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르 해안가는 연합 왕국과 법국의 국경 사이에 존재하는 꽤 드넓은 곳이었다.
본디 해안의 이름을 본뜬 ‘망르’라는 중간 정도 크기의 항구 무역 도시가 자리했고 또한 번영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지상과 하늘이 그러했듯이 바다 역시 마수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간이 만든 방파제는 무너졌다.
미처 침몰하지 못한 함선의 조각들이 해안가의 물결을 따라 처량하게 흔들리고, 말라붙은 핏물이 바위에 붙은 조개들의 먹이가 되어 흔적만이 남으니.
긴 시간 동안 방치된 도시의 폐허는 어쩌면 영원토록 그렇게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래.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4시! 4시 방향에서……! 끄아아아악!〕
〔대체 저것들은 뭐야! 뭐냐고오!〕
통신기 너머에서 절규와 두려움에 가득 찬 비명이 찢어질 듯이 터져 흘렀다.
그뿐인가.
“주,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딱, 따다닥.
반쯤 찢어진 머리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병사들이 이빨이 빠르게 맞부딪치며 패닉에 빠진다.
동시에 비릿한 악취와 함께 바람을 타고 자욱한 소금기가 뒤섞인 굉음이 울려 퍼지니.
-키기기기기기!
거대한 그림자가 저 멀리 수평선을 꿰뚫듯이 빠르게 치솟았다.
곧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무언가를 본 군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아아……!”
“끝이야! 끝이라고! 젠장!”
쩌저걱.
갯강구와 따개비, 온갖 해조류가 어지럽게 뒤섞인 거대한 입이 서서히 갈라졌다.
등에 이은 거대한 반구 모양의 굴곡을 따라 사이에 끼어 함께 떠오른 바닷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가고.
솨아아아.
〔저, 저건…….〕
곧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놈의 모습을 본 한 나이트 프레임의 파일럿은 해안가를 지나 지상으로 올라온 마수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면서도 무심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북이?〕
그러나 그때.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섬처럼 떠오른 거북이의 등 뒤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읊조리니.
-아아.
단어도, 문장도, 하다못해 읊조림조차 되지 못하는 옅은 숨소리에 일순간 병사들의 숨이 멎듯이 멈췄다.
그것은 두려움 따위가 아니다.
경외는 더더욱 아니었고.
미지에 대한 경계 역시 아니었으니.
“아, 아아.”
“저를, 저를 가지소서.”
몇몇 병사들은 반쯤 넋이 나간 눈으로 손에 쥔 총을 버리고 앞으로 걸었다.
사박.
군화에 모래가 튄다.
비뚤어진 군모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아, 아름다워.”
너무나도 무방비한 걸음으로 모래사장 밖으로 향한 병사들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갈구하듯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까드득.
거대한 게를 닮은 마수가 집게로 병사의 머리와 사타구니 사이를 집었고, 손을 뻗은 병사의 육신은 곧바로 터졌다.
파앙!
터져 나간 육신은 일개 고깃덩어리로 변해 모래로 가득 찬 바닥을 굴렀고 다만 온전한 것은 뻗었던 손목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건.”
모든 전황을 살피는 모선의 함장 대리 좌석에 앉아 있던 세실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동시에 이어진 클리에의 화답은 간결했으니.
“네임드, 세이렌(Siren)이야.”
그건 실로 절망적인 읊조림이었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1)
세실과 클리에.
아니, 비단 두 지휘관뿐만이 아니라 망르 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와 같이 멍한 눈으로 거대한 거북이의 등에서 빛나고 있는 무언가를 응시했다.
파스스.
빛의 모습은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으니.
사람의 형상도 어떤 짐승의 형상도 아니다.
그저 어지럽게 뒤엉킨 혼란스러운 무언가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다만 확실한 건 있었다.
지독한 위화감이 느껴지고, 또한 기괴함이 섞인다는 것이다.
“……저게 바로 세이렌?”
