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45화 (145/197)

“세이렌……. 그렇군요.”

세실과 클리에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전달받은 그녀는 쓴 입가를 물로 축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세로스보다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그의 연인이자 참모인 마리가 말했다.

“현재 전장의 기갑 장비로는 전황이 절망적입니다. 빠른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하.”

“알고 있습니다.”

빠른 결단.

직후 그녀는 화면으로 시선을 옮겨 클리에와 세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문제는 세이렌이라고 이해하여도 괜찮겠죠. 제독, 중령.”

“그렇습니다. 전하.”

클리에는 예를 갖추며 화답했고, 시리아는 특유의 총명한 잿빛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세로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거구의 노인을 향해 말하니.

“몽펠리에 드 피코크 중장.”

“여부가 있겠나이까, 전하.”

그는 특유의 푸른빛이 도는 수염을 갈무리하곤 곧바로 통신기를 쥐었다.

“제12 군단의 장병들이여! 황녀 전하께서 그대들에게 제국에 대한 충성을 묻고 계신다!”

늙은 몸에서 나왔다고는 쉬이 믿을 수 없는 우렁찬 목소리는 비행함에서 전투를 준비 중인 모든 군단의 가슴을 울렸다.

동시에 그는 황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수염을 쓸던 손을 강하게 아래로 휘저으며 명령하니.

“놈들을 모조리 찢어발겨 버려라!”

동시에 일련의 수송함들이 빠르게 전장 상공으로 쇄도했고, 곧 중장비를 갖춘 수백 기의 나이트 프레임, 아틀라스가 케이블에 매달려 해안가로 강습하기 시작했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왔다!〕

〔모조리 쓸어버려!〕

덕분에 마수들과 대치를 하느라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들 역시 환호성을 내질렀으나, 그 모습을 보는 클리에와 세실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전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황을 유지한다고 해도 본질적인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결국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우려가 가득 담긴 세실의 말대로 당장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시간을 번다고 해도 결국 세이렌을 잡지 못하면 보병 전력을 투입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이 전투는 필패(必敗).

하지만 그런 세실의 우려에 시리아는 다소 피로가 뒤섞인 웃음을 지으면서도 화답하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실 중령.”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세로스에게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할 수 있겠습니까, 단장?”

“어찌 제가 못 하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주군이시여.”

그러자 세로스는 여태까지 늘 보였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조아렸고, 곧 함교에 자리한 모든 로열 가드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림으로써 최대의 경의를 보였다.

“설마?”

때문에, 세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이 전장에 자신의 로열 가드를 투입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당황한 사람은 비단 세실뿐만이 아니었다.

클리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로열 가드(Royal Guard).

그 자체로 정예 부대인 그들을 급박한 전장에 투입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모든 황녀와 황자는 로열 가드의 1개 단을 얻는다.

그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황제에게 엠퍼러 가드(Emperor Guard)가 절대 배신하지 않는 우방인 것처럼 황제를 향한 경쟁에서 로열 가드란 해당 후계자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최후의 보루다.

그런 조직을 전투에 투입시킨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향후 그녀의 입지는 물론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오빠를 보내야 하는 세실에게는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시리아는 웃으며 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투는 계속되고 많은 장병들이 제가 흩뿌린 희망에 몸을 바쳐 죽고 있어요. 그런데 이 정도 배팅도 하지 못하면 애초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실과 클리에와 달리 그녀의 곁에 서 있는 세로스와 몽펠리에 준장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지지를 받는 결정권자는 안심할 수 있다.

그녀는 그런 말을 읊조리며 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12 군단은 뒤엉킨 전선, 특히 법국 쪽에 투입되어 전선을 고착화시키는 데에 주력합니다. 동시에 세로스 단장을 필두로 한 로열 가드와 특임대는 빠르게 길을 뚫어 세이렌을 사냥하도록 하겠어요. 이의 있나요?”

비록 나이는 어렸으나 이미 숱한 북부 시찰과 명석한 두뇌로 어지간한 전술 장교와 맞먹는다는 평가를 받는 그녀다.

때문에, 그들은 별다른 반론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투입을 준비했다.

“그래, 오늘 어떻게든 모가지를…….”

클리에 역시 충격을 발판 삼아 입술을 잘근 깨물며 투입을 위해 함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때.

