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방에 밀려들어온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쓸데없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왔다.
“괘, 괜찮으세요?”
“……크흠!”
일단 먼저 유엘과 페고르.
둘은 뭐가 그렇게도 어색한지, 입으로는 안부를 물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일어나셨군요.”
당연하게도 그들을 인솔한 인물은 세실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입에 붙은 존대로 단테를 대했다.
단테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외에도 로한, 리베라는 물론이고 클리에와 미카엘까지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제일 의외인 건 다름이 아닌 아스렌이었다.
“쾌유를 축하드립니다, 은인이시여.”
엘프 특유의 미형적인 외모를 가진 그는 으레 그랬듯 중절모를 벗어 가슴팍에 가져대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단테는 그들에게 모두 고개를 끄덕여 준 후, 로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태는?”
“예?”
그러자 로한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으나, 머잖아 단테가 묻는 상태가 뭔지 알아차린 듯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 뭐, 괜찮습니다.”
단테는 그의 몸 상태를 물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마지막의 순간에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사람이 로한이었으니까.
로한의 답에 단테는 그럼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베라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저도 괜찮은데.”
“그래 보인다.”
진심으로 그래 보였다.
이리 실없는 말을 덧붙일 정도로 말이다.
그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실이 입을 열었다.
“진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맞네.”
“……대령이라니.”
이미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었는지, 딱히 놀라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클리에와 미카엘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늦게 단테도 세실의 어깨에 달린 견장이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중령이 되었군.”
“예, 이번에 에이스로 심사에 올랐습니다.”
에이스라…….
하긴 세실 정도의 실력자가 여태까지 중령에 오르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의문이긴 했다.
단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축하를 건넸다.
“잘됐어.”
“감사합니다.”
물 흐르듯 내뱉어지는 하대와 존대.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한은 어딘가 묘한 느낌에 가뜩이나 좁은 눈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게, 분명 둘의 관계는 정반대였는데 말이지.
‘나만 느끼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리베라도 그렇고, 유엘과 페고르는 아예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단테와 세실은 당연하다는 듯이 저러고 있으니 어색함이 더해진다.
‘뭐, 이젠 모르겠다.’
언제는 이해가 되는 둘이었는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전 세르겐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환자 앞에선 태우지 않는 게 좋겠지만 뭐 어떤가.
애초에 이미 세르겐이 한바탕 태우고 간 후였다.
그러나 그때.
“이번에 특임대에 관한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어째서인지 세실의 입에서 특임대에 대한 말이 나오자 로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그는 입에 문 담배를 떨굴 수밖에 없었으니.
“제가 부사령관으로 차출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은 앞으로 열릴 개고생길을 암시하는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기갑천마
새로운 국면
“부사령관이라…….”
그녀의 말에 단테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무리한 인선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실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어진 인상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능력 자체는 진짜였다.
애초에 몇 번이나 이어진 강습 작전에서 단테의 무리한 돌입을 뒷받침한 인물이 바로 그녀 아니었던가.
‘3국이 함께 특임대를 이끈다고 했던가.’
세르겐은 모든 걸 일일이 설명하고 나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가 아는 사실은 대략적인 대륙의 정세와 특임대의 유지, 진급 정도가 전부인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는 건…….’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문득 제국군 주둔지에 굳이 남아 있는 클리에와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그저 평범한 병문안은 아닐 것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클리에는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도 특임대에 남았어. 덕분에 내부적으로는 여러모로 개판이긴 한데.”
“개판이라면?”
생각해 보면 세르겐도 저런 분위기를 풍겼던가?
단테의 물음에 클리에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있잖아…….”
우선 특임대의 유지 자체는 흔히 3강이라 불리는 3국 모두가 동의하는 사안이었다.
다만 누가 지휘권을 잡을지를 두고 꽤 많은 말들이 오갔다.
일전의 임시 특임대에선 세르겐, 클리에, 미카엘이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식으로 해결했으나 아예 고정적인 기구로 두려면 그 지휘권이 온전히 확립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면 단테 네가 깨어날 때까지 지지부진하게 끌렸어야 했는데…….”
그러나 법국과 연합 왕국은 전혀 뜻밖의 말을 전했다.
바로 병상에 누워 있는 단테를 지휘관으로 한다면 제국에게 총사령관의 직책을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특임대의 구성 여부를 두고 수많은 논의를 하던 제국의 귀족과 장성들은 당황하며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목에선 단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찬성할 리가.’
물론 전공적인 부분에서 단테는 압도적이다.
문제는 정치나 부가적인 부분에서 상부가 꺼릴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일단 계급부터 소령이다.
절대 낮은 계급은 아니었으나 필연적으로 큰 무력을 가지게 될 특임대의 총사령관으로 적합한 직위는 아니었다.
그뿐인가.
나이도 어리다.
심지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제국의 귀족으로 만들긴 했으나, 필연적으로 데지안 왕국의 평민 고아라는 점도 있다.
이미 너무 많은 결격 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갑자기 격에 맞게 장성급으로 진급을 시키자니 군부 내의 반발이 우려되었다.
물론 그의 실력을 인정하는 이들이 압도적이긴 했으나 이런 상황에서도 사사로운 질투나 개인의 출세를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피식 웃었다.
‘절박하지가 않군.’