세실과 클리에의 읊조림을 들은 비행함의 승무원이 중얼거렸다.
세이렌(Siren)이란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그 단어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을 아름다운 목소리와 연주로 유혹하여 죽이거나 혹은 잡아먹는 종족이었다고 흔히 옛 문헌에 묘사되곤 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은 멸종했지만.
그때였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
빛이 다시금 몇 번을 깜빡거리고, 머지않아 꿈틀거린 그것은 다시금 지독히도 아름다운 선율을 해안가에 흩뿌렸다.
그 모습을 비행함의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실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비록 세이렌이라는 네임드를 잘 알지는 못했으나, 꽤 악명이 자자하다는 것 정도는 들었다.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망르 해안가에서 마수들의 대대적인 침공 전조가 느껴졌다는 사실은 들었으나 그들이 상정한 대상 중 세이렌은 없었다.
어째서냐고?
‘그야 연합 왕국에서 나타났으니까.’
세실의 시선이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사색이 된 클리에에게 닿았다.
“저, 저놈이 어째서 여기에.”
클리에 드 말렌메리.
구릿빛 피부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과 입술을 비롯해 곳곳에 뚫은 피어싱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본디 성격 자체가 자유분방하고 또한 쾌활하다.
그런 그녀가 떨고 있었다.
웬만한 위기에서조차 그저 욕지거리를 내뱉고 마는 그녀가 말이다.
그리고 그 직후.
“이리 내!”
“예? 예!”
클리에는 통신 장교가 손에 쥔 통신기를 빼앗듯이 틀어쥐곤 외쳤다.
“당장 모든 지상 병력을 이탈시켜! 마나를 다루지 못하면 그냥 귀 틀어막고 도망이라도 치라 하라고!”
“제독님! 그렇게 되면 전선이!”
“아가리 닥쳐!”
그녀의 명령은 달리 말했을 뿐 무조건적인 퇴각에 불과했기에 통신 장교가 항의했으나, 클리에는 곧바로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통신 장교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지금 저 모습들이 안 보여?”
동시에 그녀는 그의 멱살을 틀어쥔 채로 비행함 아래에 전황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든 유리창으로 던졌다.
창밖을 본 장교는 곧바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장교가 본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망르 해안가는 모래사장이 드넓고 지형 자체가 넓게 펼쳐져 있기에 그들의 방어선은 아주 길게 포진되어 있다.
“어째서 병사들이……?”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보병들은 마석을 카트리지로 하는 기관총과 소총을 들고 참호 속에 숨어서 나이트 프레임들과 대적하는 마수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신 장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다름이 아니라…….
“헤, 헤헤헤.”
“아아, 아아아아.”
반쯤 미친 듯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는 수백 명의 병사들의 모습과.
-키기기긱!
-캬악!
그런 병사들을 향해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친 손을 뻗고 찢으며 피의 축제를 벌이는 마수들의 모습이었다.
“제, 제독님……!”
통신 장교는 시선을 돌려 클리에를 바라보았고, 조금은 이성을 되찾은 클리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세이렌의 능력은 하나다. 일개 전선을 뒤덮을 정도의 세뇌 능력.”
그것을 제외하면 세이렌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어지럽게 뒤엉킨 빛 무더기에 불과한 육신으로는 누구 하나 죽이지 못한다.
섬광을 쏠 수도 없다.
지각을 변동시킬 수도 없고.
하다못해 변변찮은 도발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클리에는 퇴각을 명령했다.
어째서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곧 클리에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대상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 전부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뇌를 당한 이들은 홀린 듯이 빛을 잡기 위해 앞으로 걸어가게 되는 거야.”
그녀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병사가 죽는다.”
그녀의 말을 들은 특임대의 장교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무어라 답하려 했으나, 곧 그들은 보고 말았다.
“…….”
“크윽.”
클리에의 말에 의문을 느끼는 특임대와 법국의 장교들과 달리, 유독 연합 왕국 장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걸 말이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이미 몸으로 수도 없이 겪었던 예정된 파멸을 예언한 것이라는 것을.
