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18화 (118/197)

단테의 적안은 포효를 터트리는 백귀산군을 지그시 응시했다.

공간이 뒤집혔다.

대지 아래에서 솟구친 놈은 그대로 벤데타를 허공으로 떠오르도록 만들었고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으려던 벤데타는 반대로 돌아 놈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하하하하! 보이느냐! 이건 나의 사도, 진화의 증거이자 신성의 상징인 네키스다!”

스스로 제10 추기경이라 밝혔던 놈의 얼빠진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으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놈들은 최상급 마수를 다룰 수 있다.

그 말인즉, 아마 마르크닌 앞에 출몰한 최상급 마수 역시 놈들이 보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일개 인간이 어떻게 마수를 다루는가.

그것도, 최상급의 마수를 말이다.

-크허어어엉!

건방지게도 앞발을 거칠게 뻗어 오는 백귀산군을 바라보며 단테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느낌이 싸하다.

문득 최근 중원에서는 겪어 보지 못했던 마수들의 새로운 개체가 뇌리를 스쳤다.

‘……여왕.’

가당찮은 비약일까.

아니면 합리적인 의심일까.

그것은 일단 눈앞의 미물부터 처리하고 고민할 것이었다.

‘벤데타.’

단테의 부름에 벤데타의 메인 코어, 검은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꿈틀거리는 기체의 근육이 도드라지고, 단테를 주인으로 인정한 기이한 기체는 게걸스럽게 그의 내력을 집어삼키며 화답했다.

콕피트를 가득 채운 묵빛 액체가 찰랑거린다.

단테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백귀산군의 발톱을 두 눈에 담으며 피식 웃었다.

최상급이라…….

생각해보면 초절정에 오른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제 자그마한 벽을 넘으면 화경에 닿을 수 있을 것이고, 이전의 세상보다 더욱 강대하고 정순한 마력을 가진 이곳이라면 어쩌면 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대 천마 중 가장 약하다는 오명을…….

그저 시간이 모자랐음이라 변호하기엔 스스로에게도 입안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 쓰이는 그 오명을 말이다.

-크허어어어어어엉!

〔시끄럽다.〕

단테는 생각을 멈추고 어느새 예열이 끝난 손끝을 부드럽게 말아 쥐었다.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일렁거리던 내력은 긴 선을 그리며 벤데타의 손안을 채웠다.

묵빛의 내력이 단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머잖아 다다른 끝에서 그의 의지를 대변하니.

우우우우우웅!

내력이 일렁거리며 공간을 울린다.

이윽고 벤데타의 거대한 손은 마치 작은 공을 한 손에 쥐기라도 한 듯이 부드럽게 허공을 말아 쥐었고.

〔엎드려!〕

때마침 로한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를 스쳤다.

오래도록 뒤 따라다녔기 때문인지 쓸데없이 감이 좋아졌나.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손끝으로 뻗어진 묵빛 구를 힐끔 바라보곤 곧 완전히 근접한 백귀산군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黙丸鋼).

그것은 거대한 백호의 형태를 한 놈을 향해 정적이지만 빠르게 뻗어졌다.

그 안에 담긴 살의(殺意)를 읽기라도 한 걸까.

놈은 다급히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하려 했으나, 애초에 놈이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무심결 궁금해졌다.

최상급 마수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가.

〔영광으로 알거라.〕

단테는 그런 시답지 않은 감흥 속에서 나지막이 놈에게 읊조렸다.

〔네놈 같은 미물에게는 한없이 과분한 일격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크, 크허어어엉!

오직 고통과 비통함만이 담긴 놈의 비명뿐이었다.

핏물이 튀었다.

거대한 산과도 같던 마수의 육신은 거대한 구에 휩쓸려 들어가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고, 그 핏물을 뒤집어쓴 벤데타는 무심한 발걸음으로 얕은 강을 이룬 대지를 디뎠다.

휘이잉.

정적이 공간을 삼켰다.

가뜩이나 붉은 레기온을 탄 로한은 콕피트에 묻은 살점을 신경질적으로 긁어 냈고, 그보다 뒤에 선 보리스는 경악인지 경외인지 모를 시선으로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레기온의 아래에 엎드려 있던 헤리안과 잭은 멍한 눈으로 단테의 일격으로 인해 벌어진 광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로 인간이 한 일이라고?”

“아, 어어어.”

