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3화 (133/197)

단테를 가로막는 이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특임대의 총사령관이자 제국의 황족이나 다름이 없는 대우를 약속하는 「특급 황실 금성훈장」을 수여한 그를 몰라보는 이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히려 일행을 발견한 법국의 주교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성호를 그으며 묵묵히 그들을 법왕이 안치된 곳으로 안내할 정도였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그들을 반기는 건 대성당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드넓은 기도회장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는 이미 얼굴을 본 제1 추기경은 물론, 제7 추기경을 비롯한 법국의 추기경 전부 자리하고 있었다.

“법국의 벗이신 단테 대령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를 인솔해 온 주교의 청아한 목소리가 기도회장을 울리고, 모두의 시선이 단테와 그가 데려온 특임대의 일원들에게 향한다.

특히 제1 추기경은 올 게 왔다는 듯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곤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요. 단테 대령께서 법국에 베풀어주신 위대한 은혜를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태양의 품으로 돌아가신 법왕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신다면…….”

단테는 무심한 시선으로 제1 추기경을 훑었다.

눈가엔 눈물 자국이 점철되었고, 살도 빠진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의 눈까지 속일 순 없었다.

입꼬리가 떨린다.

눈물이 맺힌 눈은 한없이 밝았고.

혈색 또한 좋다.

꾸며 낸 슬픔조차 조악하기 그지없기에, 단테는 아직도 온갖 미사여구로 자신의 귀를 어지럽히는 그를 향해 말했다.

“시끄럽다.”

“무, 무슨……?”

당연하게도 그를 비롯해 제1 추기경 측 이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또한 단테의 뒤에 선 세실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무언가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그때.

저벅.

단테는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저, 저런…….”

“아무리 대령이라고 해도 그런 언행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모르시오!”

설마 그런 말을 하고 아예 제1 추기경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기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단테를 제외한 모두가 딱딱하게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마치 꾸민 것처럼 모두가 제자리에 서 있는 와중, 묵묵히 법왕이 안치된 관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법왕의 관 앞에 자리한 의자에 앉아 있던 제7 추기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마침 저도 머리가 아팠던 참인지라…….”

“그렇겠지.”

단테는 순수한 감사가 전해진 제7 추기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시선을 내려 관에 안치된 법왕을 바라보았다.

늙어 주름진 손과 얼굴.

새하얀 백발과 빛을 잃었을 동공.

서서히 썩어 갈 육신.

이미 자리를 비운 영혼.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실마리를 던져 준 인물.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던가.”

참으로 시기가 절묘하지 않은가.

슬픔은 없다.

다만 미약한 고마움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갚아 주어야겠지.

단테는 때마침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법왕에게 내리비추어지는 짙은 태양을 바라보며,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이, 이익…….”

그에게 무시를 당한 제1 추기경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이변에 법국의 군인들조차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상황 속.

단테는 로한에게 무심한 시선을 던졌고, 그는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나무 의자를 가져와 단테에게 건넸다.

털썩.

그는 그 자리에 앉았고, 그 모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제1 추기경 측 인원들이 무어라 외치려던 그 순간.

“지금부터.”

내력이 담긴 무심한 목소리가 회장을 울리고.

“이 회장에서 입을 열면 죽인다.”

그는 이제까지 마수들에게만 보여 주었던 번뜩이는 붉은 안광으로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그러니 닥치고 추모나 하고 꺼져라.”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에 제1 추기경이 무어라 외치려던 그때.

쿠웅!

단테의 군화가 회장을 가볍게 두드렸고.

그 순간 스쳐 간 내력의 파장이 일대를 뒤덮으니.

“아, 아아…….”

“……끄으윽.”

당장이라도 그를 체포하려던 법국의 군인들과 직접적으로 반발하던 제1 추기경 측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고 말았다.

“이, 이런 미친……!”

어째서 그가 특임대의 정점인지 말이다.

기갑천마

한 달까지는 힘들지도

단테의 행동은 과격하고 한없이 안하무인에 가까웠지만,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음…….”