콰득.
클리에의 붉은 입술이 하얀 치아에 짓눌렸다.
그녀는 죄책감과 탄식으로 인해 어지러워진 눈동자로 전황을 살피며 읊조렸다.
“안일했어. 놈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망르 해안가는 법국과 연합 왕국의 접경 지역에 자리한 곳이다.
그런데도 놈이 나타날지 가늠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니, 가장 최근 세이렌이 관측되었던 연합 왕국의 지역과는 거의 반대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책도 잠시.
“……특임대 소속 지휘관 세실 중령이다. 현재 작전을 수행 중인 전 부대에게 전파하겠다. 나이트 프레임을 비롯한 기갑 병과와 포병들을 제외한 모든 보병은 즉각 전장을 이탈한다. 반복하겠…….”
세실은 즉각적으로 전장의 모든 장교들에게 전파했고, 그 즉시 투입된 특임대의 강습병들을 비롯해 제국군 역시 나이트 프레임과 기갑 장비를 다루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빠르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클리에 제독이다. 당장 병력을 빼! 귀 없어? 저건 세이렌이라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클리에 역시, 곧바로 연합 왕국 측의 병력을 뒤로 물리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제독님! 중령님!”
한창 통신기를 쥐고 언성을 높이던 통신 장교가 사색이 되어 그녀들에게 달려와 외쳤다.
“버, 법국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런 멍청한……!”
통신 장교의 말에 클리에는 곧바로 통신기를 조작해 법국 장교에게 연결하려 했으나, 답 없이 지직거리는 소리만이 울리자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법국이 있는 좌측 전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직후.
“아, 안 돼.”
클리에는 멍한 눈으로 법국 전선을 바라보았다.
세이렌의 세뇌가 더 퍼져 나가기 전에 빠르게 병력을 물린 제국군과 연합 왕국군의 피해는 기껏해야 수백 명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법국의 전선은 여전히 전진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피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이게 무슨?〕
〔태양의 아들들이여! 당장 뒤로 물러서……! 커허억!〕
모래에 발이 파묻히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지상으로 올라온 마수들을 상대하는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은 전황이 불리함에도 앞으로 걸어가는 병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콰드드득!
뿌드득!
핏물이 모래에 튀어 갈색으로 만들고, 그 갈색이 된 모래는 다시금 뒤집혀 대지 밑으로 깔린다.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가 뒤엉킨다.
그러나 제일 두려운 사실은 세이렌에게 홀려 앞으로 향한 법국의 군인들이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수들에게 도륙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간신히 연결된 통신기 너머에서 어째서 법국이 퇴각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주, 주교님께서!〕
“이런 젠장!”
그제야 클리에와 세실은 깨달았다.
대부분의 장교가 마나 하트를 익히고 있는 제국이나 연합 왕국과는 달리, 법국의 주교는 그 비율이 반반이었다.
법국에선 신실함 역시 능력이었기에
그런데 하필 망르 해변가에 파견된 지휘관 중 절반가량이 홀리며 지휘체계가 엉망이 된 것이다.
“제독님! 비행함이!”
비단 지상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우우웅-!
법국의 비행함 역시 상공에 떠올랐고, 일부 비행함이 급격히 안정 상태를 벗어나며 빠르게 바다로 진격하는 모습을 보며 모두의 얼굴에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다.
“어, 어떻게 할까요?”
함 내에 있는 모두가 세실과 클리에를 응시했다.
전례가 없는 혼란 속에서 클리에의 생각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현재 전선에 투입된 법국의 병력은 1개 군단급인 2만 명이다.
2만 명.
수치상으로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저들을 구원해야 했지만, 당장 전선을 이루는 나이트 프레임과 기갑 전력은 퇴각하는 보병 전력을 엄호하기에도 벅찼으니까 말이다.
