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함에서 내리자 그들은 곧바로 법국의 의전 차량에 올라야 했다.
물론 원칙대로라면 제국의 귀빈인 그들을 위해 격납고 앞의 활주로에서 환영식이라든가 의전을 하는 게 맞았으나, 황태자인 시르투스 폰 레벤스라트가 법국으로 오는 일정이 갑작스럽게 늦춰지며 일정이 꼬이고 말았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세실이 운을 띄우자 리베라가 화답했다.
넓은 의전 차량 뒤에 앉은 단테 역시 이번만큼은 두 여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허례허식이 많아.’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가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느끼기에 쓸데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파티나 연회는 여독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쳐도, 사열이나 의전과 같은 것은 과하면 해가 되는 법이거늘.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중령님도 대규모 의전 받으면 지치죠?”
“당연한 말을.”
그녀들의 말대로 지친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규격 외의 경지까지 회복한 단테가 진짜로 지칠 리는 만무했으나, 그럼에도 심적으로 괜히 거슬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도착했다고 사열식을 진행했는데, 황태자가 도착했다고 또 한다면 지루해서 죽지 않을까?
그나저나…….
‘못 듣는 척이 수준급이군.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그들이 탄 의전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제국이 아닌 법국의 기사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의전 차량은 대도를 지나 이윽고 거대한 성당에 다다랐다.
드높은 첨탑은 하늘에 닿을 듯 뻗어져 있었고, 창가에 자리를 잡은 스테인글라스는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뽐내는 것이다.
크기에서는 더욱 압도적이었다.
일전에 보았던 프란틴의 의회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우와…….”
그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던 리베라가 무심결 탄성을 내지르자 곧 운전대를 잡고 있던 기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솔라노스 대성당입니다. 태초에 솔라 신께서 처음으로 햇빛을 흩뿌렸다고 전해지는 대지에 세워진 거룩한 성지이죠.”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으나, 그 내면에 담긴 것은 숨길 수 없는 신앙심과 더불어 뚜렷한 자신감이었다.
물론 그 시간에도 의전 차량은 대성당의 길고 굽이진 정원을 지나고 있었고, 머지않아 기사는 차를 멈춰 세우곤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부디 솔라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기사는 굳이 내리진 않았으나 진심이 담긴 기도를 건넸다.
그런 모습에 단테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차에서 내렸고, 마찬가지로 리베라와 세실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부우웅……,
때마침 그들의 뒤로 연이어 의전 차량들이 도착했다.
“끄응.”
문이 열리고 로한과 유엘, 페고르가 내렸고, 뒤이어 세르겐과 클리에, 미카엘 등의 장교들이 뒤따랐다.
그렇게 특임대의 핵심 장교들이 모인 그때였다.
끼이익.
대성당의 거대한 정문이 크기에 비해 실로 부드러운 마찰음을 울리며 열렸다.
동시에, 일행의 제일 후미에 있던 미카엘은 급하지 않은, 그러나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들의 사이를 지나 정문의 앞까지 다다랐다.
“미카엘 솔 도미니온스.”
열린 문 너머로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의 부름을 받은 미카엘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왼쪽 심장에 가져다 댄 채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주신 아래 일곱 번째 깃발을 든 기수, 미카엘 솔 도미니온스가 제1 추기경을 뵙습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높낮이가 일정했으나, 그 이면에 담긴 것은 미약한 의문과 동시에 거부감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단테는 시선을 들어 문을 열고 나타난 이를 바라보았다.
흰색의 정갈한 사제복을 입은 그의 뒤로 일련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뒤따랐다.
동시에 그는 다른 이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엄연히 기수라고 불리는 자가, 프란틴의 비극을 막지 못하다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요.”
“……송구할 따름입니다.”
귀빈들을 앞에 두고도 내뱉어지는 추기경의 말에 모두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미카엘 역시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인 듯 드물게 무표정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제1 추기경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도미니온스라는 성이 아깝습니다. 그대는 깃발을 쥐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듯싶군요. 그래서야 어디 제7 추기경을 제대로 보좌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무심결 실소했다.
일전에 보았던, 제1 추기경과 제7 추기경 사이의 권력 싸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평판 깎기인가.’
어차피 내부의 권력 다툼에 외부의 평판은 크게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하는 것을 보면 미카엘은 제7 추기경 측 사람이니, 이 틈에 내부의 평판을 깎으려는 수작인 듯싶었다.
사실 법국에서 내분을 일으키든, 저들끼리 싸움을 하든 단테에겐 큰 상관이 없었다.