“황녀 전하.”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묘한 위화감을 곱씹던 세실은 화상 통신을 끊으려던 황녀를 불렀다.

“예?”

시리아는 그런 그녀의 물음에 답했고, 막 함교를 나서려던 클리에와 장교들 역시 세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 가운데에서 세실은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물으니.

“단테 대령에 대해서 묻지 않으십니까?”

“……아.”

그제야 모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황녀를 응시했다.

단테 대령이 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가 모종의 이유로 자리를 비웠다는 걸 이미 전달받았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특임대 내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일 뿐, 황녀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또한.”

더욱이 의문은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세실은 ‘역시 내 동생이라니까.’ 따위의 흐뭇한 미소를 짓는 세로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어찌 이렇게 빠르게 군단을 몰고 오실 수 있던 것입니까?”

그것 역시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가려진 의문점이었다.

“그 정도 규모의 편대를 이끌고 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촉박하게 잡는다고 해도 하루 전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제12 군단의 주둔지는 망르에서 멀지 않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멀지 않다’일 뿐.

절대 전황을 듣고 달려온 것으로는 맞출 수 없는 거리였다.

제4 황녀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왜인지 자리한 이 의문점을 해소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 음.”

시리아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곤, 이내 곁에 서서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로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으니.

“솔직히 말해 봐요, 말해 준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군이시여.”

“끌끌! 세르겐 그 친구가 딸 하나는 기똥차게 키웠어.”

곁에 선 몽펠리에 중장 역시 그런 세실을 보며 기특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때문에, 세실로선 뻘쭘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로선 당신들의 저의가 의심된다는 의도로 말한 것이거늘 돌아오는 반응이 저러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어요. 다만 전황이 전황이니 간략하게만 말하자면…….”

시리아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눈동자를 굴리는 세실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으니.

“제국의 든든한 우방이 말해 줬답니다. 지금 당장 망르로 가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건 사뭇, 의미심장한 한마디였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3)

전장의 상황이 치열하게 돌아가는지라 더 긴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음은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작전은 입안되는 즉시 실행되었다.

끼기긱-!

상공을 뒤덮은 제국의 제12 군단 소속 나이트 프레임들은 제각기 견갑부와 허리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빠르게 지상으로 강습했고, 곧 그들을 반기는 마수들의 입과 몸통에 총탄과 칼날을 박아 넣어 주었다.

딱, 따다닥!

해안가에 사는 갑각류를 갈가리 찢어서 다시 붙여 놓으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마수는 갓 모래사장을 디딘 나이트 프레임을 향해 날카롭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집게를 밀어 올렸다.

〔흣!〕

터어어엉!

그러나 정작 제12 군단의 마크를 어깨에 장착한 그는 일말의 당황조차 없이 전면에 장착된 갑주로 놈의 공격을 막아 냈다.

뒤이어 그는 손에 쥔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외쳤다.

〔제국에 영광이 있으리라!〕

부우웅-!

바람소리를 내며 육중한 망치의 머리가 어지럽게 뒤엉키고 부패한 마수의 턱 아래를 때렸다.

콰드드드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으깨어졌고, 곧 놈의 거대한 육신이 기울어짐과 함께 녹색의 뇌수가 모래사장과 나이트 프레임을 어지럽게 더럽혔다.

비단 그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전장에 선 모든 나이트 프레임들은 개체 하나가 기본 5m에서 10m는 아득히 넘는 괴물들을 상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흐아아!〕

〔모조리 죽여 버려!〕

남녀를 가릴 것이 없다.

또한 국적을 가릴 것도 없다.

제국의 제12 군단이 투입되고 확실히 호전된 전선의 상황 속에서 세이렌의 세뇌에 저항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해안가에 상륙하기 직전인 놈들을 찢고, 죽이고, 도륙하고 있었다.

“제1열, 발포오오!”

비단 나이트 프레임들의 전투만이 전선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포병들은 우스갯소리로 나이트 프레임 예비대라고 불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다루는 마력포의 특성상 태반은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이 나이트 프레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여러 가지 이유로 기체에 오르는 것이 부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과과과과광!

해안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언덕과 성벽의 잔해 등에 배치된 마력 포대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마나의 잔향이 흐른다.

퍼어어엉!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진 포격은 제1 선에서 미친 듯이 마수들을 죽이고 있는 나이트 프레임들의 사이와 머리 위를 날아 미친 듯이 몰려오는 마수들을 다시금 바다로 수장시켰다.

