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21화 (121/197)

쿠우웅!

단테의 주먹이 허공을 때린다.

거센 바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공간을 찢어발길 듯이 흔들리고, 그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왕은 단테에게 닿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아앙!

그녀는 빙판길 위에서 뒤로 끌려가듯, 매끈하고도 빠른 속도로 단테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아아앙!

콰과과과과광!

때때로 내력을 실은 묵직한 주먹이 그녀의 몸을 때리고, 손끝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손톱이 몸을 찢어발겼으나 그마저도 눈을 깜빡인 사이에 재생될 뿐이었다.

‘영악한 놈.’

단테는 미친 듯이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결정타를 먹이지 못하자 미간을 좁혔다.

무공을 쓰려는 순간, 속도가 느려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기에 그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곧 여왕의 어깨 너머로 거의 다다른 마을을 확인한 단테는 확신했다.

‘저곳에서 놈을 죽인다!’

구태여 여왕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함정이라도 파 놓았겠지.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놈이 파 놓은 함정 따위는 부숴 버리고 목숨을 취하면 그뿐인 것이다.

그렇게 여왕의 몸이 서너 번쯤 더 찢고 재생되었을까.

“오, 오오! 성녀님이시여!”

“간악한 제국의 개가 성녀님을 공격한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소란이 일어남에도 마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련의 자경단들이 반쯤 눈을 뒤집고 단테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동시에 마을에 잔류하고 있던 마수들 역시, 그를 노리며 온갖 공격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찮다!〕

단테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일일이 반응하기는커녕, 단지 내력을 퍼트리듯 뿌려 호신강기를 일으킨 후 여왕을 좇았다.

콰아아아앙!

타다다다!

포격과 총성.

“성녀님을 보호하라!”

-끼에에에에에!

광신도가 되어 버린 인간들의 괴성과 마수들의 포효가 귓가를 어지럽히고, 호신강기를 두드리는 감각이 묘하게 짜증을 일으켰으나 단테는 개의치 않고 눈앞의 여왕을 향해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마침내.

“크흣!”

여태까지 때때로 공격을 당해서 신음 한 번 터트리지 않던 여왕이 단테의 주먹에 정면으로 맞아 그대로 베히모스의 두개골로 추정되는 거대한 뼈의 미간 부근으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앙!

단지 주먹질에 불과했으나, 그 안에 담겨 있던 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에 굉음과 함께 두개골에는 실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격이 들어가자, 단테는 제일 먼저 주변에서 날뛰는 인간들을 향해 일갈했다.

〔닥쳐라!〕

그의 외침에는 어떤 연민도 없었다.

작게는 마을을, 크게는 대륙을 좀먹으며 인류를 죽이고 있는 짐승들을 추종하는 버러지들에게 되돌아갈 연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감히 성녀님께-!”

“저 무도한 놈을……. 커헉!”

그리고 그 순간.

성녀를 옹호하던 이들은 귓가에 핏물을 흘리며 자리에 쓰러졌고, 마침내 두개골 앞의 대지를 디딘 단테를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입질하던 마수들마저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이성이 날아간 마수라고 해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다못해 짐승들도 동족을 수없이 죽인 사냥꾼의 향기를 알아보고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그가 죽인 마수는 과연 얼마일까?

“……흐.”

그런 생각한 것은 비단 마수들뿐만이 아니었는지, 어느새 비틀거리며 두개골 위에서 몸을 일으킨 여왕은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스윽 닦아내며 말했다.

“과연 첫째를 죽인 벌레답구나.”

비록 첫째라고 인정하긴 싫지만 말이다.

여왕은 말을 덧붙이며 눈을 번뜩였고, 곧 검은 겹눈이 번뜩여지며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를 그 우둔한 녀석과…….”

그러나 그 순간.

파아앙!

순간적으로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그녀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파아앗!

동시에 검은 섬광이 번뜩이고, 무언가 위기감을 느낀 여왕이 몸을 피하려던 그때.

터억!

목을 틀어 잡힌 감각과 함께, 여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에 선 단테를 응시했다.

“어, 어떻게……?”

인지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시끄럽다, 버러지.”

지독하게도 무심한 한마디일 뿐이었다.

“죽어라.”

뚜둑.

다시금 목이 틀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추종자들은 물론 특임대의 병사들도 경외가 담긴 시선으로 단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끄아아악!”

〔응?〕

로한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으니.

