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9화 (139/197)

단테와 이슈페인의 전투는 평행선을 달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상을 남기지 못한다.

때때로 이슈페인이 단테에게 옅은 상처를 남기고, 이슈페인의 입자가 단테의 내력에 녹아내리는 등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전투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이슈페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내심 이상함은 느끼고 있었잖아?”

스르륵…….

이슈페인의 몸이 또 다시 녹아내리며 부드럽게 휘몰아쳤다.

동시에 단테는 내력을 터트리며 잔류한 입자를 태워 버렸다.

“50년 전까지는 말을 타고 원시적인 마법에 의존했던 세상이, 마수들이 쳐들어 왔다는 이유로 이토록 급작스러운 발전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단순한 개소리로 치부하려고 해도, 소년의 모습을 한 그가 내뱉는 말은 단테가 가지고 있던 의문과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다.

때문에, 그는 미간을 좁히며 발을 굴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쿠우우우우웅!

짧지만 강렬한 내력의 파도가 일대를 뒤덮었다.

“끄르륵!”

“허억!”

몸이 약한 법국의 주교 중 몇몇이 사색이 되어 쓰러지고, 일순간 단테를 중심으로 한 대지에 균열이 일렁거렸다.

그러나 정작 목표한 이슈페인은 파장이 퍼지는 순간 몸을 흐트러트려 그의 공격을 피한 후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블랙 가드란 조직이 뭐라고 생각하지?”

이슈페인의 물음이 단테의 귓가를 스쳤다.

하지만, 그는 대답을 원하고 내뱉은 물음이 아니라는 듯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블랙 가드는 망자들의 집단이야. 죽지도, 그렇다고 복수도 잊지 못한 채 서로의 상처나 핥으며 대륙의 안정 따위나 부르짖는, 길들여진 번견.”

그의 말에는 블랙 가드에 대한 짙은 혐오와 한심함이 묻어나왔다.

그의 어조에 단테는 저릿한 손목을 가볍게 돌리면서도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놈은 다른가?”

“다르지. 다르고말고.”

순간적으로 이슈페인의 육신에서 일련의 입자가 휘날리고, 단테와 둘을 감싸는 작은 구를 만들었다.

동시에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와 단테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 거다.”

푸른빛으로 번뜩이는 동공에 일그러진 욕망이 차오른다.

“이미 우리의 세상은 무너졌어. 빛을 잃은 쓰레기가 되어서 바닥을 구르고 있지. 돌아갈 곳도 지켜야 할 것도 모두 잃은 우리다.”

그것은 광기이며, 욕망이었고, 신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대륙을 지키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거지? 우리는 마도 공학이란 개념을 보급했고, 식량과 물자를 생산했고, 나이트 프레임을 만들었으며, 수없이 많은 마수를 죽이고 또 죽였다.”

어째서 대륙은 50년간의 전쟁을 버틸 수 있었는가?

그 긴 전쟁에 보급될 물자와 식량.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도 공학.

중원과 다르게 50여년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동력.

“이 세계를 지킨 건 우리야. 단테…… 아니, 천마 천휘여.”

단테는 그 모든 진실을 묵묵히 뇌리에 각인시키며 자신에게 열변을 토하는 이슈페인을 묵묵히 응시했다.

“우리와 함께하자.”

이슈페인은 선뜻 손을 내밀었다.

동시에 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갈증을 축이려는 기묘한 광기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거다. 우리의 손으로!”

단테는 시선을 내렸다.

내밀어진 손은 작고 투박했으나, 그 이면에 담긴 건 한없이 추악한 욕망의 파편일 따름이었다.

“하, 하하핫!”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단테는 쉽사리 정의를 내릴 수가 없는 이 기묘한 감각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흡!

파지지직!

전기가 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단테와 이슈페인을 감싸고 있는 구의 한쪽이 녹아내렸다.

동시에 일전과 마찬가지로 철필과 두루마기 종이를 손에 쥔 사마제천이 살짝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자, 개소리는 거기까지 하시죠. 듣기가 거북합니다.”

그의 말은 여전히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적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말을 들은 이슈페인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곤 화답할 따름이었다.

“들렸나?”

“안 들어도 무슨 잡소리를 했을지는 대충 예상이 가니까요.”

“뭐, 네놈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지.”

이슈페인은 의도적으로 사마제천을 무시하고 여전히 어이가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단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되묻는다.

