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한의 칩거 소식은 꽤 빠르게 퍼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단테나 리베라에겐 갈굼을 많이 당하고 산다고 하지만, 로한은 최연소 원사라는 타이틀을 제외하고도 무려 에이스가 아닌가.
이미 그의 기체, 레기온은 꽤 유명세를 가지고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물론 그가 블랙 가드라는 사실까지는 실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로한이 날 찾았다고.’
그렇기에 미카엘은 잠시 자리를 비워 로한의 만나러 그의 처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민감한 시기에 추기경의 검이나 다름이 없는 기수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꽤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로한이 중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를 부른 것이다.
비록 원사라고 한들, 그의 입지 자체가 일반적인 이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욱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카엘 역시 특임대 소속이긴 했으나, 법국의 내부 갈등이 불거짐에 따라 특임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 때문에 미카엘은 내심 불만을 느끼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그의 방을 찾았다.
끼이익.
경첩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곧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로한의 모습이 보였다.
“오셨군요.”
“예, 몸은…….”
이미 미카엘은 특임대 측으로부터 전달을 받은 사실이 있기에, 그가 일전 여왕과의 전투에서 시그니처를 무리해서 운용하여 내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는 곧바로 말했다.
“법국에 실력이 좋은 치유 주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붙여 드릴 테니…….”
구태여 입에 담진 않았으나 이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는 그였다.
다만 로한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법국 내부 사정은 들었습니다.”
“그러시겠죠.”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한은 입에 문 담배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재를 손가락으로 퉁겨 털고는 말을 이었다.
“법왕은 어떻게 선출되는 겁니까?”
“추모가 끝나는 대로, 추기경 회의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안건을 올리고 적합한 추기경을 법왕으로 추대하는 방식이지요.”
충분히 궁금할 법한 물음이다.
또한 단테의 측근으로 여겨지는 로한의 물음이기에 미카엘은 곧바로 덧붙였다.
동시에 계산을 돌린다.
혹, 특임대에서 제7 추기경을 본격적으로 지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저번 장례식의 일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중립을 지키던 일부 신도들이 저희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덕분에 흔들리던 균형추가 조금은 맞춰졌지요.”
“그렇군요.”
단테는 개의치 않는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로한은 그 말을 삼키고 묵묵히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미카엘에게 말했다.
“차나 한잔하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는 터라.”
“그러지 마시고…….”
그때였다.
미카엘은 살짝 미간을 좁힌 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로한을 응시했다.
이윽고 이상함을 느낀 듯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이제 10여 분.
한데 왜일까.
갑자기 불길함이 몰아치는 이유는.
“상태를 살폈으니 일단 돌아가 보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치유 주교를 붙여 드리죠. 그럼.”
그는 혹 무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음에도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로한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인 구겨진 담배 갑을 쥐고는 또 하나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우웅!
짧지만 강렬한 진동이 대지를 따라 내달려 미카엘의 발밑을 스쳤고, 막 문고리를 쥐었던 그는 순간 멈칫하며 진동이 느껴진 방향을 응시했다.
‘저긴…….’
솔라노스 대성당은 1개 건물이 아니라 수많은 건물로 이루어진 구획이 존재한다.
그리고 진동이 느껴진 곳은 제7 추기경이 머무는 7구획.
“설마?”
미카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로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그의 입가에 띤 씁쓸한 미소를 본 그는 이윽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으니.
콰아앙!
“……이런 제기랄!”
곧바로 문을 박차고 제7 구획으로 향하는 미카엘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본 로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했다.
그의 역할은 이미 끝이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제4 원로가 혹여 다른 개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할 심산이었다.
그러고 난 후에는…….
‘도망쳐야지.’
괜스레 헛웃음이 흘렀다.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고, 그가 떠난 직후.
스르륵-.
로한이 여태까지 머물고 있던 방의 구석이 일그러지듯 무너지더니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검은 가면으로 하관을 가린 남자는 묵묵히 로한이 떠나간 자리를 응시했다.
틱, 티딕.
그는 손가락으로 작은 버튼을 규칙에 맞게 눌러 직속상관에게 무전을 보냈다.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미끼, 제거, 승인.
섬뜩한 사형선고일 따름이었다.
기갑천마
나는 기다리라고 한 적이 없거늘
타다닥!
미카엘은 복도를 내달렸다.
솔라 신이 머무는 대성당이라는 점과 그의 직위를 생각하면 쉬이 보긴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건 하등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일일 뿐이었다.
