진 그때였다.
씨익.
클리에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붉은 혀가 입술에 끼워진 피어싱에 닿는다.
그리고 직후.
그녀는 찰나의 순간 비웃음을 머금고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시그니처(Signature).
함대사격(艦隊射擊).
작은 떨림과 함께 그녀의 주포에 한계까지 끌어 올린 마나가 맺혔다.
그것들은 머잖아 섬광으로 이루어진 포탄이 되어 뻗어질 순서를 기다렸고, 곧 그녀가 말을 끝마치자 빠르게 쏘아지기 시작했으니.
콰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광!
양팔에 달린 주포가 마치 기관총이라도 되는 양 날아오는 놈의 팔을 향해 무수한 섬광을 흩뿌렸다.
-끼에에에!
놈의 괴성이 울려도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분명 마나로 뻗어 낸 섬광임에도 살점이 녹고 찢어져 검게 그을린 연기는 과거의 흑색 화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크라켄은 세로스와 세실을 막아 낼 가장 극적인 순간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특임대와 로열 가드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그들을 최선을 다해 놈들의 공격을 막아 냈고, 덕분에 세실과 세로스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거북이로 표현되는 거대한 최상급 마수의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끼기기기기기기!
놈의 부리와 같은 입이 열리고, 놈은 폐부 깊숙하게 숨을 몰아쉬며 곧 숨결과 함께 엄청난 양의 액체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물이 아니었다.
놈의 체액과 온갖 오물, 그리고 바닷물이 뒤섞인 더럽고도 역겨운…… 그리고 파괴적인 수공이었다.
〔크으으윽!〕
일반적인 물살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뿜어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압력은 세실의 기체인 아틀라스를 뒤로 밀려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때.
〔어딜……!〕
세로스의 렌스가 부드럽게 뒤로 끌어 당겨지고, 일전에 크라켄의 검은 다리를 단번에 찢어발겼던 그의 창끝이 다시금 점멸했다.
푸른빛이 번뜩이고.
보랏빛 섬광이 뒤따랐다.
시그니처(Signature).
유성우(流星雨).
갈라진 창은 하나의 물결을 갈랐다.
뒤이어 갈라진 창은 두 개의 물결을 거슬렀고, 그렇게 수없이 뻗어진 그의 창대는 그 자체로 시류를 거부하는 흐름이 되어 최상급 마수를 향해 쇄도했으니.
-쿠어어어어!
놈은 무언가 더 강한 공격을 이어 가려는 듯 이전과 달리 눈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 순간.
우우웅-!
제국 제12 군단의 마크를 단 전투함이 빠르게 직선으로 놈에게 돌진했고, 그 직후 그는 콕피트 너머로 보이는 최상급 마수를 향해 긴장감이 역력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타다다다다다!
그의 총구 끝에서 쏘아진 총탄이 노란 선을 그리며 최상급 마수의 시야를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러자 직후.
쿠어어어- 따위의 괴성을 내지른 최상급 마수의 포효에 뒤섞인 압도적인 마나에 의해 전투함은 그대로 바다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상급 마수가 미처 놓친 것이 있었으니.
〔팔자 좋네? 거북아.〕
세로스의 플라네스는 어느새 놈의 공격을 상쇄시키고 공중으로 도약했다는 점이었고, 그 직후 세실은 손에 쥔 녹색 창을 던져 최후까지 놈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가!〕
세실의 짧지만 강렬한 읊조림.
그것에 화답하듯 세로스의 기체, 플라네스의 푸른 장갑이 흔들리고, 곧 그의 시야는 거북이의 모습을 한 최상급 마수의 등에 탄 세이렌을 좇으니.
-끼에에에에에에에!
당연하게도 최상급 마수는 어떻게든 그를 막고자 빠르게 바다로 가라앉으면서 동시에 육중한 몸을 흔들었고, 곧 물결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기체를 두드렸다.
콰드드득!
콰아아아앙!
어지간한 마수에게는 흠집조차 남지 않는 플라네스의 장갑에 흉측한 흉터들이 길게 그어진다.
