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여왕과의 격돌로 산으로 날아간 단테는 다른 곳과 달리 흙더미가 많은 지형으로 그대로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껏 충격이 누적된 대지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나무들이 뿌리가 뽑혀 휩쓸리고, 단테는 머리 위를 덮치는 엄청난 진동에 곧바로 내력을 끌어 올렸다.
무리해서라도 도약해야 한다.
그는 벤데타에 일부 부담이 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지를 도약했고, 그 결과 산사태에 휘말리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도약하는 것을 마주 날아오던 여왕이 두고 볼 리는 만무했으니.
-흐읏!
투명한 마나가 베히모스의 유해를 뒤덮는다.
그리고 머잖아 갈라진 갈비뼈들의 파편이 마치 이기어검이라도 되는 양 그를 향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쇄도했다.
〔큭!〕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시야를 어지럽게 흔드는 그것들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니.
울컥.
그의 단전에서 내력이 빠르게 뿜어져 벤데타를 감쌌다.
동시에, 그는 벤데타 특유의 흑색 검을 뽑아 허공에서 날아오는 여왕과 파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백월신공(白月神功).
묵월참(墨月斬).
묵색의 반월을 그리는 참격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흔드는 파편들을 뒤덮는다.
일순간 섬광처럼 번뜩인 그것은 부질없는 공격에 불과한 뼛조각들을 빠르게 녹이고 태우며 여왕을 향했고, 단테는 그 찰나의 순간 벤데타의 주먹을 뒤로 끌어당기며 이어질 공격을 준비했다.
-하찮다!
여왕의 일갈이 터졌다.
놈은 마치 자신이 이전의 버러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선포하기라도 하는 듯, 거칠게 팔을 휘둘러 단테의 참격을 흐트러트렸다.
하지만 여왕도 예상치 못한 게 있었으니.
〔흐읍!〕
허공에서 벤데타의 육중한 기체가 일순간 빠르게 점멸했다.
동시에, 여왕은 참격을 흐트러트리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시야를 가득 채운 단테의 모습에 눈이 찢어질 듯 벌어졌고.
〔짜증 나게 하는구나.〕
단테는 단번에 베히모스의 쇄골 부근을 틀어쥔 채로 내력을 끌어 올리며 짜증이 섞인 일갈을 터트렸다.
〔……버러지 같은 놈!〕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왕은 단테가 힘을 주는 궤적을 따라 베히모스의 유해가 뒤집힌다는 걸 느끼고 빠르게 그를 향해 칼날과도 같은 뼛조각들을 뻗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딱, 따다다닥!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걸까.
여왕과 결합된 베히모스가 몇몇 부근이 부서지고 갈라진 턱뼈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여왕이 눈을 깜빡인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하고도 육중한 유해와 그것에 결합한 여왕은 산사태가 한창인 대지 위로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따악, 따다다다닥!
베히모스의 유해가 몸을 부르르 떨며 흔들었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놈의 의지가 아닌, 여왕의 고통이 대변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쿨럭!
여왕은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몸을 짓누르는 산사태의 압력을 온전히 받아 삼켰다.
그러곤 마찬가지로 흐르는 흙을 밟고 서 있는 단테를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놀랍다.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은연중에 인간이란 생명에게 묘한 감상을 느끼고 있던 여왕에게, 단테라는 인간은 새로운 자극임과 동시에 호기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호의라는 뜻은 아니다.
쿠구구구궁…….
여왕은 위태롭게 흙들을 견뎌 내고 있던 베히모스의 유해를 천천히 일으켜 단테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리곤 말을 나눌 필요도 없다는 듯 다시금 그를 향해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힘이 압축된 공격이었기에 그가 계속 마주한다면 결국 자신의 승리가 되리라.
여왕은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결국, 종의 우월함이란 이런 거니까.
하지만 그때.
〔멍청한 년.〕
단테는 바로 머리 위에서 자신을 노리고 뻗어지는 공격을 힐끔 바라보곤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마치 포기라도 한 듯.
그 공격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향해 대지를 내달렸다.
끼기긱!
그의 관절부가 뒤틀렸다.
케이블이 꿈틀거리고, 주인의 뜻을 알아먹은 벤테다가 은연중에 가장 위협적인 자태를 뽐내며 그녀를 자극했다.
때문에, 여왕은 웃었다.
-우둔한 놈.
앞으로 돌진한다고 하여 베히모스의 거대한 팔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놈은 더욱 위험한 함정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가 여왕과 거의 근접한 그 순간.
-죽어라!
여왕은 그렇게 읊조리고는 그의 발 바로 아래에 미리 흩뿌려 놓은 뼛조각들을 솟구치게 만듦과 동시에 투명한 마나를 칼날처럼 뻗었다.
그뿐인가.
뒤에서 쫓아오던 팔 역시 그의 기체를 강타하리라.
여왕은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단테의 모습에 심히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디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토록 흥미로운 인간을 추기경으로 세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궁금했으니까.
그러나 그때.
파아아앗!
갑작스럽게 뻗어지는 섬광이 그녀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우우웅…….
뒤이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묵빛 구체가 일렁이니.
“일단.”
단테는 자신을 노리던 여왕의 모든 함정을 깨부순 채 읊조렸다.