복도를 내달린다.
머리로는 설마 놈들이 이렇게 막 나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제1 추기경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치솟는 불안감을 억지로 찍어 누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동시에 불안감과 혼란함으로 머리가 어지럽게 뒤엉켰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갑작스러운 로한의 호출.’
‘제7 구획에서 느껴진 진동.’
‘그리고 법국 내부의 혼란.’
이 모든 것을 과연 단순한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제7 구획에 다다른 직후 알기 싫어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
그가 건물에서 나와 구획에 다다랐을 때쯤 눈앞의 광경을 본다면 싫어도 알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건물이 무너졌어요!”
“제7 추기경님은? 미카엘 경은 어디 계신단 말이야!”
제7 구획의 존재 이유인, 대대로 제7 추기경이 사용하던 건물 셉텐베르의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무너진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를 가늠한 미카엘은 이윽고 망연자실한 눈으로 읊조릴 수밖에 없었으니.
“지, 집무실이…….”
실로 절묘하게도 무너진 건물의 방향은 집무실과 추기경 개인 기도실 등, 제7 추기경인 도르스 솔 케루빔이 주로 활동하는 쪽이었다.
이걸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미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읊조렸고, 때마침 그의 앞으로 달려온 주교가 외쳤다.
“추, 추기경께서 안에……!”
“하하, 하하하하!”
미카엘의 표정이 어지럽게 일그러졌다.
입가엔 웃음을 띠었지만 그것을 진정 웃었다고 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그가 추기경의 곁에 붙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건물의 붕괴 자체는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들.
그가 곁에 있었다면 고작 건물의 붕괴로 이렇게 혼란스러워질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전용기를 소환한다면 무너진 건물의 파편에 몸이 조금 뻐근할지언정 그뿐일 테니까.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제7 추기경의 곁에 그를 제외하고 전용기를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기수로 선택받은 이들을 제외한 법국의 모든 에이스 파일럿은 법왕의 지시에 의해 전선으로 흩어져 있었으니까.
“……하하.”
미카엘의 입가가 경련하며 웃음을 멈췄다.
터벅.
머지않아 뒤에서 멈춘 발소리를 들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응시하는 로한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겁니까, 제국의 의도가?”
로한은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미카엘과 로한이 걸었던 길을 뒤따라 다가온 제1 추기경의 일행들이 겹쳤다.
그 모습을 본 미카엘은 참지 못했다.
아니, 참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콰악-!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로한의 흰 셔츠를 잡아채자, 뜯어진 단추가 바닥을 뒹구르르 구르다가 그들의 군화에 닿아 멈췄다.
동시에 미카엘은 여태까지 늘 유지했던 평정의 가면을 깬 채로 일갈했다.
“대체 무슨 수작질이냔 말이다!”
미카엘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세한 내막까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모를까.
당겨진 셔츠가 로한의 목을 스친다.
목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언뜻 숨을 막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악력이었으나 로한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묵묵히 그를 응시할 뿐.
때문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법국과 특임대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미카엘 경! 이게 무슨!”
“로한 원사님!”
그들은 서로를 적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단 두 상관을 말려야 하는가를 갈등하며 우왕좌왕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세한 내막의 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그들로선 갑작스럽게 격분한 미카엘이 특임대 원사의 멱살을 틀어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특히 특임대 소속의 군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로한의 태도였다.
“…….”
묵묵히 침묵하며 미카엘을 바라본다.
평소 그토록 능글맞았던 로한이 말이다.
미카엘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손에 쥔 힘을 풀고 미간을 좁혔다.
“로한 원사……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라. 변명하기조차 부끄러운 건가?”
하지만 그의 사정이 어찌 되었든,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미카엘이 반쯤은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쥔 그때였다.
“어?”
특임대 소속의 한 군인이 나지막이 입을 벌린 채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목이 로한과 미카엘에게 쏠린 후였기에, 언뜻 어벙해 보이는 읊조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보고 말았다.
“저, 저건?”
흙먼지가 일렁거리는 건물의 폐허 속.
한 사내가 무언가를 어깨에 이고 천천히 먼지 사이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끙차-!
그가 어깨에 이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닌 중년의 사내라는 점이었다.
이윽고 그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처음으로 그쪽을 바라본 이들은 물론 다른 이들 역시 점차 사내와 어깨에 인 중년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무슨…….”