정확히 말해서 중얼거린 것은 헤리안뿐이었다.

잭은 그저 어버버거릴 뿐이었으니.

그리고 머지않아 침묵을 깬 보리스는 탈력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괴물이 되셨네요. 아니, 원래 괴물이었나?〕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전용기에 오름으로써 단테에게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는 걸 시인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끝까지 숨기는 건데.〕

솔직히 로한과 단테만으로는 힘들겠다 싶어서 세실의 강습병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실상 자신의 도움은 별 필요가 없던 것이다.

때문에, 보리스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다 말씀드릴 테니까, 살려만 주실 수 있습니까?〕

애초에 블랙 가드에 들어가고, ‘그’에게 조력하기로 마음먹었던 건 과거 원수나 다름이 없던 케린 소령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전쟁이 끝나도 가치 있을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이젠 하나의 이정표가 된 신념.

그것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는 말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단테가 마수에 가진 증오심 자체는 진짜인 것은 확실했기에.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그의 말에 단테는 무심한 답을 건넨 뒤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곧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로 점철된 대지 위로 주저앉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이건 정말로 말이 안 되잖아.”

백귀산군이 죽으며 핏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건지, 제10 추기경의 로브는 뒤로 넘어가 있었고 턱을 따라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놈은 핏물과 창자, 살점 등으로 더럽혀진 대지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으나, 정작 단테의 시선은 그를 지나 저 멀리 마을에서 걸어오는 일련의 사람들에게 향했다.

저벅저벅…….

뒤늦게 그 소리를 들은 것일까.

제10 추기경은 삐걱거리는 고개를 뒤로 돌렸고, 곧 나타난 이들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서, 성녀님!”

성녀님.

그 말에 투덜거리며 레기온의 시야를 확보하던 로한은 물론 모두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중심에 선 것은 정말로 성녀와 같은 복장을 한 여자였고, 그녀의 뒤로는 여덟 명의 검은 로브를 쓴 이들이 뒤따랐다.

그들을 훑으며 단테는 생각했다.

‘저들이 추기경인가.’

“히이익!”

그러거나 말거나, 제10 추기경은 어느새 땅바닥을 기듯이 그녀에게 향해 고개를 박았다.

콰앙!

온갖 오물로 점철된 바닥임에도 그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고, 단지 두려움과 경외, 나아가 신앙이 담긴 목소리로 읍소할 뿐이었다.

“서, 성녀님을 뵙습니다! 보, 보셨겠지만 하해와 같은 은총으로 내려 주신 사도가 저 간악한 벌레들의 손에…….”

“그만.”

그러나 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성녀라 불린 여인은 뒤에 선 이들을 가만히 서 있도록 손짓하곤, 고개를 처박은 제10 추기경의 우둘투둘한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무리 세례와 은총으로 허물을 벗어 던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추기경 역시 천하고 우둔하며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했잖아요.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답니다.”

“서, 성녀님……!”

위로나 용서라고 보기엔 한없이 직설적이고 깎아내리는 말이었으나, 그녀의 말에 제10 추기경은 영혼 깊숙하게 용서라도 받은 양 눈물까지 흘린 채 그녀를 올려보았다.

그러자 성녀 역시 선뜻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제가 아끼는 아이를 죽게 만든 죄는 크답니다.”

“……예?”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성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묻는 제10 추기경을 향해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주고는 톡- 하고 그의 정수를 두드렸고.

퍼어어어어엉!

그 즉시, 제10 추기경의 머리는 터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연히 앞에 서 있던 성녀 역시 그런 핏물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볼과 턱에 튄 제10 추기경의 핏물을 혀로 한번 훑고는 단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맛은 없네요. 하등 쓸모가 없어요, 인간이란 족속은.”

마나라고 하기엔 이질적인 힘.

인간과 자신을 분류하는 듯한 지독한 오만.

그리고 마치 꼭두각시처럼 성녀의 뒤에 서 있는 이들과 콕피트를 꿰뚫고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기이한 시선.

단테는 그녀를 바라보며 확신했다.

……비약이 아니었다.

그는 벤데타에게 콕피트를 열라고 속삭였고, 곧 주인의 말을 이해한 벤데타는 묵빛 액체를 거둔 채 콕피트를 열었다.

끼이이익.

콕피트를 열자 짙은 피 냄새로 점철된 바람이 뺨을 스쳤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앞으로 걸어 콕피트의 끝자락에 섰다.

