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히모스.
요즈음 자주 듣는 이름이었다.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비행함의 객실에서 나와 외곽의 로비로 향했다.
그때 한창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보리스가 다가와 그의 곁에 섰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어떻게 알았지?”
단테의 적안이 보리스의 얼굴에 닿는다.
그러자 보리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저도 상부에서 들었던 내용입니다. 당연히 문서는 폐기하라고 해서 그리했고요.”
“…….”
그의 말에 단테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로비 밖의 테라스로 향했다.
그것이 따라오라는 것임을 단번에 깨달은 보리스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단테는 테라스의 난간 앞에 서서 말했다.
“아는 걸 모두 읊어 봐. 그때처럼 말을 아끼지 말고.”
“알겠습니다.”
단테가 언급한 ‘그때’란 다름 아닌 황태자와의 마찰을 빚었던 때다.
당시 보리스는 베히모스라는 이름을 읊어주곤 머지않아 말씀드리겠다고 자리를 떠났고, 이제 그때 듣지 못했던 답을 들을 시간이었다.
더욱이 이렇게 끌어 놓았는데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난간 밖으로 낙하를 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었는지, 보리스는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제가 아는 건 두 가지입니다. 베히모스와의 연관성, 그리고 그 이변을 일으키는 주체가 네임드가 아니라는 것.”
“말리하가 베히모스가 죽었던 곳이라는 건 이미 도르스 추기경에게 들었을 텐데.”
“그건 그렇죠. 하지만 도르스 추기경이 모르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의 말에 단테는 고개를 돌렸다.
그게 뭐냐는 무언의 압박에 도르스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바로 베히모스가 법국의 공격에 치명상만 입고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거죠.”
“그런가.”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하물며 사람조차 치명상과 사망을 구분하지 못하고 후환을 남기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상대가 족히 작은 산과 맞먹는 크기를 가진 괴물이라면 그 정도 착각은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상한 부분은…….”
이 대목에서 보리스는 침을 한번 삼켰다.
그리곤 혹시 모른다는 듯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단테에게 말했다.
“어느 시점부터 베히모스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게다가 말리하산맥에는 토착민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화를 피했겠지.”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보리스의 말대로였다.
작은 도시에 가려면 며칠씩 산을 타고 나와야 하는 이른바 화전 마을들은 전쟁이 나도 화를 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물론 운이 없으면 산적들이나 짐승, 몬스터나 침략군에게 너무나 맛있는 먹잇감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리하 토착민들의 경우엔 달랐다.
“베히모스가 도망을 쳤던 곳인 만큼, 그곳은 족히 20년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명목상의 영토일 뿐이지, 사실상 눈으로 뒤덮인 황무지나 다름이 없어 수복이 제일 늦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토착민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툭, 툭-.
그의 말에 단테는 난간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출전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명목은 따로 있었다.
“최근에 그쪽에서 최상급 마수가 여러 번 출몰했다고.”
“예. 그것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들이 말리하로 향하는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최상급 마수의 사냥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보리스의 말대로 이상 현상에 대한 관측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단테는 곧 결론을 내렸다.
“직접 보는 수밖에 없겠어.”
상황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
생각해보면 일전에 시리아 황녀 역시 특임대의 임무에 대해 첨언했으니, 예사롭지 않은 일임은 확실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함교에서 전파한다. 본 함은 곧 마르크닌 제13 격납고로…….〕
마르크닌.
그들이 말리하산맥으로 향하기 전 비행함을 주둔시킬 도시였다.
비록 겨울이 지나 눈이 조금 녹긴 했으나 거리에는 두껍게 입고 있는 이들이 오가고 있었고, 그리 인구가 많지도 않은 전형적인 소도시다.
단테는 난간 아래 보이는 소도시와 저 멀리 산봉우리가 눈으로 뒤덮인 말리하산을 묵묵히 바라보며 문득 시선을 내렸다.
기분 탓일까.
……왜인지, 목에 걸린 벤데타가 일순간 반짝인 듯했다.
