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언덕 위에서 단테 일행을 노린 검은 로브를 쓴 그들은 그들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척 보기에도 예사 놈들은 아니라고 생각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력포를 두 동강 낼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아니, 애초에 말이 되는 건지도 헷갈린다.
“마, 마력포는 마나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아무리 못 배운 산골의 무지렁이라도 그건 알고 있다.
즉, 저 검은 기체는 다름이 아니라 마나를 베었다는 말인데…… 그딴 게 가능하다고?
그러나 당황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러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주, 주교님! 저놈이 저희를 본 것 같은…….”
“어?”
콰아아아앙!
휘하에 있는 사제의 말에 주교라 불린 중년인이 협곡으로 다시 시선을 내렸을 때는 이미 마력포를 반으로 벤 검은 기체는 사라진 후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알았다.
기체는 사라진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을 향해 도약했을 뿐인 것이다.
그 때문에 곧 정신을 되찾은 주교는 다급히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성수 뒤로 숨어라!”
성수(聖獸).
성스러운 짐승을 말하는 그 단어를 입에 담으며 주교를 포함한 사제들은 일제히 가까운 마수의 뒤나 다리 근처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콰아아아앙!
운석이 떨어지기라도 하듯 굉음과 함께 검은 기체는 곧바로 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단테는 그들을 훑고는 실소를 터트렸다.
〔가관이군. 정말 가관이야.〕
단테로서도 새로운 놈들이었다.
일단 하나같이 검은 사제복 위에 검은 로브를 쓴 것은 그렇다고 쳐도, 기가 차는 건 놈들이 마수를 성스러운 동물 따위로 불렀다는 것과 그 마수가 정말로 길들여진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마력포 역시 마수의 등 뒤에 이어져 있었다.
그 기이한 모습에 어찌 실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였다.
“놈은 혼자다! 죽여!”
조금 전 주교라 불렸던 중년인은 핏발이 선 눈으로 일갈했다.
그러자 곧 마수의 등 뒤에 적재된 마력포에 탑승해 있는 이들이 분주하게 벤데타를 향해 포대를 겨냥했고, 지상에 서 있던 이들도 제각기 구식 총기를 들어 그를 겨눴다.
언뜻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마수를 섬기는 것도 모자라 길들이기까지 했으니 죽는 건 당연하고…….〕
일단 마수들에게 설치된 마력포는 물론 총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구식이라는 점.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기체와 파일럿이 그들의 예상처럼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쏴라!”
통신기를 통해 흘러간 중얼거림을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여긴 것인지, 주교는 침을 튀기며 외쳤다.
그러자 곧 마력포대와 총구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총탄이 뿜어졌다.
타다다다다다!
콰아아앙!
비록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검은 로브를 쓴 이들은 단테의 기체가 버티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퍼어어엉!
주교는 물론 일반 신도들의 눈에도 검은 기체는 어떠한 반격도 없이 그저 포격과 총격을 몸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퍼부어 댔을까.
“정지!”
주교의 외침에 그들은 모두 공격을 멈췄다.
그가 벤데타와 단테의 생존이나 상태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마력포대와 총구가 붉게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쯤이면 쓰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있었고 말이다.
자욱한 검은 연기가 일렁거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협곡의 안쪽을 타고 치솟은 바람이 그 검은 안개를 단번에 걷어 낸 그 순간 그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멀쩡하잖아……?”
벤데타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그렇다고 선 채로 굳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여유롭게 고개를 돌리며 그들을 훑고 있었다.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주교는 꿀꺽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부, 분명 고통도 같이 받을 텐데.’
그들이라고 나이트 프레임을 모를 리가 없다.
나이트 프레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목숨이자 육신이나 다름이 없기에, 조금 전 충격 역시 파일럿에게 온전히 전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 의연한 모습은 미지에서 오는 공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벤데타의 근처를 아주 얇게 흐르는 묵빛의 호신강기가 그들의 사격을 모두 받아넘겼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네가 제일 상급자군.〕
단테는 정답을 찾았다는 듯 주교를 눈에 담은 후 곧바로 앞으로 걸었다.
쿠웅!
다리를 따라 몸을 흔드는 진동.
그것에 정신을 되찾은 주교는 다급히 성수를 사육하는 사제들에게 외쳤다.
“뭐 해!”
“네, 넵!”
사제들은 다급히 성수라고 부르는 마수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가슴과 이마에 적힌 무언가가 번뜩였고, 여태까지 멍한 눈으로 흐리멍덩한 자세를 견지하던 마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핏발이 선 눈으로 입을 벌렸다.
크아아아!
