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임대는 명분상으로도, 또 도의적으로도 법국 내부 정치에 끼어들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최대한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는 것이 위정자들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제국은 단테가 법왕의 장례식에서 벌인 일을 최대한 잡음 없이 넘김과 동시에 그를 필두로 한 특임대를 바로 임무에 투입함으로써 일을 일단락시켰다.
“……쯧!”
물론 단테를 바라보는 제1 추기경 측 세력의 시선은 결단코 곱지 않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단테 대령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현 대륙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특임대의 일원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되게 순순히 떠나네요? 남아서 법왕 직접 앉히고 제1 추기경 쪽 애들 모조리 숙청할 거 같은 분위기였는데.”
“…….”
리베라의 말에 세실은 단테의 방을 바라보며 내심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군관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본 단테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가장 무서운 건…….
‘그럴 실력까지 있다는 것.’
그가 제7 추기경을 지지하는 걸 넘어서 제1 추기경 측을 강제로 찍어 누른다면, 감히 누가 제7 추기경이 법왕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물론 그 이후에 올 정치적 불안까지 어떻게 해 줄 순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 그녀의 시선은 리베라를 지나 보리스와 그의 곁 빈자리에 닿았다.
원래는 로한이 있어야 했을 자리.
하지만 왜인지, 그는 일전 시그니처의 후유증을 말하며 이번 임무에서 이탈했다.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가.’
그것에 대해선 세실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로한의 시그니처는 분명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후유증이 긴 경우는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끼이익.
단테가 머무는 방의 문이 작은 소음을 울리며 부드럽게 열렸고, 곧 흑발에 군모를 눌러 쓴 단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영광을.”
세실, 리베라, 보리스, 유엘, 페고르를 비롯한 특임대…… 그중 제국 소속의 군인들이 그를 향해 경례를 올린다.
단테는 묵묵히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경례가 끝난 직후 세실이 말했다.
“임무지는 연합 왕국과 법국의 국경을 낀 망르 해안입니다. 최근 그쪽 해안에서 대대적인 마수 상륙의 전조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예상 도해 시점은 앞으로 3일 후이며 해당 지역을 방어 중인 법국과 연합 왕국 측은 최소 네임드, 혹은 신생 개체인 여왕의 출몰까지 걱정하고 있고…….”
그녀는 미리 보고받은 보고서를 통째로 외운 듯이 계속 말을 나열했고, 그 모습에 유엘과 페고르는 물론 리베라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실은 단테에게 운용할 특임대의 일원은 물론 현지의 부대가 어떤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말을 멈췄고,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한 단테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요약하자면 3일 후 바다에서 싸울 거란 말이군.”
“……크흠, 그렇습니다.”
정말로 요약하면 그뿐이었다.
세실은 괜스레 볼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옅은 헛기침을 한번 내뱉었다.
반면 단테는 별달리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들을 훑고는 이내 리베라를 보며 물었다.
“로한은?”
“몸이 아프대요!”
리베라는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고, 뒤이어 보리스가 부족한 설명을 덧붙였다.
“시그니처의 부담이 아직 낫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부르시겠습니까?”
보리스는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물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불신, 그리고 나아가 의미심장한 무언가였다.
그것을 본 단테는 잠시 그와 눈을 맞췄고, 이내 시선을 옮겨 리베라를 바라보았다.
하필 지금, 로한의 부재.
그는 실로 공교로운 일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으나 그뿐, 이윽고 고개를 젓고는 답했다.
“됐다. 그럼 가지.”
“예, 알겠습니다.”
특임대의 사령관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테이기에 그가 결정했다면 이의를 제기할 권한은 없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곧바로 격납고로 향했다.
거대한 비행함에 엄선된 특임대 일원들이 빠르게 승선하고, 마지막으로 단테 일행들까지 합류한 직후.
우우웅!
비행함의 엔진인 거대한 마석들이 빠르게 머금은 마력을 뿜어내며 거대한 기체를 서서히 달아오르도록 만들었고, 머지않아 열린 격납고의 천장으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함선이 하늘 높이 떠올라 빠르게 사라진다.
“……후.”
그 모습을 커튼 뒤에 앉아, 묵묵히 지켜보던 로한은 어느새 더 높아진 담배꽁초들을 힐끔 응시하며 생각했다.
“농사나 지어야지.”
여동생과 만나면 어디 한적한 지역에 숨어서 농부나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그건 실로 로한답지 않은…….
꽤나 소박한 소망이었다.
“끙차.”
로한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뉘었다.
믿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댔으니 아픈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알아서 신호를 주겠지.’
얻을 것을 얻고 조용히 빠지면 되는 거다.
로한은 그런 생각을 한 채로, 묵묵히 눈을 감고 머리를 비웠다.
다만 왜인지…….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갑천마
면종복배(面從腹背) (2)
특임대의 비행함은 모선을 필두로 한 채, 빠른 속력으로 지원 요청이 들어온 망르 해안가로 향했다.
다만 나아갈 거리가 꽤 있기에 비행함을 운전하고 관리하는 승무원들을 제외한 특임대원들은 제각기 배정받은 객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연하게도 단테 역시 이제는 익숙해진 비행함의 객실에 들어가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때였다.
문득 안쪽 주머니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에 시선을 내려 그곳을 확인한 그는 이윽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곤 손을 밀어 넣었다.
스륵.
그건 다름이 아닌 편지였으니, 고급스러운 흰색의 편지지 바깥엔 금색으로 각인된 드사 노스라, 파르필라의 서명이 눈에 띄었다.
