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혼은 언제 하시죠?”
“아, 예? 어으…….”
황녀의 게슴츠레한 시선과 함께 내뱉어진 물음에 마리는 붉게 얼굴을 물들이며 고개를 내렸다.
그녀로선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민인 그녀와 진성 귀족인 세로스 드 아크레데에의 연애는 로열 가드 제4 단 내부에서도 적잖은 충격이었음과 동시에 절대로 식지 않는 놀림거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소탈한 성격의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 입장에서도 참을 수가 없는 떡밥이었다.
당연히 몽펠리에 준장 역시 거들긴 매한가지였다.
“허, 시대가 변하고 있기는 한가 봅니다, 황녀 전하.”
“변하다 뿐입니까? 격변하고 있지요.”
그런 둘의 대화에 마리는 더욱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황녀와 준장의 놀림에 일개 평민 출신의 부사관이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곧 시선을 내리며 급변하는 전황을 살피는 데에 주력했으니.
“……다행히 승기를 잡아 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몽펠리에 준장의 말에 시리아 황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부디 이대로만 끝나 달라고 말이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4)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네임드인 크라켄의 흉포함이 그저 다리가 하나 뜯어졌다고 사그라들리라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측이었다.
-끼에에에에에!
꽤 깊은 물결 사이로 빠르게 쇄도하는 놈의 촉수를 따라 물결이 뒤엉키듯 딸려 왔다.
놈은 울음을 터트리며 바다 아래에서 촉수를 어지럽게 뒤흔들었고,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모든 나이트 프레임이 그것을 적절하게 대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세로스와 로열 가드의 분투 속에서도 또 한 기의 나이트 프레임이 발목에 검은 촉수가 감겨 허공으로 끌려 올라갔다.
〔끄아아아아아악!〕
통신기 너머로 끌려 올라간 파일럿은 통신기를 미처 끌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몸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기체의 고통은 파일럿에게도 전해진다.
그 말인즉, 허공으로 끌려 올라간 기체의 파일럿은 거대한 촉수가 기체를 우그러트리는 압력을 모조리 받아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 고통은 일개 인간의 육신으로 쉬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리라.
〔단장님!〕
〔크윽!〕
뒤늦게 그것을 발견한 세로스가 그를 구하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 나갔지만, 이미 통신기에서 들려오는 헐떡임과 고통이 예사의 것은 아니었다.
쿠우우웅!
그의 기체, 플라네스의 묵직하지만 유려한 움직임에 푸르스름한 갑주가 흔들렸다.
육중한 걸음에 바닷물이 어지럽게 튀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진 거대한 렌스는 나이트 프레임을 유린하고 있는 크라켄의 다리를 단번에 꿰뚫기에 충분했다.
콰드드드득-!
강철에 짓눌린 살점이 밀려나 어지럽게 뒤엉켰고, 동시에 놈의 다리에 묶여 있던 나이트 프레임의 거대한 몸체 역시 다시금 바다로 추락했다.
〔퉤.〕
세로스는 입가에 가득 찬 침을 콕피트 바닥에 뱉어 내곤 땀에 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곧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니.
‘상황이 좋진 않은데.’
너무 늦지 않게 제12 군단이 합류하고 그를 비롯한 로열 가드가 최전선에 섬으로써 사기를 끌어 올리긴 했으나, 전장이 돌아가는 상황은 여전히 급박하기 그지없었다.
“제발 정신 차려! 으아아악!”
“아아, 아아아아…….”
법국의 보병들 일부가 퇴각하긴 했으나 아직 많은 수가 세이렌의 홀림에 빠져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뿐인가.
콰아아아아앙!
〔크, 크라켄의 촉수가!〕
3국 중 가장 우월한 비행함 기술을 자랑하는 연합 왕국 역시 최대한의 지원을 하고 있긴 했으나, 크라켄을 비롯해 공중을 뒤덮은 마수들을 상대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로스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제기랄.’
불길함이 차올랐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아, 아아아아!
저 멀리 거북이의 등 뒤에서 반짝거리는 세이렌의 불빛이 어지럽게 점멸했고, 전장에서 또 다시 암울한 선율이 흩뿌려졌다.
놈의 세뇌는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해안가를 따라 흩어지고, 그 영향은 이제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는 일부 군인들에게까지 닿을 정도였다.
〔아, 아아아.〕
로열 가드나 제국의 제12 군단의 파일럿들은 그나마 그런 세뇌에 받는 영향이 덜했지만,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연합 왕국이나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의 기동이 조금씩 버벅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전장에서 그 찰나의 틈은 목숨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따닥, 따다다닥!
족히 10m는 아득히 넘을 듯한 거대한 육신을 가진 가재를 닮은 마수가 특유의 입질 소리를 울리며 손을 뻗었다.
콰드드득!
〔컥!〕
따개비와 해초가 붙은 묵직한 집게가 단번에 나이트 프레임의 복부를 찍었고, 그 안에 있는 파일럿은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단말마의 신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거체가 천천히 기울었다.
마수는 나이트 프레임의 허리를 찢어 버리려는 듯 육중한 무게를 가진 집게에 가한 힘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고, 당장이라도 잘려 뜯길 듯한 그 공격에 세로스가 달려간다고 한들 이미 때는 늦을 터였다.
그러나 그 순간.
〔허.〕
그를 보는 세로스를 비롯한 로열 가드의 표정은 절대 절망적이지 않았으니, 그들의 시선은 마수의 바로 위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그림자에 닿았다.
그리고 그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수의 등에 특임대 강습 나이트 프레임의 발이 닿고, 익숙한 녹색 창이 단번에 놈의 목과 머리 사이의 틈새를 꿰뚫었다.
콰드득!
그야말로 일격(一擊).
덕분에 목숨을 구한 파일럿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시선을 옮겨 강습한 기체에게 향했고,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따라 흐르니.
〔특임대 소속 기갑강습대대 대대장 세실 중령 외 기갑강습대대 총원 532명.〕
그녀의 입술이 열리는 것을 기점으로 하늘을 일순간 검게 메우며 무수한 기체들이 빠르게 강습을 시작한다.
〔후우.〕
〔긴장하지 마.〕
유엘과 페고르 역시 기체에 올라 제각기의 무구인 미스릴 소드와 102mm 구경 라이플을 쥐었다.
궤도차는 물론이고, 일부 자원병에 한해서 보병 전력까지 빠르게 전선을 메우는 모습은 짐짓 장엄하다는 말로 표현될만한 것이었다.
비단 특임대뿐만이 아니다.
쿠우우우우웅!
다른 기체들과 달리 하복부가 비대한, 연합 왕국 특유의 기체가 바다를 디딘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곧 모습을 드러낸 기체는 양손 대신 길고 거대한 포대를 가진 클리에의 기체, 갱플랭크였으니.
그녀는 세실의 말에 화답하듯 기체의 포대를 더욱 붉게 물들였다.
〔현시점 부로 세이렌 척살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직후, 그녀의 읊조림과 함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