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4화 (134/197)

솔라노스 대성당은 그 자체로 법국이라는 국가의 황성이나 다름이 없기에 수많은 방이 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자연히 잊힌 밀실도 있기 마련이고 말이다.

갈라진 벽.

거미줄이 쳐진 구석.

퀴퀴한 공기와 반쯤 썩어 문드러진 가구들까지.

흔히 말하는 음습한 밀실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곳에 한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여자가 자리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자는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걸터앉아 네모난 과자를 먹고 있는 반면에 소년은 어딘가 놀란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일까.

그에 과자를 입안에 욱여넣던 여자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슈페인 네가 그렇게 놀라고?”

평소에도 능글맞은 모습 때문에 한없이 짜증이 나는 얼굴이 일그러지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놈이 당황할 정도라면 들어야 했다.

더욱이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이유를 아는 그녀였기에 더더욱 말이다.

“……간파당했어.”

“뭐? 뭐를?”

그러나 돌아온 답은 주어가 제외된 감탄사, 이 경우에는 환희에 가까우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슈페인의 눈에 점점 광기에 물들자, 그녀는 올게 왔다는 듯이 무심히 주머니에 넣어 둔 이동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물론, 가는 길에 사일런스 마법이 중첩된 마도구를 놓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하, 하하하핫! 크하하하하하하핫!”

그녀가 이동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건 광기에 찬, 이슈페인의 웃음소리였다.

그녀가 떠나 간 밀실에서.

한참을 미친 듯이 웃고 있던 그는 이윽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고, 곧 몸을 가볍게 떨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니.

“과연…… 그 이상주의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남자는 뭔가 다르긴 하다 이겁니까!”

그건 실로 의미심장한 혼잣말이었다.

기갑천마

면종복배(面從腹背) (1)

언제나 태양과 광명 따위를 읊조리는 솔라 법국의 하늘에도 밤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찬란한 빛이 반짝인다고 해도 언젠가 결국 그림자는 드리울 테니까 말이다.

딸깍.

그렇게 황혼이 지나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밤이 되고, 텅 빈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로한은 손에 쥔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

“후.”

입가에서 스산하게 흐른 회색빛의 연기가 방 천장에 맞닿아 넓게 퍼진다.

그는 반쯤 태운 담배를 입에서 떼어 내며 무심결 중얼거렸다.

“……너무 많이 피긴 하나.”

이미 그가 의자 옆 탁자에는 마치 선인장이나 다름이 없는 꽁초 무더기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태운 담배만 이 정도다.

남들이라면 건강을 걱정할 양이었으나, 정작 로한에게는 그다지 크게 와닿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계속 살면 전선에서 죽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말이다.

“전역하고 싶다. 전역하고 싶다…….”

군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입에 담으며 또 하나의 담배를 끝낸 그가 재떨이에 꽁초를 꽂아 넣는 그때.

우웅-.

침대에 던져 놓았던 군복 외투 안쪽에서 빛이 몇 번 깜빡거렸다.

로한은 올 게 왔다는 듯이 머리를 대충 긁적거리다가, 이내 미간을 좁히곤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 넣어 둔 작은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연결하는 버튼을 누르자 곧 귀에 익은, 그러나 절대 달갑지는 않은 목소리가 울렸다.

〔로한 중…… 아니, 이젠 원사죠? 하하핫!〕

어딘가 상기된 이슈페인의 읊조림에 로한은 미간을 좁혔다.

그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담배를 하나 더 꼬나물며 답했다.

“까먹은 줄 알았는데.”

아니, 까먹었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비록 ‘거래’가 오갔다고 한들, 반쯤은 강제적인 관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털썩.

다시금 붉은 빛이 반짝거리는 담배를 입에 문 그가 자리에 앉은 그때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바쁠 뿐입니다. 그나저나 말이 좀 짧아지셨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읊조림이 아닌가.

로한은 후우- 하고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 갔던 연기를 내뱉으며 화답했다.

“그쪽입니까?”

주어를 제외한 물음이다.

하지만 이슈페인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물음에 화답할 뿐이었다.

〔예.〕

침묵이 흐른다.

로한은 탁자에 놓여 있던 위스키를 쥐고 그대로 병을 기울였다.

꿀꺽, 꿀꺽…….

알싸한 알코올이 목젖을 때렸다.

그러고는, 로한은 미간을 좁힌 채 반쯤 태운 담배를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깍-.

사일런스 마법이 각인된 마도구의 버튼을 누르고, 푸르른 파장이 방을 뒤덮는 것을 느끼며 커튼을 모두 쳤다.

그러고는 통신기를 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간단합니다.〕

‘글쎄, 그쪽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로한은 입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억지로 씹어 삼킨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슈페인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연합 왕국과 법국의 국경 부근 해안에서 마수들이 미쳐 날뛸 예정입니다. 그때 어떤 핑계를 대서 법국에 남으십시오. 그리고 미카엘과 차나 한잔하면 되는 겁니다. 참 쉽죠?〕

“그다음엔? 제7 추기경을 암살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만약 그런 주문이라면 로한은 당장이라도 통신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거나, 윤리적으로 안 된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테 대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감당할 수 있습니까?”

로한은 비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말했다.

그 이면에는 너희가 아무리 원로라고 한들, 괴물이나 다름이 없는 그에게 대항할 자신이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흐…….〕

그의 물음은 이슈페인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 때문에 이슈페인 역시 건방지게도 도발을 건네 오는 로한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나저나, 이번 일을 잘해 내야 당신 대신 팔려 간 여동생과 만나지 않겠습니까? 큭큭.〕

순간 로한의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언제 멈칫했냐는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채 통신기 너머에 서 있을 이슈페인에게 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러려고 이 같잖은 스파이 노릇을 하는 거잖아?”

그러나 능글맞은 미소 아래에 담긴 건 자신을 쥐고 흔들려 드는 이슈페인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절대적인 갑은 다름이 아닌 이슈페인이라는 걸 말이다.

때문에, 로한은 더 이상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다 탄 담배를 재떨이에 꽂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슈페인은 그렇게 말하곤 통신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

통신기로 시선을 돌린 로한은 이슈페인이 막 통신기에 주입하던 마력을 거두려던 찰나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되나?”

〔뭡니까?〕

“너희의 목적이 대체 뭐지?”

로한도 바보가 아니다.

제4 원로 이슈페인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블랙 가드 내부의 세력이 조직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건 진즉에 눈치챘다.

때문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희가 이렇게까지 하며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목적 말입니까?〕

그런 로한의 물음에 이슈페인은 꽤 흥미로운 물음이라는 듯 옅은 웃음을 지었다.

잠시 침묵하던 이슈페인이 이윽고 간결한 대답을 입에 담았으니.

〔그야 당연히, 마수들의 절멸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지요.〕

그건 어딘가…… 어그러진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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