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웅!
단테의 기체는 공중에서 추락해 대지를 디뎠다.
육중한 기체가 울림과 동시에, 기체 곳곳에 각인된 상처가 단테의 미간을 좁히도록 만들었다.
‘쯧.’
언뜻 느껴지는 피해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어깨 장갑이 뜯기는가 하면, 왜인지 기체가 입을 벌리며 안면 장갑 역시 뜯겨 나갔다.
그뿐인가.
케이블도 꽤 많이 끊어지고, 여러 기초 프레임들도 무리가 간 느낌이다.
‘뭐, 큰 상관은 없나.’
하지만 그에게 딱히 와닿는 방해물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기체에서 내려서 싸우면 그만이니.
물론 그 경우 무리를 조금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잠시 단테를 내려다보던 여왕은 척 보기에도 그리 좋지 않은 기체에 안심이라도 했는지, 이윽고 무심히 손을 들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죽여 주마. 걱정 말거라.
마치 너희들 같은 벌레는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는 듯 내뱉는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뱉은 숨결 사이로 진동하는 마나에 모두가 깨달았다.
저건 그저 읊조리는 개소리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크, 크르르르르!
-끼에에에에에!
순간 여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모든 마수의 안광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빨이 갈리며 흰 거품을 문 그때 여왕이 선언하니.
-절멸하라.
-크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여왕의 군단은 사방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선 단테는 언젠가 보았던 대군주를 떠올리며 오픈된 회선을 통해 전장에 선 모든 이들에게 명령했다.
〔여왕을 죽인다. 각국의 기갑 장교는 최우선으로 길을 뚫도록. 일단 길이 뚫리면…….〕
그 순간 거대한 사자와 같은 모습을 한 마수가 갈라진 대로를 짓밟고 뛰어올라 단테를 향해 게걸스러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 순간 뻗어진 주먹이 순식간에 마수를 고깃덩어리로 갈아 버리니.
콰지익!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허공에 흩날리는 핏물이 스치듯 뿜어져 긴 선을 그렸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너무나 태연하게 벤데타의 팔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내며 덧붙였다.
〔책임지고, 여왕은 죽여 줄 테니.〕
그 말을 시작으로 전투가 재개되었다.
세르겐이 내뱉은 퇴각 명령은 철회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전장에 서 있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어이쿠.〕
제일 먼저 단테의 뒤를 따른 인물은 로한이었다.
그는 마나를 탄환으로 잡아먹는 기관총을 전면에서 밀려오는 마수들에게 겨냥하며 피식 웃었다.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며 덧붙였다.
〔잘 피해 봐라. 살살 맞으면 덜 아플지도 모르잖아?〕
〔퍽이나.〕
어딘가 묘하게 들뜬 느낌의 목소리였다.
그걸 들은 리베라는 그림자처럼 스치듯 마수들의 목에 손 아래 달린 칼날을 박아 넣으면서 화답했으니, 그녀 역시 웃음을 되찾은 것은 여전했다.
〔개쩔어…….〕
그리고 그건 클리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서서히 전진하며 내달리는 벤데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릴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그 시간에도 벤데타는 앞으로, 또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
콰드득!
침을 질질 흘리며 앞을 가로막는 늑대 마수의 목을 잡아 비튼 다음 그대로 뽑아 올렸다.
척추가 길게 핏물을 흘리며 따라 나와 바닥을 구르고, 뒤이어 달려드는 뱀의 눈에 손가락을 박아 넣어 그대로 얼굴을 짓뭉갰다.
서걱, 툭!
때때로 왼손에 역수로 쥐어진 검이 번뜩일 때마다 마수들의 목과 팔다리가 잘려나가 핏물을 터트렸고, 대로를 가득 채운 마수들의 장기와 눈알이 벤데타의 걸음마다 터져 악취를 풍겼다.
하지만 단테는 느끼고 있었다.
‘지배의 여왕이라더니, 아예 허언은 아니었나.’
애초에 소녀와 닮은 모습을 했었을 때조차 마수들을 지배하는 듯한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눈이 백색으로 물든 마수들을 잡아 죽여 본 결과, 능력은 더욱 강해진 듯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아무리 버러지 같은 짐승들이라고 해도, 제 목숨 정도는 조금쯤 사렸던 녀석들이다.