다만 지금 거슬리는 부분은 추기경의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추기경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리베라.”
“안 그래도 슬슬 나서려고 했어요. 어이, 아저씨.”
“……뭐?”
순간 제1 추기경은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에겐 안타깝게도…….
“뭐 그렇게 말이 많아? 꼬우면 네가 기체 타고 여왕 죽이든가.”
리베라는 보기 드문 미친년이었다.
기갑천마
극과 극
마주한 이들에게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압감과 동시에 경외감을 선사하는 솔라노스 대성당.
“…….”
“……와.”
그 앞에 선 이들은 어쩌면 폭탄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 리베라의 말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그녀의 깡에 놀란 것이고.
두 번째는 제발 누가 저 입 좀 막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두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그녀의 직속상관이자, 훈장을 받은 이후 일행의 가장 상급자로 떠오른 단테를 향했다.
그러나 그녀를 막아 주리라 생각한 일행들의 바람은 곧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으니.
끄덕.
단테는 리베라의 말에 동조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언의 동의를 얻은 리베라의 입에는 이미 브레이크 따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대? 그나저나, 아저씨.”
리베라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동시에 은빛 눈동자에 경멸과 한심함이 맺히고, 비단 제1 추기경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한 가지 사실을 짚어 주었다.
“당신이 탓하는 미카엘하고 같이 싸운 게 우리라는 건 알고 지껄이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이들과 달리 리베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클리에 역시 불편함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덧붙였다.
“방금 했던 말…… 그 일로 죽어 간 왕국과 제국군, 나아가 법국의 군인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그,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제야 추기경은 깨달았다.
내부 정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앞에 선 타국의 이들에게 실언하고 만 것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리베라가 말을 꺼내기 전에는 단순히 추기경이 정적의 부하를 깎아내리려던 것에 불과했던 일이 자칫하면 타국을 비방한 것도 모자라서 자국의 군인들까지 싸잡아 무능하다 욕한 것이 될 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세르겐 역시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마디를 덧붙이려던 때였다.
“이런.”
대성당의 안쪽에서 낯선 중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후하지만 온화한 그 목소리는 대성당 내부에서 울리며 그들의 귓가를 스쳤고, 곧 일련의 사제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백발의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제1 추기경께서 최근 격무로 피로하셨나 봅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을 테니 너무 노하지 마시기를.”
단테는 그를 빠르게 훑었다.
백발이긴 했으나 중년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듬성듬성한 수염 그리고 짓는 소탈한 웃음은, 흔히 말하는 인자한 얼굴을 그대로 박아 넣은 듯했다.
그뿐인가.
대동한 이들의 구성 역시 제1 추기경에 비해선 아주 소탈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제1 추기경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미카엘이 안심과 반가움이 담긴 눈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주신 아래 7번째 깃발을 든 기수, 미카엘 솔 도미니온스가 제7 추기경을 뵙습니다.”
제1 추기경에게 인사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 변화를 제1 추기경 역시 눈치챘듯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도 눈치라는 건 있었기에 구태여 지적하지 못했다.
“오, 미카엘.”
뒤이어 백발의 남자가 한걸음에 대성당의 계단을 내려와 직접 미카엘의 꿇었던 몸을 일으켜 세워주며 말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주님과 추기경님의 우려 덕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곧 일행들은 백발의 중년인이 제7 추기경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얼핏 상황을 살핀 단테는 쯧- 하고 혀를 가볍게 찼다.
‘수습을 잘했군.’
조금 전까지 제1 추기경의 실언으로 인해 경직되었던 분위기는 제7 추기경이 미카엘을 반김으로써 풀어졌다.
물론 얼떨결에 정적에게 도움을 받은 제1 추기경의 얼굴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편 추기경과의 짧은 회포를 푼 미카엘은 곧바로 일행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분이 단테 대령이십니다.”
“아, 이분이…….”
미카엘은 곧바로 제7 추기경을 단테의 앞으로 데려왔고, 추기경은 곧바로 단테를 향해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숙였다.
“솔라 신의 미천한 수도자가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로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가식이라면 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말이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온전한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테 대령입니다.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그 때문에 단테 역시 그에게 모질게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머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직후, 그는 제1 추기경과 비교해 한없이 소탈한 사제복을 가볍게 여미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부득이하게 상복을 입고 있음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상복요?”
그 말에 되물은 것은 리베라였다.
그녀는 나타나 상황을 수습한 제7 추기경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자 제7 추기경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왜요? 누가 죽었나요?”