〔……이건 무슨 개 같은?〕

그건 다름이 아닌 추기경 중 하나의 몸이 팽창하다가.

퍼어어어어엉!

풍선처럼 터지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기갑천마

기만의 여왕 (2)

……스륵.

단테의 손에 잡힌 여왕의 얇디얇은 목덜미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묽은 혈수로 변해 흘러내려 제복의 끝자락을 적셨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물이 아닌, 저 멀리에서 터져 나간 추기경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

-키에에에에에!

그쪽 역시 혼잡스럽기는 매한가지였으니.

비록 거리가 멀고 기체에서도 내려 통신은 듣지 못했으나 지금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을까.

단테는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 흘러내린 핏물이 재조립되듯 너무나 빠르게 살아나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 이러할까.

기괴했지만, 단테는 그저 미간을 좁힌 채로 나지막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런 거였나.”

그는 여왕을 향해 저 멀리서 흘러 들어가는 무언가의 흐름을 유의 깊게 살폈다.

그것은 내력이나 마나와는 사뭇 다른 기운.

선천진기(先天眞氣)였다.

그 말인즉,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으나 여왕의 부활…… 내지는 재생이 타인의 생명력을 담보로 한다는 말과 같다.

그때였다.

-와아아아아아!

-우리의 성녀님께서 살아나셨다!

-진화는 계속되리라!

단테의 일갈에 피를 뿜고 쓰러졌던 이들은 물론 입을 다물었던 광신도들은 언제 조용했었냐는 듯이 다시금 광기에 물들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좋게 봐도 개판이었기에 그는 당장이라도 저 우둔하고 멍청한 버러지들을 깡그리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저따위 버러지들의 처우가 아니었다.

벤데타가 아닌, 단테 본신의 몸이 긴 선을 그리며 앞으로 뻗혔다.

목적은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는 여왕의 목숨을 취하는 것.

당연한 일이다.

구태여 기다려 줄 이유 따위는 없으니까.

파아앙!

그의 몸이 빠르게 쇄도한 직후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머잖아 그의 몸이 여왕에게 근접한 순간, 마침내 일부분의 재생을 끝낸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본능에 가까운 손짓으로 두개골을 찍어 눌렀다.

-아으으아!

아직 단테에 의해 박살 난 성대조차 재생되지 않은 입이 벌어지고, 곧 둘은 무너진 두개골의 파편들과 함께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떨어진다고 하여 그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언제나 생각하곤 했다.

적이 가지고 있는 상정하지 못한 능력만큼 불쾌하고 성가시며 귀찮은 것은 없다.

고민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죽여 보면 되는 문제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단테는 곧바로 떨어져 내리는 큼지막한 파편을 디딘 후, 그대로 여왕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흐아으!

하지만 여왕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

놈 역시 근처의 파편을 불완전하게 재생된 손으로 끌어모아 그의 시야와 공격을 막아내며 화답했다.

콰그그그그극!

파지직!

물론 그것들이 단테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시간을 끌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쿠우우웅!

결국 여왕에게 닿지 못한 채 가루가 된 뼛조각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단테는 대지에 안착했다.

그보다 조금 늦게 떨어진 여왕 역시 어느새 재생이 끝나 가는 듯 숨을 헐떡이며 대지에 발을 디뎠고, 곧 단테는 숨에 뒤섞여 폐부로 밀려오는 더러운 마수의 뼛가루를 내면에서 끌어 올린 내력으로 태워 버리곤 떨어진 공간을 훑었다.

그리고 직후.

“허.”

단테는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정말.”

둘이 베히모스의 두개골을 깨트리고 추락한 곳은 다름이 아니라 놈의 심장이 위치했을 공간이었다.

내부의 살점들은 썩어 문드러진 것인지 잔잔한 썩은 내가 흘렀다.

빛바랜 뼈들이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서 있었고, 미라처럼 말라붙은 심장은 여왕의 권좌처럼 자리 잡고 있으니.

단테는 웃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제대로 된 소꿉놀이구나.”

그는 검은 제복에 묻은 흰색 뼛가루들을 털어 버리곤 비웃음을 듬뿍 담아 말했다.

스스로를 성녀라고 부르는 것도 모자라 추기경들이라 불리는 여분의 목숨을 달고 다닌다.

그뿐인가.

밖에 세뇌된 것인지 미친 것인지 모를 광신도들을 데리고 아예 종교를 하나 세우지 않았는가.