〔끄으으으윽!〕
당연히 기체를 조종하는 세로스 역시 온전히 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게 뒤엉키는 시야.
위태롭게 흔들리는 전황.
빠르게 급변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그는 흐릿한 시야 너머로 번뜩거리는 세이렌의 본체를 확인하곤 이를 악물었다.
이미 두 번의 시그니처를 썼다.
4세대 기체인 전용기는 일반적인 기체보다 마나를 더 많이 잡아먹는 건 당연한 일이고, 시그니처까지 두 번을 사용했으니 그에게 남은 마나의 용량은 얼마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어떤 각오를 머금게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구태여 그가 하지 않더라도 욕할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헌데 어째서 이러는 것인가.
그 물음에 세로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며 읊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젠장.〕
아마 이 소리를 연인인 마리가 들으면 당장에라도 그를 끌고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뭐, 여차하면 세실한테 단장 자리 넘겨주면 되겠지.’
세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를 위한 전용기는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니 로열 가드의 단장이 되기에 흠결은 없다고 보아도 되리라.
콰악-!
그의 의지를 전달받은 기체, 플라네스가 회색빛으로 빚어진 관절로 렌스를 더욱 굳건하게 틀어쥐었다.
우우우우웅……!
진동하는 마나의 흐름은 메인 코어를 미친 듯이 점멸시키며 빠르게 회전했고, 곧 그의 창끝에서 시작된 섬광은 그대로 기체를 뒤덮어 세이렌을 향해 내리꽂혔다.
〔……오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실은 무심결 그를 불렀으나, 이미 결심을 끝낸 세로스에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흐름일 뿐이었다.
-아, 아아아아.
쇄도하는 유성(流星).
그것을 지켜본 세이렌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그저 담담한, 어쩌면 슬픈 읊조림을 흘렸다.
그리고, 세로스 역시 시야를 가득 메우는 빛과 선율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잘 가라. 빌어먹을 놈아.〕
그의 창끝이 빛무리에 닿았다.
“어……?”
그 모습을 상공에서 지켜보던 마리는 멍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좇았고.
〔……안 돼!〕
세실은 흐르는 물결을 헤치고 그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그 직후.
일순간 모든 전장에 정적이 흘렀고, 흐르는 물안개마저 침묵하던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세로스의 기체, 플라네스를 덮쳤다.
압도적인 충격파가 일대를 뒤덮는다.
물결은 쓰나미가 되어 마수들과 군인들을 덮쳤고, 그 자체로 압도적인 공포로 그들을 지배했다.
“아, 아아아.”
마리는 눈을 떨며 상황판에 보이는 세로스의 뒷모습을 좇았다.
황녀를 모시는 로열 가드가 취하기에는 너무나도 예를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시리아 황녀 역시 슬픔과 비통함이 담긴 시선으로 눈을 감았다.
〔오, 오빠?〕
세실의 경우엔 더욱 충격이 심했다.
그녀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멍하니 읊조렸고, 곧 전장에는 비통한 감정이 뒤엉킨다.
콰악.
유엘은 입술을 깨물었고, 페고르 역시 조용히 성호를 그으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세로스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때.
〔쿨럭!〕
오픈 회선으로 익숙한, 그러나 들려선 안되는 남자의 기침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직후.
서서히 걷히는 물안개와 섬광 속에서 쿠웅, 하는 묵직한 진동음이 울려 퍼지니.
〔……쿨럭, 뒈지는 줄 알았네.〕
그건 다름이 아닌, 세로스의 쾌활하고도 유쾌한 목소리였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5)
〔쿨럭, 뒈지는 줄 알았네.〕
세로스의 목소리가 다시금 통신기를 타고 전장에 울려 퍼진 직후, 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십 년 감수한 느낌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과거 단테 대령과 함께 나이트메어를 끝장낸 플라네스가 무너진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사기 저하를 이끌어 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놀라게 하기는.”