하지만 눈이 백색으로 물든 이후 놈들은 마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거세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기갑 장교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지 않은가.
“끄, 끄아아아악!”
타다다당!
“사, 살려 주……. 커헉!”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차피 저 오만한 면상을 찢어야 하는 건 같았기에 단테는 묵묵히 앞으로 내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마수를 단번에 잡아 죽였을까.
자신의 지배 아래에 있는 마수들의 죽어감에도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있던 여왕은 비로소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을 앞으로 뻗고 이내 다시 내린다.
그리고 단테가 지나온 피와 시체로 점철된 길을 가리키며 지배자로서 명령하니.
-일어나라.
그 순간, 단테는 발밑을 스치는 기이한 감각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빨리 그를 지나 시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파바박!
파박!
대지를 꿰뚫고 선홍빛의 거대한 기생충들이 치솟았다.
당연하게도 그것을 마주한 강습병들과 군인들은 다급히 총구를 돌렸으나, 그들이 채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기생충들은 빠르게 마수들의 시체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갈라진 창자 속으로.
찢어진 폐 사이로.
터진 눈알 틈으로.
비집을 곳이 없다면 잡아 뜯어서 파고들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생충들이 파고든 마수들의 시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니, 그 순간 미카엘은 드물게 인상을 찡그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언데드……?〕
분명히 목숨을 잃었음에도 일어서는 저들을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끼, 끼기기, 끼기기…….
“으아아아악!”
마침내 놈들은 핏물과 고름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고, 주변의 군인들에게 썩어 가는 육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진군에 속도를 더해, 군인들 틈틈이 시체가 뒤섞인 상황에 되살아난 마수들의 시체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러나 그때.
〔당황하지 말고 대열을 유지해! 이미 죽은 놈들이라 약해 빠졌으니까!〕
파삭!
세실의 일갈이 터지고, 그녀는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듯 녹색 창을 거세게 휘둘러 단번에 되살아 난 상급 마수의 몸을 두 동강 냈다.
아무리 그녀라도 일격에 상급 마수를 죽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건 상식이었기에, 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은 일말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단테였다.
〔소령님!〕
막 총구를 시체의 파인 눈에 넣어 뇌에 다이렉트로 박아 넣어 준 페고르가 일순간 외쳤고, 세실은 그제야 단테를 포위하듯 밀려가는 엄청난 수의 언데드 마수들을 확인하곤 여왕의 계획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여왕은 단테를 위험하다 여기고, 말려 죽이려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녀가 단테를 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리려던 그때.
파앙!
곧 세실이 탄 기체, 아틀라스의 왼쪽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콕피트가 흔들렸다.
동시에 세실의 귓가로 리베라의 얄미운 목소리가 스쳤다.
〔앗, 소령님 죄송!〕
내용과 달리 전혀 죄송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세실은 머지않아 그녀가 단테에게 향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천.〕
리베라는 엄청난 마수들의 포위 속에서 무언가 하려는 듯 내력을 끌어 올리는 단테를 힐끔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시그니처(Signature).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시에 추락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니.
도깨비검무(鬼劍舞).
이윽고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은빛 칼날이 마수들을 아주 조용히 도륙하기 시작했다.
기갑천마
심장이 뛰었다
-그어어억.
순리를 역행한 채로 다시금 눈을 뜬 마수들은 언데드라는 이름으로 대지 위로 바로 선다.
그러나 놈들이 새롭게 얻은 생명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후훗.〕
리베라의 기체 모스트리의 손길에서 흩어지듯 뿌려진 은빛 칼날들이, 야심한 겨울밤 달빛 아래에서 스산하게 다가오는 안개와 같이 놈들의 몸을 스쳤다.
그리고 섬광이 번뜩인 순간, 그 자리에 남게 된 건 오직 죽음과 한 줌의 핏물뿐이리라.
서거거거걱!
이윽고, 되살아난 마수들은 변변찮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며 단테는 막 끌어 올리던 내력을 거둔 채 벤데타의 팔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물론 그때를 노려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마수는 단번에 얼굴이 터져 죽었지만 말이다.
〔아, 고맙다는 인사는 괜찮아요.〕
이윽고 섬뜩한 피육음과 함께 사방으로 잘려 나간 시체 위에 안착한 모스트리의 안에서 리베라가 말했다.
