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29화 (129/197)

끼기기긱…….

보리스의 명령으로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병력들이 빠르게 고성을 벗어난 직후, 그는 적지만 끝까지 분투하기로 마음을 먹은 포병들과 함께 포대를 틀었다.

조준점 안에 들어온 건 다름이 아닌 마수들 사이에서 기동이 정지된 제국의 나이트 프레임의 코어.

이윽고 10기 모두를 조준한 보리스는 결연한 표정을 짓고 남아 있는 포병들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곧 붉게 물든 마석이 우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포성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흩뿌려진 마나의 텁텁한 잔향이 그들의 코를 스쳤다.

동시에 하늘로 솟구친 포성은 유성이 되어 검은 하늘을 길게 가르고, 머잖아 마수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분해되고 있던 나이트 프레임들의 코어에 닿았다.

서로 다른 강대한 마나가 뒤엉켰다.

그 반발력은 서로를 갉아먹고 불태우며 근처에서 입을 벌리고 촉수를 뻗어 대는 마수들을 뒤덮으니.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퍼어어어어어엉!

붉은색, 흰색, 푸른색…….

섬광은 제각기 삼킨 마수들의 색깔을 번뜩이며 순식간에 전선 일부를 무너트렸고, 보리스는 포병들에게 포대를 맡긴 후 다시금 기관총을 쥐며 외쳤다.

“죽여 버려-!”

그 이후 이어진 것은 처절한 사투였다.

아군의 시체가 있을 나이트 프레임 10기를 제물로 바쳐 시작된 광란의 발악은 대대 전체가 있을 때보다 더 처절했고, 끔찍했으며, 눈물겨웠다.

손가락이 없는 병사가 이빨로 레버를 당겨 쏘아 올린 포성이 마수의 머리가 날아갔다.

미쳐버린 여부사관은 폭탄을 한 아름 들고 성벽 아래에서 입을 벌리던 마수 위로 추락했고, 그 뒤를 그녀의 연인이 뒤따랐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보리스 역시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쿨럭…….”

어디서 튀었는지 모를 파편에 오른팔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흘러내린 핏물 때문에 눈앞은 아무리 닦아도 흐릿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틱, 티익-.

뒤에서 들려온 부싯돌 소리에 보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 이름 모를 병장이 미친 듯이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틱, 티익.

그러나 병장이 쥔 라이터는 켜질 수 없었다.

이미 핏물로 너무 많이 젖어 버린 탓이었다.

보리스는 품 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의 입에 문 담배의 끝자락에 불을 붙였다.

치익, 습.

흰색의 종이 끝자락에서 회색빛 연기가 솟구쳤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뒤늦게 보리스를 발견하곤 고개를 숙였고, 보리스는 태우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병장의 씁쓸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스쳤다.

어쩌면 체념과 닿아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처지와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홀린 듯이 화답했다.

“글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스읍, 후…….

병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에 자리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입을 열어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뭐가 ‘이렇게까지’일까.

보리스는 묻고 싶었으나, 이윽고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짚이는 바보짓이 너무 많았으니까.

대답하기 전,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모르겠는데.”

솔직하게, 아까 떠난 탈출 작전에서 보리스도 충분히 몸을 뺄 수 있었다.

그 당시까진 그도 나름 움직일 만했고, 게다가 이미 대대장이 도망친 시점부터 그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남았다.

어째서일까.

보리스는 스스로도 쉬이 답하지 못한, 충동에 가까운 행동에 대한 답을 찾듯이 묵묵히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역으로 물어보지. 이래선 안 되는 이유가 있나?”

“예?”

“이미 내 얘기는 다 들었을 거고.”

아미키 중령이 부임하던 날, 그는 보리스라는 인물에 대해 나열했다.

당연히 대대 내에 그의 사정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명문가인 쥬가스빌가(家)의 차남.

가문의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지만, 군에 입대하더니 돌연 가장 바보 같은 선택만을 거듭한 멍청이.

“어차피 가문은 장남인 형이 있고, 나름 명문가의 유망주였다고 해도 결국 제국의 입장에선 작디작은 개인일 뿐이지.”

보리스는 어느새 병장과 시선을 맞춘 채,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웃으며 말했다.

“요점은 간단해. 하고 싶으니까 바보짓을 하는 거다. 내 바보짓이 결국 최소한의 선함에 기준을 두고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야.”

이유 따위 아무리 포장하고, 또 미사여구를 예쁘게 붙인다고 해도 가장 근본적인 건 그것뿐이다.

타협하기 싫으니까.

비록 욕을 먹을지언정,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고치고 싶으니까.

보리스는 그렇게 말하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병장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때때로 남들에게 피해인 건 알고 있어. 답답하고 가끔은 같잖겠지.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맞는 거 같은데.”

……바라는 이상을 따르기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건 아닐까.

그는 자조적으로 낮게 중얼거리곤 다시금 기관총을 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때.

“하핫, 정말 뭐라고 해야 할는지.”

노이즈가 낀 것처럼 들리던 청각의 틈으로 익숙한 동시에 짙은 위화감이 낀 목소리가 스쳤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가 눈앞에 선 이를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니.

“아, 아미키 중령?”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던 병장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름이 아닌 아키미 중령과 그의 부관인 리렌 원사가 서 있었다.

때문에, 그는 당혹감을 삼키며 그의 이름을 작게 읊조리다가 이윽고 그가 전장에서 도망쳤던 걸 떠올리고 이를 악물었다.

“중령!”

그러고는 당연히 그의 멱살을 틀어쥐기 위해 손을 뻗은 바로 그 순간.

“보리스 대위.”

아미키의 입이 열린다.

그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고, 곧 리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이니.

“합격입니다.”

“이 비겁……! 뭐?”

그의 말을 기점으로, 곧 파앗- 하는 섬광과 함께 그들을 둘러싼 전장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부유했다.

마치 안개, 아니 구름에 몸이 뜨듯 기이한 감각이 보리스를 감싸고, 그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땐 꽤 익숙한 천장이었다.

“아, 일어나셨군요.”

“아미키 중령?”

흐려졌던 시야도, 피가 흐르던 팔도, 저릿한 손과 끊어질 듯했던 허리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있는 건 너무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서류를 읽는 아미키 중령과 그의 앞에서 막 빛을 잃어 가는 마도구를 정리하는 리렌 원사뿐.

“……이게 무슨?”

시선을 창가로 돌려도 보이는 것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북부의 서늘한 한기가 맺힌 유리창뿐이다.

그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고, 그때 마도구를 다 정리한 리렌 원사가 특유의 딱딱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안심하세요. 대위가 본 건 환각입니다.”

“예?”

그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보리스가 순간 아미키 중령과 리렌 원사가 자신을 기만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때쯤.

“블랙 가드에서도 몇 개 없는, 이것저것 많이 뒤섞인 마도구입니다. 실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환각을 경험할 수 있죠. 뭐,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도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긴 합니다만……. 일단 확실한 건 한 가지.”

때마침 업무를 끝냈는지 서류를 닫은 아미키 중령이 그를 바라보며 사근사근한 웃음을 지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히 파악했으니, 이제 제안을 건넬 때군요. 블랙 가드에 들어오시겠습니까?”

당연히 그의 말을 들은 보리스는 눈을 몇 번 끔뻑거리다가 이윽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

“참고로 거절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보리스는 제국의 후방의 행정직으로 전출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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