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와 보리스는 테라스로 향하는 복도의 한편에 있는 밀실로 향했다.
이런 밀실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창 혈기가 왕성한 남녀가 테라스에서 달아올랐을 때를 위한 곳이었다.
물론 그만큼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말이다.
“앉으시지요.”
“당주라고 했었지.”
보리스는 그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지만, 단테는 태연하게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황태자보다 보리스를 더욱 경계하며 되물었고, 그런 단테의 태도에 보리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단장님.”
“단장이라고?”
순간, 뇌리에 무언가 스쳤다.
그렇다는 말은…….
단테가 그를 설마 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보리스는 살짝 내려간 안경을 한번 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군요. 바로 눈치채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언제 블랙 가드에 들어온 거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전 여전히 형벌 부대 지휘관을 전전했으니까요.”
그 일.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조금 복잡한 말이었다.
“기억이 나.”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이제는 죽어 묻힌 케린 소령을 떠올렸다.
추억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쉬이 잊힐 사람 역시 아니었다.
보리스에게는 신념을 담금질시킨 불같은 여자였고, 단테에겐 지나온 길을 상기시키는 그을음 같은 여자였다.
결국 죽은 이의 흔적일 뿐이지만 말이다.
단테에겐 케린 소령을 떠올리는 것보다 눈앞의 보리스가 내뱉는 말이 더 와닿았다.
“형벌 부대를 전전해서 운 좋게 공을 세웠다고 한들, 고작 1년 만에 진급한 계급으론 너무 높은데.”
그의 말대로 1년 만에 중위에서 중령은 갭이 너무 컸다.
물론 그가 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는 말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단테의 말에 보리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죽을 뻔했을 때, 블랙 가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설명한 계기는 실로 간결했다.
형벌 부대를 잘 이끌어 대위가 되었을 당시, 동부 전선에서 블랙 가드를 도와 작전을 한 것을 계기로 입단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런가.”
보리스의 말에서 거짓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어느새 처음 보리스가 권했던 의자에 몸을 묻고는 제일 묻고 싶었던 물음을 던졌다.
“당주를 봤나?”
그렇게 묻는 단테의 시선과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그로선 중요한 문제임을 직감했는지, 보리스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도 직접 뵙진 못했습니다. 다만 발령 후 대령님을 만나러 가던 때에 갑자기 품에서 이런 게…….”
거기까지 말한 보리스는 품으로 직접 손을 밀어넣은 후 검은 편지 하나를 꺼냈다.
검은 편지.
블랙 가드에서 임무를 하달할 때 애용하는 것이기에 단테는 곧바로 그것을 받아 펼쳤고, 그 안에는 다름이 아닌 당주의 직인과 함께 황태자에게 전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진실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녹음기를 제거하라는 부가적인 말 역시 적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단테는 잠시 편지를 내려다보며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들어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툭, 툭…….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이내 의문인 점을 물었다.
“이게 갑자기 네 품 안에 들어 있었다고?”
“예, 저는 테라스로 향하는 걸 보고 뒤따라가던 중이었습니다만.”
황태자가 블랙 가드를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에, 내심 단테가 걱정되어 뒤따른 그였다.
애초에 슬슬 접선도 해서 정식으로 단원으로 배정도 받아야 했으니, 그로선 꽤 당연한 선택지였다.
다만 의문은 여전히 있었으니.
“굳이 개입한 이유가 뭐지?”
“예?”
그의 말에 보리스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윽고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서 왜 개입을 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한단 말인가.
잠깐 자신을 시험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던 보리스는 곧 진정으로 단테가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
“……어. 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설마 진짜로 황태자 전하를 시해하실 생각은 아니셨을 테니까. 잘 말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설마, 정말로 죽이려 했다고?
보리스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단테를 바라보았으나, 그 시선에 단테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솔직히 반반이었다.
죽이기 직전까지 고민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그러나 그건 충동적인 손 속이 아닌, 어느 정도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멍청이도 아니고, 그것으로 올 후폭풍을 몰랐을까.’
다만 가늠했을 뿐이다.
황태자를 죽이고, 그 후폭풍이 블랙 가드에 미친다면 한 발자국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찾아오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보리스가 말리며 흥이 깨졌다.
결국 단테는 말을 돌리는 걸 택했다.
“그러면 알고 있는 건 없나?”
일전에 시리아가 했던 말도 있으니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있습니다.”
보리스는 마치 단테가 그 질문을 해 주기를 바랐다는 듯, 안경을 한번 고쳐 쓰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 베히모스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그리고 그 말에 단테는 순간 눈을 번뜩일 수밖에 없었으니.
베히모스(Behemoth).
공교롭게도 그들의 흔적과 닿아 있는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기갑천마
특임대의 첫 임무 (1)
보리스의 합류는 매끄러웠다.
마치 원래 특임대에 합류되어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하하, 그때 제가…….”
“정말입니까? 단테 대령님이 소위 때부터 함께하다니…….”
단테와 황태자 시르투스는 더는 연회 자리에 나가지 않은 것에 반해, 보리스는 몰라보게 쾌활해진 성격과 단테와의 옛 인연을 이용해서 빠르게 특임대 안으로 녹아든 것이다.
단테와 로한 둘에게는 의외였다.
일단 둘이 기억하는 보리스는 그리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만나서 했던 말이 ‘케린 소령은 살인을 하고 있다’는 등의 지극히 이상적인 말이 아니었던가.
한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죽어 가는 형벌 부대를 바라보며 절망에 잠식되어 신을 의심하면서도 부르짖던 젊은 중위는 어느새 노련한 군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그저 단테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에 주시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