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97화 (97/197)

‘죽지는 않았겠군.’

단테는 기감에 걸린 로한의 상태를 가늠하곤 곧바로 안도했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있진 않아 보였기에.

-네놈도 죽여 주마!

이윽고 지배의 여왕의 허여멀건 눈이 단테를 향했다.

놈은 그를 단번에 찢어 죽이겠다는 듯 손을 들어 단테를 겨냥했고, 동시에 다시금 그 공격이 허공에 붕 뜬 단테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그것들을 볼 수 있게 된 단테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손질에 불과했다.

여왕도 머지않아 그것을 깨달았는지 대지를 꿰뚫고 뻗어진 살점들이 그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아!〕

그 모습에 지상에서 단테를 바라보던 유엘이 탄식했다.

하지만 그때.

쉬이이익!

바람을 잘라내듯 가르고 쇄도한 일련의 삼지창들이 단테를 노리며 쏘아진 살점들을 요격했다.

시선을 돌리자 곧 허공에서 법국의 기체들을 이끌고 나타난 미카엘이 외친다.

〔저건, 저희가 맡겠습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지금 단테를 보내야 여왕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미카엘은 법국의 제식 나이트 프레임인 유게네스(Eugenes)들에게 명령한다.

〔목숨을 바쳐 길을 열어라!〕

〔우리의 주신이시여, 빛으로 저희를 보호하소서!〕

법국의 7번째 깃발을 받드는 기수이자, 태양신 솔라의 주품천사의 직위를 뜻하는 도미니온스의 성을 가진 이의 명령은 절대적.

법국의 전투 기사들은 일제히 몸을 던져 단테의 앞길을 가로막는 살점들을 찢어발겼다.

-하, 하찮은……!

그제야 지배의 여왕은 비로소 두려움이 섞인 일갈을 터트리며, 바로 앞까지 다다른 단테를 향해 최후의 발악을 뻗었다.

그러나 그때.

파아앗!

검은 섬광이 터지고, 벤데타의 거대한 육신을 노리며 뻗어진 놈의 공격은 어느새 허공에서 홀로 추락하는 단테의 뺨을 스쳤다.

스친 볼에는 핏물이 튀고, 흔들리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어지럽히며 시야를 가렸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의 손에는 역소환되지 않은 벤데타의 흑색 검이 쥐어져 있을 뿐이다.

분명 그 자신보다 거대한 검신을 쥐고 움직일 수 있을 수가 없을 테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미 미친 세상인데 말이다.

순간 여왕의 백색 동공이 찢어질 듯 확장했다.

동시에 단테는 그대로 거대한 검신에 내력을 밀어 넣으며 중얼거리니.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이윽고 거대한 검신에 맺힌 묵빛 검강이 놈의 심장을 향해 뻗어진다.

여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며 무언가 소리치려 했으나, 정작 단테는 피식 웃으며 스치듯 지나가는 놈의 얼굴에 속삭여 주었다.

“시끄럽다, 시체.”

본디 시체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단테는 이미 손을 떠난 검을 그대로 놈의 심장을 향해 틀어박으며 외쳤다.

“벤데타.”

콰드드드드드득!

역소환하여 뻗어진 공격을 피하고, 다시금 소환된 벤데타는 주인이 바라는 바를 아주 정확히 실천했다.

놈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 그대로 추락하며 육신을 반으로 갈랐다.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몸뚱어리를 지탱하는 건 쉽지 않다.

즉, 가운데에 긴 선이 그어지면 놈의 몸은 그대로 반으로 무너진다는 뜻이다.

지배의 여왕은 다급히 재생력을 끌어 올려 갈라진 몸을 수복하려 했으나, 그걸 두고 볼 세르겐이 아니었다.

〔전군…… 아니, 뭐라고 잡고 쏠 수 있는 놈들은 모조리 갈겨 버려!〕

그의 명령에 일제히 마력포의 포신이 돌아갔다.

동시에 단테는 절망과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왕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지옥에서 만나면, 다시 죽여 주마.〕

-아, 안돼애애애애!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제껏 본적이 없는 화력이 여왕을 향해 일제히 쏟아졌다.