어딘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였으나 단테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무심히 답할 뿐이었다.
〔뒤.〕
〔에?〕
조금은 얼빠진 소리가 통신기를 지나 귓가를 스쳤고, 단테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돌린 그녀는 뒤늦게 미처 죽지 않고 뼈로 된 꼬리를 휘두른 언데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콱!
손을 뻗어 잡아 버렸다.
리베라는 뚜둑, 하는 소리와 함께 위태롭게 꿈틀거리는 뼛조각들의 관절부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단테에게 화답했다.
〔고마워요, 단장. 헤헷!〕
〔하던 대로 해라, 리베라.〕
〔넹.〕
새삼 느끼는 거지만, 리베라는 미친년인 게 확실했다.
그리고 그때.
콰아아앙!
벤데타와 모스트리의 머리 위로 포물선을 그린 포격이 둘을 향해 내달리던 마수들의 몸을 산산이 터트렸다.
동시에 세실을 필두로 한 제국의 강습병들이 리베라가 만든 틈을 통해 빠르게 그들에게 향했다.
타다다다다당!
페고르를 비롯해 총을 쥔 파일럿들이 152mm 구경의 라이플을 미친 듯이 갈기며 미처 죽지 않은 놈들을 정리했고, 뒤이어 세실과 유엘을 선두로 둔 파일럿들이 사각지대에서 나오는 마수들을 베고, 찢었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확인하지 못하거나 흘린 마수들은 기계음과 함께 육중한 진동을 동반한 궤도차들의 마력포의 섬광과 함께 터져 나가고, 보병들의 총탄에 몸이 꿰뚫렸다.
콰아아아아앙!
그뿐인가.
이미 제공권은 확보한 후였기에, 비행함들의 포신들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빠르게 포격을 갈기고 있었다.
언데드가 된 마수들의 수는 절대 적지 않았으나 그보다 압도적인 화력은 놈들을 순식간에 썩은 살점과 핏물로 점철된 쓰레기로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쿠웅!
어느새 세실의 기체 아틀라스가 단테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다.
그녀의 주무장인 녹색 빛의 창대에는 미처 털지 못한 마수의 창자가 걸려 있었고, 뒤를 따르는 강습병들의 수도 꽤나 많이 줄어 있었다.
그러나 단테와 세실의 시선이 콕피트를 지나 마주한 그 순간. 그녀는 말했다.
〔엄호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을 터.
그녀의 말에 단테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 채로 바닥에 널브러진, 주인을 모를 미스릴 소드를 쥐었다.
스릉.
푸른 검과 흑색의 검이 교차한다.
동시에 벤데타의 벌어진 입에서 스산한 입김이 스치고, 단테는 꿀렁거리며 내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검은 심장을 느끼며 일순간 눈을 감았다.
두근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엇갈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인지하며 동시에 맞물리니.
바로 그때 단테의 뇌리에 그림자…… 아니, 벤데타의 목소리가 울렸다.
「시스템 : 벤데타 가동」
「동화율 44%」
「동화율 87%」
「동화율 95%」
「사용자 : 단테 드 헤로이스」
「인식 허가」
「0세대 나이트 프레임 : 코드네임 벤데타」
「가동 완료」
처음 벤데타에 올랐을 때를 제외하면 들어 보지 못했던 소리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확실히 있었다.
단테는 고개를 치켜들어 몸을 가볍게 떨었다.
‘95%라…….’
이제껏 겪어 본 적 없는 감각이 찰랑거리는 묵색의 액체를 지나 그의 몸을 감쌌다.
충족감이 밀려왔다.
뒤늦게 이해한 벤데타의 성능은 그의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리기엔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그 순간.
-크어어어어어어!
눈을 백색으로 물들인 채, 여왕의 꼭두각시가 된 마수가 단테를 향해 이빨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벤데타가 움직이지 않자 리베라가 팔을 뻗었으나…….
그때였다.
벤데타의 왼손에 역수로 쥐어져 있던 흑색의 검이 찰나의 순간 그어졌다.
동시에 섬광처럼 흩뿌려진 검강이 반원을 그리며 마수의 몸을 절단했다.