“이 죽지 못한 뼈부터 부숴 주마.”
그리고 여왕이 눈이 찢어질 듯 뜬 그 직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둘의 시야가 검은 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여왕은 느꼈다.
-아, 안 돼……!
말라비틀어진 심장에 앉으면서 자신과 하나가 되었던 베히모스의, 유모의 유해가 엄청난 마나에 의해 녹아내리고 소멸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직후.
여왕은 몸에서 느껴지는 탈력감에 그대로 뒤로 몸이 기울었다.
검게 물들었던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동시에, 여왕은 생각했다.
‘죽음?’
아직 여분의 목숨은 충분할 텐데.
설마, 추기경들이 전부 죽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일부나마 그녀의 정수를 받아 삼킨 엄선된 인형들일 텐데.
……만약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안 되는데.’
아직 도태된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다.
잠들어 있는 나의 어머니이자 아버지께, 그들이 도태되었음에도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니 절대로 죽어선 안 되는데.
그때였다.
터억!
깊은 심연 아래로 추락하는 듯하던 그녀의 목덜미가 누군가에 의해 끌려 올라갔다.
이윽고 검고 뿌옇던 시야가 돌아오니.
그녀는 멍한 눈으로 죽음에서 자신을 끌어 올린 인간을 바라보았다.
“사마제천. 그리고 남궁연희.”
그는 물었다.
“들어 본 적 있나?”
단테의 적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한 그녀는 순간 몸을 떨었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착각이었던가.
기억을 되짚었다.
흐릿하던 의식 속 저 너머에 감춰졌던 과거의 편린이 되감기고, 곧 여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저런 발음인지 몰랐지만, 어렴풋이 놈들이 외치는 걸 들었다.
“그렇군.”
여왕의 긍정에 단테는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곤 곧 붉은 안광에 있던 적의가 꺼졌다.
“그럼 되었다.”
때문에, 여왕이 다시금 삶의 의지를 잡으려던 그 순간.
콰득!
섬뜩한 울림이 스치고.
단테는 다시금 깊은 심연 너머로 그녀를 떨구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꼭 살려 달라고 빌려던 표정이구나, 짐승.”
……여왕은 깨달았다.
그를 이루던 무언가가 크게 변했다는 걸 말이다.
그것이 종족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리라는 것 역시.
그러나 그뿐.
여왕은 어떠한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아마, 다시는 뜨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기갑천마
진실로 한 발자국 (1)
쿠구구구…….
산사태가 멈추자 특임대는 빠르게 산을 올랐다.
-쿠어어어어어!
-끼에에에에!
그 과정에서 통제를 벗어난 일부 마수들이 앞을 가로막긴 했으나, 이미 기세를 탄 특임대에겐 잠깐의 번거로움에 불과했다.
그렇게 산맥을 얼마나 올랐을까.
머지않아 단테를 발견한 특임대원들은 산사태가 시작된 듯한 흔적과 주변을 가득 메운 압도적인 전투의 잔해를 눈에 담고 깨달았다.
여왕은 죽었다는 것을 말이다.
〔…….〕
그들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 경의를 표하려던 그들은 머잖아 단테의 분위기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으니.
“…….”
여왕의 사체 앞에 서 있는 단테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그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터벅.
단테는 무심한 발걸음으로 그들을 지나갔고, 머잖아 비행함에 올랐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이들은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 괴물 같은 남자가 저리도 기분이 안 좋아진 걸까 하고 말이다.
……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단테가 떠난 뒤.
남은 특임대는 세실의 지휘하에 빠르게 사후 처리를 법국의 소관으로 넘겼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마을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처우는 관습적으로 법국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헤리안이 전권을 잡은 후.
가장 큰 화두는 당연히 살아남은 광신도들에 대한 것이었다.
“저, 저희가 미쳤었나 봅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여왕이 사라지자 세뇌가 풀린 것인가.
아니면 그저 미친놈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인가.
그런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끝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정당한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모조리 처형당했다.
그것은 온전한 법국의 의지였다.
-이단과의 타협은 없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라 과거 존재했던 모든 종교가 읊조렸던 대원칙이었다.
그리고 특임대원들 역시 그에 동의했다.
당연한 일이다.
특임대에 소속이 되었다는 것.
그건 근본적인 국가나 병과를 떠나 정예라는 말이었고, 그걸 또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된다.
그런 그들에게 마수가 어떤 존재일까.
증오이자 두려움이고, 분노이자 혐오스러운 존재다.
그런 마수들을 성스러운 동물이라고 섬기고 하다못해 여왕을 성녀라고 부른 놈들이 이제 와 살려 달라고 말하는 꼴은 꽤나 역겨웠다.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당!
당연하게도 자비란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디시 마을의 광신도들을 처리한 뒤 법국, 마르크닌으로 복귀한 그들은 머지않아 모하트 마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과는 마을의 붕괴.
생존자는 전무(全無)했고, 특임대의 연락을 받은 법국 측에서 접근했을 때에는 단지 통제를 잃은 마수들이 인간들을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다고 한다.
“……아, 아아.”
그 잔인한 진실을 들은 잭은 그래도 실신했고, 헤리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모하트 마을의 소각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