세실은 그런 읊조림을 흘리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세로스의 연인인 마리와 시리아 제4 황녀 역시 각각 애달픔과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숨을 내쉬었다.
“……가만 안 둘 거야.”
물론 그 찰나의 순간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마리는 심장이 철렁하게 만든 세로스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안도 속에서 그들은 그의 거취를 좇았고, 곧 자욱한 물안개 사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플라네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플라네스의 모습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으니…….
렌스를 쥐었던 오른쪽 팔은 반쯤 뜯겨나가 프레임이 드러난 지 오래였고, 그마저도 대부분 부품이 고장 나고 소실되어 사실상 오른팔을 잃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팔이 그 정도인데 렌스는 어떻겠는가.
뼈대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부러져 이젠 무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불가능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피해만 입었느냐.
그건 당연히 아니었으니.
〔……다신 못 할 짓거리야, 퉤!〕
세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느새 완전히 안개와 연기가 걷힌 뒤를 응시했다.
머지않아 그들의 시선에 보인 것은 등껍질이 박살 난 거북이 외형의 최상급 마수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세이렌의 거취였다.
그 빈자리는 마치 세이렌이라는 존재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나, 세로스는 분명히 보았다.
파스스스-.
그의 렌스가 빛무리에 닿는 그 순간, 흐려진 빛은 마치 먼지가 흩어지듯 가라앉으며 빠르게 심연 너머로 사라졌다는 걸 말이다.
‘네임드의 죽음치고는 허무하지만.’
세뇌 능력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다는 네임드이기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일반적인 파일럿이었다면 접근조차 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쥐었다 편 그는 문득 시선을 내렸다.
주르륵.
턱 선을 따라 핏물이 흐른다.
마른 손으로 입가를 훑자, 곧 그는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마나 하트는…… 딱 불구되기 직전.’
마나 하트가 아무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역에 닿아있다고 한들, 오랫동안 갈고닦았던 그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
단 1분, 아니 30초만 더 시간을 끌었더라면 그의 마나 하트는 영영 쓸 수 없는 깨진 그릇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고통은 있을지언정 후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죽은 건 세이렌이고, 그 자신은 요양을 좀 길게 해야 할지언정 결국 살아남았으니까 말이다.
끼기기기긱……!
곳곳이 움푹 파이고, 상처로 인해 궤적이 길게 남은 푸른 장갑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는 바닷물과 함께 거북이의 육신에서 터져 나온 핏물에 어지럽게 더렵혀진 기체를 이끌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기체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쿠우웅-!
그 모습에 세실은 곧바로 물결을 헤치고 그에게 다가가 아틀라스의 손으로 그의 기체를 부축했다.
그러나 그때.
-끼, 끼기기기기!
미처 목숨을 잃지는 않은 최상급 마수가 등에 입은 고통을 복수하겠다는 듯 육신을 일으켜 그들을 노려보았으나, 그 순간 놈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시선을 올린 놈은 곧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갈겨!〕
콰과과과과과과광!
퍼어어어어어엉!
곧바로 엄호를 하기 위해 투입된 비행함들이 거북이의 외양을 한 놈을 향해 무자비한 함포 사격을 때려 박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최상급 마수에겐 잠깐의 충격은 있을지언정 그리 유의미한 공격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세로스가 몸을 뺄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세로스가 안정적으로 몸을 뺀 직후.
〔분투에 경의를, 저희가 뒤를 맡겠습니다!〕
〔제국에 영광을!〕
이때까지 전선의 안정에 힘을 쏟고 있던 제12 군단의 파일럿들이 빠르게 전방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세이렌은 죽었고, 최상급 마수도 반쯤은 힘을 잃은 상태이니 본격적인 공세를 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야.’
세로스는 슬슬 띵한 머리를 애써 부여잡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스스스…….
찰나의 순간 전장을 감싼 마나의 기류가 어지럽게 뒤흔들렸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오직 세로스만이 시선을 조금 전 세이렌이 있었던 방향으로 틀었으니.
그는 인강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착각인가?’
그러나 본능이 외친다.