추기경이 상복을 입고 있다는 말은 꽤 고위급 사제가 죽었다는 말일 터.
문제는 그들은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비단 리베라뿐만이 아니라 일행들 모두가 의문이 담긴 얼굴로 그의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왜…….”
그때 제7 추기경의 뒤에 서 있던 신부가 말했다.
“추기경께선 지난 10년간 늘 상복을 입으셨습니다.”
그 말은 곧 그가 추기경이 된 직후 1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뜻이다.
일행들이 추기경을 바라보며 저 말이 사실이냐는 듯 묻자, 추기경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어째서?’라는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는 곧바로 이유를 읊조렸다.
“주신이시자 태양신이신 솔라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물을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모든 세상에는 그분의 광명이 깃드니까요.”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없다.
그리고 솔라신을 믿는 신도들은 해가 비추는 모든 곳이 곧 신의 영토이자 신도들에게 허락된 성지라고 말하곤 한다.
“긴 전쟁이 시작된 이래, 그분의 광명이 깃든 대지 위로 무수한 생명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미천한 저로선 그들을 모두 굽어살피지 못하기에 이렇게나마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는 추기경에 오른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특별한 행사나 예식이 없는 한 매일 상복을 입었다.
그 때문에 단테는 물론 다른 이들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복은 그 자체로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용도가 전부였기에, 실생활에 오래 입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상복을 10년간 매일 입고 생활한다는 것부터가 그의 마음가짐이 거짓이 아닌 진심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쯧.”
물론 그들의 뒤에서 제7 추기경을 바라보는 제1 추기경의 시선을 곱지 않았다.
비록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인다.
분명히 위선이라느니, 같잖은 보여 주기 식 쇼나 다름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조금 전 그의 말실수를 제7 추기경이 잘 수습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추후 황태자께서 오시면 다시 뵙도록 하지요.”
이 자리에 계속 있어 봤자 이득을 볼 게 없다는 생각인지, 제1 추기경은 단지 일방적인 통보를 남긴 채 대성당 안으로 사라졌다.
끝까지 무례한 행동으로 점철된 그의 모습에 제7 추기경은 지친다는 듯 눈웃음을 지은 채 그들에게 다시금 묵례했다.
“하하…… 부디 너른 양해를.”
“괜찮습니다.”
“맞습니다.”
척 보기에도 어떤 상황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이해 못 할 그들이 아니었기에, 세르겐과 클리에는 물론 대부분 일행이 제7 추기경의 행동에 호감을 보였다.
다만 단테는 어딘가 묘하게 이상한 느낌에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말이다.
‘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단 들어가시지요.”
그들에게 대성당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는 제7 추기경의 모습에 단테는 이 미심쩍음을 살짝 옆으로 치웠다.
터벅.
단테를 비롯한 이들의 발걸음이 대성당 안으로 향한다.
곧 그들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선 직후, 쿠웅-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닫혔다.
“와.”
“……이야.”
그렇게 내부로 들어선 그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심지어 웬만해선 늘 무표정을 고수하는 세실조차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성당 내부를 훑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제7 추기경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솔라노스 대성당은 200년의 역사를 가진 성지입니다. 제국의 수도와 함께 지난 50년의 침공에도 단 한 번도 마수들에게 내주지 않은 성역이자 법국의 자존심이죠.”
이번만큼은 단테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본 건축물 중에 솔라노스 대성당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것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 자체로 주는 여흥은 대성당에 비할 것이 없던 것이다.
“가시지요.”
대성당을 보고 감탄하는 그들의 모습에 미카엘 역시 드물게 옅은 미소를 얼굴에 띠운 채 그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대성당의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오른 그들이 넓은 복도에 다다른 그때, 일련의 신부들이 복도를 걷다가 제7 추기경을 발견하곤 곧바로 성호를 그리며 고개를 숙였다.
“제7 추기경님을 뵙습니다. 부디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함께하시길.”
비단 신부들뿐만이 아니라, 대성당 내부에서 일하는 수녀는 물론 법국의 시민들까지 그에게 호감과 존경심이 섞인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그것을 일일이 받아주는 것이 귀찮을 법도 하건만, 정작 추기경은 한결같은 인자한 미소로 그것들을 전부 화답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테는 생각했다.
‘둘 중 하나겠군.’
종교에 제대로 미쳤거나.
아니면 그냥 미쳤거나.
