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31화 (131/197)

단테와의 독대가 끝난 후, 보리스의 처우는 현재 단테가 단장으로 있는 제10 단에 남아 있는 것을 끝으로 꽤 간결하게 정리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보리스가 원했다는 것이리라.

그는 말했다.

“제1 원로에게 그 이후는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냥 남아 있으라는 거 아닐까요? 하핫.”

더욱이 이제 와 발을 빼기엔 한참은 늦었다는 걸 보리스도, 단테도 알고 있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블랙 가드 내부에 무슨 일이 있으리라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단테를 필두로 한 리베라와 보리스. 블랙 가드 제10 단원들은 병실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흰색의 문이 열리고, 멍하니 침대에 누워 담배를 태우고 있던 로한은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곤 이내 탄식했다.

“아.”

담배꽁초로 재떨이에 선인장을 세운 그는 입에 물고 있던 꽁초를 그 선인장에 대충 꽂아 놓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퇴원임까?”

“응!”

당연하게도 웃으면서 화답한 것은 리베라였다.

로한은 그런 리베라의 모습을 매우 언짢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말로 싸워 봤자 질 거라는 걸 알기에 그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 제대하고 싶다.”

“사실 저희가 제대하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중 하나죠. 죽어서 나가거나, 전쟁이 끝나거나.”

“보리스 중령님…… 원래 그런 이미지였습니까?”

“글쎄요.”

로한은 결국 보리스까지 이상해졌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단테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순간 리베라와 로한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단테의 모습이 어딘가 후련해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의문이 풀리기도 전, 단테는 탁자 위에 개어진 군복을 들어 로한에게 던지곤 말했다.

“일어나라, 로한. 곧 복귀다.”

“알겠습니다. 에휴…….”

그런 단테의 말에 로한도 별수 없이 일어나 군복을 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복귀를 위한 준비를 끝마쳐 가던 그때였다.

“음?”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복도를 향해 있었고,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일련의 뜀박질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콰앙!

그리고 직후, 로한이 머문 병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동시에 세실과 유엘, 페고르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단테의 앞에서 숨을 골랐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한 상황이었기에, 그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던 그때.

“……대령님.”

세실 특유의 덤덤한 얼굴이 떨린다.

그리고,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당황이 담긴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니.

“법국의 법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

그제야 단테를 비롯한 이들은 어째서 그녀가 이리도 다급하게 달려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법국 내부에서 후계 다툼 중이라고 했었지.”

단테는 어느새 군복을 걸친 로한을 응시하며 물었고, 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럼 빨리 돌아가야겠군.”

왜일까.

제7 추기경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블랙 가드가 이일에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격납고로 향한다.”

그는 생각을 갈무리한 채로 세실을 지나쳐 병실 밖으로 향했고, 일행들은 그런 단테의 뒤를 따라 곧바로 병원을 나섰다.

“대령님!”

“격납고로 향한다.”

이미 마르크닌에도 소문이 퍼졌는지, 경계를 서고 있던 특임대의 간부들 역시 격납고를 향하는 단테를 확인하고 빠르게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격납고 앞에 다다르자 뜻밖에 법국의 군인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을 들으셨군요.”

헤리안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단테의 반응에 헤리안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벌렸다.

“전군! 특임대와 단테 대령께 례(禮)!”

그리고 그의 외침이 격납고 앞 공터에 울려 퍼진 직후.

“영웅의 앞날에 경의를!”

“찬란한 미래에 축복을!”

평소에 그렇게들 읊조리던 솔라 신의 가호에 대한 언급은 전무한, 오직 단테를 위한 경의를 보였다.

그 덕분에 단테조차 그들이 최대한 자신을 신경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기에, 그는 헤리안에게 간단한 눈인사로 감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그들을 지나가려던 그때.

“응? 쟤는…….”

뒤에 선 로한이 흘러가듯 중얼거린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의 시선을 따라 향하자, 이내 단테는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색의 갑주를 입은 채 서 있는 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대를 했나.”

“그렇습니다.”

단테의 물음에 잭은 쓴웃음으로 답했다.

어찌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던 일이다.

평생을 살아온 마을은 이제 거대한 공동묘지 꼴이 되었고, 아무리 온순하다고 한들 이전처럼 삶을 영위하기엔 썩어 문드러진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그것을 단테라고 어찌 모를까.

그는 잭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를 지나치며 읊조리듯 말했다.

“기갑 장교, 파일럿이 되면 직접 놈들을 찢어 죽일 수 있을 거다.”

용서하라거나, 잊고 살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는다.

우스운 정신 승리고, 역겨운 자기 연민에 불과한 걸 너무나도 잘 아니까.

“피는 피로 씻는 거다.”

단테는 그 말을 끝으로 잭을 돌아보지 않았고,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군인들 역시 잭에게 어설픈 연민 따위를 적선하지 않았다.

“……예.”

잭 또한 그렇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빌어먹을 세상에서 느리든 빠르든 결국 비극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선에 오른 직후.

구구구궁-!

육중한 울림과 함께, 그들의 함선이 격납고의 천장을 지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기갑천마

격동하는 정세 (2)

며칠을 날아 다다른 상공에서 내려다본 솔라티움의 분위기는 정적 그 자체였다.

일국의 통치자가 죽었다면 보통 대대적인 추모를 시작하고, 거리엔 통곡이 울려 퍼지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법국은 아니었다.

거리엔 여전히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법국을 상징하는 흰색과 금색의 깃발이 휘날리고, 모두가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왜일까.

“엄청 적막하네.”

“그러게 말이야.”

리베라의 읊조림에 로한이 화답했다.

분명히 상공에서 내려다보기에 소리까지 들을 수는 없다고는 해도 법국은 한없이 정적으로 느껴졌다.

다만 그 고요함은 그들이 느끼는 비통함과 긴장감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것만 같았기에 함선에 타 있는 이들의 심정마저 그리 평온하진 못했다.

그리고 그때.

객실 안에 있는 그들에게 통신기 너머로 함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솔라티움 16격납고에서 법국의 3세대 제식 나이트 프레임 유게네스(Eugenes)가 접근한다. 인도 목적으로 보인다.〕

함장의 말대로 곧 객실의 창문에서도 유게네스 특유의 신성한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그 모습을 본 단테는 의자에 걸쳐두었던 겉옷을 입고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직후.

특임대가 오른 모선은 쿠구궁, 하는 묵직한 울림 끝에 격납고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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