착각이라기엔, 자신이 느낀 감각이 너무나도 기묘하고 또한 서늘했다고 말이다.
〔……잠시만.〕
때문에 그는 자신을 부축하는 세실에게 그렇게 읊조리곤 시선을 돌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무수히 많은 마수가 밀려온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전투가 시작된 이래 계속해서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평선 너머에서 끝도 없이 밀려오는 마수들이 모두 굳어 버린 것이다.
‘굳었다고?’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조금은 진정 된 마나 하트에서 마나를 끌어 시야를 더욱 좁혔다.
그리고 그 순간.
수배는 강화된 그의 시야에 아주 작게 보인 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무언가였다.
‘……!’
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느껴질 뿐이다.
저 형체를 모를 무언가가 엄청나게 위험하고, 그건 지금 바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단장님, 왜 그러십니까?〕
때마침 귓가에 세실의 목소리가 스친다.
분명 오빠라고 부르려다가 멈칫한 터일 것이다.
원래 그런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속은 여리면서 겉으론 되도록 흠결을 보이지 않으려는 아이.
거기까지 생각한 세로스는 찰나의 순간 아무 많은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에게 그리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남은 건 선택일 뿐이었다.
‘피하기엔 늦었어.’
이미 그가 발견한 시점부터 그랬다.
아니,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으면 영문도 모르게 황천길을 걸을 뻔했으니까 차라리 운은 조금 좋은 편인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뻗었다.
끼기긱-!
오른손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역시나 멀쩡하지 못한 왼쪽 관절이 특유의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뒤흔들리고, 그는 세실이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의 녹색 창을 빼앗았다.
〔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는 콕피트 안에서 어벙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그녀의 목소리에도 그저 홀린 듯 창대를 쥐었고, 곧 반파되어 어깨만 남은 오른쪽으로 세실의 기체, 아틀라스를 밀었다.
동시에 그의 기체인 플라네스는 많은 부분이 망가진 장갑으로 그녀를 등지니.
세로스는 콕피트 안에 있을 자신을 여동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시선에 세실의 창을 쥐고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창을 뻗은 세로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터엉-!
무언가 빈 깡통을 때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그보다 한발 늦게 세로스가 쥔 세실의 녹색 창에서 그 특유의 푸르스름한 마나가 일어나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니.
“무슨?”
“갑자기 왜……?”
모두가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하는 세로스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세로스는 느꼈다.
이 공격을 막아 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운이 좋아도 반쯤은 죽겠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터엉, 하는 짧고 강렬하게 닿은 충격은 곧 세로스의 마나를 게걸스럽게 잡아먹듯이 빠르게 팽창했고.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야말로 엄청난 폭음을 동반하며 그의 푸른 기체를 단번에 찢어발길 듯이 뒤흔들기 시작했다.
쏘아진 것은 어떤 흔적도 없다.
다만 그저 공기가 흔들리는 긴 선과 그것에 직격당해 허공으로 붕- 뜬 플라네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기체의 장갑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크흐윽!〕
〔무, 무슨?〕
동시에 그가 밀쳐낸 세실을 비롯한 수많은 파일럿들은 기체가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에 직격당한 세로스는 겨우 그 정도 선에서 끝나지 않았으니.
“커허억!”
이미 기체는 역소환된 지 오래였다.
내장이 어지럽게 뒤틀렸다.
시야는 끊임없이 반전되었다.
위로, 아래로…….
역류한 핏물은 식도를 따라 그의 입가에서 터져 나왔고, 세로스는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다의 위로 부웅 떠오를 뿐이었다.
〔세로스!〕
그러나 다행히게도 그것을 발겨한 클리에는 그렇게 외치며 손을 뻗었고, 곧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세로스의 육신이 그녀의 기체인 갱플랭크의 손 위로 올라왔다.
다행히 바다에 빠지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멍한 눈으로 공격이 날아온 수평선 너머를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조금 전 공격을 받으려고 시도한 세로스를 제외한 누구도 그것을 느끼기는커녕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찰팍-.