“여왕인가?”

그의 물음은 직설적이었고.

“네.”

대답 역시 간결했다.

“두 번째이자, 우둔하게도 먼저 죽어 버린 유모의 시체를 파먹고 자라 한없이 늦게 깨어난 여왕.”

그녀는 성녀의 의복의 허벅지 부근은 부드럽게 말아 쥔 채, 마치 인간 귀족을 흉내라도 내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기만의 여왕이랍니다.”

“그런가.”

첫 번째는 지배.

두 번째는 기만이라…….

“실로 우습기도 하구나.”

단테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곤 콕피트 안으로 추락하듯 뒤로 몸을 던졌고, 동시에 적색 안광을 터트린 벤데타가 깨어나 입을 벌린 채 포효하니.

-크롸롸롸롸롸!

곧, 스스로 기만의 여왕이라 밝힌 성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날 지키세요, 미천한 인형들아.”

그리고 그 순간.

콰과과과과광!

파아아앙!

달려드는 벤데타의 앞을 대지와 하늘, 산맥에서 내달린 여덟 마리의 최상급 마수들이 가로막았다.

기갑천마

두 번째 여왕 (2)

콰직!

8명의 추기경이 불러낸 최상급 마수의 발에 제10 추기경의 시체는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짓밟혀 바스라졌다.

거창하게 스스로를 소개한 모습과 철저히 대비되는 한없이 허무하고도 초라한 결말이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의 결말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캬아아아아!

단테는 여왕을 향해 쇄도하는 즉시 빠르게 몸을 던져 그 앞을 가로막는 최상급 마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뱀이나 늑대와 같은 모습을.

몇몇은 근위갑귀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또한 아예 무언가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형체가 뒤섞인 놈들도 있었다.

-크허엉!

늑대를 닮은 마수는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벤데타의 앞을 찍어 눌렀다.

-샤아아아아!

족히 어지간한 강의 폭과 맞먹을 법한 크기를 가진 뱀은 입을 벌리며 녹색 빛이 도는 독액을 뱉어 냈고.

우우웅!

아예 근위갑귀와 같이 말을 하지 못하는 마수들은 안광을 터트리며 그를 향해 창을 찔러 왔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한없이 중대한 위기로 보였다.

〔진짜 미치겠네……!〕

오죽하면 로한마저 당황과 다급함이 뒤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총구를 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때.

단테는 위태로운 주변의 시선과 달리 냉철한 시선으로 빠르게 최상급 마수들의 공격을 훑었다.

하나하나 위협적이기 그지없다.

그러나 단테가 느끼기에 놈들의 공격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협공이라기엔 중구난방이다.’

그건 바로 놈들의 공격이 너무나도 난잡한 동시에 제멋대로라는 점이었다.

주변을 인지하는 감각이 느려진다.

이로써 확신한다.

‘마수를 다룰 수는 있어도 그뿐이야.’

놈들은 마수를 조종한다.

그러나 단지 그뿐.

유기적인 합공이나 위협적인 연계를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아니면 그저 멍청하든가.

콰지직!

벤데타의 손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손톱이 단테의 의지를 대변하여 뻗어진 늑대의 손목에 길고 깊숙한 상처를 남겼다.

크, 크아아아아!

툭 튀어나온 늑대의 주둥이에서 고통이 섞인 괴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벤데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리를 노리던 촉수를 딛고 뛰어올랐다.

동시에 이전보다 더욱 높게 부유한 단테를 노리고 뱀이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 넣으려 했으나 단테는 허리 어림의 검을 뽑으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백월신공(白月神功).

이윽고 허리 뒤로 늘어져 있던 검이 허리의 궤적을 따라 길게 횡을 그렸다.

동시에 마치 반월과 같은 묵빛과 은빛이 섞인 빛이 번뜩이고 머잖아 뻗어지니.

묵월참(墨月斬).

거대한 흑색 반월을 따라 뱀의 얼굴에 긴 세로 선이 그어졌다.

짧은 순간 핏물이 방울져 흩어진다.

그리고 벤데타가 부유를 멈추고 다시금 대지로 추락하는 그 순간.

서걱-.

콰드드드드득!

세로로 갈라진 뱀의 거대한 육신이 좌우로 추락하며 그대로 마수들을 덮쳤고, 그 찰나의 순간 단테는 저 멀리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녀, 아니 기만의 여왕을 응시했다.

