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115화 (115/197)

말리하산맥의 모습은 아무리 폄하하더라도 절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드높게 자리한 나무들은 마수들이 점령한 이후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내리비추는 따스한 햇볕은 어째서 솔라 법국이 태양을 신으로 추앙하는지를 조금쯤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1시간쯤 걸었을까.

총 세 번 정도 더 마수를 마주했으나, 로한이 너무나 손쉽게 놈들을 갈아 버려 위험이랄 것도 없었다.

오죽하면 처음엔 감탄하며 밝은 척을 하던 잭도 힐끔힐끔 모하트 마을 방향을 응시하며 불안함을 보일 정도였을까.

그러나 그도 알았다.

지금 동아줄이 될 것은 이들뿐이라는 걸.

그렇기에 그는 머리에 박아 둔 숲길을 수없이 곱씹으며 협곡을 찾았고.

“헉, 허억……. 도, 도착했습니다.”

곧 양 뺨을 빠르게 스치는 바람을 마주한 채 거대한 협곡의 입구로 그들을 안내했다.

잭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곧바로 주저앉았고, 협곡의 모습을 본 단테와 일행들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긴 하군요.”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허.”

보리스는 거대한 협곡을 눈에 담았고, 헤리안은 덤덤하게 말했으며, 로한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단테 역시 묵묵히 협곡을 살폈다.

‘과연…….’

대단하긴 하다.

협곡의 풍경이 아니라, 놈이 남긴 흔적들이 말이다.

휘이이잉.

넓고 높은 협곡을 맴도는 바람은 빠르게 휘몰아치며 입구에 선 그들의 뺨을 스쳤다.

단테는 그 바람을 느끼며 협곡 벽과 바닥에 여실히 드러나 있는 상처들을 응시했다.

‘몸체는 나이트메어보다 거대하고.’

협곡 벽 사이가 무너진 흔적이 있다.

충격 때문이라기엔 쓸린 흔적이 있으니, 아마 좁은 협곡에 몸을 욱여넣으며 생긴 것이리라.

‘고통에 몸부림쳤군.’

법국에서 죽였다고 생각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았다.

대지와 협곡의 벽에는 놈이 몸을 비틀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남겼으리라 추측되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언뜻 섬뜩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곧 이상함을 느낀 헤리안이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니.

“……사체가 없군요.”

그의 말대로 협곡에 남은 것은 베히모스가 남긴 흔적들뿐, 정작 제일 중요한 사체는 전무했다.

물론 마수 중에 사체가 녹아내리거나 검게 그을리는 놈들이 있긴 했으나 그조차도 잿더미와 같은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협곡은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바람에 날아갔다고 해도, 최소한의 흔적은 있기 마련일 텐데.

‘아무래도, 추측이 맞는 건가.’

블랙 가드의 예측대로 베히모스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진 베히모스와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수를 숭배하고 길들이는 광신도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단테는 고개를 저으며 고개를 돌려 잭에게 첫 번째 마을로 향할 것을 말하려 했다.

‘……!’

습관처럼 사방으로 흩뜨려 놓은 얇은 기감에 잡히는 인기척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로한.”

“예?”

“습격이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앙!

협곡의 위쪽에서 일련의 포성이 울리며 그들을 향해 섬광처럼 마력포가 뻗어졌으니.

“으, 으아아아악!”

“……이게 무슨!”

그것을 본 잭과 헤리안은 기겁하며 주춤거렸고, 동시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벤데타.”

나지막이 읊조려지는 단테의 중얼거림과 함께 그들은 검은 섬광이 터지는 동시에.

서걱!

마력포탄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갈라진 마력포탄이 뒤늦게 그들을 스쳐 지나가 뒤쪽에서 터졌고, 앞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뒤에서 휘몰아쳤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다만 로한만큼은 협곡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광신도들을 응시하며 담배를 꼬나물었으니.

“자살법도 가지가지지.”

그건 꽤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기갑천마

인간이길 포기한 버러지들

끼기긱.

벤데타의 고개가 돌아가며 협곡 위를 응시했다.

붉은 안광이 터지고, 곧 콕피트 너머로 일련의 사람과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저 놈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단테는 뒤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지조차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자리를 지켜.〕

마찬가지로 대답은 필요가 없었다.

단테는 그 말을 끝으로 대지를 박찼고, 곧 콰과과광― 따위의 충격음과 함께 거대한 검은 기체가 단번에 협곡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따,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로한 원사.”

덕분에 당황한 것은 잭과 헤리안이었다.

둘은 일방적인 통보만을 남기고 허공을 도약해 적에게 향한 단테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으나, 보리스만은 고개를 저었으니.

“다들 뭘 모르십니다.”

스윽.

그는 단테의 도약 때문에 불어닥친 바람으로 살짝 내려간 안경을 올려 쓰고는 말했다.

“단테 대령님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문득 과거 한 북부 전선을 떠올렸다.

이제는 이름 그대로,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악몽이 된 거대한 마수를 상대로 창을 던지는 그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저분은 진짜 괴물이거든요.”

그 순간, 보리스와 로한의 눈이 마주쳤다.

로한은 어딘가 묘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고.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만이 그들을 스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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