“정말로 신이라도 되고 싶은 거냐?”

사실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놈들이 인간을 이해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듯이, 마수와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란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터벅.

단테는 앞으로 걸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살아날 수 있을지 보겠다.”

허공에서 말아 쥔 손끝에는 일렁거리는 내력이 당장이라도 그의 의지를 대변할 듯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때.

어느새 부활을 끝내고 권좌처럼 말라비틀어진 심장의 조각까지 뒷걸음질 친 여왕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놈, 그들과 같은 기운을…….”

굳이 단테에게 말했다기보다는 혼잣말에 더 가까운 읊조림이었으나, 여왕의 말에 순간 그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득 교황의 말이 떠올랐다.

베히모스를 막았던 것은 블랙 가드다.

그 말인즉, 네임드의 몸에 기생하는 여왕의 특성상 놈은 그들, 남궁연희와 사마제천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단테는 손에 일렁거렸던 내력을 더욱 증폭시키며 이전과 달리 더욱 서늘한 말투로 여왕에게 말했다.

“나와 비슷한 기운을 쓰는 이들을 본 적이 있나?”

그의 물음에 여왕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째서 그가 그런 것을 물었는지를 가늠하듯이 미간을 좁힌 채 그를 지그시 응시할 뿐이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단테가 대답이 없는 여왕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향하려던 그 순간.

“……놈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여왕은 무슨 속셈인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단테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하나는 기억이 난다. 놈들이 나의 유모였던 아이의 몸을 찢고 날개를 잡아 뜯었다는 것과…….”

그녀는 손끝으로 베히모스의 심장이었던 말라비틀어진 살덩이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더니 곧 덧붙였다.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사용했다는 것.”

섬광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빨랐다.

쇠로 된 조각이 장기를 헤집었고, 거대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들이 1초에 수백 번 박히는 고통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그녀조차 두려움에 떨도록 만들었다.

여왕은 그날을 떠올리자 불쾌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 그건 여왕의 삶을 나열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놈들은 강했다. 그리고 유모는 분명 느꼈지. 그들이 자신의 숨을 일부러 끊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장담컨대 그건 자비나 연민이 아니었다.

차라리 양보에 가까웠지.

털썩.

말라비틀어진 심장에 몸을 묻었다.

그 모습이 흡사 지쳐 버린 군주가 권좌에 주저앉는 것과 사뭇 닮아 있었다.

“이후로 웬 벌레들이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유모는 협곡에서 숨을 고르다가 결국 이 마을의 인근에 추락할 수밖에 없었지.”

재생하기엔 너무 깊은 상처였고, 결국 베히모스의 거대한 육신은 마을 근처의 평지를 무덤 삼아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첫 번째가 그러했듯이, 그녀 역시 유모인 베히모스의 심장에서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림은 절대 짧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태동.

서서히 식어 가는 온기.

탁해지는 영양분.

시체가 되어 버린 유모는 자신의 여왕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억겁 같은 시간이 지나 불완전하게 깨어난 여왕은 썩어 버린 살점과 핏물을 삼키며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외로움을 달랜 것은 다름이 아닌 ‘인간’이었다.

“인간은 내게 유일한 유흥이자 오락이었다.”

유모였던 아이의 살점을 씹고 썩어 문드러진 핏물로 목을 축이며 여왕은 인간들을 관찰하고 공감하며 또한 사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지.”

어느새 권좌 속에 완전히 파묻힌 여왕은 굳어 있던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말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이란 그저 진화에서 도태된 불쌍한 존재에 불과하며, 내게는 그들을 인도할 사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야.”

단테는 여왕을 두 눈에 담았다.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기에 그는 퉤, 하고 입가에 맴돈 찝찝함을 바닥에 뱉어 내며 말했다.

“개소리를 길게도 말했구나.”

불쾌감이 그를 감싼다.

여왕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더 들을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여왕의 목숨 하나를 더 거두려 걸음을 옮겼다.

터벅.

그의 검은 군화가 대지를 디뎠다.

그때였다.

“너를 가지고 싶어졌어.”

여왕은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그녀의 동공이 곤충의 그것처럼 검게 물들었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 대지를 박차고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그의 움직임을 초 단위로 바라보았다.

‘기원을 알 수 없는 힘.’