게걸스럽게 튄 침이 바닥을 적시고, 놈들은 등 뒤에 이어진 마력포를 신경질적으로 몸을 비틀어서 떨어트렸다.
그러곤 눈앞의 사제들이 피하든 말든 그대로 단테와 벤데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바위가 튀었다.
그러나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마수들의 모습에도 단테는 동요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그를 향해 달려드는 마수들의 등급은 기껏해야 중급이었으니까.
캬아아아아!
그때 한 놈이 도약해 벤데타의 목덜미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일단 박히기만 하면 즉사다.
적어도 지상에서 바라보던 사제와 주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었고.
콰직.
짧은 울림이 스쳤다.
눈을 깜빡거린 그 찰나.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벤데타의 목덜미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던 마수의 몸이 추욱 늘어져 있었다.
그것도 벤데타의 손에 쥐어져서 말이다.
그러나 진짜 충격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쿠우웅!
단테는 손에 쥔 마수의 시체를 무심히 옆으로 던져 버리곤, 선두에서 이빨을 들이밀던 놈과 달리 나름의 탐색전을 펼치는 다른 마수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시간을 길게 끌 생각 따위가 없었다는 점이다.
단테는 곧바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내달렸다.
“아, 안 돼.”
주교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어쩌면 본 것일지도 모른다.
다가올 미래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콰드드득!
마력포를 아직 등에 지고 있던 마수는 척추와 함께 포대가 박살 난 채로 협곡 아래로 추락했다.
퍼어엉!
뒤늦게 광기가 생존 본능을 앞선 마수는 도망을 치려는 듯 뒷걸음을 치다가 그대로 머리가 터졌으며.
끼, 끼에에에.
남은 마수들은 압도적인 두려움에 몸을 떨며 다가올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 아아아.”
“꿈인가? 꿈일 거야. 헤, 헤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교와 사제들 역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마수는 절대적인 두려움이자 나아가 숭배의 대상이었다.
교리에도 적혀 있지 않은가.
마수란 진화의 상징이다.
제일 하급이라 이름이 붙여진 하급 마수조차 미개하고 미천하며 우둔한 인간이 감히 이길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아니. 어떻게.”
주교는 흐린 밤 눈앞을 더듬듯 중얼거리며 몸을 떨었다.
이건 두려움임과 동시에 전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가 모든 마수를 죽인 그 순간.
〔역소환.〕
파아앗!
단테의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검은 섬광이 터졌다.
그러고는 곧 허공에서 긴 코트를 펄럭거리며 한 남자가 추락하니.
철퍽.
그가 대지를 디디자 바위틈을 타고 흐른 핏물이 군화를 적셨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앞으로 걸었다.
“주, 주교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시를……!”
수적으로 보면 그가 열세다.
그러나 주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그의 모습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흑발에 적안.
제국의 군복과 어깨에 달린 견장이 나타내는 계급은 대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슴에 달린 수많은 약장들까지.
모든 정보를 취합한 그는 곧 마르크닌 마을에 잠입해 있는 신도의 정보를 떠올렸다.
-이번에 단테 대령이라고, 미친 괴물이 이곳으로 온다고 합니다. 물론 소문이 과장된 면도 많겠지만 그래도 주의를 요하시는 게…….
‘대체 뭐가 과장이 되었다는 거냐.’
그 신도는 우스겟소리라도 하듯이 단테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풀었다.
당시에는 주교인 그도 그저 웃었다.
제국 놈들의 허풍이 심하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젠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축소되었잖아.’
단테 대령은 과대평가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택권을 주겠다.”
단테는 굳어 있는 주교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신도들을 가볍게 훑고는 말했다.
“네가 죽으면 모두 살려 주겠지만, 모두가 죽으면 네가 살 수 있다.”
한없이 붉은 눈이 주교를 훑는다.
“10초를 주지.”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마치 짐승을 보는 듯한 서늘한 그 눈에 주교는 무심결 몸을 떨었다.
“저, 저는……!”
그렇기에 그는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 살고 싶습니다.”
주교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한 신도들이 배신감과 분노에 차서 무어라 입을 열려던 그때.
쿠웅!
“그래. 그래야지.”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단테는 바위로 점철된 협곡의 위에서 발을 구르며 피식 웃었다.
“인간이길 포기한 버러지가 희생 따위를 해서 되겠느냐.”
그리고 주교가 눈을 한번 감았다 뜬 그 순간.
퍼어어어어엉!
자리에 서 있던 스무 명의 육신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핏물이 얼굴에 튀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죽은 이들의 장기가 발치에 걸렸고, 눈알이 바닥을 굴렀다.