툭- 하고 추락한 마수는 곧 창자와 핏물을 바닥에 흘리며 꿈틀거릴 뿐이었다.
그것에 내심 놀란 주변의 반응은 그에게 별다른 감흥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저 새롭게 드러난 벤데타의 능력을 판단할 뿐이다.
‘내력을 더욱 농밀하게 받아들이고, 덕분에 효율도 좋아졌다.’
세부적인 조작감과 반응, 심지어 기체 내부적인 부분도 이전보다 나아졌음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다른 기체들과는 달리 유려한 움직임을 보였던 관절은 이제 마장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윽고 확인을 끝낸 단테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콕피트 너머 비추어지는 광경은 꽤 새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기가 찬다고 표현해야 옳은 것일까.
-쿠어어어어!
-그어어어어어어……!
눈을 백색으로 물들인 마수와 몸 안에 기생충을 품고 되살아난 언데드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치 프란틴 내부의 모든 물량을 이곳으로 모은 것처럼 보였다.
콰과과과광!
쿠우우우우웅!
허공과 지상에서 연신 바쁘게 포격을 함에도 놈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그러나 단테는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그저 앞으로 걸으며 양손에 쥔 검을 비스듬히 쥘 뿐이다.
서걱, 툭!
제일 먼저, 달려들던 상급 마수의 목을 베었다.
핏물이 튀고, 뻗어지는 앞발마저 자르자 놈의 몸은 기울었다.
죽음과 죽음이 뒤엉켰다.
시체와 시체가 뒤섞이고.
빛을 잃어간 고깃덩어리가 즐비하다.
단테는 앞으로 걸었다.
아니, 어느 순간 걸음은 뜀박질이 되어 갈라진 틈 사이 핏물이 가득 찬 대로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그르르르르…… 컥!
가까운 마수의 목을 잡아 부러트렸다.
쿠웅!
내력이 담긴 일보를 내디뎌 지축을 흔들고.
파아아앙!
검을 쥔 주먹을 뻗어 그대로 머리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런 단테의 뒤를, 세실을 비롯한 강습병들과 리베라는 묵묵히 뒤따르며 밀려오는 마수의 파도를 향해 전진했다.
베고, 찢고, 죽이고, 터트리고, 찌르고, 핏물로 점철된 칼날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금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그렇게 전진하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의 손에 죽은 마수가 산을 이루고, 무너진 폐허조차 시체에 뒤덮여 보이지 않을 때쯤.
스윽.
마침내, 위협이라도 느낀 것인지 지배의 여왕이 묵묵히 손끝을 올렸다.
그리고 여왕의 명령을 받은 무언가가 다시금 지하를 내달려 단테의 발밑에 다다르니.
‘……!’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 단테는 곧바로 도약했고, 그와 거의 동시에 대지를 꿰뚫고 수십 개의 붉은 무언가가 그의 궤적을 쫓아 뻗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비산한 파편이 마수들의 몸에 꽂히고, 지축을 흔드는 진동이 걸음조차 위태롭게 만들었으나 여왕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단테는 발밑에 솟구친 그것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쯧.〕
이미 한 번 본 것들이다.
다름이 아닌 살점으로 만들어진 손들이었다.
물론 수량은 아예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꿈틀!
쩌저적!
족히 수십 개는 되는 손들은 그야말로 기괴했다.
또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뿐.
단테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배의 여왕을 힐끔 올려보곤, 이윽고 비웃음을 머금고 놈을 향해 말했다.
〔살덩이 때라서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저 오만함이 눈을 가린 건지.〕
혹은 그저 멍청한 건지.
허공에 붕- 뜬 단테의 기체가 이윽고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추락하는 그의 궤도와 솟구치는 살점으로 만든 손들이 맞닿는 그때.
허공에서 교차한 흑색과 청색의 검신이 제각기 묵색의 내력을 포식하니…….
단테는 번뜩이는 안광으로 나아갈 검로를 확인하곤 씨익 웃으며 읊조렸다.
백월신공(白月神功).
묵월참(墨月斬).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양손에 쥐어진 검이 대지를 향해 그어지며 죽음을 흩뿌렸다.
허리 뒤로 늘어져 있던 검이 허리의 궤적을 따라 길게 횡을 그렸다.