아직도 그녀는 ‘그들’이 보인 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과 닮은 저 인간은 얼마나 많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얻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권좌에 기대고 있던 손끝을 까닥였고, 그 순간 쇄도하는 단테와 여왕 사이에 거대한 무언가가 추락했다.

쿠구우웅!

육중한 울림이 신전과 같은 공간을 울리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모습에 단테는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저적!

심장에 앉아 있던 여왕의 몸이 마치 탈피를 하듯이 갈라지고, 그녀는 서서히 드러나는 붉은 살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시간을 준 것을 후회할 거다.”

그것은 자신감 따위가 아닌 확신이었다.

단테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여왕을 바라보았을 때, 여왕은 어느새 심장으로 만들어진 권좌와 하나가 되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구구구구궁!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들을 감싼 뼈 무더기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단순히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테는 고개를 들어 서서히 멀어지는 거대한 두개골과 뼈들을 바라보며, 어째서 여왕이 그토록 확신에 찬 읊조림을 내뱉을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딱, 따다다닥!

미간이 뚫린 베히모스의 턱관절이 시끄럽게 위아래로 흔들렸고, 마을을 감싸듯 자리한 뼈들이 서서히 바로 서니.

“허.”

마침내 일전에 상대했던 묵골이룡(墨骨螭龍)보다 더욱 거대한 크기의 뼛조각이 몸을 일으켰다.

그 중심에 선 것은 다름이 아닌 여왕.

놈은 어느새 드높이 떠올라 단테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의 추기경이 되어라.

그것은 일전에 지배의 여왕이라 스스로를 칭했던 그것과 사뭇 닮아 있는, 섬뜩한 읊조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광기에 미쳐 날뛰지 않았다.

“아, 아아…… 진화를 위하여!”

“성녀님, 우리의 구도자이시여!”

그저 특유의 성호를 그으며 우습지도 않은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할 뿐.

단테는 어째서인지 자신을 갈구하는 여왕을 지그시 바라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닥쳐라, 버러지.”

기갑천마

기만의 여왕 (3)

“벤데타.”

단테가 나지막이 벤데타를 부르자마자 되돌아온 것은 거대하고도 육중한 베히모스의 공격이었다.

주먹……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앞발이라고 해야 할까.

긴 잔상을 남기며 뻗힌 흰색의 거대한 뼛조각은 일그러진 균열 속에서 잔해를 어지럽게 흩날리며 그의 기체, 벤데타를 강타하려 했다.

그러나 단테 역시 가만있지 않았기에 곧 주먹과 주먹이 마주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그들이 서 있는 대지가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뒤틀린 마력이 내포된 엄청난 충격파가 일대를 뒤덮듯이 사방으로 뻗쳐 나가고, 그것을 뒤쫓듯이 내달린 굉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끄아아아악!”

“커어억!”

제일 먼저 충격파에 노출된 이들은 당연하게도 여왕을 성녀라고 추앙하던 마을의 광신도들이었다.

그들은 고통이 담긴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핏물을 흘렸다.

입과 코.

눈과 귀.

나아가 모공에서까지.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핏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은 섬뜩했다.

그리고 그때.

“우, 우리의 성녀이시여……!”

강풍에 날아간 로브를 찾지도 못한 채 몸을 부르르 떨던 한 청년이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성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던 성녀는 죽어 가는 신도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시.

-시끄럽다!

아니, 차라리 버림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콰아아아아앙!

다시금 격돌한 둘의 주먹이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충격을 일으키며 마을을 뒤덮었다.

지축이 흔들리고, 대지가 갈라진다.

집들이 무너지고 지각이 뒤틀리며 마을이 그야말로 속절없이 박살 나는 모습은 실로 비현실적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눈앞의 광경이 모두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세실이 미간을 좁히며 통신기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엎드려어!〕

그리고 그녀의 외침이 울린 직후.

콰과과과과과과광!

폭음과 함께 대지를 내달린 충격파가 마수들은 물론 특임대를 덮쳤고, 거의 동시에 엎드린 특임대원들은 바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강풍과 서늘한 마력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쿠우웅!

끼기기긱!

나이트 프레임들의 관절부가 위태롭게 떨리고, 일부 궤도차들은 한참이나 뒤로 밀리며 마수들과 뒤섞였다.

그리고 미처 엎드리지 못한 이들은…….

“끄아아아아아악!”

“끄어어억!”

마을 사람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전장에 두려움이 더욱 짙게 깔려 갔다.