미카엘에게 멱살이 잡혀 있던 로한조차 입을 열어 놀라움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면…….
“제7 추기경?”
로한의 읊조림으로 대변된, 그들의 놀라움을 자아낸 이의 정체를 들은 미카엘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끄으윽…….”
젊은 남자의 어깨에 의지하던 제7 추기경의 육신이 부드럽게 대지에 안착하고, 곧 그를 폐허 속에서 데려온 남자가 말했다.
“어라, 주먹은 왜 푸십니까? 때리시지. 아, 모셔 가세요.”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너무나도 순순히 법국의 주교들에게 추기경의 신변을 인도했고, 너그러운 웃음마저 흘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미카엘에게 장난스럽게 주먹을 쥐고 말했다.
“조금 전처럼 그쪽 앞에 있는 분한테 주먹으로 좀 때려 주시죠. 제가 직접 때리고 싶긴 한데 양보하는 겁니다.”
어딘가 능글맞은, 그러나 얕볼 수 없는 읊조림이었다.
그때였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로한이 걸어온 길을 다급히 뒤따라 온 제1 추기경이 무너진 7구획의 건물과 엉망인 상황을 보며 당혹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치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다는 듯이.
그런 그의 태도에 미카엘은 미간을 좁히며 제1 추기경에게 외쳤다.
“어디서 같잖은 연기를!”
증거가 없다고 해도, 모든 심증은 제1 추기경과 그 일파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건 비단 미카엘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작 제1 추기경의 입장에선 당혹스럽기가 그지없을 뿐이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일이 있었다.
“서, 설마!”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주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로브를 눌러쓴 이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니, 무어라 외치려 했다.
제7 추기경을 구해 온, 어딘가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이건 뭐 막 나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의 입꼬리는 비스듬히 올라가 있다.
그러나 눈은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런 그의 분위기는 미카엘을 비롯한, 산전수전 모두 겪은 군인들조차 일순간 위축될 정도의 기류였다.
“이젠 십계명도 잊어먹은 겁니까? 예?”
그러나 그가 말한 대상은 제1 추기경이 아니라, 조금 전 제1 추기경이 바라보려 했던 로브를 눌러쓴 이에게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다른 이들 역시 그를 응시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 일에 핵심적인 열쇠가 바로 그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상황을 면피할 목적인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를 제1 추기경의 일갈이 울렸다.
“어, 어떻게 된 거요! 당신이 일을 이따위로 처리할 줄 알았다면……!”
“시끄러워. 버러지 새끼야.”
“뭐, 뭐라?”
노골적인 욕설.
그것에 제1 추기경은 물론 그의 측근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으나, 정작 욕설을 내뱉은 이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눌러쓴 로브를 벗고 고개를 들었다.
소년과도 같은 얼굴.
그 이목구비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때,
“이젠 뭐 눈에 뵈는 게 없나 봅니다, 이슈페인. 아니…….”
소년을 가리켜 십계명을 운운한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천시율.”
로한은 그 이름을 듣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소년은 안광을 번뜩이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슈페인…… 아니, 천시율이라 불린 그는 이윽고 섬뜩한 목소리로 화답한다.
“십계명을 운운한다고? 너희가? 안락함에 젖어 버린 번견 주제에?”
소년과 사내.
외향부터 이름까지 모든 게 낯선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서서히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때.
“지금 이게 무슨 짓……. 커헉!”
주제도 모르고 일갈을 하려던 제1 추기경은 천시율의 손에 뒷목이 잡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소년은 앞으로 걸었다.
파스슷…….
작은 입자들이 소년의 몸을 감쌌다가 멀어졌다.
마치 흩어지는 먼지처럼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그 모습은 언뜻 기묘했고, 동시에 이질적이었다.
‘고작 소년이 아니다. 단테 대령……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괴물…….’
그 추측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단테를 겪어 본 로한과 미카엘조차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나 정작 소년과 마주한 사내는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그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나노인지 노나인지 하는 기술은 언제 봐도 혐오스럽습니다그려.”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품에서 긴 두루마리처럼 생긴 종이와 함께 대륙의 사람들에겐 이질적인 붓을 꺼냈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면 붓 전체가 푸른빛을 띠는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점일까.
“대, 대체 무슨…….”
미카엘과 로한은 어느새 둘 사이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자리를 피했다.
본능적인 도망이었고, 회피였다.
