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장병은 지극히 불리한 전세에서도 용감히 분투하여 전 제국군의 귀감이 되었으므로…….”
시리아의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진급과 훈장 서훈이 이뤄졌다.
제일 먼저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병사에게 1급 제국무훈장이 내려짐과 동시에 전원 1계급이 진급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피해가 컸기에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 그럼…….”
이어지는 순서는 장교와 부사관들이었다.
먼저 유엘과 페고르가 중사로 진급했고, 세실과 리베라는 각각 중령과 소령으로 진급됨과 동시에 2급 황실금성훈장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번 서훈의 첫 번째 주인공은 로한이었다.
“축하드려요, 로한 원사.”
“충성!”
전시 특성상 금방 진급이 되는 장교들과 달리 부사관들은 상사 이후부터 진급이 매우 늦었다.
다만 그만큼 호봉이 올라가면 대우를 받는 건 사실이었지만, 원사는 웬만큼 오랫동안 복무하지 않는 이상 달기 힘든 것이다.
“헤, 헤헤!”
덕분에 그는 세로스에게 받던 괴롭힘도 잊은 채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 이제 마지막이네요.”
로한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시리아가 입을 열자 본성은 빠르게 정적으로 가득 찼으니.
두 번째 주인공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단테 드 헤로이스 소령.”
그녀는 정확히 단테를 바라보며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귀관의 차례랍니다.”
기갑천마
그대의 앞날에
단테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어깨선이 날카롭게 잡힌 제국 특유의 검은 제복은 그의 움직임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 곧 단상으로 향했다.
터벅.
내딛는 걸음은 오만하지 않았다.
하나 위축되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야 할 것을 당연히 받아 간다는 듯 자연스러운 그의 태도에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참 한결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단테가 단상 앞까지 다다르자, 그 위에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시리아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관의 노고에 참으로 큰 경의를 표합니다. 비단 저희 제국뿐만이 아니라, 온 대륙이 빚을 졌어요.”
조금은 과한 예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틀린 말이 없음을 모두가 알았다.
스륵.
시리아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달린 소령 견장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둔 대령 견장을 꺼내 끼움과 동시에 가볍게 그것을 쓸었다.
“헤.”
숨을 내뱉듯 흘린 목소리가 스친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달린 대령 계급장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곧 곁에 선 로열 가드가 건네어 주는 금색 훈장을 받아 들었다.
특급 황실금성훈장.
그것을 든 시리아는 조금 손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로서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지는 것일 테니까.
제국이 건국된 역사가 수백 년이다.
그럼에도 이 훈장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초대 황제인 레벤스라트 1세를 비롯한 다섯 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시대를 관통하는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말이다.
그런 훈장을 손에 쥔 시리아는 단테를 보았다.
“크흠!”
사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금은 아버지, 황제 폐하의 말을 전해야 할 때다.
그녀는 새삼 자신의 역할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전할 말은, 제4 황녀인 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가 아닌 황제 폐하의 말씀이십니다.”
이것은 그녀가 아닌, 황제의 전언이었으니까.
“긴 전쟁이 시작된 이래 우리는 많은 것이 변하고 또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한때 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던 도시 에브게니아는 고귀한 영령이 묻히는 무덤이 되었고, 수많은 나라의 깃발이 꺾였으며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비가 자식을 묻고, 아내가 남편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말을 내뱉는 순간만큼은, 그녀는 그저 황위 계승권에서 먼 제4 황녀가 아니었다.
잿빛의 눈동자에는 권위가 맺히고, 내뱉는 목소리에는 비통함과 동시에 죽어 나간 모든 이들을 향한 애도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싸워야 한다. 더는 잃지 않기 위해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지나간 죽음 앞에 떳떳하지 못함에도 그들이 부정되지 않기 위해서.”
어느새 모든 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시리아의 손에 들려 있는 황제의 전언을 들을 뿐이다.
“귀관의 무훈은 제국군에 희망을 주었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긴 전쟁의 끝을 보여 주었고, 멀어지는 희망의 발치를 끌어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본 제(帝)는 군부의 수장이자, 그대들에게 싸워 달라 부탁할 수밖에 없는 미천한 인간으로서 최대의 예우를 전달하니.”
시리아는 손에 쥐고 있던 훈장을 들어 단테의 제복 좌측 상단으로 서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미처 끝내지 못한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단테 드 헤로이스 대령이 지나온 길에 경의를, 그가 걸어갈 가시밭길에 영광을.”
시리아의 손이 멀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단테의 붉은 눈과 시선을 맞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축하드립니다, 단테 대령.”
문득 시선이 왼쪽 가슴팍에 닿는다.
아마 일전에 받은 훈장들과 앞으로 받게 될 훈장을 합치면 약장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순간 곧바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
그 순간 아마 모두의 생각은 같았을 것이다.
어쩌면 후대에 길이 남게 될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