동시에 마치 반월과 같은 묵빛과 은빛이 섞인 빛이 번뜩이고 머잖아 뻗어지니.
콰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앙!
살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들은 한낱 고깃덩어리조차 되지 못할 조각으로 변모한 채 폐허 위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단테가 다시금 대지를 디딘 그 순간.
쩌적!
갑작스레 손끝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소리의 진원지를 본 그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묵월참을 쓴 반동인지, 이름 모를 파일럿이 들고 다녔을 미스릴 소드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단테는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무심히 검을 놓고 앞으로 향했다.
‘이대로 마수들을 베고, 베다보면 놈에게 닿겠지.’
여왕은 사형이 선고된 죄수처럼, 다가오는 죽음 아래에서 꿈틀거리다가 비참하게 죽으리라.
단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영롱한 흑색을 흩뿌리는 검신을 내렸다.
하지만 그도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여태까지 여왕은 어떠한 ‘직접적인’ 공격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테의 벤테다가 앞으로 막 발을 디딘 그 순간, 여왕은 백색의 눈을 번뜩이며 섬광처럼 무언가를 뻗어 냈다.
동시에 확신했다, 저 벌레는 피할 수 없으리라고.
파앙!
소리마저 뒤늦게 울릴 정도로 빠른 공격이다.
때문에 단테조차 보지 못하고 그저 팔을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본능에 가까운 방어였고, 다른 이들은 느끼지도 못한 사이, 벤데타의 거대한 육신이 허공을 날아 그대로 성벽으로 꽂혔다.
콰아아아아앙!
검은 기체가 성벽에 부딪치자, 충격을 받은 거대한 돌덩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무너진다.
그리고 콕피트 안에서 단테는 충격을 느낌과 동시에 느껴진 고통을 복기해 여왕의 공격을 가늠했다.
‘……촉수라기엔 너무 빨랐다.’
하지만 도통 무엇인지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사이 추락한 파편이 벤데타의 육신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감흥조차 되지 못했다.
끼기긱!
다만 기체를 일으키자 단테는 미간을 좁힌 채 벤데타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래도 조금 전 공격의 충격이 상당했는지, 이전보다 피해가 더 심한 듯싶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파일럿이 벤데타의 상태를 보았다면 당장 퇴각을 권고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정작 단테는 생각한다.
여왕 본신의 무력이 있다면, 생각보다 상대하는 것이 껄끄러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차라리 모든 마수를 죽여 버리고 죽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단테가 잠시 상황을 가늠하며 숨을 고르던 그때였다.
두근.
갑작스레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뛰었다.
기갑천마
시체는 말이 없다
두근.
울리는 심장 소리에 단테는 콕피트 너머가 아닌, 벤데타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하던 점점 빠르게 고동치던 벤데타의 검은 심장은 몸 곳곳의 케이블에 내력을 미친 듯이 질주시켰고, 곧 단테는 무언가 이질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대체 벤데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눈을 감은 단테였다.
그리고 곧 그는 벤데타의 육신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소했다.
‘이건 무슨.’
조금 전 성벽으로 날아가며 등의 장갑이 뜯어졌다.
그러나 그것들은 채 30초가 지나기도 전에 빠르게 수복되고 있었다.
그뿐인가.
콕피트 안에서 단테를 감싸고 있는 묵빛 액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그의 육신을 빠르게 치유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콕피트 안에 있다고 한들, 기체의 손상은 언제나 파일럿에게 고통을 안겨 주기 마련이다.
그런 작은 상처들까지 모조리 치유되고 있는 것이다.
꽉.
콕피트 안에서 단테는 주먹을 틀어쥐었다.
동시에 그는 서서히 밀려오는 고양감을 즐기며 벤데타에게 속삭였다.
“조금쯤은 주인으로 인정을 한 모양이구나.”
이쯤 되면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동시에 조금은 확신하게 된다.
‘남궁연희, 사마제천.’
그들이 이 세상에 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블랙 가드를 만든 것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확신하기엔 이르지만 말이다.
끼기긱.
어느새 벤데타의 육신은 완벽히 수복되었고, 단테는 그런 기체를 일으켜 세웠다.
투둑- 하고 육신을 스치는 성벽의 파편이 대지를 굴렀으나 개의치 않는다.