모든 게 절망적이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두 여자를 비롯한 특임대의 모두는 한 남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
출생을 비롯한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그러나 같은 전장에 서면 패배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인외(人外)의 존재.
만약 그가 여기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였다.
-키기기기기!
갑작스럽게 세이렌을 등에 태우고 있던 거대한 거북의 입이 쩌적 벌어지며 특유의 기괴한 포효성이 울렸고, 곧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이런 맙소사…….〕
전장에 서 있었던 한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의 읊조림이 통신기를 타고 스치고, 곧 전장을 바라보던 모두는 절망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우우우우.
마치 깊은 동굴이 절규하듯 낮고 깊은 울음이 해안가를 따라 달린다.
동시에 때마침 바다를 향해 기울어져 날고 있던 비행함의 바로 밑에서 무언가가 솟구치니.
“촉수?”
그 모습을 본 누군가의 읊조림에 클리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콰드드드득!
퍼어어엉!
족히 수십 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길이를 가진 검은 촉수가 순식간에 법국의 비행함을 반으로 찢어 바다로 추락시켰고, 그 모습을 본 클리에는 더 놀랄 겨를도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리니.
“하, 하하. 이젠 크라켄까지.”
크라켄(Kraken).
그 크기가 일개 섬과 맞먹는 거대한 바다 네임드가 또 하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우우우웅!
세실과 클리에가 타고 있는 모선을 제외한 몇 개의 거대한 비행함이 급히 방향을 틀었고, 곧 마석에 저장된 거대한 마나가 포대로 응축되며 빛을 뿜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과과과과광!
섬광처럼 흩뿌려진 포격은 순식간에 비행함 하나를 반으로 찢어 갈긴 크라켄의 촉수를 때렸고, 그중 일부는 거대한 거북이의 등에 있는 세이렌을 노렸다.
그러나 그 순간.
-키기기기기기기!
거북이 형상을 한 최상급 마수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바다에 처박으며 그대로 가라앉았고, 마력포는 부질없이 수면 위를 때리며 흩어질 뿐이었다.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알기에 클리에와 세실은 거의 동시에 통신기를 쥐고 입을 열었으니.
“전군, 망르를 포기…….”
“지금 당장 퇴각을…….”
조금은 다른 퇴각 명령이 막 내려지려는 찰나의 순간,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휘용이 아닌, 함교 자체에 내장된 통신용 스피커가 깜빡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것을 따라 함교 내에 울려 퍼졌다.
〔아, 아아.〕
그것은 짐짓 쾌활했고.
〔길게 말하고 싶긴 한데, 전황이 급박해보이니 각설하고 말하지.〕
또한, 익숙했다.
〔로열 가드 제4 단장, 세로스 드 아크레데가 전한다.〕
그 말을 듣자 세실과 클리에는 반쯤 본능적으로 손에 쥔 통신기를 내려놓았고.
〔제국 12군단이 황제 폐하의 명으로 특임대를 지원하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작전권은 제4 황녀 전하께 이관한다.〕
그 순간, 곧 그들의 후방에 레벤스라트 제국기와 황실기가 각인된 거대한 비행함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갑천마
망르 공방전 (2)
병종에 따라서도 마나 보유의 차이가 있다.
포병이나 통신병들은 대부분 마석을 가까이에서 다룬다.
그렇기에 마나에 친숙하고 알게 모르게 마나를 품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일반 소총수들은 아니다.
-아, 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음색이 울리면, 불과 몇십 미터 앞에 서 있던 전우가 반쯤 미친 듯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정신 차려! 제발!”
“포기해! 이미 미쳤다고!”
“끄아아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표정에는 짙은 절망이 스치고, 때때로 분노에 가득 찬 손길로 다가오는 마수들을 향해 총알을 흩뿌렸다.
그러나 세이렌의 울음이 퍼질수록 세뇌에 당한 피해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위님! 이대로라면 다 개죽음이라고요!”
“이런 개 같은!”
전장은 혼란이었다.