‘드사 노스라, 그리고 대모 파르필라.’
일전에 부탁한 법국 내부 사정에 대한 조사.
최근에도 그에 관한 편지를 몇 번 받기는 했으나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이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지를 뜯어 편지를 꺼내 들었다.
「드사 노스라의 은인께.」
바깥에 써진 각인과 마찬가지로 유려한 필체가 돋보였다.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소파에 몸을 묻은 채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근 법국의 동향에서 이상한 점이 꽤 많이 발견되었네. 다만, 민감한 시기인지라 접근하기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 은인께선 이 점을 감안하여 주시게.」
일전에 만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꽤나 나이가 느껴지는 문장들이다.
‘엘프의 수명은 몇백 년이라고 했지.’
대모(大母)라고 불릴 정도이니 오죽할까.
-최근 법왕의 승하와 더불어 후계 다툼이 치열해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실 터이니 넘어가고, 제1 추기경의 배후 세력은 블랙 가드일 가능성이 크네.
“역시 그런가.”
제7 추기경의 읊조림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꽤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단테는 한 대목에서 멈칫했으니.
「은인께서도 알고 있겠지만, 블랙 가드는 지금 무언가 이상해. 내부적인 혼란이 있는 듯하네. 아쉽게도 과거 심어 두었던 끈들이 모두 잘린 탓에 당장은 자세한 사항은 전달하지 못함을 용서하시게나. 그래도 조만간 유의미한 사실을 전할 수 있을 듯해. 그리고…….」
꾹꾹 눌러 쓴 필체에서 미약한 고민이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내뱉은 그녀의 말은 단테에게 꽤나 와닿았다.
「너무 긴 방관 역시 해답은 아님을 알아주시게, 은인이여.」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툭, 투둑…….
소파의 가죽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단테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무엇인가.’
여태까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던 작은 단서들을 긁어모은다.
어지럽게 뒤엉킨 퍼즐과도 같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다듬은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하나하나 조각을 끼워 맞췄다.
‘블랙 가드, 환생, 전생, 혹은 빙의.’
단테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현재.
그러나 그의 전생은 천마인 천휘였다.
아미키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사마제천도, 어떤 이름을 가졌을지 모르는 남궁연희도 마찬가지다.
단테는 그들을 알았다.
아니, 단순히 아는 걸 넘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들이 이 세계에 존재했던 것은 최소 30년 전.’
법왕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소와 최대의 범주를 재설정한다.
‘어쩌면 50년 전, 대군주와 마수들이 나타나기 전부터일지도 모르지.’
그들이 블랙 가드를 만든 것인가.
그렇다면 중원에서 넘어온 이들은 과연 그들이 전부일까?
그 대목에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그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반박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무심결 눈을 감은 그는 생각했다.
스스로를 망령이라 칭하며 반쯤 흘러가는 대로 살아 내던 때부터 현재에 와닿을 때까지 하던 고민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만약 저 가설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들과의 간극은 50년.’
들어본 적이 있다.
흔히 과거의 스승이나 인연이 반로환동의 고수가 되어 재회했다는 전설을 말이다.
제1 원로의 외형은 기껏해야 20살 중후반 정도의 청년에 가깝다고 했던가.
아마 남궁연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알던 이들이 맞는가.’
여태까지 떠올리긴 했어도 깊이 담지 않았던 생각이었고, 또한 고민이었으나 사마제천과 남궁연희의 존재가 확실해진 순간 피할 수 없는 심마였다.
그뿐인가.
로한의 진의 역시 단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기엔 충분했다.
‘면종복배(面從腹背)인가.’
앞에서는 숙이고,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가.
이미 모든 상황은 어지럽게 꼬이고 뒤틀려서 이제는 겉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한 달을 기다려 준다고 말했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는 늘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때.
끼이익-.
닫혀 있던 객실의 문이 열리고, 이젠 단발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세실이 들어와 눈을 감고 소파에 앉아 있는 단테에게 말했다.
“대령님, 말씀하신 대로 준비를 끝냈습니다. 보리스 중령과 리베라 중령 역시 비밀리에 탑승을 마치고 대령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단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말없이 문에서 비켜서며 그에게 길을 열어 주는 세실을 향해 말했다.
“클리에 제독이 있으니 전선 자체는 유지할 만할 거다. 그러나 만약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퇴각 후, 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비록 특임대는 다국적군이라지만,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제국으로 향한다면 퇴각에 대한 책임을 물기에도 모호할 것이다.
그렇게 단테가 문을 나서려던 그때.
“만약.”
고민의 흔적이 담긴 세실의 읊조림이 스치고, 그녀는 잠깐이지만 멈춰 준 단테에게 물었다.
“로한이 뜻을 달리한다면…… 죽이실 생각입니까?”
그녀도 바보가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몰랐지만, 로한이 블랙 가드나 단테와 대립하게 될 수도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글쎄.”
그녀가 무슨 답을 바랐던 것인가.
단테도, 그녀도 알지 못했다.
“…….”
다만 그가 떠나간 자리를 잠시 지켜보던 세실은 옅은 한숨을 내쉬곤, 함장과 직통된 통신기를 쥐고 말할 뿐이었다.
“속도를 더 높이세요, 함장.”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속도를 높인 순간.
우우웅……!
거칠게 진동하는 마석의 울림과 맞물려 거대한 모선의 후미에서 작은 수송선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그 수송선은.
파아앙!
아주 빠른 속도로 모선이 여태까지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쇄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