“허어…….”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누구도 단테와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심지어 내부 경호를 맡은 법국의 군인들조차도 몸이 굳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를 뒤따라온 특임대원들 역시, 반쯤은 강제로 그 분위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말이다.

“……크흡.”

리베라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애써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찍어 누르기에 바빴다.

“에휴.”

로한은 이미 반쯤은 체념한 얼굴을 한 채, 걸친 군복 안쪽에서 권총을 꺼내어 손에 쥔 채로 법국의 군인들을 훑었다.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그리고 세실과 보리스는 거의 동시에 시선을 맞췄고, 둘은 곧바로 품속에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세실 중령이다. 일단 본국에 있는 세르겐 소장님께 연락을 취하고…….”

“보리스 중령입니다. 그, 제 집안에 연락 좀 해 주시겠습니까?”

제국 서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습 후작가와 세습이 아님에도 순수한 실력으로 명문 행정가 취급을 받는 둘이 움직였으니, 이번 일로 단테가 책을 잡힐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이이이익!”

단테에게 직접적인 모욕을 받은 제1 추기경은 결국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얼굴이 붉어진 채, 장례식이 한창인 기도회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

“크흠…….”

그렇게 되자 자리에 남은 건 제7 추기경 쪽 사람과 일부의 중도층, 그리고 단테를 필두로 한 특임대원들이 전부였다.

그들 중 몇몇은 단테의 행동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고, 또 몇몇은 감사를 표했다.

물론 정작 그 대상이 된 단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내리쬐는 태양이 서서히 옅어졌다.

교황의 몸을 감싸듯 흐르던 온기가 사라지고, 마침내 기도회장에 어둠이 자리할 때까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 남아 있는 건 오직 단테와 제7 추기경뿐이었다.

툭, 투둑.

단테는 일전에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묵묵히 기도회장의 전경을 응시하며 팔걸이의 끝자락을 두드리고 있었고, 제7 추기경 역시 별다른 말도 없이 그저 목에 걸린 태양 십자가를 어루만질 따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먼저 입을 연 인물은 제7 추기경, 도르스 솔 케루빔이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비통함이 담긴 시선을 들어 관을 지긋이 응시하며 말했다.

“법왕께선 후계를 정하지 못하고 신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이미 들었던 얘기였기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죽음이란 건 그런 것이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것.

또한 떠나간 이보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더욱 많은 숙제를 남기는 것.

그것을 어찌 둘이라고 모를까.

단테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후계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미카엘이 말했는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알고 있으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그의 반응이 사뭇 의미심장했다.

도르스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법왕의 앞에 다다른 직후 눈을 감았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10년을 입었다는 상복의 소매 부분이 흔들렸다.

“저는 추기경이라는 자리가 너무나도 버겁습니다. 또한 두렵고, 때때로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지요.”

단테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르스 역시 그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저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긴 전쟁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위에 앉아 있는 이들은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구걸해야 했지요.”

그들의 죽음은 위정자들에게 업적이 되고 때때로 흠이 된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애도하지 않았다.

애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찰나일 뿐, 세상은 죽어 간 이들을 잊고 또한 이용한다.

“그런 점이 싫었습니다. 그렇기에 때때로 정치적인 행동이라거나 위선이란 말을 들어도 상복을 입었습니다.”

그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

또한 마음 깊이 박힌 죄책감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

“우리는 그들의 피 위에서 살았습니다. 비록 희생을 겪었으나 우리는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마피아가 된 엘프들도, 노동자가 된 오크들도, 마도 공학자가 된 드워프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누군가의 죽음이 미래의 거름이 된다.

그렇게 그들은 투쟁하며 살아남았다.

“찬란합니다. 숭고하며, 실로 영광된 일이지요.”

그렇게 핏물로 영양분을 얻은 대륙이란 옥토는 다시금 싹을 틔워 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금의 평화는 대륙을 다시금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대군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불과 얼마 전에 프란 공화국이 무너졌습니다. 그뿐입니까? 법국의 영토나 다름없는 곳에서 여왕이라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지요. 그런데도 이런 정치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저 비통하고 슬플 따름입니다.”