바닥에 조금 전까지 떠들고 웃었던 전우의 뇌수가 흐르고, 핏물에 젖은 모래는 마치 유령의 손길처럼 병사들의 발을 푹푹 빠지도록 만들었다.
형벌 부대.
일반 병사.
장교와 부사관.
계급과 직급의 차이 따위는 너무나도 손쉽게 넘나드는 공포는 순식간에 그들 사이를 떠돌며 깊은 두려움을 전염시켰고, 그나마 전투를 진행 중인 나이트 프레임 파일럿들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사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특임대 소속 지휘관 세실 중령이다. 현재 작전을 수행 중인 전 부대에게 전파하겠다. 나이트 프레임을 비롯한 기갑 병과와 포병들을 제외한 모든 보병은 즉각 전장을 이탈한다. 반복하겠다. 모든 보병은 즉각적으로 전장을 이탈…….〕
그나마 다행히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세실 중령이 모든 보병 전력에 대한 일시적인 후퇴를 명령했으나, 이미 그들의 사기는 바닥에 닿은 지 오래였다.
“아, 아아…… 우린 다 죽을 거야.”
“단테 대령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그 사람만 있으면 안전하다며!”
“빌어먹을!”
그나마 다행이게도 하늘을 점유한 비행함의 포격으로 마수들의 진군이 일시적으로 주춤한 덕에 많은 보병이 살아서 해안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락으로 떨어진 사기를 끌어 올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데구르르.
누군지 모를 군모가 바닥을 구른다.
챙그랑-!
핏물이 튄 군번줄이 모래와 흙이 교차되는 지점에 어지럽게 떨어지고, 병사들과 장교들은 자신들의 후퇴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나이트 프레임들을 응시하며 절망 어린 읊조림을 내뱉었다.
“졌어, 이번 전투는…….”
지겹다.
두렵고.
어지럽다.
그들은 저 멀리에서 바다로 빠르게 가라앉는 거대한 거북이를 응시하며 실소했다.
“대체 너희들은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토록 괴롭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때였다.
스스스스.
“어?”
다가온 죽음에 신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군인들의 뺨을 바람이 어지럽게 스쳤다.
그것은 일반적인 바람의 흐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한 장교가 고개를 치켜든 그 순간.
“저, 저건!”
서서히 남색으로 변하는 하늘 아래.
구름을 꿰뚫고 모습을 드러낸 비행함 편대는 과연 군단이란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모함을 필두로 수많은 전투함을 이끌고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다름이 아닌, 후방이 아닌 선두에서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날아오고 있는 황실 비행함이었다.
쿠구구구-!
울리는 마석의 진동음에 공기가 떨린다.
동시에, 그것의 주인을 전해 들은 모든 제국군은 물론 다른 국가의 군인들마저도 자신들도 모르게 하늘에 오연히 떠 있는 황실 비행함을 보며 가슴 벅찬 경례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에 영광을. 황실에 영원을!”
“제국은, 황실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아!”
세로스의 목소리로 울린 통신은 비단 비행함에만 전달된 것이 아닌, 전장의 모든 통신기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참 분위기가 고조된 그때.
찰나의 지지직거림이 스치고, 곧 통신기 너머로 나긋하지만 동시에 결연한 위험이 넘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륙의 유일한 제국의 적법한 황녀이자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든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입니다.〕
그녀는 구태여 말을 늘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한 군인들에게 단 한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짚어줄 뿐이니.
〔제국은 승리합니다.〕
그건 언뜻 무책임한 희망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가장 달콤한 마약이었다.
“우리는 승리한다!”
“황녀님께서 오셨다!”
“와아아아아아아!”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가라앉고 있던 전선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연설이 끝나고.
“후.”
터억, 하고 통신기를 내려놓은 시리아는 곁에 서 있는 세로스를 응시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곧 화상으로 연결된 클리에와 세실을 응시하며 말했으니.
“……이제 진짜 이길 방법을 좀 찾아보죠.”
그녀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