끝도 없이 재생한다고?

어쩌란 말인가.

‘다만 그것을 압도하면 될 뿐이다.’

재생할 수 있는 한 줌의 살점도 남기지 않고 소각하면 된다.

포격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결국 비행함들이 날아오르기 위한 최소한의 동력마저 포격에 사용하여 폐허가 된 프란틴으로 불시착하게 될 때까지 쏴 갈긴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지배의 여왕을 자처하던 마수는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단테는 이윽고 밀려오는 탈력감에 눈을 감았다.

……내력을 너무 많이 썼다.

주화입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단전은 조금의 충격이라도 받는다면 곧바로 깨질 걸 걱정해야 했다.

때문에 그가 구태여 말하지 않았음에도 벤데타는 짧은 섬광을 끝으로 역소환되었고.

털썩.

“다, 단테!”

그와 함께, 단테의 몸은 핏물로 가득 찬 대지 위로 쓰러졌다.

기갑천마

전후처리

대륙이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당연한 일이다.

세르겐은 탁자에 놓인 위스키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곤 침대에 평온하게 누워 있는 단테를 바라보았다.

“벌써 일주일인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품에서 궐련으로 말아 놓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윽고 치익, 소리와 함께 불이 붙어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렸다.

그때였다.

“……쿨럭!”

메케한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긴 잠에서 깨어난 이의 숨 고름인지 모를 기침을 내뱉으며 단테가 눈을 떴다.

“일어났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입에 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애초에 흡연 욕구가 있었다기보다는 잠시 입이 심심했기에 습관처럼 물었던 담배였으니까.

그런 세르겐을 보던 단테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조금 전 정신을 차린 사람치고는 냉철한 모습에 세르겐은 내심 한 번 더 놀라면서도 위스키를 들어 말했다.

“목이 조금 탈 텐데. 일단 한 잔 어떤가.”

“괜찮습니다.”

“쯧.”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단테의 답에 세르겐은 혀를 찼으나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대외적인 단테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일단은 일주일간 혼수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세르겐은 얼음이 살짝 녹은 위스키잔을 손안에서 한 바퀴 굴리곤 말했다.

“루틀담 내 제국군 주둔지일세. 자네가 쓰러진 지는 일주일이 지났고 말이야.”

그는 단테가 입을 열기도 전, 그가 궁금해 할 사실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읊기 시작했다.

여왕은 죽었고, 프란틴 내부의 시체들 역시 현시점에선 대부분 수습이 완료되었다는 것.

그리고 의사의 말에 따르면 마나 하트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목숨까지 위험했다고 경고했다는 것까지.

그 말을 들은 단테는 무심결 시선을 내려 하단전과 중단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기절한 사람을 의사에게 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그의 단전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면 꽤 귀찮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세르겐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하긴, 그렇게 미친 듯이 싸워 댔으니.”

그 안에 단테를 향한 의심이나 위협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가볍게 웃음 지을 뿐.

우웅-!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대를 가볍게 훑어도 느껴지는 것은 그저 경계를 서는 군인들과 도청이나 암살을 막기 위한 마도구들뿐이다.

단테는 일단은 들키지 않았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 지났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만.”

“그래, 궁금할 법도 하지.”

어차피 그에겐 숨길 이야기도 아니었다.

세르겐은 뒤늦게 재떨이에 비벼 끈 담배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품에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말했다.

“먼저 프란 공화국은 사실상 붕괴했다고 판단하고 있네.”

주변 국가들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애초에 쿠데타가 벌어지고 있던 상황 속 총통은 카트린 준장에 의해 총살당했고, 의원들 전부 프란틴이 무너지는 과정 중에서 사망했다.

스읍, 후-.

내뱉은 숨결에 담배 연기가 섞였다.

“차라리 그뿐이면 다행일 텐데 말이야.”

그 과정에서 쿠데타를 주도했던 이들 역시 거의 전부가 몰살되었다.

문제는 하필 그들이 공화국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수도 방위군과 카트린 준장 측 파벌이라는 점이다.