딱, 따다다닥.
주교는 이빨을 미친 듯이 부딪혔다.
두려움에 떨리는 몸을 느끼며 지나온 삶을 후회했다.
그때 어느새 주저앉은 주교의 바로 앞에 선 단테는 너무나 무심하게 물었으니.
“본거지가 어디지?”
주교는 단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눈앞의 남자를 먼저 만났다면, 마수 따위를 섬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 그게…….”
기갑천마
버러지에 걸맞은 최후
핏물은 바위로 점철된 대지의 굴곡을 따라 주교의 무릎을 적셨다.
검은 사제복에 핏물이 찼다.
그런데도 주교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몸을 벌벌 떨며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인가.
단테는 조금 전 죽어 간 광신도들의 시체를 한번 가볍게 훑고는 손을 한번 쥐었다 펴며 혀를 찼다.
“쯧.”
그리고 곧바로 주교에게 뻗으려던 그때.
“마, 말하겠습니다!”
다급한 외침에 단테는 손을 거뒀다.
뒤이어 아니나 다를까.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본 주교의 얼굴엔 의리를 지키겠다는 각오나 결의 따위는 없었다.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버러지의 눈빛만 있을 따름이었다.
단테는 손을 거뒀다.
그러고는 물었다.
“읊어, 아는 것 전부.”
“예. 아, 알겠습니다.”
한없이 무심한 물음에도 주교는 흠칫 몸을 떨며 단테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모조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다.
쓸데없는 사족과 미사여구가 많았고, 얼핏 들어도 추측이나 소문 따위로 구성한 정보들이 대다수였기에.
‘그리 높은 직위에 있진 않은 건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나마 쓸 만한 정보들만을 걸러내어 뇌리에 틀어박았다.
그렇게 정리한 내용은 간결했다.
1. 마을의 이름은 ‘이디시’다.
2. 마수를 섬기며, 종교의 이름은 없다.
3. 주교란 일종의 팀장으로 추기경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치거나 공을 세우면 될 수 있다.
4. 마을은 산의 정상 부근에 있으며, 성녀와 열 명의 추기경이 주축이 되어 이끌고 있다.
5. 그들은 모하트 마을로 지원을 가고 있었다.
“저, 저도 더 아는 건 없습니다! 제, 제발 목숨만은……!”
“흐음.”
단테는 벌벌 떨다가 못해 신도들의 창자와 핏물이 굴러다니는 피 웅덩이에 머리까지 처박는 주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거짓은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거짓을 할 때 티가 난다.
아무리 숙달이 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도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다만 조직의 수장으로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 것뿐이다.
거짓을 말하는 이는 호흡이 거칠다.
시선을 피하고, 아무리 잘 꾸며 낸 이야기라고 해도 사이사이의 빈틈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살펴도 그런 기색은 없다.
……물론 주교가 숙달된 거짓을 늘어놓고 있다는 가능성도 있기는 했다.
단지 고려할 가치가 없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기력을 터트린 공격조차 반응하지 못한 수준을 가지고 있는 놈이 그럴 수 있다는 것부터 모순이 아닌가.
그 때문에 단테는 주교의 말을 수긍한 채 시선을 돌려 협곡 아래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가 두고 온 일행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흐아암.”
로한은 단테의 부재에 혹여 다른 습격자가 찾아올까 걱정했는지, 아예 언제든지 응전할 수 있도록 레기온을 소환한 채 콕피트를 열고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보리스와 헤리안은 어느새 말을 텄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잭은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고 말이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여유로운 보리스와 달리 헤리안과 잭은 단테가 신경이 쓰이는지 협곡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다는 점일까.
그들을 응시하던 단테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모르겠단 말이지.”
“……예?”
갑작스러운 중얼거림에 뒤에서 벌벌 떨고 있던 주교가 되물었지만, 단테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 둘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중얼거린 이유는 간단하다.
‘보리스, 그리고 헤리안.’
둘 모두에게 각자의 목적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도 그럴 게 보리스의 경우는 합류한 시기가 절묘했고, 헤리안은 구태여 휘하의 장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단테를 따라오지 않았는가.
다만 걸리는 점은…….
‘정확한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것.’
어렴풋이 짐작만을 할 뿐이다.
그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의 앞머리를 스쳐 눈가를 가렸다.
단테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협곡을 타고 올라온 서늘한 바람 덕분일까.
그는 곧 생각을 정리하며 결정했다.
‘데려가자.’
사실 이미 정답이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변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칫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둘을 방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곁에 두고 대처하는 것이 백번 옳으리라.
결정을 내렸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단테는 협곡의 아래로 향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따라와라.”