이래서 적응이라는 것이 무섭다.
바로 일주일 전에 프란 공화국이 사실상 무너트린 괴물들을 봐 놓고도 절차나 관례 등을 따질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도 신교를 경영해 본 입장에서 조직은 결국 규율과 법칙으로 이끌어지는 것이니.
그것이 국가의 군부라면 당연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블랙 가드의 성장을 막으려는 견제 목적도 있었겠지.’
이미 단테가 블랙 가드 소속이라는 것을 모르는 고위 장성은 드물다고 들었다.
아마 그들은 제각기 손을 썼으리라.
“그때 갑자기 대륙에서 웬만큼 이름이 있는 언론들이 기사를 찍어 내면서 상황이 반전됐어. 정확히는 귀족들이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거지.”
기본적으로 프란 공화국에서 벌어진 일들은 언론 통제 중이었기에, 군부의 관계자들이 아니라면 프란 공화국이 무너졌다는 정도의 사실만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언론이 터트린 기사에는 단테의 이름과 더불어 여왕에 대한 지극히 간략한, 그러나 위험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보들이 퍼진 것이다.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대충 흘러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법국과 연합 왕국의 요구.
민심의 동요와 마침 각인된 단테라는 이름.
몇몇 언론은 그의 미천한 출신이나 불확실한 과거를 물고 늘어졌으나, 이미 그의 이름을 어느 정도 들어온 민중에겐 하등 상관없었다.
어쩌란 말인가.
당장 눈앞에서 전우가 마수들의 한 끼 도시락이 되고, 과부가 되어 남편의 무덤 앞에 갓난아기를 데려가야 하는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영웅이었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군.”
모르긴 몰라도 제국의 귀족들이 반대한다고 멈출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뭐, 그렇게 된 거지. 총사령관님.”
클리에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미카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우리도 어째서 본국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는 모른다는 말도 첨언한다.
결국 지난 일주일간 그런 일들이 벌어진 후에야 특임대는 총사령관 단테의 아래로 각각 클리에와 미카엘, 세실이 들어가는 모양새로 합의가 끝났다.
아마 대령이란 계급도 군부에서 최대한 반발을 억누르고 수여한 것이리라.
‘개판이 따로 없어.’
그제야 단테도 누워있던 사이 일 처리가 아주 개판으로 돌아갔음을 깨닫고 실소했다.
스스로 천마이기 이전에 일단은 그도 군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특임대 건이 얼마나 꼬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은인의 이름값이 워낙 대단해야죠. 마피아도 면회할 수 있게 만들 정도인걸요.”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었는지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만 보고 있던 아스렌이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사실 단테가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이름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구태여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대륙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긴 할까?
‘오죽하면 요즈음 정보 조직들이 눈에 불을 켜며 과거를 캐려고 들까.’
비단 드사 노스라뿐만이 아닌, 대륙의 정보 조직들은 단테의 ‘진짜’ 과거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무려 네임드를 두 마리, 어쩌면 세 마리나 죽였고, 며칠 전에는 여왕까지 토벌한 이가 정말 평범한 평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으니까.
그때 보직 변경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세실이 단테에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차를 아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군부란 지극히 보수적인 곳이다.
그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단테를 기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구색은 맞춰야 했다.
그렇기에 대령이란 계급과 함께 또 하나의 선물을 보냈으니.
“내일 제4 황녀님이 오실 겁니다.”
“예?”
그리고 탁자를 구르다가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우려던 로한은 새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나 세실은 구태여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를 대리하여 제4 황녀이신 시리아 폰 레벤스라트 님께서 특급 황실금성훈장을 내리실 예정입니다.”
“……헐?”
이번에 놀란 건 리베라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엘과 페고르 역시 포함이었다.
유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트, 특급 황실금성훈장이라면……!”
“그래.”
이젠 중령의 견장을 단 세실이 유엘을 살짝 돌아보며 조곤조곤한 말투로 답했다.
“제국이 건국된 이래, 단 다섯 번만 수여된 최상위의 훈장이자 받는 순간 계급과 신분을 모두 무시하고 그 순간부터 황족과 준하는 예우를 약속받는다.”
물론 황위 계승권이나 하다못해 황실의 가족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황족으로서 예우되는 건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알고 있던 리베라는 입을 쩍 벌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고 하기엔 말이 되긴 하는데. 어?”
뇌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무훈으로 따지면 더한 걸 받아도 이상하지 않긴 하다.
그러나 막상 받는다고 생각하니 이상하다.
결국 리베라는 뇌를 정지하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대령님!”
그녀는 세실의 곁을 지나, 침대에 앉아 있는 단테의 손을 꼭 붙잡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평생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단테는 생각했다.
참으로 잘 짖는구나-라고 말이다.
“제4 황녀님……. 허허.”
한편 로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제4 황녀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
다만 그녀와 함께 올 로열 가드가 문제다.
‘세로스.’
물론 저번 일로 죽이진 않으리란 걸 알지만 그래도 세로스가 가만히 놔둘 리는 없었다.
아마 여유가 있을 때마다 구박을 당하리라.
그렇다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로한은 바닥을 구른 담배를 처량하게 툭툭- 턴 후에 불을 붙였다.
스읍, 후.
유달리 담배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