“어때? 너 정도라면 우리의 일원이 될 수 있어. 듣자하니 패도를 걷는다던데, 이만한 패도가 달리 있나?”

그는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단테는 자신들의 제안을 무시하지 못하리라고 말이다.

“이건 새롭구나.”

그리고 그 순간.

단테의 입에서 내뱉어진 한마디에 두 남자의 표정이 변했고, 거의 동시에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콰드드드득!

“커헉!”

단테는 뻗은 손안에 이슈페인의 목을 틀어쥔 채로, 핏물처럼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말했다.

“개소리는 다 했나?”

기갑천마

오늘은 여기까지

“개소리는 다 했나?”

흐르듯 스쳐 지나간 단테의 그 한마디는 이슈페인에게 섬뜩함과 더불어 동시에 모멸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이슈페인은 이를 악물었다.

감정의 파편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섬뜩함을 느꼈다는 것에서 오는 분노, 그리고 모멸감에서 연결되는 열등감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스스스-.

나노 단위의 입자들이 유기적으로 뒤섞이며 이슈페인의 에너지를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안광이 붉게 물들고, 그는 감히 자신의 목을 틀어쥔 단테를 노려보며 비릿한 조소를 품고는 말했다.

“개소리로 들었다면 유감인데.”

그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동시에 시선은 서늘하게 가라앉고, 고요한 분노가 입자에 실려 단테의 팔을 따라 뒤엉키니.

이슈페인은 단번에 그의 팔이 끊어지리라 확신하는 듯 형형한 눈빛과 함께 비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그렇다면, 죽일 수밖에.”

그러나 그 순간.

“……무슨?”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시선을 아래로 흘린 그는 곧 이전과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묵묵히 응시하는 단테의 표정에 미간을 좁혔다.

불길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반쯤은 본능적으로 거둔 입자의 끝자락이 단테의 호신강기에 부딪쳐 타들어 가기 시작하자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뒤로 몸을 빼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가.”

굳게 닫혀 있던 단테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히고, 그는 적색의 동공으로 일렁거리는 이슈페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누구를 죽인다는 거냐, 버러지.”

무정한 시선에 일말의 혐오감이 뒤엉킨다.

동시에, 그의 발치에서 시작된 묵색의 기류는 마치 모래를 갉아먹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밀려들어 아직 근처에 남은 나노머신의 잔류를 천천히 불태우기 시작했다.

“크윽!”

하지만 이전에도 겪었던 일.

이슈페인은 침음을 흘릴 뿐, 큰 동요 없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고 했다.

“어딜.”

그러나 그때.

사마제천은 그렇게 읊조리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철필을 꺼내 들었고, 뒤늦게 그를 떠올린 이슈페인은 다급히 손을 펼쳐 무언가를 흩뿌렸다.

데구르르-.

작은 구체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곧 그것을 확인한 사마제천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요.”

촤라락!

사마제천의 손에 쥐어진 종이가 허공을 물결치며 날았다.

원을 그리고, 이윽고 뻗어진 긴 면은 단테와 이슈페인 사이에 겹겹이 박혀 공간을 차단했다.

그리고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언뜻 듣기에도 섬뜩한 섬광과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단테는 연기와 열기가 걷히기도 전에 놈을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으나, 그런 그를 막아 선 것은 사마제천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하핫.”

귀에 썩 익지는 않은 목소리.

하지만 여전히 익숙한 특유의 말투에 단테는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마제천은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 교, 아니, 대령님께서 잡기 힘든 놈이라서 말입니다.”

인정하긴 싫었으나, 그 얘기에 단테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놈의 육신은 기이하다.

잡으려고 하나 잡히질 않고, 태우려고 해도 금방 꼬리를 자르니 도통 유의미한 타격을 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너는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마제천의 모습이었다.

하찮은 질투나 시기 따위가 아니다.

그저 정말로 의문일 따름이었다.

그런 단테의 저의를 어찌 사마제천이라고 모르겠는가.

그는 대답 대신 그저 옅은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라고 이슈페인을 단신으로 대적할 수는 없었으니.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뭐지?”

“으음, 어차피 들켰는데 뭐 상관없겠죠. 예전에 토산귀를 죽였을 때 기억나십니까?”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산귀(沙土散鬼)라 함은 무림에 요괴들이 들이닥치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최상급 마수였으니까 말이다.

서서히 연기가 걷힌다.