둘은 당혹감이 가득한 눈으로 사내와 소년의 신경전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둘이 맞붙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
로한이나 미카엘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초인과 초인의 격돌이다.
때문에 둘은 갈등은 뒤로하고 서로의 전용기를 부르려는 심산으로 마나 하트를 일깨웠다.
“이참에 죽여 주지, 사마제천.”
“거참, 아미키라고 불러 달라니까요.”
둘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끝으로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때.
“응?”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법국의 하늘을 스쳤다.
이에 소년과 사내는 동시에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이윽고 추락하는 무언가를 본 아미키, 아니 사마제천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아?”
쿠우우웅!
적잖은 높이에서 떨어진 3개의 인영이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대지를 디뎠다.
그리고 먼지가 빠르게 걷히고, 그들의 검은 군복이 드러나는 그 순간.
“어머, 이게 무슨 개판이래?”
은발을 한 리베라의 악동 같은 목소리와 함께, 단테의 적안과 아미키의 흑안이 마주한다.
그리고 이윽고 단테의 입이 열리니.
“생각해 보니 괘씸하더구나.”
“예?”
“나는 기다리라고 한 적이 없거늘…….”
그는 어벙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과거의 인연이자, 다시금 마주한 친우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너희끼리 기다렸다고 난리를 치는 게냐.”
기갑천마
잔인한 진실의 파편 (1)
정적이 흘렀다.
솔라노스 대성당의 제7 구획은 이례적인 혼란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모두가 눈동자를 굴린다.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묵묵히 한 남자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조금은 밝은 흑발과 흑안.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동그란 안경을 쓴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러나 단테는 그의 손에 쥔 푸른빛의 철필과 두루마기와 같은 긴 종이를 보자마자 확신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저건 백월신교의 명문가인 사마가(家)의 고유한 무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단테의 시선을 느낀 걸까.
아미키, 아니 사마제천은 무심결 손에 쥔 무장들을 몸 뒤로 감췄다.
……물론 이미 늦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때문인지 그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눈동자를 굴리며 입을 열었다.
“……어. 그러게 말입니다?”
단테의 말은 언뜻 두루뭉술했으나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마제천의 입장에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동시에 좌중을 훑고 있던 리베라는 이윽고 로한과 시선을 마주하고 피식 웃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왜일까.
그녀의 시선에서 ‘에휴,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느낌이 든 것은.
“아, 저년이…….”
덕분에 순간적으로 욱한 로한이 미간을 좁힌 그때였다.
“큭, 크큭…….”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비집으며 소년의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일개 소년의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짙은 비웃음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소년의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덥수룩한 머리와 주근깨가 살짝 있는 얼굴은 언뜻 귀엽게도 느껴질 수 있었으나,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은 섬뜩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어린 소년의 치기라든가 그저 미쳤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건…….”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소년의 양팔에서 일렁거리는 작은 입자들이었다.
마나나 내력과는 다르다.
자연적인 느낌이 아닌, 한없이 인공적이고도 낯선 느낌이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손을 뻗어 단테를 겨눴고, 그 순간 작은 입자들은 마치 황금빛 벼로 가득한 농지를 본 황충처럼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테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서 있던 사마제천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동시에 그는 단테가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 손에 쥔 철필의 끝자락을 눌렀다.
스슷-!
일반적인 붓과는 달리 잉크가 밀려 나오고, 사마제천은 유려한 손길로 두루마기처럼 펼쳐진 종이에 문양을 그었다.
한 획(劃)마다 짙은 내력이 스며들고, 마침내 끝점을 찍은 그는 단테를 향해 근접한 입자들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물론 단테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했다.
“같잖은 사술을.”
그는 이슈페인, 천시율이 쏘아 보낸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자들을 단순히 내력을 흩뿌려 불태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파스스슷!
크게 한번 휘몰아친 그것이 이윽고 거대한 무언가로 변했고, 단테는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미간을 좁히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그 직후.
“감이 좋네. 역시 천마인가?”
소년의 비릿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단테는 어느새 바로 앞에 다가와 있는 그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이형환위? 아니야. 느낌이 달라.’
그가 느낀 내력은 전무했다.
우우웅-!
그러나 단테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소년의 안광이 번뜩이며 쏘아지는 섬광 때문이었다.
“이 무슨……?”
이번에도 느껴진 마나는 전무.
그때, 사마제천이 뻗어낸 두루마기 종이가 이슈페인의 머리 위로 향한 후 기이한 전파를 흩뿌리며 타들어 가고, 곧 그는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을 튀겼다.