일종의 종교 단체인 백월신교를 이끌었던 단테였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무를 숭상하는 것에 더욱 가까웠기에 순수한 종교는 괴리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단테의 오묘한 표정을 본 것인지 성큼 다가온 클리에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7 추기경 도르스 솔 케루빔은 평판이 좋다더니, 거의 살아 있는 성인이잖아?”
성인(聖人)이라…….
그녀의 말에 단테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 그의 뒷모습을 묵묵히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곧 그의 발걸음이 멈추고, 제7 추기경 도르스는 금색으로 솔라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각인된 문을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방에 법왕 성하께서 계십니다. 다만 심신이 편치 않으시기에 모쪼록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법왕(法王).
달리 말하면 교황(敎皇).
도르스의 경고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경비를 서던 성기사들이 문을 열자, 그들의 눈앞에 보인 광경은.
“쿨럭!”
거대한 방 안에서 수척한 얼굴을 한 채 침대 누워 기침하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도르스는 곧바로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법왕 성하, 일전에 말씀드렸던 특임대 건으로 귀빈들께서 오셨습니다.”
“아…… 그랬지. 쿨럭!”
그 말에 법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반길 준비를 했고,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단테는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법왕은 죽어 가고 있었다.
기갑천마
그들의 흔적 (1)
“끄응.”
침대에 누워 있던 법왕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곧 넓은 방 한쪽에서 대기하던 치유 주교들이 다가와 그의 거동을 도왔다.
머지않아 조금은 안정을 되찾은 그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었소. 다만 내 몸이…… 쿨럭! 보다시피 좋지는 않은지라…….”
“괜찮습니다, 법왕 성하.”
세르겐이 화답했다.
“쿨럭! 배려 고맙소.”
짧은 문장을 내뱉는 데에도 적잖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인지, 법왕은 주름진 속으로 입가를 가리며 핏물이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그러자 치유 주교들이 재빨리 법왕의 손과 입에 맺힌 핏물을 닦아 주었다.
“고맙네.”
법왕은 그들의 수발이 당연하다는 생각 따위는 해 본 적도 없다는 듯 일일이 고마움을 표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는 진정이 된 후 그제야 그는 제7 추기경인 도르스에게 눈짓으로 소개를 부탁했다.
당연히 지난 10년간 법왕을 모셨던 그가 그런 신호를 모를 리는 없었기에 곧바로 그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이미 아실 겁니다. 세르겐 소장님이시고…….”
일전과는 달리 세르겐을 먼저 소개한다.
명목상으론 단테가 제일 신분이 높지만, 그래도 세르겐 쪽이 나서는 그림이 더 좋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사전에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사항이었다.
“이쪽은 단테 대령, 이쪽은 클리에 제독…….”
법왕은 물론 모두를 은연중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인자한 웃음을 머금었고, 도르스의 나긋한 목소리도 분위기는 꽤 훈훈하게 했다.
그렇게 모두 인사를 마치자, 이어진 것은 법왕의 덕담이었다.
“쿨럭! 솔라의 광명이 세상에 드리운 이래…… 유례가 없는 위기인 세상일세.”
어차피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았기에 새 시대를 걸어갈 후배들에게 작은 조언을 건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갓 법왕에 올랐을 땐 그저 원망스러웠네. 어찌하여 나의 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매일 새벽, 여명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수없이 울부짖었지.”
공교롭게도 그가 권좌를 받았을 당시가 바로 대군주의 침공이 시작된 직후였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닌가.
법왕은 아직도 그때가 떠오르는지, 무심결 실소를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 왕국이 무너지고, 때로는 적대하던 교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본 이후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어……. 쿨럭!”
답을 갈구하고, 또 갈구했다.
매일 들려오는 비보에 눈물을 흘렸고, 마음도 모르고 한없이 맑은 하늘을 얼마나 노려보았는지 모른다.
거기까지 회상한 법왕의 얼굴엔 미약한 후회와 회한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더군. 허허…….”
지금이야 법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가 마수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법국은 무수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던 내륙국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마수들을 대신하여 시간을 벌어 줄 수많은 국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쿨럭! 이런, 말이 길어졌구먼.”
이어질 말들은 듣기에 썩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이미 젊은이들이 듣기엔 너무 길었으니까.
그는 자신이 느낀 가장 단순한 진리를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지치고, 힘들 게야. 어째서 우리의 세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신을 의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들 마시게. 쿨럭!”
다시금 주름진 손에 핏물이 맺혀 치유 주교들이 그것을 닦아 내려 했다.
하지만 그때 법왕은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잠시 밀어내곤 끝까지 말을 이었다.