문득 실소를 터트렸다.

그토록 인간을 벌레라고 칭하는 버러지 주제에 인간을 모방하는 것.

실로 우습지 않은가.

〔가당찮구나.〕

스스로 성녀를 칭하는 괴물에게 긴 대화 따위는 필요가 없을 터.

단테는 벤데타의 메인 코어인 검은 심장이 찢어질 듯 내력을 밀어 넣으며 안광을 터트렸고, 동시에 그는 마치 유성우가 궤적을 그리듯 놈을 향해 쏘아졌다.

파아아아앙!

공기가 갈라진다.

공간이 전율하고, 단테는 단번에 성녀를 베어 버릴 듯 검을 틀어쥐며 패도적인 내력을 사방으로 터트렸다.

일전에는 여왕을 놓쳤고, 그 결과는 프란 공화국의 멸망이었다.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진 않는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프란 공화국은 이미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묵빛 액체 속에서 유영하는 단테의 적색 동공에 기만의 여왕이 담겼다.

동시에, 그는 벤데타의 손아귀에 쥐어진 검을 길게 그으며 말하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나이트메어를 베고.

지박식귀(地縛食鬼)를 찢고.

여왕을 죽였던 그 공격이 다시금 그의 손에서 재현되었으니.

검신에 맺힌 묵빛 검강이 비틀어졌다.

지척에 다다른 단테의 공격은 그 자체로 여왕을 베어 버리기에 충분해 보였고,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로한과 보리스, 헤리안과 잭은 인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너였구나?”

분수에 맞지 않게 존대를 입에 담고 있던 기만의 여왕은 언제 인자한 웃음을 지었냐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깜빡.

그러자 인간의 눈동자를 하고 있던 것과 대비되는 곤충과도 같은 동공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 뻗어지는 단테의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감히, 길고 긴 진화의 여정을 방해하는 버러지가.”

종의 격차를 읊조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실로 오만한 동시에 한없이 진심이었다.

길고 긴 진화의 여정.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죽어라.〕

벨 수 있다면 그뿐인 것이다.

콰과과과과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풍압이 터져 나왔다.

〔크읏!〕

“으으윽!”

일전보다 더욱 강해진 충격에 로한은 잭과 헤리안을 보호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기체 레기온에 붙은 장갑까지 덜덜 떨릴 정도였으니까.

흙먼지와 열기로 인한 수증기.

뻗어진 내력과 증발한 핏물이 뒤섞여 검은 연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가늠할 새도 없이, 산맥에서 불어온 바람에 그들의 시야를 가리던 연기가 흩어졌다.

동시에 모두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

〔허.〕

로한은 예상은 했지만 설마- 따위의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하하.〕

보리스는 다가올 단테와의 시간에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솔라이시여.”

“저, 저 지금 꿈꾸는 거죠?”

헤리안과 잭은 반쯤 현실을 부정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그때.

투욱, 데구르르…….

허공으로 솟구쳤던 여왕의 목이 긴 포물선을 끝으로 바닥을 굴렀고,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기만의 여왕을 성녀라며 따르던 추기경들조차 침묵했다.

휘이잉.

스치는 바람에 정적이 뒤섞인다.

하지만 정작 여왕을 벤 단테는 손에 쥔 검신과 쓰러진 시체를 지긋이 응시하다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쯧.〕

그것은 승리의 포효나, 상황의 종결을 뜻하는 읊조림이 아닌 아쉬움과 짜증이 뒤섞인 탄식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단테에게 무어라 말을 걸려던 그들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고, 거의 동시에 단테는 쓰러진 여왕의 시체를 눈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기만의 여왕이라더니. 이런 뜻이었나.〕

의미를 모를 말이 내뱉어졌다.

하지만 그들도 곧 단테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스르륵.

다름이 아니라, 목과 몸이 뜯어지듯 잘려 나간 여왕의 육신이 한 줌의 혈수로 바뀌어 그대로 녹아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단테가 베었던 그 자리에서 모인 핏물은 마치 진흙으로 몸을 빗어내듯 재생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복을 마친 여왕은 콕피트 안에서 자신을 응시할 단테를 향해 싱긋 웃었다.

“이 정도라니……. 솔직히 조금은 놀랍구나.”

그녀는 조금 전 잘렸던 목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고개를 들어 단테를 바라보았다.