동시에, 그들을 감싸고 있던 이슈페인의 구체 역시 서서히 흩어지며 뒤로 물러선 그에게 회오리가 치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사마제천은 말을 이었다.

“그때 놈의 육신이 마치 모래가 뒤섞인 흙이 흩날리는 듯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되었다.”

단테는 움직임을 미묘하게 제약하는 겉옷을 벗어 뒤로 던졌다.

허공에 붕 뜬 검은 의복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그는 손가락의 끝자락에 묵색의 아지랑이를 피우며 정면을 응시했다.

어느새 거의 다 걷힌 연기 너머로 이슈페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단테는 뒤에 서서 내력을 끌어 올리는 사마제천에게 말했다.

“시간은?”

주어도, 문맥도 없는 읊조림이다.

그러나 사마제천은 당연히 단테가 물을 줄 알았다는 듯 눈을 감고 화답했다.

“5분이면 될 듯합니다.”

그 답을 들은 직후.

단테의 육신이 찰나의 순간 시위를 당긴 활대와 같은 신영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연기가 모두 걷히고 이슈페인과 단테의 눈이 마주한 그 순간.

파아아앙!

공간이 일렁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쇄도한 단테의 주먹이 이슈페인의 뺨에 꽂혔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비틀었으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콰과과과과광!

“커허어억!”

처음으로 들어간 정타에 이슈페인은 핏물을 흘리며 허공에 붕 떴다.

그대로 놔두면 바닥을 구르고, 곧 부은 뺨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순리겠으나 단테는 놈이 순순히 일어나는 걸 지켜볼 생각 따위는 없었다.

우웅!

허공에 뜬 단테의 안광이 번뜩인다.

동시에, 그는 뒤늦게나마 몸을 추스르려는 이슈페인의 명치에 다시금 주먹을 뻗으며 끌어 올린 내력을 폭사시켰다.

단순한 주먹질은 내력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며 반 바퀴를 돌았고, 곧 손아귀를 말아 쥔 그의 의지를 따라 하나의 이변을 일으키니.

백월신공(白月神功).

만월파멸격(滿月破滅擊).

일순간 공간이 진동하며 멎었던 섬광이 빠르게 점멸했다.

빛이 번뜩이다가.

때때로 암전되고.

또다시 떠올랐다.

파아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린 직후, 수많은 입자가 뒤엉킨 육신이 쩌저적 갈라지며 곧 때늦은 폭음이 찢어질 듯 일대를 뒤덮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마치 공간을 잡아 뜯듯이 뻗어진 공격은 이슈페인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한 파괴력과 함께 지축을 흔들었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렁인다.

그러나 일영은 손끝에서 사그라든 감각에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쯧.”

일전보다 강한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뿐.

일영은 놈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이이익……!”

악에 받친 일갈이 터지며 이슈페인의 팔이 길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긴 잔상이 남았다.

놈의 팔이 향한 곳은 처음엔 단테의 명치 부근이었으나, 이윽고 팔은 수십, 수백 개의 칼날로 변해 그의 온몸을 향해 쇄도했다.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늠하여 연산한 공격이다.

당연히 그는 단테가 피할 수 없을 거라 확신하며 저릿한 몸을 떨었다.

‘이번엔 당하지 않는다!’

그의 계산엔 비단 단테뿐만이 아닌, 사마제천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수백 개로 갈라진 칼날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이 미친 듯 내력을 운용하는 사마제천에게도 어김없이 쇄도했고, 이윽고 두 남자에게 다다른 공격을 본 이슈페인은 승리의 쾌락이 담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라고 말이다.

번뜩-!

때마침 사마제천의 눈이 떠지고, 동시에 일렁인 궤적은 누구라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촤르르르-!

사마제천의 손끝에서 펄럭거리는 두루마기 종이가 미칠 듯이 풀리며 일대를 뒤덮는다.

동시에, 그는 수없이 눈을 어지럽히는 칼날들 너머의 이슈페인과 시선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지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단테의 신영이 일순간 사라지며 이슈페인의 직감이 울부짖었다.

……이건, 위험하다고 말이다.

판단은 빠르고 실행은 더욱 빠르다.

이슈페인은 일부 소실률이 높더라도 육신을 빠르게 녹아내리게 만들었고, 동시에 계산된 반격 루트로 입자를 흐르게 만들어 허를 찌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아이고, 또 속으십니까.”

그가 상대하는 사마제천이 괜히 단테에게 시간을 끌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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