키에에에엑!

따, 따다닥!

놈들의 시체는 쌓여 가고 나이트 프레임들의 장갑엔 온갖 핏물과 장기, 그리고 바닷물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리고 그 순간.

지상의 전선이 후퇴를 중지하고 빠른 속도로 공세로 변환하는 시점에서 크라켄의 촉수를 피해 더욱 고도를 높인 비행함들 역시 가만히 멍 때리고 있진 않았다.

우우우웅-!

엔진 역할을 하는 마석들이 미친 듯한 발열과 함께 비행함의 육중한 몸체를 구름에 가깝게 띄워 올리고, 곧 거치된 마력 포대들이 최대치까지 기울어지며 놈들을 겨냥했다.

그뿐인가.

〔아우라이 12기, 발진하겠다.〕

아우라이(Aurae).

룬어로 공기를 뜻하는 전투함들은 마지막 한기까지 격납고에서 빠져나와 창공을 향해 미끄러지듯 발진했다.

기용 가능한 모든 전력의 출전.

그 자체로 장엄한 광경이었으나 자칫하면 전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전장에 선 모든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니, 그건 바로 놈들을 이 해안에 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갈겨 버려!〕

〔마, 마석이 이상합니다! 마석이……. 크아아아악!〕

지상에선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한 나이트 프레임들의 육중한 무기가 마수들의 핏물을 제물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창공을 수놓는 포물선은 놈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 기세를 멈추지 않았고, 하늘을 수놓은 포격과 그 사이를 날아오르는 법국의 유게네스와 제국의 전투함인 아우라이의 모습은 모든 이들에게 잊지 못할 전율로 다가왔다.

-아, 아아아.

물론 놈들이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았으니, 어느 샌가 다시금 물 위로 떠 오른 거북이와 그 뒤에 타 있는 세이렌의 음성은 다시금 해안가를 따라 흘러 퍼졌다.

그 범위는 점점 넓어져 미처 퇴각하지 못하거나 마나 하트가 미천한 일부 군인들에겐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었으나, 그들의 사기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장 속.

“뭐,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이전의 다소 장난기와 여유가 뒤섞인 목소리가 아닌, 너무나도 낮게 가라앉은 세로스의 읊조림이 통신기가 아닌 콕피트 내부에서 낮게 울렸다.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이었다.

“유성이 바다에 꽂히면 어떻게 될까?”

동시에, 황실 비행함에서 일순간 빛이 번뜩이고 마력포와는 다른 무언가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지상으로 쇄도하니.

그것은 마치 유성과 같은 꼬리를 남기고 해안가의 가장 최전선에 내리꽂혔다.

파아아아아앙!

쿠우우웅!

강대한 충격에 바닷물이 튀었다.

물결치는 파도와 물안개는 마수들과 나이트 프레임들의 시야를 어지럽혔고, 머지않아 굽혔던 무언가가 허리를 세웠으니.

“간단하려나.”

콕피트 안에서 마찬가지로 몸을 세운 세로스는 특유의 갈색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겨 시야를 밝히곤 혀로 입술을 훑었다.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낮게 가라앉은 동공에 맺힌 것은 저 멀리 반짝거리는 세이렌과 당장이라도 나이트 프레임들을 모조리 학살할 듯 꿈틀거리는 크라켄의 모습이었다.

이 말이 놈들에게 닿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로스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놈들에게 선사할 미래를 읊조리니…….

“모조리 익어서 뒈지는 거지.”

그건 하나의 다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감히 인류를 내려다보는 마수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말겠다는 의지였고 말이다.

……그런 세로스의 읊조림이 닿은 것일까.

파아앙!

크라켄의 촉수가 허공에서 몇 번 긴 선을 그리다가 이윽고 정확히 세로스를 향해 뻗혀 나갔다.

공간이 찢어졌다.

어지간한 나이트 프레임의 길이보다 더 긴 검은 다리는 당장이라도 세로스의 기체를 찢어발길 듯했다.

그러나 그때.

꽈악-!

세로스가 손에 쥔 창대를 강하게 틀어쥔 순간, 그의 의지는 메인 코어를 지나 빠르게 기체에 닿았다.

우웅!

안광이 번뜩였다.

동시에 푸른빛이 도는 육중한 장갑이 그의 유려한 움직임을 따라 철그럭거렸다.