바로 곁에서 단지 엎드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몸이 터져 나가고 핏물을 흘리며 죽어 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공포요, 나쁘게 본다면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을 정도로 두려웠으니까 말이다.

로한 역시 전용기, 레기온의 관절부와 장갑 일부가 상했음을 느끼며, 이젠 놀라기도 지쳤다는 시선으로 전장을 훑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피해를 입은 건 특임대뿐만이 아닌 마수들도 함께라는 점일까.

-끼에에에!

-크, 크룩! 크루룩!

차라리 특임대의 사정은 나았다.

나이트 프레임이나 궤도차에 탑승한 인원들은 거의 멀쩡했고, 시기가 적절했던 세실의 명령에 대부분의 특임대원들이 엎드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수들은 달랐다.

놈들은 제일 작은 개체조차 어지간한 오두막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기에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고, 직격당한 하급 마수 일부는 그 자리에서 몸이 터져 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기뻐할 수도 없다.

〔대체, 데지안에서 뭘 먹고 자란 거야?〕

로한은 자신의 통신이 외부 회선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도 까먹은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통신을 들은 모두는 내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게.〕

세실은 로한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화답하며 갈색 동공에 저 멀리 거대한 마수의 뼛조각과 마주하는 단테를 응시했다.

그 모습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래, 저건 마치…….

‘초인(超人).’

달리 설명할 말이 있을까.

동시에 로한의 곱씹음에 묘한 이질감을 느끼는 그녀였다.

그건 보다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대체 단테는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또 블랙 가드는 어째서 그를 이토록 갈구하는가.’

단순히 그의 무력만을 보았다기엔 최근 블랙 가드의 행보는 명백하게 이상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끄, 끄아아아악!”

충격파가 지나간 전장에서 들려온 어떤 비명보다 끔찍하고도 서늘한 괴성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콕피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고, 곧 그 진원지를 찾자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저건…….〕

그도 그럴 것이 비명을 내지른 이는 특임대의 일원도, 마을의 일반 광신도 따위가 아닌, 로브를 쓴 채 최상급 마수를 조종하던, 이른바 추기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꺼어어어억! 그에에에!”

놈은 턱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린 채 몸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철퍼어억!

곧 바닥을 적신 것은 붉디붉은 핏물.

차라리 그뿐이었다면 세실도 단지 눈살을 찡그리는 것에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기경은 그리 쉽게 죽지 못했다.

까드드득!

이미 정신은 나간 지 오래였기에 입에는 거품이 일었고, 동시에 안구마저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일순간 전장이 굳었다.

〔이, 이건 또 무슨…….〕

그녀의 뒤에서 서 있던 페고르가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으나, 이윽고 여왕을 향해 시선을 돌린 세실은 어째서 추기경이 저렇게 처참하게 죽었는지를 깨닫곤 침을 삼켰다.

‘충격파 때문이…… 아니야.’

다른 추기경들은 오히려 멀쩡했다.

그러니 저 추기경이 저토록 처참한 몰골로 죽어 간 이유는 격돌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가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하는 건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세실은 분명히 보았다.

단테와 맞붙은 여왕의 입가에서 핏물이 튀고 피부가 찢어진 순간 추기경이 고통 속에서 죽어 나갔고, 곧 여왕의 상처가 수복되는 것을 말이다.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그녀는 남은 추기경의 수를 세었다.

다섯 명.

제각기 최상급 마수를 데리고 있긴 하지만, 현 시점의 특임대 화력으로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특임대와 나이트 프레임들을 향해 통신기를 쥐었다.

〔모스트리, 레기온, 이데아.〕

읊조림에 나열된 것은 현 전장에 투입된 전용기의 이름들.

〔그리고, 모든 나이트 프레임들은 현시간부로 최상급 마수와 놈들을 조종하는 주체, 이른바 ‘추기경’들을 배제, 아니…….〕

그녀는 제각기 ‘도깨비’, ‘군단’, ‘신념’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체들과 제각기 무기를 든 이름 없는 거인들을 향해 말했다.

〔사살해. 한 놈도 살려 두지 않는다.〕

어느새 갈색 눈빛에는 냉철한 판단이 깃들고, 그녀의 명령을 받은 모두가 무기를 쥐었다.

-쿠어어어어어어!

그리고 그들이 다시금 정신을 차린 최상급 마수를 향해 몸을 던진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단테와 여왕이 다시금 격돌하는 소리와 함께 전투는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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