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꽤 왁자지껄했던 단테의 병상은 그의 축객령에 곧바로 조용해졌다. 덕분에 그는 홀로 남아 침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임대라…….”
특임대의 임무는 평시에는 네임드의 말살이었고, 유사시에는 여왕의 척살이었다.
그 때문에 사실상 주둔이 무의미해진 프란 공화국-루틀담을 특임대 본부로 삼아 편제한다고 말했다.
사락.
단테는 손끝에 걸린 서류를 집어 들었다.
리베라가 마지막으로 나가며 남들 몰래 건네주고 간 서류였다.
기본적으로 앞에서 말하기엔 다소 어려웠던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가령 블랙 가드의 내부 방침이라든가 특임대 임무를 지속하라든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별 영양가 없는 대목을 주욱 읽어 나가던 단테는 문득 눈에 걸리는 문장을 보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인원 확충이라…….”
그가 단장으로 있는 제10단에 부관을 겸하는 직원을 1명 배정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단테에게 로한이 있었기에 큰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종이를 넘겼다.
‘어차피 보면 알게 되겠지.’
여하튼 특임대에 배속될 테니까 추후 접선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것을 끝으로 다시금 영양가 없는 말들이 이어졌다.
때문에 단테는 곧 서류를 닫고 내력을 끌어 올려 태웠다.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붕 뜬 서류는 몇 번의 꿈틀거림을 끝으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고는 그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문 옆의 탁자 서랍을 열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검은 편지지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투둑.
인장을 뜯고, 안에 담긴 편지를 펼치자 제일 상단에 적힌 문구가 꽤 가관이었다.
「드사 노스라의 은인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놈의 은인 소리는 질리지도 않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단테는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나갔다.
그것은 그가 일전에 맡겼던 법국에 대한 조사 내용이었다.
1. 현재 법국 내부에선 추기경들끼리 파벌 싸움이 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제1 추기경의 세력과 제7 추기경이 제일 유력함.
2. 다만 언론 통제와 이단 심판관들의 민간 사찰이 심해져서 일정 이상 접근하려면 시일이 지체될 우려가 심함.
3. 현재 정보를 수집 중. 이 이상 유의미한 정보는 전무.
“결국, 모르겠다는 거군.”
이번에도 편지를 불태운 단테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꽤 말을 많이 늘어놓았으나 결국 추기경들끼리 다투고 있다는 것 말고는 의미가 있는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딱히 실망은 없다.
큰 기대도 없었을뿐더러, 지금 당장 그에게 크게 필요한 정보도 아니었으니까.
“흠.”
단테는 이내 침대에 다시 누우려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창밖의 밤 풍경을 바라보며 창가로 향했다.
애초에 그가 깨어났을 때가 막 해가 지기 시작했던 때였기에 완전히 일어났음에도 밤은 어두웠다.
더욱이 달빛도 없는 밤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강했다.
잠시 창가에 서서 밖을 응시하던 단테는 곧 굳어 버린 몸이 불편해 가볍게 풀어 주었다.
그러나 본디 입가에 먹을 것을 가져다 대면 배가 고픈 것처럼, 굳어 있던 몸을 풀어 주자 문득 수련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운기조식은 아침쯤 해야겠지.’
사실 스친 정도가 아니라 이미 마음을 먹은 후였다.
때문에, 단테가 막 엎드려 팔굽혀 펴기부터 하려던 그때였다.
똑똑.
일정한 리듬으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시선을 돌려 문을 바라보자 곧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세실 중령입니다. 잠시 상의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그녀의 말에 단테는 곧바로 엎드리려던 허리를 바로 펴고,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그러자 곧 갈색 단발과 눈동자를 가진 채 군모를 눌러 쓴 세실이 단테를 살짝 위로 보며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기갑천마
죄책감과 서훈
“충성. 제국에 영광을.”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경례다.
하필 그 대상이 훈련소의 교관이자 지난날의 상관이었던 세실이라는 점이 묘했지만 말이다.
그는 세실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심지가 궂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거의 훈련병이…… 그것도 평민이 상관이 되면 없던 시기와 질투도 생길 법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얼굴엔 일말의 사심조차 없었다.
그것이 단테의 흥미를 끌었다.
‘묘해.’
문득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마나 하트를 품을 수 있는 고아들이 있는 시설.
그곳에서 아이들을 차출해 가던 그녀는 분명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
그녀는 그 아이들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체념이었으며, 동시에 순응이었다.
‘당시, 뭐라고 생각했더라.’
머잖아 부러질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딱히 변하지는 않은 생각이었다.
다만 의외이긴 했다.
그때 세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아.”