타악!
그러자, 잔잔하게 널브러진 입자들 일순간 흐트러지는 동시에, 그의 육신은 이전에 서 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재구성되었다.
“저, 저게 무슨……?”
“괴물인가…….”
그것은 비단 단테뿐만이 아닌, 이 자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압도적인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소년의 육신이 일순간 먼지처럼 변했다가 다시금 합쳐지는 모습은 좋게 말해도 기괴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제국군은 조금이나마 나았다.
이 자리에 있는 제국군은 모두 특임대였고, 그들은 범주는 달라도 단테라는 괴물을 곁에서 겪었기에 어느 정도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모두가 ‘그래, 단테 대령도 있는데 몸이 먼지처럼 변했다가 합쳐지는 소년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법국의 사정은 달랐으니.
“시, 신이시여!”
“제1 추기경! 대체 저 소년은 뭡니까!”
그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몸을 떨었다.
일부 성기사들은 벌써 성수를 검에 부으며 당장이라도 배교자를 처리하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직접 목격한 그들에게 이슈페인, 혹은 천시율이란 기괴한 이름으로 불린 저 소년은 여왕과 유사한 괴물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내심 단테 대령과 척을 지고 있으니 나쁜 놈이 아닐까, 하는 다소 이분법적인 사고도 뒤섞여 있었다.
하나 정작 모두의 관심이 쏠린 이슈페인은 언제 입자로 변했냐는 듯 매끄러운 피부를 가볍게 쓸고는 단테와 사마제천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곧 무너진 제7 구획과 집중된 이목을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이렇게 또 계획이 어그러지네.”
입안이 썼다.
반쯤은 충동적으로 일을 키우긴 했으나, 사마제천의 개입은 상정하지 않았던 탓에 그로선 꽤 유감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득도 없이 갈 수는 없으니까.”
이슈페인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자신을 파악하려는 듯이 지그시 응시하는 단테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슈페인, 그리고 천시율.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소년은 안광을 번뜩이며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단테는 나노 머신에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놈은 위험한 인물이며 대륙의 번견을 자처한 이상주의자들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고로…….
“제거. 못해도 치명상.”
소년은 웃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육신이 빠르게 녹아내리며 바닥을 미끄러져 단테에게 쇄도했다.
“가당찮은 수작을!”
사마제천이 다시금 붓을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하…… 이러니까 저 새끼랑 움직이기 싫었는데. 혼자 일 마무리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짜증이 뒤섞인, 그러나 어딘가 감정이 마모된 여자의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동시에 사마제천은 시선을 뒤로 돌렸고…….
“이런.”
쓴웃음을 지음과 동시에, 내력을 끌어 팔을 교차한 채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신까지 계셨습니까? 제6 원로.”
그런 사마제천의 말에 제6 원로라고 불린 여자, 검붉은 머리카락을 쇼트커트로 자른 채 한쪽 송곳니가 도드라진 웃음을 지은 그녀는 머리에 돋아난 뿔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응. 아미키.”
“……그래도 당신은.”
콰아아아아아아앙!
“커헉!”
사마제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그는 교차한 팔에 직격당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폐허 속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제6 원로라 불린 여자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
막 전용기를 소환한 리베라가 뒤에서 주먹을 뻗으려다가 기체의 고개를 갸웃거렸다.
콕피트 너머로 시선을 맞춘 그녀들은 동시에 악동 같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직후.
〔전 리베라에요.〕
“나는 제6 원로…… 이 호칭은 너무 거추장스러우니까 세이티나라고 불러.”
둘은 웃음기가 섞인 통성명을 한 채로 몸을 풀었다.
마나 하트가 뜨겁게 회전한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의 이름을 ‘세이티나’라고 밝힌 그녀는 왜인지 돋아난 송곳니와 황금색으로 갈라진 눈동자로 리베라의 기체, 모스트리를 훑어보았다.
유려한 선이 꽤나 아름답다.
때문에 유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폐기시키기엔 너무 아름다운데……. 핫.”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리베라 역시, 기체의 조종석에 몸을 묻은 채 웃음을 지으며 화답하니.
〔그러게요. 그런데 그 뿔은 본드로 붙인 건가요?〕
“하, 하하핫!”
당연히 뒤에 이어질 것은…….
콰과과과과과광!
피 튀기는 격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