거기까지 들은 단테는 그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수뇌부의 붕괴.”

그의 답에 세르겐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화답했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나라인데, 마수의 공습에 직격당했으니 무너질 법도 하지.”

사실 억지로 기워서 유지시키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다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단테 역시 그것을 알기에…… 아니, 사실 프란 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존속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도 컸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르겐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단테의 태도에서 그런 기색을 느끼자, 곧바로 그가 원할만한 얘기를 꺼내 들었다.

“여왕은 죽었지만, 그 충격은 대단했네.”

구태여 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왕은 단테에게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존재였다.

중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종류의 괴물이었으니까.

‘이곳에서 새롭게 등장한 변종일지도.’

그런 단테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세르겐은 어느새 절반쯤 태운 담배를 한 모금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가 한 얘기를 전부 기억하기엔 말이 길었기에 단테는 최대한 간결하게 정보를 추렸다.

먼저 여왕의 존재는 대륙인들에게도 최초였다.

애초에 10년 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대군주를 제외하면, 여태까지 마수들을 주체적으로 이끈 존재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네임드다.

그러나 그 규칙이 이젠 깨지고 만 것이다.

여왕이라 밝힌 개체는 네임드보다 강하지 않았다.

아니, 개인의 무력으로 따지면 오히려 네임드보다 약한 편에 속했다.

그 대목에서 단테는 내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고전한 부분은 놈의 능력 쪽이었지.’

일부 네임드들 역시 마수들에게 지배의 능력을 행사하긴 하지만, 그 어떤 존재도 여왕처럼 압도적인 지배력을 보여 주진 못했다.

더욱이 보이는 특징조차 이질적이다.

네임드의 육신에 기생하여 태어난다.

어릴 땐 인간 소녀 혹은 소년의 모습을 하며 성장기를 지내고, 때가 되면 거대한 살덩이를 통해 거대한 여왕으로 성장하는 모습.

‘마치…….’

벌레들이 천적을 피하기 위해 보이는 모습과 사뭇 닮아 있지 않은가.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에 죽어가던 여왕을 떠올렸다.

그 자신은 죽어 가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그토록 무심한 시선으로 도태나 죽음을 입에 담았었지.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그때 대화를 이어 나가던 세르겐의 입에서 꽤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결정된 사안이 있네.”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척 보기에도 무언가 있었다.

그것을 느낀 단테가 그를 바라보자 세르겐이 말했다.

“특임대를 유지한다는 삼국의 합의가 통과되었어.”

특임대는 삼국이 협력하는 체제 아래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이 끝났다.

당연하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세르겐은 구태여 그것까지 입에 담지는 않았다.

어차피 단테라면 머잖아 알아서 깨달을 테니까.

어느새 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러고는 탁자에 놓인 호출 버튼을 누르며 덧붙였다.

“나머진…… 곧 올 이들에게 듣게나.”

당장 필요한 이야기는 해 주었다.

지금부턴 단테가 깨어나길 기다린 이들의 몫이었다.

아마 꽤 북적북적할 거다.

세르겐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멈칫.

그러다 일순간 무언가 잊었던 걸 떠올린 그는 곧 피식 웃으며 침대에 앉아 있는 단테에게 말했다.

“잘 부탁하네, 단테 대령.”

그 말의 뒤로 끼이익- 탁! 하는 소리가 울리며 세르겐이 나갔다.

그리고 단테는 잠시 동안 그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진급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대령이라…….’

노곤한 몸을 침대에 다시 눕히며 생각했다.

소령에서 대령으로.

단번에 2계급이나 진급했으나 별 감흥은 없었다.

애초에 2계급 특진이 아니었던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피곤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휴식도 잠시.

곧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일련의 발소리에 단테는 감았던 눈을 뜨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러니까…….

-정말요?

하나하나 모두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다.

때문에 단테는 곧 들이닥칠 문을 바라보며 아예 상체를 일으켜 세워 침대의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그 직후.

콰앙!

“단장!”

“단테에!”

리베라와 클리에의 쓸데없이 시끄러운 목소리가 겹쳐지자, 단테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다시 잠자기는 글렀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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