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20화 (120/197)

단테는 빠르게 전장을 휘어잡기 시작하는 특임대를 훑고는 눈앞의 여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게 물을 것이 많다고 했지.〕

묵빛 액체로 가득한 콕피트 안에서 단테의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내력을 울컥 삼킨 벤데타는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근육을 팽창시켰다.

그는 여전히 오만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여왕과 눈을 마주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 또한 네게 궁금할 게 많다.〕

그러니…….

〔일단, 죽기 직전까지만 터트려 주마.〕

인류에게 도태라 선언한, 오만한 짐승들의 여왕보다 더욱 오만한 읊조림에 여왕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쿠어어어어어!

그의 뒤를 가로막은 거대한 늑대가 다시금 단테를 향해 족히 작은 절벽과 맞먹을 듯한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그 자체로 공기를 찢어발기며 휘둘린 공격은 당장이라도 단테와 벤데타를 압축시켜 버릴 듯했으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단지 내력을 끌어 올리며 팔을 들었을 뿐.

그리고 마침내 놈의 앞발이 벤데타의 팔과 맞닿은 그 순간.

쿠구궁!

짧은 파공음과 함께 벤데타를 지탱하던 바위의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뿐.

-크르르르르……!

늑대를 닮은 최상급 마수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강한 힘을 실어 찍어 눌렀지만, 단테는 어떤 목소리의 변화도 없이 입을 열었다.

〔리베라!〕

그리고 그 순간.

〔네∼!〕

긴 포물선을 그리던 은빛 섬광이 빠르게 늑대 마수를 향해 쇄도했고, 동시에 늑대 마수의 미간 앞에 다다른 리베라는 모스트리 특유의 날카로운 칼날이 태양을 머금은 듯이 번뜩였다.

시그니처(Signature).

도깨비검무(鬼劍舞).

흩어지듯 뿌려진 은빛 섬광은 유기적으로 흩날리고 또한 교합되며 긴 선을 그렸다.

스산한 겨울비가 내리듯.

야심한 밤에 달빛이 휘영청 흐트러지듯 뻗어진 칼날은 늑대 마수가 채 반응할 새도 없이 놈의 얼굴을 그야말로 갈아 버리니.

콰지지지지직!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단지 한 줄기 섬광과 한 줌의 핏물뿐이었다.

-끼, 끼에에에!

늑대 마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애처롭게 울었으나, 리베라가 대지를 디딘 그 순간.

쿠우웅!

놈은 더 서 있지 못한 채 그대로 기울어져 바닥으로 추락했고, 뒤이어 경악에 찬 추기경의 외침이 울렸다.

“네, 넥스 님!”

늑대의 이름이 넥스였던가.

넥스(Nex).

룬어를 해석하자면 살육이라.

그저 도륙당하면 그뿐인 짐승들에게 이토록 과분한 이름도 없을 것이다.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뒤에 선 리베라를 힐끔 바라보았고, 리베라는 콕피트 너머로 단테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단장, 최상급 마수는 죽였어. 생각보다 별거 없던데?〕

그녀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특임대가 온 대외적인 임무는 마르크닌을 노리는 최상급 마수의 구축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긴장을 놓을 때는 아니었다.

단테는 당장이라도 공격을 해올 듯한 일곱 마리의 최상급 마수를 한번 훑으며 말했다.

〔리베라.〕

〔응. 단장.〕

〔곧 로한과 보리스가 합류할 거다.〕

리베라는 모선에서 추락하듯 뻗어졌기에 그들보다 빨랐으나, 로한과 보리스 역시 미친 듯이 마수들을 도륙하며 단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세실을 비롯한 유엘과 페고르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오만한 표정에 살짝 금이 간 여왕을 지그시 노려보곤 곧바로 대지를 찍어 눌렀다.

내디딘 패도적인 걸음이 공간을 울린다.

묵직하고 정적인 내력이 빠르게 바위 사이로 스며들고, 이윽고 자리를 잡은 그것들은 하나의 물결이자 파도가 되어 솟구치니.

어느새 단테는 적안이었던 눈동자가 잿빛 동공이 된지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동시에-.

쿠우우우웅!

마치 지진이 일어나듯, 여왕과 단테를 감싼 일대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갑천마

기만의 여왕 (1)

쩌저적!

단테의 걸음에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진 대지는 파편을 흩뿌리며 마치 거대한 괴수가 입을 벌리듯 여왕을 덮쳐 갔다.

그러나 여왕은 단지 표정을 조금 굳혔을 뿐.

빠르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패도적인 묵빛의 내력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지막이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흥!”

위태롭고 위협적으로 갈라진 대지가 그녀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했다.

그뿐인가.

솟구친 바위는 마치 하나의 지능을 가진 것처럼 여왕을 향해 비스듬하게 쏘아졌고, 그녀를 추종하는 이들조차 무심결 죽음을 떠올리게 된 그때.

마침내 여왕이 움직였다.

여전히 오만한 시선으로 단테를 비롯한 특임대를 훑다가 이윽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수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유려하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허공에서 부드럽게 회전했다.

스스스…….

그러자 바위의 굴곡을 따라 강처럼 흐르던 핏물들이 그녀의 손가락의 움직임대로 서서히 끌려 올라가며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핏물들은 갈라진 바위의 틈새를 대신하여 여왕을 지탱하는 든든한 발판이 되었으니.