육안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곳에서, 수면 위를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찰팍-.
맨발로 수면 위를 디딘 모습은 짐짓 신성했으나 동시에 기묘했으니, 그녀를 발견한 모두는 아연실색하며 본능적인 두려움이 몸을 떨었다.
‘설마……?’
클리에는 그녀를 응시했다.
소녀보다는 성숙한, 하지만 성인이라기에는 앳된 청소년 정도의 체구.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늘빛 장발.
물결치는 파도와 같은 드레스.
모든 것이 그녀가 인간과 닿아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전장에 선 모두는 확신했다.
-놈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 괴물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답 역시 곧 머지않아 모두의 뇌리 속에 박혀 새겨진다.
……저건 바로 여왕이라고.
그때, 클리에의 시선이 갱플랭크의 손바닥 위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는 세로스에게 닿았고 곧 그가 위독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에이스들은 한 번 사용하는 것으로도 종종 요양을 해야 하는 시그니처를 벌써 세 번이나 사용한 그였다.
특히 기체까지 역소환이 되었다면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터.
아니나 다를까.
“……쿨럭, 커허억!”
평소 여유롭고 쾌활한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모조리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몸의 곳곳이 부서진 거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때문에, 클리에는 다급히 그를 의무병에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어느새 육안으로도 시야에 담길 정도로 가까워진 여왕의 입이 열렸고, 그 직후 모든 전장의 공기는 서늘하게 얼어붙었으니.
-자비의 여왕.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전장을 훑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곧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물줄기를 창백한 뺨에 그으며 말하니.
-가엾은 너희를 죽음으로써 해방시킬 자일지니.
그건, 또 하나의 궤변이자 선전포고였다.
-경배하라.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6)
전장은 침묵으로 물들었다.
아니, 충격으로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으리라.
연합 왕국의 군인들.
법국의 군인들.
제국과 제12 군단의 군인들까지.
그들은 조금 전까지 영웅이나 다름이 없었던 세로스가 일격에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여왕이라는 개체가 이 세상에 나타난 지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았고, 여왕을 마주한 이들이라고 해 봐야 과거 프란틴에 있었던 군인들과 특임대의 일부 인원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완전히 평정을 잃지 않은 이는 분명히 존재했으니, 의외로 세실이 그러했다.
〔……유엘, 페고르.〕
〔아, 예!〕
〔세로스 단장을 수습해서 후방으로 빠져라.〕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령은 그나마 평온한 어투로 이어졌으나 꽤 오랜 시간 그녀의 곁에 붙어 있었던 유엘과 페고르는 알았다.
지금 그녀가 만든 평정은 억지로 꾸며 낸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와 두려움이 있다는 걸 말이다.
쿠우웅!
정적이 맴도는 전장 속에 그들은 곧바로 클리에에게 향하여 세로스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세실은 여왕을 비롯한 마수들에게 다른 생각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통신기 너머로 읊조렸다.
〔현시점부터 로열 가드에 대한 지휘권은 본 중령이 이어받겠다. 이의 있나?〕
본디 지휘관이 부재중에는 부단장을 역임하는 이가 지휘권을 이어받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부단장은 세실의 명령을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로열 가드는 특임대의 지휘체계 안에 흡수되었고, 세실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명령했다.
〔세이렌은 제거되었다. 특임대 전원 강습.〕
그녀의 명령은 지극히 합리적인 동시에 정확했고, 곧 특임대 소속 비행함의 격납고들이 열리고 무수한 특임대원들이 그대로 전장으로 쇄도했다.
그뿐인가.
콰악-!
세실은 녹색 빛이 번뜩이는 창이 아닌 바다로 추락해 대지에 꽂힌 낯선 창을 틀어쥐었다.
그녀의 창대는 부러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쿠구구구궁!
우우우웅!
세실의 간결하고 정확한 명령 덕분일까.
비단 특임대와 로열 가드뿐만이 아니라 전장의 군인들은 현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세로스 단장은 쓰러졌다.