“아, 예!”
주교는 앞서 걸어가는 단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자신이 따라오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가고 있었기에, 무심결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하지만 그때.
발치에 걸리는 신도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직감했다.
도망치는 순간 저 꼴이 되리라고.
당연하게도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가, 같이 가시죠!”
주교는 핏물로 점철된 무릎을 어찌할 새도 없이 황급히 단테의 뒤를 쫓았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건 죽음뿐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주교를 보며 단테는 생각했다.
……쓸데없이 감이 좋다고 말이다.
“아, 안 힘드십니까?”
“…….”
“헉, 허억.”
단테는 벤데타를 타고 도약했을 때와 달리 꽤 여유롭게 협곡의 아래로 내려갔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서의 여유였기에 주교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저 걷기만 하는 거 같은데 어째서 달리는 자신보다 빠른 거냔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놓치진 않았다는 점일까.
실상은 단테가 의도적으로 경공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10여 분쯤 걷고 달렸을까.
어느새 그들은 드높은 협곡의 위에서 조금 전 포격이 떨어졌던 협곡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단테는 걸음에 실었던 내력을 거뒀다.
그제야 주교는 단테를 가까스로 따라잡을 수 있었고, 단테는 시선을 올려 레기온의 콕피트에 걸터앉아 줄담배를 태우고 있는 로한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
멍을 때리며 인생에 대해 고찰하던 로한은 머지않아 단테가 왔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체를 역소환했다.
파아앗.
섬광이 번뜩이고, 곧 대지로 추락한 로한은 성큼 다가와 주교와 단테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인질입니까?”
로한은 구태여 그를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묻지 않았다.
대충 감이 간다.
‘잔뜩 쫄아 있는 것도 그렇고…….’
코를 스치는 짙은 피 냄새.
마력 잔향까지 섞인 걸 보면 대충 어떤 상황인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바로 추측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때문에 동정을 할 여지조차 없다.
애초에 그들을 죽일 생각으로 마력포를 쏜 놈들인 것도 괘씸한데, 마수를 숭배하는 미친놈이라는 걸 눈으로 본 상황이 아닌가.
오히려 단테가 살려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였다.
“비슷하다.”
단테가 로한의 말에 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혼자 겁을 집어먹은 주교는 거친 숨을 몰아 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뒤에서 다가온 보리스가 말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제정신은 아닌 것 같던데 말입니다.”
“동감입니다.”
특히 헤리안은 적의가 가득 담긴 눈으로 주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뒤늦게 다가온 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 남자가…….”
“그래. 모하트 마을에 지원을 가고 있었다고 하더군. 이젠 갈 병력 따위 없지만.”
“……아.”
단테는 별다른 포장 없이 담백한 진실을 잭에게 전했다.
그러자 잭은 언제 온화한 청년이었냐는 듯 원망과 분노가 담긴 눈으로 주교를 노려보았다.
그로선 당연한 일이다.
모하트 마을에서 태어났고, 가족도 그곳에 있다.
다만 상황이 급박하고 온순한 성격이었기에 구태여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이지, 눈앞에 원수나 다름이 없는 놈이 서 있는데 멀쩡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개자식!”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외쳤다.
그러자 주교는 잠깐 흠칫했으나, 그것은 고작 약초꾼인 잭의 분노 때문이 아닌 그로 인해 단테가 무언가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단테는 그것을 눈치챘으나 성큼 잭에게 걸어가 어깨를 붙잡고 아주 낮게 속삭였다.
“조금만 참아라.”
“하, 하지만…….”
“어차피, 살려 둘 생각은 없으니까.”
“……예?”
단테의 말에 잭은 순간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이미 할 말을 끝낸 단테는 잭에게서 다시 멀어져 주교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제야 잭은 깨달았다.
단테는 주교를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과 그에게 살인이란 매우 익숙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어쩌면 저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적합한 마음가짐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디시 마을로 안내해라.”
한편, 다시금 주교 앞에 선 단테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이번만큼은 쉽게 따를 수 없는 말인지 주교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단테를 바라보며 애원의 눈길을 보냈으나, 돌아오는 선택지는 여전히 같았다.
“싫으면 빨리 말해라. 죽여 주지.”
“……아, 안내하겠습니다.”
삶과 죽음.
너무나 상반된 두 가지 단어를 저울에 올리면 당연히 전자로 무게가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따, 따라오시죠. 조금 머니까 서둘러야 합니다.”
주교는 이윽고 완전히 마을을 배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곧바로 앞으로 걸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말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로한을 비롯한 모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저 주교가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는 걸.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나도 합당한 처분이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