웃기지도 않는 성녀 행세는 그만하려는 것인지 오만해진 말투는 덤이었다.

단테와 여왕의 시선이 맞닿는다.

그리고 단테가 다시금 내력을 끌어 올리려는 그 순간 여왕은 핏물이 묻은 입가를 한번 가볍게 훑고는 말했다.

“흥미로워.”

진심으로 저 눈앞의 벌레가 흥미로웠다.

긴 세월 동안 시체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녀였기에, 인간들에 대해 여느 형제자매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듣고 보았다.

그런데도 저런 유형은 처음이었다.

흥미와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여왕의 뇌리를 채웠고,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 일단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리라.

“네가 알고 싶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하얗고 매끈한 손가락이 부드럽게 맞닿고, 이내 서로 엇갈리며 타악- 하는 묵직한 소리를 울렸다.

그리고 그 직후.

쿠구구구구궁……!

갑작스럽게 대지가 울렸고, 곧 산맥을 뒤덮듯이 내려오는 무언가를 바라본 로한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후 담배를 꼬나문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 ×발.〕

욕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산맥을 뒤덮듯이 내려오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의 습격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마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단테 역시 이 정도 물량은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기에 미간을 좁히고 주변을 살폈다.

개체 자체는 중하급 마수가 대부분이었으나, 그 숫자가 어지간한 작은 전선과 맞먹는다.

당연히 로한과 보리스가 막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단테는 일단 마수들부터 정리할 생각을 했으나.

“어딜 한눈을 파는 것이냐.”

여왕은 단테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곧 당혹감을 수습한 추기경들과 그들이 사도(使徒)라고 부르는 최상급 마수들이 단테의 뒤를 가로막았다.

……진퇴양난인가.

단테는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으나 곧 사방에 흩트려 놓은 기감에 잡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시선을 상공으로 향했다.

저 멀리 구름이 흔들렸다.

그것을 본 그는 곧 전투를 지속한 시간을 가늠했고, 이내 피식 웃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20분이라더니.〕

거센 바람이 불어와 대지에 잔잔히 깔린 핏물을 떨리게 만들었다.

“어? 저, 저거!”

동시에 헤리안과 잭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하늘 위에서 서서히 드리우는 그림자를 응시했으니.

〔응?〕

담배를 꼬나문 채 시그니처를 쓰기 위해 마나 하트를 쥐어짜고 있던 로한과 마찬가지로 밀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려던 보리스 역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어어어엉!

-키에에에에!

산맥의 나무와 바위를 부수고 튕기며 미끄러지듯 밀려오는 마수들의 머리 위로 일련의 포격이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광!

뻗어진 섬광이 마수들의 몸을 짓이기고 터트리며 찢어발겼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 내리는 포격은 마수들에게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핏물이 터지고, 살점이 바스라진다.

엉키고 뒤엉킨 마수들의 육신은 절벽으로 추락했고, 때때로 상처를 입어 미쳐 날뛰는 마수가 서로를 공격했다.

그리고 머잖아 포격이 끝났을 때.

쿠구구구구……!

마침내 구름을 꿰뚫고 지상으로 내려온 거대한 비행함의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 위를 가리고, 곧 일련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케이블을 타고 그대로 산맥으로 강하했다.

쿠우웅!

쿠웅!

〔특임대 소속 기갑강습대대 대대장 세실 중령.〕

대지를 디딘 나이트 프레임의 육중한 울림이 울리고, 이내 마지막으로 착지한 기체, 아틀라스의 콕피트 너머에서 빛이 번뜩이니.

〔지금부터 단테 대령님께 지휘권을 이양합니다.〕

딱딱하지만 동시에 묘한 우려를 담고 있는 세실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울렸다.

〔명령을.〕

기갑천마

두 번째 여왕 (3)

〔명령을.〕

짧지만 신뢰가 담긴 목소리.

그녀의 말에 단테는 만족스러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을 텐데.〕

때마침 그의 시선이 여왕과 맞닿았다.

죽음을 거부하는 듯한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버러지.

결국 놈들이 스스로를 여왕이라 읊조려 보았자 본질은 같다.

〔전부.〕

그들이 서 있는 대지.

본디 이 대지 또한 인간의 것이다.

단테의 시선이 여왕을 지나 산맥을 가득 메운 듯이 미끄러져 달려오는 수많은 마수들에게 닿았다.

건방진 걸음이 가당찮다.

우렁찬 포효가 우습고.

