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 퉤……!”
보리스는 입가에 튄, 침인지 핏물인지 모를 액체를 뱉어 내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릿한 시야.
저릿한 손목.
휘청거리는 몸.
모든 것이 그가 한계라고 말해 주고 있었으나, 그는 긴 시간 동안 얼고 녹았을 바위에 몸을 기대어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두드렸다.
그때, 곁에 선 형벌 부대원이 다급히 달려와 그에게 말했다.
“대위님! 한계입니다! 한계라고요!”
급박한 그의 외침에도 정신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형벌 부대 이등병을 뜻하는 계급장뿐.
그제야 보리스는 눈앞의 사내가 새로 충원된 인원임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운도 없지.
하필 이럴 때.
“대위님! 정신을 차리시란……!”
형벌 부대원은 반쯤 넋이 나간 보리스를 일으켜 세우려는 듯,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서걱, 툭.
섬뜩하고도 간결한 울림이 공간을 울리고, 머잖아 흐릿한 시야에 붉은색의 액체가 튀었다.
“……아.”
그제야 보리스는 눈앞에 서 있던 형벌 부대원의 목이 바닥을 구르다가 코트 끝자락에 멈춘 걸 확인했고, 이내 피식 웃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벽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캬아아아아!
-쿠어어어!
기세를 잡았던 것은 처음뿐이었다.
사기로만 전쟁을 이길 수 있었다면, 애초에 전쟁이 50년간 이어질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참혹한 전장을 눈에 담았다.
흔들리지 않았던 갈색 동공이 위태롭게 일그러진다.
“……주, 죽기 싫어! 아, 아아아!”
겨우 청년이라 불릴 소년이 창자를 끌어안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 갔다.
“헤, 헤헤헤, 헤헤!”
담배를 태우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는 부사관의 예쁜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어! 죽어어어! 죽어어!”
이미 망가진 기관단총을 든 채, 허공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제야 보리스는 확실히 깨달았다.
전투는 패배했고,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령은?’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전선이 이렇게까지 밀렸는데, 중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천천히 전선을 살폈다.
〔커허헉!〕
때마침, 거대한 전갈에 톱니를 달아 놓은 듯 생긴 마수에 의해 콕피트가 꿰뚫린 파일럿이 피를 토했다.
그뿐인가.
이미 대대 내에 있는 나이트 프레임 10기는 전부 기동 중지 상태에 가까웠다.
그래, 10기다.
보리스는 쓴 웃음을 흘렸다.
‘에이스가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그저 목숨이 두려워 도망친 건가?’
이만한 병력을 방패로 삼는다고 가정하면 에이스 정도는 충분히 몸을 뺄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아미키를 믿었을까?
글쎄, 아마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형벌 부대 처우 개선을 해 줘서가 아닐까.
원망하지 않는다.
에이스라면 이보다 많은 제국의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죽은 700여 명의 생명 따위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대위님! 명령을!”
“이제 남은 건 대위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일련의 부사관들이 달려왔다.
그들도 아미키와 그의 부관인 리렌의 부재를 눈치챘는지, 당황과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보리스를 불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제 남은 장교 중 제일 상급자는 자신인 듯싶었다.
실로 절망적이지 않은가?
보리스는 그런 생각을 삼킨 채 입을 열었다.
“남은 병력은?”
“……많아야 2개 중대입니다. 그마저도 실시간으로 줄어 가고 있어요!”
“2개 중대라…….”
얼추 4~300명쯤 남았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보리스는 다시금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름 처절한 발악을 했기 때문인지, 처음 밀려오던 놈들보단 훨씬 적은 수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를 전멸시키기엔 충분하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저 수라면 도망 정도는 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문득 그의 시선에 마수들 사이사이 기동이 정지된 나이트 프레임이 닿았다.
그리고 시선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마력포대로 이어졌을 때, 그는 찰나의 갈등을 머금은 후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는 부사관들에게 말했다.
“만약 놈들이 일시적으로 전열이 무너져 혼란하다는 가정하에, 남아 있는 부대원들을 데리고 퇴각할 수 있겠나?”
“예?”
그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으나, 너무나도 진지한 보리스의 표정에 침을 삼키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곧 내려진 답은…….
“가, 가능은 합니다만, 일부가 남아서 더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비록 수가 줄었다고 해도 다 함께 퇴각하다가 쫓겨 죽을 겁니다.”
가능은 하다.
보리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겠지.”
그러곤 곧 바닥에 떨어져 있던 통신기를 쥔 채로 아직 살아서 분투 중인 포병들을 향해 명령했다.
〔전원, 마수들 전열에 나열된 나이트 프레임의 허리 부근 코어를 겨냥한다.〕
“예?”
“그, 그게 무슨?”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아군을 쏘라는 명령에 부사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으나, 정작 보리스는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성벽 중심부의 기관총을 쥐었다.
그리곤 다시금 통신기를 쥐어 말하니.
〔그리고 몸을 뺄 수 있는 경상을 제외한 모든 부상병은 총을 쥐어라. 아니, 뭐라도 들고 마수들에게 갈긴다.〕
그제야 퇴각을 말했던 부사관들은 보리스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깨달은 그들이 무어라 외치려던 그 순간.
보리스는 말했다.
〔형벌 부대라고 놓고 가면 죽인다.〕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은연중 바보 같다고, 멍청하다고 무시하던 보리스라는 대위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다.
때문에 그를 찾았던 부사관들은 멍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쫓다가, 이윽고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광을.”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경의였기에.
기갑천마
진실로 한 발자국 (4)
“미친 짓을 했군.”
꽤나 길게 이어지던 보리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단테가 내린 간결한 감상이었다.
무시까지 당하고, 또 다시 상급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에도 탈출할 수 없는 부상병들을 이끌고 옥쇄(玉碎)하기로 했다는 건 그로서도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보리스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확실히 두 번은 못 할 짓이라고 느낀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땐 정말로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어쩌면 그날의 일 때문에 성격이 조금 변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시금 채워진 찻잔을 가볍게 쥔 채로 덧붙이듯 말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과거의 보리스와 눈앞에 서 있는 보리스의 성격 차이는 꽤 간극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 사이 입을 축인 보리스는 이윽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나이트 프레임의 코어를 터트리자, 아니나 다를까 놈들의 전열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