“비록 잠시 밤이 찾아왔다고 한들, 태양은 다시 뜨기 마련이니 말일세.”
그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말이다.
“아, 단테 대령.”
대화가 끝난 직후, 거처를 나서려는 일행의 뒤로 법왕이 피로가 담긴 목소리로 단테를 불렀다.
“잠시 둘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노인에게 시간을 조금 내주겠는가.”
모두의 시선이 단테에게 향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다.
비록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한들, 법국의 정점인 그가 특임대를 맡게 될 단테와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으니까.
단테가 선선히 수긍의 뜻을 내비치자 도르스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일행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법왕의 눈짓에 치유 주교들까지 밖으로 사라지자, 단둘이 남게 된 법왕은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말투가 달랐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와 달리 존대를 입에 담은 법왕의 모습에 단테는 의문을 품었고, 법왕은 혹여 그가 오해할까 덧붙였다.
“제국의 특급 황실금성훈장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더욱이 업적으로 따지면 존대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본디 제국 밖에서 특급 황실금성훈장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뿐이지, 일전에 도르스가 그러했듯 대부분 암묵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해 주곤 했다.
훈장 하나만으로도 존대하기에 충분하건만, 이미 단테가 훈장을 받기까지의 행적을 전해 들은 법왕에겐 어색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습니까.”
자기가 그렇다는데 단테가 뭐라 할 이유는 없었다.
쿨럭!
이윽고 법왕은 기침을 내뱉곤 탁상 위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서두를 꺼냈다.
“당주는 만나 보셨습니까?”
“……당주라면.”
당주(當主).
그 단어를 들은 단테의 눈가가 살짝 좁혀졌으나 정작 말을 꺼낸 법왕은 너무나 태연하게 말을 이을 따름이었다.
“허허, 당연히 블랙 가드의 당주를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조금의 경계심이 떠오를 뻔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일국의 왕이 아닌가.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법왕은 크흠- 하고 목을 풀곤 너털웃음을 지은 채 덧붙였다.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으니까요. 애초에 블랙 가드는 딱히 비밀 조직도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쿨럭.”
그의 말대로 블랙 가드 자체를 비밀 조직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그렇다고 한들 아무나 조직 내부 정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단테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나에 대해서.
그리고 블랙 가드에 대해서.
“허허.”
법왕은 그런 물음을 건넬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지은 채 곧바로 화답했다.
“아쉽게도 저도 그리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과거에 조금 인연이 있었을 뿐이지요.”
“설마.”
“예, 당주에게 빚을 진 적이 있었습니다.”
법왕은 마치 단테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는 듯, 어느새 기침조차 내뱉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30년쯤 전이었을 겁니다. 그분을 보았던 것이 말입니다.”
당시의 법국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제국이 한때 수도 인근까지 전선이 밀렸던 시기이기도 했다.
2세대 나이트 프레임이 가장 진보된 기술이었던 때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위기가 아닌 국가가 없었던 시기였으나, 특히 법국은 더욱 심했지요. 지금은 다들 나이트 프레임에 대해 거부감이 없지만, 당시는 마도 공학 자체도 악마의 학문이라 불렸던 시기였습니다.”
그 말에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렌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오죽하면 기계에 세례를 내렸겠습니까.
아무래도 그의 말이 사실이었던 듯싶다.
법왕은 단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법왕의 직권으로 겨우 진행한 것들입니다.”
어딘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덧붙인다.
당시 드물게 법왕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하니, 그들의 반발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때문에 단테도 이번만큼은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 일입니다.”
“이상과 현실이 늘 타협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런, 말이 다른 곳으로 흘렀군요. 쿨럭!”
짧은 시간 갑자기 말을 많이 해서일까.
그는 몇 번의 마른기침을 내뱉고는 물로 목을 축였다.
“당시의 법국은 지금보다 훨씬 구시대적인 무기로 네임드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최악이군요.”
“최악이었죠.”
법왕은 아직도 당시가 생생히 기억이 난다는 듯 주름진 눈살을 찡그렸다.
“법왕이라 불리는 저 또한 신을 의심했던 시기입니다. 어찌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추기경 중에서도 신을 비관하며 자살한 이가 있었다.
하물며 일반 신도들은 어떻겠는가.
“불신이 판을 치고, 다가올 멸망에 저 또한 내심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순간, 꺼져가던 노인의 안광이 빛났다.
“그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법왕은 단테가 아닌 그 너머를 응시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단테 역시 그의 회상 속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블랙 가드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몰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