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를 비롯한 이들이 함선에서 내려 대지를 디디자 그들의 앞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닌 미카엘이었다.
법국 특유의 백색 갑주를 입고.
깃발을 드는 기수라는 걸 상징하는 듯한 망토를 걸친 그는 단테를 발견하곤 곧바로 법국의 경례를 올렸다.
“대령님을 뵙습니다.”
직위도 직위이나, 그 자신에 한해서 제국의 황족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는 단테다.
그렇기에 미카엘의 행동은 이전보다 한층 더 높은 격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단테는 그런 그의 인사를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화답했다.
언뜻 오만하게 보일 수 있음에도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 단테가 보이는 익숙함과 당연함 때문이리라.
“일단 모시겠습니다.”
미카엘 역시 불쾌함이나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듯한 표정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직접 그가 탈 의전 차량의 문을 열었다.
그렇게 단테가 차에 오르자 자연히 곁에는 미카엘이, 조수석에는 단테와 가장 오래 합을 맞춘 로한이 앉게 되었다.
“치.”
평소였다면 자신이 앉겠다고 했을 리베라였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다른 차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보리스는 그 곁으로 끌려갔고 말이다.
뒤이어 세실과 특임대의 간부들이 전부 차에 오르고, 단테가 탄 차를 필두로 격납고가 있는 군 시설 밖으로 향했다.
부우웅…….
깃발이 펄럭거리는 소리와 행인들이 조용히 걸어 다니는 발소리를 제외한 빈자리에 오직 비통함만이 감도는 거리를 지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타국으로 따지면 황성이나 왕성에 해당하는 솔라노스 대성당.
“…….”
“딱히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는데.”
단테는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미카엘에게 말했고, 구태여 숨길 이유가 없는 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훑고는 생각보다 더 죽상이었다는 걸 깨닫기라도 했는지 어색하게 마른세수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단테가 물었다.
“갔던 일은?”
법국이 아닌, 특임대의 일을 묻는 것이다.
그와 클리에는 각국의 국경 부근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었으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별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사람들과 군인들을 안심시키는 게 더 어려웠죠.”
그는 최상급 마수 세 마리와 상급 마수 수십여 마리를 죽였다고 덧붙이고는, 이내 쓰게 웃었다.
“그래도 덕분에 발을 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만약 특임대의 작전이 길어졌다면, 제7 추기경의 기수인 그는 딜레마에 빠졌을 것이다.
특임대로서의 임무를 속행하는가, 국가와 따르는 자를 위하는가……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을 두고 말이다.
물론, 정말 다행이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상황은 어떻지?”
단테는 이전과 비슷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이 본론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미카엘은 멍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을 정도다.
미카엘은 갈색 곱슬머리를 어지럽게 긁적거리며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단테는 계속해 보라는 듯이 턱을 까닥거렸고, 그 모습을 본 미카엘은 옅은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법국은 내부적으로 후계 경쟁 중이었습니다. 법왕이란 직위가 본디 추기경들의 경합으로 이뤄지는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세습이 아닌, 당대 추기경 중 가장 자질이 우수한 이가 법왕의 자리에 오른다.
언뜻 듣기엔 백월신교와도 맞닿아 있는 제도였기에 단테는 그로 인한 폐단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개판이겠어.”
“바로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타국의……. 그것도 제국의 황족이나 다름이 없는 그에게 법국의 치부를 까는 것이기에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과거, 승하하신 법왕께서 자리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말이 많은 제도였습니다. 신실함이나 추기경님들의 역량만을 보기엔…… 결국 정치의 영역이니까요.”
아무리 신실하다고 한들 일국의 정점과 가까운 이들이 어찌 허물이 없을까.
실제로 과거에도 후계 다툼은 이 시기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법왕께선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자리에 앉으셨기에 경쟁자가 없었고, 사실상 떠밀린 것에 가까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솔라 님의 가호 아래에서 능숙하게 법국을 수습하셨고, 이렇게 저희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남을 주기엔 아까운 상황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기약할 수 없으나, 이대로라면 법국은 전쟁이 끝난 그다음 시대를 이끌어 나갈 국가다.
당연히 정점이 탐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한 미카엘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단테를 보며 말했다.
“문제는 제1 추기경의 세력이 갑작스럽게 불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점점 선을 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긴 법국의 역사 속에서 늘 지켜지던 대원칙이 있었으니, 바로 후계 경쟁에서 진 이에게 보복하지 않는다는 것과 서로에 대한 공격은 선을 지켜 가며 한다는 것.
“……제1 추기경은 그 원칙을 깨기라도 하려는 듯이 너무나도 공격적이고 급진적으로 제7 추기경과 그 일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한다.
제1 추기경이 법왕에 오르는 순간, 법국은 전례 없는 대숙청을 맞이하게 되리라고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아예 실현 가능성이 없는 낭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카엘은 그를 알았다.
제1 추기경은 법왕이 될 그릇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추기경이 된 것도 한창 법국이 흔들리던 시기에 억지로 앉은 자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때문에 미카엘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다.
제7 추기경의 손을 들어 달라고.
만약 당신께서 그분의 손을 들어 준다면 제1 추기경을 성공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때.
끼이익!
조용히 도로를 미끄러지던 바퀴가 대지와 마찰을 일으키며 차체를 멈춰 세웠고, 이윽고 운전대를 쥔 법국의 군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을 바라보는 미카엘을 힐끔 바라보곤 차의 문을 쥐었다.
“대, 대령님, 잠시……!”
그러자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미카엘이 다급히 서두를 꺼내려던 그때.
“미카엘.”
단테는 이젠 익숙해진 차의 문을 열고,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군화로 솔라노스 대성당의 대리석을 디뎠다.
그리곤 자신을 부른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으니.
“기다려라.”
차에서 완전히 내린 단테는 앉아 있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법왕부터 뵈어야 하지 않겠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뒤따라 도착한 이들을 힐끔 바라본 후 마침 차에서 내린 로한에게 말했다.
“가지.”
“예, 대령님.”
결국,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테와 그를 뒤따르는 이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기분이 나쁘진 않군.”
미카엘은 저 안에 누워 있으실, 기나긴 전쟁의 격동에서 법국을 지켜 내신 법왕을 떠올리며 묵묵히 목에 걸린 태양 십자가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