그리고 자신들은 죽은 세이렌이 아닌 그보다 상위 개체인 여왕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의문 역시 차올랐으니.
-…….
스스로 자비의 여왕이라 읊조린 괴물은 그들이 전선을 정비하는 동안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상황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놈은 말하는 듯 했다.
이것이 바로 자비라고 말이다.
그것은 곧 기만이었고, 놈들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역겨움이었다.
‘하지만…….’
세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그 이상으로 현실을 볼 줄 알았다.
어찌 오빠인 세로스가 걱정되지 않을까.
다른 이들과 달리 사이가 나쁘지 않은 남매 관계였기에, 더더욱 그녀의 심장은 분노와 두려움, 걱정과 슬픔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한 법.
지금은 분노할 때도, 추모할 때도 아니다.
그저 살아남는 데에 주력할 때다.
그녀는 손에 쥔, 지금은 전사했을 이름 모를 파일럿이 아꼈을 창을 쥔 채로 갈색빛이 도는 눈을 번뜩였다.
동시에 그녀의 입이 열리니.
〔제국을…… 아니, 인류를 위하여.〕
그녀의 읊조림은 마치 전염병처럼 군인들 사이를 관통했고, 곧 세실을 필두로 한 로열 가드와 특임대의 파일럿들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철퍼억!
쿠구구궁!
그들이 선 해안가는 더 이상 옅지 않았다.
각각 20m, 혹은 그보다 큰 기체들이 물 위를 내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라 할 만했으나 정작 그들을 단신으로 마주하는 자비의 여왕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가엾도다.
입으로는 연민을 읊조린다.
-가엾고도 가여워라.
자비를 속삭이고, 투명하리만큼 청아한 물줄기를 창백한 뺨에 흘린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것은 철저한 무심(無心)이었기에, 세실은 생각했다.
놈이 가진 모든 감정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녹음을 틀어대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가만히 전황을 살피던 여왕은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로 근접한 이들을 응시하며 여태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손끝을 흔들었고.
파아앙-!
짧은 파장과 함께 울린 공간은 머지않아 그녀가 디디고 선 바다의 수면을 어지럽게 뒤흔들었다.
그 직후.
푸르스름한 놈의 눈동자가 번뜩인다.
그리고 곧 그녀의 손끝이 흔들린 수면은 마치 물결치듯이 출렁거리며 일순간 솟구쳤고, 곧 세실을 지나 선두로 내달린 로열 가드들을 덮쳤다.
〔흐으읍!〕
〔하아아아앗!〕
에이스에 비할 바는 되지 않으나, 그들 역시 로열 가드 소속인 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명성은 여왕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에겐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일 따름이었다.
솨아아아-!
뻗어진 물결을 베었다.
그러나 그들이 벤 물결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가진 뱀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강하게 기체를 옭아맸으니.
〔무, 무슨?〕
〔끄아아아아아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그들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그것들을 베고, 찢으며, 뜯었다.
그러나 그뿐.
어떠한 것도 그것에 상처를 입히지 못했고, 곧 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저히 농락당하며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파일럿 두 명이 죽었다.
그 광경은 그 자체로 사기를 나락으로 처박을 모습이었기에, 세실 역시 입술을 잘근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이 빌어먹을 년이!〕
시그니처(Signature).
함대사격(艦隊射擊).
미간을 좁힌 채, 입술에 뚫어진 피어싱이 뜯어져 상처가 날 정도로 입술을 잘근 씹은 클리에가 일갈하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녀의 기체, 갱플랭크에 팔을 대신하여 달려 있는 거대한 주포가 다시금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엉!
떨림은 케이블과 장갑을 뒤흔들었다.
그녀 역시 두 번째 사용하는 시그니처이기에 부담감이 없을 순 없었다.
그러나 무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여왕을 향해 포격을 부었고, 그것들은 곧 붉은 궤적을 그리며 놈을 집어삼킬 듯 쏟아졌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콰과과과과과광!
포격이 비처럼 쏟아지면 이러할까.