그제야 단테는 세실을 몇 분이나 문 앞에 내버려 뒀다는 걸 깨닫고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세실은 경례를 내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고, 단테는 문을 잡아 닫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물 흐르듯 내뱉는 반말에 화답하는 존대.
그의 방에 들른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였기에 옷을 갈아입을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세실은 여전히 정갈한 군복 차림이었다.
그래도 방 안에 들어서며 군모를 벗긴 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까.
“일단 앉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단테의 말에 세실은 그가 묻기도 전에 본론을 꺼냈다.
“아까 전, 언론에 대한 문제 말입니다.”
“언론이라면…….”
기억을 되짚는다.
그리고 머지않아 단테는 클리에가 했던 말 일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륙에서 웬만큼 이름이 있는 언론들이 기사를 찍어 내면서 상황이 반전됐어. 정확히는 귀족들이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거지.
암묵적으로 흘러가던 제국 수뇌부의 반(反)단테 여론을 뒤덮은 결정적인 한 방.
그 대목에서 그는 세실이 무슨 얘기를 꺼낼지 대략적으로나마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도 내심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단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실은 말을 이어 나갔다.
“예, 현재 특임대 내부적으론 언론을 움직인 게 연합 왕국이나 법국, 혹은 단테 대령님께 호의를 가진 황실이라고 추측 중이지만 저는 다른 곳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이라…….
이 경우 하나밖에 없지 않겠는가.
“블랙 가드.”
“바로 그렇습니다.”
순간 단테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닿았다.
“하고자 하는 말이 뭐지?”
20대 중반임에도 중령의 계급을 가진 그녀의 갈색 단발은 환기를 위해 열린 창가의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신념이 돋보인 갈색 눈동자에 단테가 담겼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살짝 들썩였다.
“블랙 가드에서 나오십시오.”
단테가 그녀를 눈에 담았듯, 세실의 눈동자에도 단테가 맺혔다.
하지만 내뱉어진 말은 뜻밖이다.
자신을 탓하거나, 하다못해 블랙 가드를 욕하리라고 생각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세실은 여전히 변치 않은 시선으로 단테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블랙 가드가 어떤 조직인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대령님께서 무언가 생각이 있기에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때때로 망각하곤 한다.
그가 이룬 무훈과 그저 무뚝뚝한 성격과 수없이 많은 전장을 오가기에 태생이 군인이라고 말하며 그를 추종하고, 때론 질투한다.
“결국 블랙 가드는 대령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입단하는 절차부터 강압적인 방식이었잖습니까.”
구태여 입에 담진 않았지만, 그의 외모와 달리 그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비록 개정된 군법으로 징병 대상자의 나이가 어려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도 어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하신다면, 세로스 단장께 부탁해 로열 가드에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이전과 달리 지금의 명성과 특급 황실금성훈장까지 받은 후라면 블랙 가드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세실은 지금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단테는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을 이어 가다가 이윽고 물었다.
“이유가 뭐지?”
“예?”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
진심으로 궁금했다.
구태여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뭘까.
자신의 말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여자도 아닐진대.
“슬슬 눈치를 챘을 텐데. 블랙 가드가 로열 가드나 엠페러 가드 따위와 궤를 달리하는 조직이라는 걸.”
굳이 멀리 갈 것까지 없이 단테를 필두로 하는 로한, 리베라가 보여 준 이력을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이유, 말씀입니까?”
세실은 그의 물음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처음으로 그녀의 미간이 미약하게 좁혀지고, 곧 답이 내뱉어졌다.
“……제 탓도 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답에서 단테는 일전부터, 그녀가 보였던 태도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부채감, 혹은 죄책감.’
그것이 자신보다 어린 단테가 전장에서 수없이 날뛰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성격에서 오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단테는 실소했다.
새삼 걱정을 받는 것도 새로웠지만, 그녀가 은연중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진 않았는데 말이다.
‘여기서야 이제 열일곱 살이라지만.’
애초에 단테의 외형도 성인이나 다름이 없었고, 전생의 나이까지 합하면 이 세계에서도 원로에 가깝다.
이제 막 스무 살 중반에 닿은 그녀에게 걱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알 도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고맙다, 세실.”
순간 단테의 말을 들은 세실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지려는 찰나.
“이제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아.”
이어진 그의 말에 그대로 굳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라고 해야 할지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예.”
그가 설득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후일을 기약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세실은 군모를 눌러쓴 채 다시금 경례를 올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스윽.
문고리를 잡은 찰나.
세실이 조금의 머뭇거림 끝에 말했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길.”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단테는 그녀가 떠난 자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바닥에 손을 디뎠다.
스읍.
그리고 날이 밝기 전까지.
단테의 병실에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