그것은 언뜻 일전에 죽였던 여왕과 닮은 듯했으나 그 안에 담긴 마나, 아니 내력의 성질과 운용을 대략적이나마 살핀 단테의 시선은 달랐다.

‘그저 흉내를 내는 것에 가깝다.’

스스로 지배의 여왕이라 칭했던 첫 번째는 마수의 핏물과 살점은 물론 인간의 것까지 그 본질 자체를 움직였다면, 눈앞의 놈은 그저 마나를 이용하여 끌어 오는 것에 불과했다.

구태여 말하자면 허공섭물과 비슷한 재주다.

물론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점은 동일했지만 말이다.

‘저뿐이지는 않겠지.’

대군주와 네임드.

그사이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여왕이라는 개체를 아직 완전히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밝혀지지 않은 능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단테는 그런 생각으로 여왕이 막아내며 흩어진 대지의 파편들을 훑었고, 곧 내력을 실은 파장을 되돌려 다시금 놈에게 쇄도시켰다.

쐐애애애액!

부서지고 갈라져 크기는 작아졌다고 한들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여왕에겐 한없이 위협적인 공격이리라.

더욱이 속도도 이전보다 빨랐기에, 단테는 곧바로 후속 공격을 이어나가기 위해 기체의 하체에 내력을 실었다.

꿈틀.

인간의 근육과 흡사한 벤데타의 하체가 일순간 떨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감히!”

여왕은 이따위 것들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금 손을 뻗어 휘둘렀다.

다만 이번에는 핏물이 아닌, 백색에 가까운 마나를 터트리며 그것을 막아낼 뿐이었다.

그 때문에 파아앙-! 소리와 함께 흩날린 파편들은 다시금 날카로운 공격으로 되돌아가 벤데타의 검은 장갑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단테가 곧바로 앞으로 쏘아지려던 찰나.

-쿠어어어어어!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최상급 마수의 울부짖음에 단테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었고, 그 직후 사마귀와 바퀴벌레를 섞어 놓은 듯한 마수와 긴 팔을 가진 원숭이를 닮은 놈들의 공격이 단테가 서 있던 대지 위로 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놈들의 공격이 꽂힌 자리에는 자욱한 먼지와 함께 강한 충격파가 일렁거렸다.

단테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협공이라…….’

조금 전까지 협공다운 협공도 하지 못했던 놈들의 수준을 본다면 꽤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서슬 퍼런 안광을 터트린다.

단테가 먼저 놈을 죽이려던 그때.

〔흐으읍!〕

리베라의 일갈과 함께 은색 기체가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단테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 그녀는 일전에 보였던 시그니처에 비견되는 움직임으로 날카로운 기체의 팔과 다리를 뻗어 놈들의 팔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파아앗!

긴 실선을 그린 후 곧바로 피가 터진다.

그녀는 추락하는 사마귀와 원숭이의 앞다리를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단테를 향해 무어라 말하려 했다.

〔리베라!〕

그래, 말하려 했다.

갑자기 통신기를 뚫고 울리는 로한의 외침과 함께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핏물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대지로 추락하는 은색 기체의 머리 위로 폭포수와 같은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녹색과 짙은 적색이 뒤섞인 그것들은 이미 피하기에는 늦은 듯했다.

〔어라?〕

리베라는 자신도 모르게 다소 멍청한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을 두어 번 깜빡였을까.

쏴아아아아아!

그녀의 머리 바로 위로 쏟아져 내린 최상급 마수의 핏물은 리베라의 기체, 모스트리를 염색이라도 시킬 듯이 덮쳤고, 자연히 콕피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야는 검게 물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때를 기회라고 여겼는지, 상황을 지켜보던 추기경이 잘린 팔에서 핏물을 흘리는 사마귀와 바퀴벌레가 섞인 듯 생긴 마수를 향해 외쳤다.

“버르키그! 죽여 버리세요!”

시야가 가려진 지금이 적기다.

제3 추기경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보통의 파일럿이었다면, 최상급 마수와 마주한 때 시야가 가려졌다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으니.

먼저 리베라는 일반적이 파일럿이 아닐뿐더러 무리하면서까지 마수를 뚫고 달려온 로한과 보리스가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는 사실이었다.

〔흐으읍!〕

리베라의 기체를 향해 뻗어지는 날카로운 낫과 같은 앞다리를 향해 거대한 망치가 휘둘러진다.

이윽고 맞닿은 망치와 낫은 순간적으로 서로의 힘을 흡수하듯 터엉- 하는 묵직한 울림을 울렸으나.

콰과과과과광!

이윽고 그 반탄력은 온전히 마수에게 뻗어져 놈의 앞다리에 균열을 일으켰다.

“버, 버르키그!”

그 압도적인 패배에 제3 추기경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사도의 이름을 외쳤으나, 이어진 건 다름이 아닌 리베라의 섬뜩한 도약이었다.

〔생긴 것도 뭣같이 생긴 게 더러운 걸 나한테……!〕

그녀는 죽을 뻔했던 것보다 곤충의 타액이나 다름이 없는 것을 뒤집어썼다는 부분에서 더 화가 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고, 곧 바로 머리 앞까지 도약한 리베라와 눈을 마주친 최상급 마수는 겹눈을 위태롭게 흔들며 다가올 죽음에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테는 시선을 돌려 여왕을 응시했고.

콰드득!

곧바로 그녀를 향해 대지를 박차고 쇄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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