당연하게도 자욱한 수증기와 연기가 여왕을 덮었고, 클리에는 식은땀은 물론 코피까지 흘리면서도 화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시일!〕
클리에의 일갈과 함께, 자욱한 안개와 수증기 너머의 여왕 앞에 다다른 세실은 거대한 창대로 원을 그렸다.
우우우웅-!
그녀 특유의 녹색 마나가 창대를 따라 흐르고, 거대한 원은 그 마나의 궤적을 좇아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흐으읍!〕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는다.
콕피트 너머로 보이는 놈을 특정하고 그대로 창대를 그으니.
서거거걱!
‘베었나?’
그녀가 쥔 창대의 끝자락이 마나로 인해 녹아내렸으나, 세실이 한계까지 끌어 올린 녹색 칼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분명히 무언가를 베었다.
그러나 그것이 여왕임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후속타를 때리기 위해 크게 원을 그린 창대를 거두며 그대로 반으로 내리찍으려던 그때였다.
-나쁘지 않았구나.
하얀 수증기와 검은 연기가 뒤섞인다.
그러고는 곧 세실의 공격에 걷힌 그 틈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비의 여왕은 특유의 푸르스름한 눈동자에 강철의 거인을 담았다.
아니, 정확히는 기체 너머 콕피트에 앉아 있는 그녀를 응시하며 읊조리는 것이니.
-다만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건 지독하게도 역겨운 한 마디였다.
동시에 세실은 보았다.
그녀가 벤 것이, 여왕이 아니라 그녀의 곁을 지키는 수많은 물줄기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이다.
〔……허.〕
그녀답지 않게 실소를 흘린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으니.
까닥.
여왕의 손끝이 흔들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동시에, 곧바로 그녀의 기체 역시 세로스의 기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허공을 날았다.
〔커어어억!〕
핏물이 튄다.
동시에, 그녀의 시야는 뒤집혀 전장을 응시했다.
〔이런 미친……!〕
클리에는 세실마저 당하는 모습에 경기에 가까운 외침을 읊조리며 여왕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세로스를 후방에 데려다 놓은 유엘과 페고르 역시 그녀가 당하는 모습에 그 자리에서 굳은 모습이었다.
어찌 그들뿐일까.
〔……졌어, 졌다고.〕
〔신은 대륙을 버리시는가…….〕
세실이 날아간 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잠깐 허공에 부유하는 사이에 자비의 여왕이 부리는 물줄기로 인해 죽어간 파일럿이 벌써 두 자리를 넘은 것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차.
아무리 사기를 끌어 모아 모두를 다독인다고 한들, 그것을 증명할 자가 없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인 것이다.
그렇기에 세실은 물론이고, 클리에와 전황을 살피고 있는 시리아까지 모두가 한 남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
그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시리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언젠가부터 곁에서 사라진 마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부관이 무단으로 상관의 곁을 이탈했다.
그것은 엄벌에 처 할 만용이었으나, 정작 시리아조차도 마음 같아선 세로스에게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단장께서 위독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소리를 듣는데, 어찌하여 그러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기도했다.
‘제발.’
더는 늦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때.
“어……?”
더는 웃음을 흘리지 않고, 침중한 표정으로 암울한 전장을 지휘하던 몽펠리에 드 피코크 중장이 입에 문 시가를 떨어트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곤 곧 잃었던 미소를 되찾으니.
그는 눈을 감고 기도하던 시리아에게 성큼 다가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황녀 전하!”
“……예?”
“아무래도, 신은 대륙을 버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신은 대륙을 버리지 않았다.
그 말에 시리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고, 곧 그녀는 황실 비행함 위로 빠르게 날아가는 수송함과 그 격납고에서 추락하는 일련의 이들을 확인하곤 안도가 뒤섞인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길 수 있어요.”
꽈악!
그녀는 앉아 있는 자리의 팔걸이를 꽉 쥔 채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단테 대령이 왔으니까.”
그건 이미, 검증이 필요 없는 하나의 믿음이자 신앙이나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