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아, 거참…….”
사마제천은 몸에 어지럽게 뒤엉킨 먼지에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검은 장발을 묶은 끈이 끊어진 건 당연했고, 동그란 안경 역시 금이 가버려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런 그때.
그의 뒤로 걸어온 은발의 여자가 가볍게 그의 어깨를 털어 주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심하셨습니까?”
“아, 리렌.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방심했습니다. 하하핫, 설마 바로 알아보실 줄은 몰랐는데…….”
그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리렌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품에서 끈과 안경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상관의 외견은 부하의 거울입니다.”
“아, 고마워요.”
결국 자기 얼굴에 누가 되지 않도록 단정히 하라는 말이었으나 사마제천은 그저 웃음을 지으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긴 머리를 대충 묶고는, 알에 금이 간 안경은 버리고 새 안경을 코 위에 올렸다.
그렇게 시야가 밝아지자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전황을 살폈다.
“리베라와 보리스는……. 뭐, 잘해 주고 있군요.”
“바로 밀리진 않을 거 같습니다.”
사마제천의 말에 리렌이 덧붙인다.
당사자들이 듣는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빨리 도와 달라고 외칠지도 모를 말이었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 둘의 말대로 리베라와 보리스의 나이트 프레임, 모스트리와 이데아는 초반에 밀리던 것에 비해선 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즉, 앞으로 5분은 더 버틸 수 있다.
“그보다…….”
사마제천의 시선은 리베라와 보리스, 세이티나를 지나 단테와 이슈페인에게 닿았다.
그러자 묵묵히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던 리렌이 입을 열었다.
“이미 계획은 어그러졌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후, 미친놈들이라 그런지 정리하는 게 쉽지가 않네요.”
쓴웃음을 지었다.
당주와 자신이 계획하던 재회는 이런 난장판이 아닌데 말이다.
그 때문에 그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모르는 척 망르로 가 주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원래 계획이 그랬다.
망르로 단테가 파견을 나가 있는 사이 재회에 방해가 되는 놈들을 정리한 다음 당당하게 마주하려고 했건만,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느새 옷을 전부 털어 주고 뒤에 서 있던 리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마 이슈페인, 천시율은 저분을 포섭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겠죠. 안 하는 게 바보니까.”
단테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에겐 꽤나 많은 의미와 역할이 있었다.
사마제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목을 풀었다.
“그러니까 개입해야겠습니다.”
이미 엎어진 판인데…….
“지금 말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저쪽으로 붙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어떨까.
사마제천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까 말이다.
“자, 그럼.”
그는 너스레가 가득 담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발을 굴렀고, 이윽고 그의 육신이 빠르게 앞으로 쇄도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리렌은 잠시 사마제천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세이티나와 맞서 싸우는 은색의 기체, 모스트리를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죽지만 마렴, 동생아.”
물론, 그 시각.
〔아파! 아프다고, 이 아줌마야!〕
한창 분투하고 있는 리베라에게 들릴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