손에 쥔, 마치 마상 경기에서나 쓸법한 푸르스름하고 거대한 렌스가 케이블을 따라 흐른 마나를 머금고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스읍, 후…….〕

두근거리는 마나 하트의 감각.

꿈틀거리는 핏줄.

분명히 맡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터인데, 코끝에서 스치는 비릿하고도 역겨운 내음.

세로스는 모든 감각을 집중하며 눈앞을 응시했고, 곧 검은 촉수가 당장이라도 그의 기체를 박살 낼 듯한 그때였다.

콰악!

창대를 말아 쥐었다.

일직선을 그리며 내면의 마나를 폭사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쏘아지니.

파아앙!

처음엔 단지 공기를 뚫었다.

아니, 저것을 단순히 뚫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스스스슷!

어느 순간 아지랑이처럼 섞이는 푸른빛과 녹색 빛이 점멸하고 어지럽게 뒤엉킨다.

일전의 그것보다 훨씬 진보된 무언가였으니.

이윽고, 하나의 창이 수십 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창에서 또 하나의 창이 뻗히고, 단지 하나였던 창대는 곧 수십, 수백 개의 창이 되어 허공을 채운다.

그리고 검은 촉수와 그의 창대가 맞닿은 그 순간.

시그니처(Signature).

유성우(流星雨).

세로스의 입가에서 웃음이 번졌고, 곧 본능에 가까운 불길함을 느낀 크라켄이 촉수를 거두려던 그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광!

-끼에에에에에에에!

일직선으로 뻗어진 섬광은 크라켄의 검은 다리를 마치 쫓아가듯 쇄도하며 그를 노리고 날아온 살점을 사방으로 찢어 발겼다.

공간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어떤 포격에도 오히려 비행함을 반으로 접어 던지던 크라켄은 당황스러움과 고통 속에서 미친 듯이 다리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피해!〕

〔으아아!〕

물론 그것을 맞거나 피하는 등의 작은 소동이 있긴 했으나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후우.〕

세로스는 창대를 거뒀다.

그리고 분노에 찼음에도 이전과 같이 저돌적으로 다리를 뻗지 못하는 크라켄의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끼, 끼기기기!

-크르르르!

세이렌과 놈을 태운 최상급 마수로 추정되는 거북이와 달리, 크라켄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마수다.

그러니 놈을 견제한 것은 절대 낮은 전과가 아니었고, 그 모습을 후방이나 전장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의 압도적인 기량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으니.

〔저게 바로, 플라네스…….〕

제국군뿐만이 아니라, 법국과 연합 왕국의 군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과거 악몽처럼 다가온 네임드, 나이트메어(Nightmare)를 죽였던 기체 중 하나였다.

그리고 곧 그것은 그들에게 적잖은 희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플라네스가, 유성이 우리와 함께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후방에서 포대를 만지는 군인도.

〔함께 싸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로열 가드 전원, 강습 성공했습니다. 명령을.〕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기체에 올라 전장을 종횡하는 파일럿들 모두 세로스를 기점으로 다시금 사기를 되찾았다.

마침 모든 로열 가드들이 강습을 끝낸 상황.

그는 낮게 가라앉은 마음속에서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입을 열었다.

〔자, 한마디만 할 테니까 들어라.〕

그는 문득 시선을 돌려 저 하늘을 날고 있는 황실 비행함을 응시했다.

〔각자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무리는 하지 말고…….〕

그의 연인인 마리는 엄연히 부관이기 때문에, 비행함에 남아 대략적인 전선 상황의 변화와 대전략을 보고해 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제외하고 전장에 투입된 건 로열 가드 중 전투를 담당하는 80여 명의 인원뿐이었다.

즉, 그들 역시 이 통신을 듣고 있다는 소리.

때문에 세로스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를 다시금 꾸며 내 그녀에게 말했다.

〔살아서 돌아가자, 모두.〕

끼긱-!

그의 말을 끝으로 푸른 장갑을 한 플라네스의 기체가 다시금 관절음과 함께 창대를 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빠르게 돌입한 로열 가드 소곡의 나이트 프레임들 역시 곧바로 해안가로 몸을 옮겨 마수들을 도륙하기 시작했으니.

〔제국에 영광을. 우리에게 승리를.〕

세로스는 그 말을 읊조리고는 곧 창대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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