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 공화국이 사실상 무너지고 역설적으로 제국군이 주둔한 루틀담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덕분에 루틀담의 주둔지도 대대적인 보수가 들어간 지 오래였다.
낡은 성을 허물고, 숲까지 일부 밀어 버리며 드넓은 활주로와 격납고를 지었다.
단순히 주둔하기엔 너무 과한 기지 확장이었으나, 이미 전초기지로 확정이 난 상황이었기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꿀꺽.
하지만 그렇게 활발했던 지난 일주일과 달리, 기지 내부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무려 제4 황녀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가 직접 오는 날이니까.
“준비는 끝났지?”
“당연한 말을…….”
장병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기지 내부를 정돈했고, 장교들은 세르겐의 지휘에 발맞춰 사열을 끝낸 후였다.
길게 깔린 레드카펫.
FM을 정확히 따른 군복을 입은 파일럿들과 그 뒤에 정갈하게 서 있는 나이트 프레임들.
마지막으로 격납고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번 방문의 대상자들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오셨군.”
이윽고 세르겐은 살짝 시선을 올려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흰 구름 아래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하는 제국의 황실 비행함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꽤 돈을 쓰긴 했네?”
유엘은 탄성을 내질렀고, 클리에는 의외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과 달리 비행함은 빠른 속도로 격납고 안에 다다랐지만 말이다.
쿠웅!
짧고 명확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격납고 안에 미리 대기 중이던 제국 헌병들이 빠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의전을 시작했다.
그그긍!
곧 부드럽게 열리는 비행함의 격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격문이 대지에 닿고 붉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빠르게 레드 카펫에 다다라 경호를 시작하니, 세르겐은 그 모습에 손녀를 바라보듯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황녀 전하께, 경례.”
짧고 덤덤한 울림이었으나,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그녀를 기다리던 군인들은 일제히 외치니.
“충성! 제국에 영광을! 황실에 충성을!”
그들의 경례를 받은 시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화답했다.
“그대들의 노고에 경의를.”
시리아는 성큼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다름이 아닌 세로스가 뒤따랐다.
시리아는 세르겐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오랜만이네요, 소장님.”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소장인 동시에 후작인 그였기에 시리아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장남인 세로스부터 그녀의 로열 가드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렇게 짧게 안부를 건넨 둘이었으나, 곧 시리아의 시선은 다름이 아닌 단테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제복 가슴에 달려있는 2급 제국무훈장, 1급 제국무훈장, 1급 황실금성훈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일전에 황실에서였다.
황태자인 오라버니를 조심하라고 일러 줬던 것이 어제 같은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말에 단테도 그렇게 화답했다.
적색과 잿빛의 눈동자가 서로를 가볍게 훑었고, 곧 시리아는 단테의 시선을 피하곤 세르겐에게 말했다.
“자, 얼른 가시죠, 소장님.”
“그러시지요.”
그녀가 온 이유인 진급과 훈장 수여식은 허물지 않은 기지 내의 본성에서 진행되기에 조금은 걸어야 했다.
그동안 시리아는 세르겐과 함께 사열한 군인들 사이를 지나가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단테의 뒤를 따라 걷던 로한의 어깨에 누군가 스윽- 팔을 걸었으니.
“잘 지냈냐?”
“……예.”
로한은 체념한 채, 세로스의 말에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