흘리는 타액은 역겹다.

때문에 그는 내면에 자리 잡은 절대적인 혐오를 담아 세실에게……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특임대에게 명령했다.

〔죽여 버려.〕

쿠우우웅!

나이트 프레임들의 엄호 속에서 안착한 특임대 소속 강습 보병들이 총을 쥐었다.

궤도차에 탑승한 포병들은 포대를 돌렸고, 곧 사방을 향해 불을 뿜기 시작하니.

〔제국에 영광을, 인류에게 승리를.〕

모두가 한마음으로 중얼거린 읊조림을 신호로 삼아, 특임대의 총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당!

콰아아아앙!

마석을 탄창으로 삼아 쏘아지는 섬광이 1초에도 수십, 수백 번 마수들의 육신을 강타했다.

피륙에 닿은 섬광이 터진다.

핏물을 터트리고.

살점이 제멋대로 사방으로 휘날렸다.

-끼에에에에!

-캬, 캬아아아아악!

고통과 울분으로 점철된 마수들의 괴성이 귀를 어지럽혔다.

단단한 표피는 포격과 사격으로 걸레짝이 되어 가고, 쓰러진 마수는 뒤이어 달려오는 마수들의 발에 걸리고 짓밟혀 한낱 고깃덩어리로 변모했다.

짐승과 가축.

곤충과 전설 속의 야수.

혹은 온갖 것을 합쳐놓은 듯한 괴이한 육신의 모습들까지.

“갈겨! 있는 대로 갈기란 말이야!”

“끄아아아악!”

특임대와 마수들의 시체가 바위로 된 산의 등지에 쌓여 갔다.

인간의 시체 위로 마수의 육신이 쓰러지고, 흘러나온 창자를 다시 끌어안는 전우의 머리에 총탄을 박아 넣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전장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전우를 돕는 방법은, 단지 빠르게 신의 곁으로 보내 주는 것이 전부였기에.

“쏴!”

콰아아아아앙!

뇌성과 함께 뻗어진 섬광이 보병들을 씹어 삼키는 마수들의 팔다리를 깔끔하게 찢어발겼다.

비록 일부의 피해는 있었으나, 전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 모습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던 잭이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 이게 특임대……?”

단테와 로한, 보리스와 헤리안의 길잡이 노릇을 하며 그들이 ‘특임대’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이미 들었다.

또한 정예라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들의 움직임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약초꾼이 보기에도 간결한 동시에 위력적이었고, 보병들의 전방을 책임지는 나이트 프레임들의 위용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잭은 어느새 자신이 주저앉았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살피려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 곁에 걸리는 인기척에 다시금 고개를 좌측으로 돌린 잭은 곧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저앉아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으니.

“……어.”

그건 다름이 아닌 헤리안이었다.

“크, 크흠!”

잭과 마찬가지로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을 한 채로 앉아 있던 그는 뒤늦게 잭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지만,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아예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럴 수도…….”

때문에, 잭이 무심결 헤리안에게 공감이 담긴 위로를 하려던 찰나.

타다다다닥!

갑작스럽게 바위를 내달리는 군화 소리가 들려와 둘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곧 접근한 이들이 잭의 곁에서 조금 뻘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리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헤리안 소령님 맞으십니까?”

검은 특임대 정복을 입은 그들의 견장에 달린 소속은 제국군이었다.

비록 법국은 제국과 다른 직위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일단 헤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만.”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헤리안 역시 지휘관이긴 했으나 에이스는 아니었기에, 이렇게 전장에서 있으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잠시 지상에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강습한 함선을 이용해서 비행함으로 대피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헤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단테의 뒤를 따른 이유는 정말로 말리하 산맥 내부 마을들이 이교도들에 넘어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이미 목적은 달성한 지 오래였다.

‘더욱이, 이 이상 있으면 짐밖에 되지 않으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곁에서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잭을 가리키며 특임대 군인들에게 말했다.

“이쪽도 함께 부탁하지. 말리하 산맥에 일어난 일을 함께 본 목격자이자 모하트 마을의 마지막 생존자가 될지도 모른다.”

“예, 알겠습니다.”

헤리안의 부탁에 군인들 역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민간인을 전장에 두고 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쪽으로.”

헤리안과 잭은 특임대의 보호를 받으며 작은 수송선에 올랐다.

‘주신이시여.’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부디 승리하게 하소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