차라리 법왕이 후계를 정했다면 모든 일이 깔끔하게 흘러갔을까.

두 남자의 머리엔 공통된 한 가지 생각이 흘러 지나갔다.

“그럴 리가.”

“오히려 더욱 큰 혼란을 야기할 따름이겠지요.”

도르스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단테는 말했다.

“슬슬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텐데. 사람들까지 물려놓고는 말이 길군.”

그의 말대로 무려 법왕의 시체가 안치된 관이 있는 이 기도회장이 비워진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 단테의 말에 도르스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제1 추기경을 비호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미카엘이 그러던데, 제1 추기경의 세력이 갑자기 불어났다고.”

“그 원인으로 생각 중입니다.”

“흠.”

단테는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손길로 의자의 끝자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꽤 심각한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법국이라는 나라의 향후 정치 방향과 행보를 결정지을 수 있는 후계자의 배후에 정체를 모를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간이 큰 놈이 아닌가.

그렇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지, 어느 세력인지 감은 잡았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경험 속에서 이런 음지의 배후는 언제나…….

“예.”

도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가드로 추측 중입니다.”

“허!”

아니나 다를까.

설마 했던 이름이 흘러나오자 그는 무심결 실소를 흘렸다.

그런 단테의 반응이 꽤 의외였던 탓일까?

도르스는 잠시 그의 표정을 살피곤 침을 한 번 삼켰다.

찰나의 고민이 그의 눈을 스친다.

그러나 이윽고 다짐했는지 그는 천천히 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고.

처억.

이윽고 상복 안에서 은색의 리볼버가 나와 정확히 단테를 겨눴다.

“그리고 당신은 블랙 가드입니다.”

총구가 정확히 단테의 관자놀이를 향한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도르스가 단테를 위협하는 상황임에도 둘의 반응은 역전되어 있었다.

“흠.”

단테는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정작 총을 쥔 도르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누가 보더라도 도르스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조금 전 단테의 무력 일부를 보았는데 말이다.

“단테 대령…… 당신이 특임대의 사령관이 되는 데에 블랙 가드가 개입했다는 말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답하십시오, 당신과 제국이 바라는 건 무엇입니까? 법국을 무너트리는 것? 아니면 속국으로 만드는 것?”

그는 명백히 두려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단지 성토할 뿐이다.

“경고하겠습니다. 법국의 혼란을 가중시키지 마십시오. 제1 추기경이 법왕이 된다고 한들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법왕이 되어 나라 망하게 하고, 나아가 솔라 신의 뜻을 허도한다면 그땐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식은땀을 흘리고 총구가 떨리는 와중에도 성토하는 그의 모습은 신념을 보여 줌과 동시에 한없이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단테는 무심결 웃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의 시선이 기도회장 천장에 사슬로 묶인 샹들리에에 닿았고, 그는 이윽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러면 한 달까지 기다리기가 어려운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도르스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큭!”

도르스가 가늠하지도 못한 순간, 단테는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를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콰드득, 소리와 함께 총구가 뒤틀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르스는 저릿한 손목을 부여잡으며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단테를 응시한 채 침을 삼켰다.

“잘못하면 약속을 깨겠어.”

하지만 정작 단테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기도회장을 나설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회장의 문을 쥔 그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도르스가 외쳤다.

“대,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답을 원하는 걸까.

블랙 가드에 몸을 담았냐는 대답?

아니면 블랙 가드가 무슨 일을 꾸미느냐는 것에 대한 대답?

그것조차 아니라면,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한 대답?

너무나도 답할 것이 많았기에, 단테는 고개를 돌려 도르스와 그의 뒤에 선 법왕의 관을 눈에 담았다.

때문에,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간결한 답을 읊조렸으니.

“기다려라. 알아볼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끼이익- 쿵!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회장을 나섰고.

“그, 그게 무슨…….”

홀로 남은 도르스는 그저 멍한 눈으로 단테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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