그리고 그때.
쿠웅!
일순간 흔들린 비행함이 빠르게 격납고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기갑천마
특임대의 첫 임무 (2)
마르크닌이라는 도시는 비록 소도시에 가까웠으나 격납고만큼은 특임대 모선 1척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대륙의 모든 국경지대 마을은 크든 작든 군대의 주둔지를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즉, 그들이 착륙한 격납고를 나서자 반기는 법국의 군인들이 반겼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단테 대령님을 뵙습니다.”
철그럭- 소리와 함께 흰 갑주를 입은 그들을 본 단테는 피식 웃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법국의 군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과거 기사의 그것과 같은 철갑을 입고 있었다.
물론 모든 갑옷에 마도 공학으로 경량화 마법과 각종 편의 마법을 걸어 놓았다는 것은 전해 들었으나 그래도 이해가 되진 않았다.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애초에 마수들은 강철로 된 갑주를 입든 천으로 된 군복을 입든 일개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고 갑옷이 군복보다 가성비가 좋은가?
당연히 개소리다.
즉, 그들이 갑옷을 입는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스스로 성기사라고 부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령님.”
어느새 단테의 바로 앞에 다다른 백금발의 남자는 무뚝뚝한 시선으로 단테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헤리안 솔 아르헤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헤리안 솔 아르헤스.
법국의 성은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직위와 계급에 따라 바뀐다.
당연히 단테가 그것을 외울 리가 없었기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세실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국의 기준으로 소령쯤 됩니다.”
“세실 중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헤리안은 세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모선에서 내린 특임대 인원 구성을 살피며 의문이 섞인 물음을 던졌다.
“미카엘 님은 오지 않으셨나 보군요.”
그의 말대로 모선에서 내린 이들은 특임대 전부가 아니었다.
애초에 타고 온 모선도 1척이었고, 클리에와 미카엘 역시 동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출발하기 직전 연합 왕국과 법국의 국경 지대 전선이 위태롭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함께하지 못했지.”
불가항력이었다.
애초에 제7 추기경이 전해 온 사실을 제쳐 두면 마르크닌의 일은 대외적으로는 고작 최상급 마수의 등장뿐이었으니 특임대의 분할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단테와 로한, 리베라와 보리스, 세실을 필두로 한 강습 부대뿐이었다.
물론 그 점에 대해 헤리안이 할 말은 없었다.
그도 그것을 알았기에 별다른 반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격납고 한편에 있는 건물로 그들을 안내했다.
끼이익.
기름칠이 잘 되어있진 않은 모양인지, 다소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린 문을 통해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그들에게 헤리안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상급 마수는 말리하산맥 초입 부근 초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행히 최상급 중에서도 약한 개체인지라 큰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애초에 최상급 마수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는 듯한 말에 단테는 거리낌 없이 곧바로 물었다.
이미 제7 추기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말이니까.
“지도가 있나?”
“잠시.”
헤리안은 그렇게 답하곤 집무실 한편의 서랍을 열어 접혀있던 지도를 책상에 펼쳤다.
그러자 구겨진 것을 제외하곤 꽤 보존 상태가 나쁘지 않은 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표기된 지형 자체는 간결하다.
말리하산맥의 등고선이 알아보기 쉽게 색깔로 정리되어 있었고, 강이나 협곡 등의 지형 역시 깔끔하게 표시가 되어 있었다.
단테는 빠르게 지도를 훑었다.
‘마을이 세 곳.’
말리하산맥의 초입 부근을 제외하면 나머지 두 개의 마을은 꽤 깊은 산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들을 하나로 잇는 것은 산맥 정상에 있는 거대한 호수를 근원으로 하는 강이었다.
그때 헤리안이 입을 열었다.
“베히모스가 말리하산맥 안으로 들어간 이후 죽었으리라 생각되는 곳은 두 곳입니다.”
그의 말에 단테는 힐끔 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법국은 베히모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히모스는 살아 있을 거라 했지.’
