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7화 (137/197)

단테를 향해 뻗어진 이슈페인의 입자들은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수십 갈래로 흩어져 그의 머리 위를 점했다.

그러나 단테가 무력하게 당해 줄 리 만무한 일.

“쯧.”

그는 혀를 차고 단전에 꿈틀거리는 묵빛 내력을 끌어 올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 일렁거리는 호신강기가 더욱 선명하게 번뜩임과 동시에 단테의 머리 위를 점한 이슈페인의 손에서 기이한 열기가 뻗어졌다.

단테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건 방사능이 일부 포함된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가당찮은 짓거리를……!”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그는 열기에 닿기 전에 내력을 허공에서 터트림으로서 그곳을 소멸시켰고, 곧 추락하는 이슈페인의 목덜미를 틀어쥐더니 손끝을 말아 쥐며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묵과도 같은 내력이 빠르게 구를 만들어 이슈페인의 육신을 갈아 버릴 듯 울었다.

하지만 단테의 손길이 놈의 얼굴에 닿으려는 찰나, 이슈페인의 육신은 또다시 녹아내리며 단테에게서 멀어졌다.

때문에 단테는 답답함에 조금 전 소년의 목을 틀어쥐었던 손을 털며 놈을 향해 말했다.

“짜증이 나는구나, 네놈.”

잡고자 하면 잡지 못할 수준이 아니다.

공격이라고 뻗는 것은 엄청난 열기와 살인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기교가 결여되었고 움직임조차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그럼에도 잡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놈의 육신을 구성하는 듯한 기이한 입자들을 가둬 둘 방법이 없었다.

그런 단테의 답답함을 알아챈 걸까.

이슈페인은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너희보다 우리가 더 오래 버틴 이유가 뭐겠어? 육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야. 결국 진화란 이런 거라고.”

그러나 말이라고 내뱉은 것은 주어가 전무한, 마치 단테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한 두루뭉술한 읊조림 뿐이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시간을 끌기 위해 잡소리를 하는구나.”

“응?”

그리고 그가 다시금 놈을 잡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린 그 순간.

이슈페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윽고 무언가 눈치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열었다.

“뭐야, 아직도 눈치 못 챈 거야?”

“무엇을 말이냐.”

“하, 하하하!”

설마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을 줄이야.

아니, 생각해 보면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가 관찰한 단테는 적어도 이 세상이 어딘가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은 알아채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이슈페인은 입술을 훑으며, 개소리를 지껄인다는 듯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을 바라보는 단테를 바라보았다.

‘설득할 수 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배팅해서 손해 볼 게임은 절대 아니다.

혹여라도 놈이 돌아선다면 놈을 기다리고 있던 이상주의자 놈들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선물이 될 테니까.

때문에 그는 그새를 못 참고 자신을 향해 번개처럼 쇄도하는 단테의 공격을 또다시 피한 후, 그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놈들에게 멸망한 세상이 과연 몇 개일까?”

그리고 그건.

어쩌면 단테가 반쯤 외면했던, 잔인한 진실의 파편이었다.

기갑천마

잔인한 진실의 파편 (2)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리베라 홀로 블랙 가드의 원로를 상대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보리스 역시 그녀를 도와 스스로 제6 원로라고 밝힌 세이티나와 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격이 다르다는 걸 말이다.

“하하핫! 그래! 이래야지!”

세이티나의 목소리에는 즐거움과 호승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내뻗는 주먹 하나하나에는 과거 초인들이라 불렸던 이가 재림한 듯한 기세를 풍겼다.

아니, 단순히 기세가 아니다.

그녀는 무려 단신으로 2기의 나이트 프레임을 압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법국과 특임대의 군인들은 멍한 눈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저기에 끼는 순간 바로 몸이 갈가리 찢어발겨지리라고 말이다.

〔크으읏!〕

리베라는 기체의 복부를 강타하는 세이티나의 주먹에 몸을 비틀면서 손목에 달린 기다란 검으로 그녀를 찍어 눌렀다.

체구의 차이가 있다고 한들, 모스트리는 기체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를 자랑하기에 불가능한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이티나는 그런 리베라의 자신감을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으니.

“빠르긴 한데…….”

그녀는 모스트리의 복부에 꽂은 주먹을 회수하는 찰나,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서늘한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직선적이잖아?”

그녀의 몸이 일순간 흐려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본 것은 칼날 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세이티나와 당황한 듯 순간 움찔거린 모스트리였다.

〔아?〕

리베라는 팔에서 느껴지는 하중에 시선을 내렸다.

곧 콕피트 너머로 두 여자의 눈이 마주했다.

동시에 세이티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누워 있자.”

갈라진 황금색 눈동자가 더욱 밝게 번뜩이고, 붉은 머리가 부스스하게 일렁거린다.

그 모습을 콕피트 안에서 지켜보던 리베라는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어색하게 웃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쓰러트릴 공격이 뻗히려는 그때였다.

〔흐읍!〕

통신기 너머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이윽고 거대한 망치가 세이티나의 머리 위에서 그대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앙!

〔큭!〕

당연히 리베라의 칼날 역시 부러질 수밖에 없었으나, 보리스가 만들어 준 찰나의 틈 덕분에 리베라는 곧바로 몸을 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둘은 알았다.

고작 이 정도 공격으로 세이티나가 쓰러질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망치가 칼날과 함께 세이티나를 지상으로 찍어 누른 직후, 읊조려진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웃음기가 섞여 있음에도 섬뜩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큭, 제법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베라와 보리스는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그토록 영광스러운 에브게니아에 묻힐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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