제7 추기경이 단테에게 부탁한 것은 결국 베히모스가 죽으면서 남긴 무언가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고 말이다.
보리스의 정보는 결국 블랙 가드의 것.
단테는 블랙 가드의 정보력을 상기하는 동시에 태연하게 물었다.
“어디지?”
“일단 이곳이 첫 번째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산맥의 중심부 쪽에 있는 협곡이었다.
그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헤리안은 덤덤하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베히모스에게 치명타를 입혔던 엑스버 경이 안개 너머로 추락하는 놈을 보았다고 합니다. 확인 사살까지 하려던 찰나 밀려오는 비행 마수들에 의해 물러나긴 했지만 말입니다.”
헤리안이 말하는 엑스버는 법국 내에서도 성인 중 한 명으로 추대된 인물이었다.
물론 지금은 죽은 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단테는 그 협곡을 눈에 담은 후 되물었다.
“그럼 다른 두 번째는 어디지?”
“이쪽 마을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산맥 정상의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강을 끼고 있는 마을 근처였다.
다만, 그곳은 협곡과 멀었기에 단테가 이유를 물어보려는 찰나, 그가 말을 덧붙여 왔다.
“이곳은 심증입니다.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돌았거든요.”
“이상한 소문이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네임드를 신봉하는 이들이 마을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곳 마르크닌과 교류하는 마을은 산맥의 초입에 있는 곳뿐이라 그곳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말리하산맥에 있는 마을들은 법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원래 산맥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있던 호을 왕국의 주민들이었고 일부는 본래 법국에 살다가 전선이 밀린 이후 고립되거나 스스로 숨어든 이들이었다.
그런 배경을 설명한 헤리안은 산맥 중심에 자리를 잡은 두 개의 마을을 적의를 담아 바라보며 말했다.
“최소 무교나 옅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초입 마을에 비해 산맥 깊숙하게 숨어든 두 개의 마을은 사실상 배교자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잡아서 모두 심판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기에 아예 가능성이 없는 낭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의 설명을 모두 종합하자면 조사할 곳은 총 두 곳…… 협곡과 나머지 한 개의 마을이었다.
‘다른 정보들까지 모두 합쳐 본다면…….’
단테는 침묵 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법국의 추기경은 베히모스의 잔재에 대해 조사할 것을 단테에게 부탁했고, 블랙 가드는 보리스를 통해 베히모스가 죽지 않았음을 전했다.
그리고 헤리안은 베히모스를 추앙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마을에 대해 덧붙인다.
제일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
베히모스는 죽지 않았고, 어떤 이유에서든 마을 사람들이 놈을 섬기게 되어 살아남았다는 건데…….
‘그런 건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무려 50년이나 전쟁을 이어 왔기 때문인지, 중원에 있을 때의 지식은 슬슬 괴리를 일으켰다.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다.
직접 찾아가는 게 빠르다는 것.
그 때문에 단테는 어느새 설명을 마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는 헤리안에게 눈으로 간단한 감사를 표한 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세실 중령.”
“예, 대령님.”
“강습 부대만으로 최상급 마수를 사냥할 수 있겠나?”
“…….”
단테의 말에 세실은 잠시 격차를 가늠하는 듯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그녀 역시 특임대의 중진이었기에 마르크닌에 주둔 중인 법국의 전력은 파악하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 주둔하는 법국의 병력은 대략적으로 2개 대대 규모, 즉 약 1,500명이 전부다.
거기에 특임대 소속 몇백 명이 추가된다고 해도 에이스가 없으면 피해가 클 것은 자명한 일.
“역시 그런가.”
그녀의 답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기에 단테는 다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그는 결론을 내렸다.
“리베라 중령.”
“넹?”
“남아서 최상급 마수를 죽여.”
굳이 리베라를 남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한이나 보리스보다는 차라리 그녀가 더 믿음직스러웠으니까.
그러자 당연하게도 리베라는 단테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은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배시시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싫어요!”
“…….”
단테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잠깐 눈이 삐었던 거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