〔괜찮으십니까!〕
때마침 복구된 통신기로 이름 모를 파일럿이 안부를 물어왔다.
시선을 앞으로 향하자, 그 찰나의 순간 밀려온 마수들에 의해 미친 듯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리베라와 세실 등이 눈에 밟혔다.
-우웅.
단전에서 내력이 맴돌고, 손에 쥔 흑색의 검신에 묵빛의 검강이 맺혔다.
동시에 단테는 짧게 심호흡을 끝낸 후 그대로 대지를 박찼다.
콰아아앙!
파편이 튄다.
중심부에서 성벽이 있는 곳까지 날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채 10초가 안 되었지만, 다시금 복귀하는 데에는 그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검은 섬광처럼 뻗어진 벤데타는 고전 중인 이들의 사이를 지났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금 여왕의 앞까지 다다른 단테를 향해 놈은 손끝을 뻗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죽일 생각인지, 이전보다 강대한 기운이 공기를 스쳐 살기를 뿜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단테의 붉은 눈이 번뜩이며, 극한까지 운용한 내력이 뻗어지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작은 흔적밖에 보지 못했으나, 단테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좌측 어깨.’
그가 생각했고, 의지를 대변한 벤데타가 비스듬하게 어깨를 내리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앙- 하는 울림이 터지며 전장을 울렸다.
-뭐, 뭐라?
뻗어지는 공격이 소리를 능가한다.
그런 공격을 설마 도태되었다 표현하던 인간이 피할 줄은 가늠조차 하지 못했는지, 여왕은 실로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놈은 알까?
그 자신이, 처음으로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테는 그런 놈의 모습에 꽤나 만족하며 어느새 다다른 마수들의 파도 앞에서 일갈했다.
〔클리에!〕
〔갈겨어어!〕
사전에 어떤 말도 맞추지 않고 부른 그녀의 이름이었으나, 숱한 전장을 종횡하던 클리에는 단번에 단테의 뜻을 알아채곤 허공에 부유 중이던 연합 왕국의 함대에게 외쳤다.
그리고 그들 역시 제독의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단테의 앞길을 가로막는 마수들을 향해 포신을 돌렸다.
콰과과과과과광!
콰아아아앙!
뻗어진 마력포들은 지축을 흔들고, 굉음을 터트리며 놈들을 그야말로 도륙했다.
그러나 클리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기체 갱플랭크의 포대를 앞으로 쭉 내밀며 외쳤다.
시그니처(Signature).
함대사격(艦隊射擊).
허공에서 뻗어진 함대의 화망과 지상에서 쏘아진 클리에의 화망이 겹쳐진다.
엄청난 열기가 바닥을 구르던 살점을 녹이며 틈새를 메꿨고, 지배를 당하던 마수들조차 침을 흘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끼에에에에엑!
-캬아아아악!
그야말로 지옥도가 있으면 이러한 광경일까-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단테는 놈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가 노린 것은 압도적인 화력이 만들어주는 찰나의 틈.
콰득!
여왕의 당황과 엄청난 화력으로 만들어진 검은 안개 사이로 단테는 대지를 도약했다.
벤데타의 신영이 일순간 하늘 높이 떠오르고 뒤늦게 그것을 발견한 여왕이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콰아아앙!
-크윽!
〔빨리 좀 끝내자. 퇴근 좀 하게.〕
지상에서 쏘아진 포격이 여왕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뒤이어 로한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놈의 귀를 어지럽힌다.
-도태된 벌레 주제에……!
드디어 분노로 일갈을 터트렸다.
동시에 그녀는 감히 자신에게 웃기지도 않은 포격을 가한 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검은 기체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 봐야 도태된 짐승에 불과하다. 잠시 건방진 벌레 하나를 눌러 죽일 정도의 시간은 되는 것이다.
파앙!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전 단테를 성벽으로 날려 버린 공격이 다시금 로한을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여왕이라 칭한 그녀의 가장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로한은 피할 생각조차 없이, 다만 충격을 막기 위해 팔을 교차하면서 중얼거렸다.
〔참, 요새 괴물들은 깡도 좋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한은 어느새 여왕의 바로 앞까지 다다른 벤데타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곤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 인간을 두고 한눈을 파는지……. 거참.〕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로한은 밀려오는 엄청난 타격에 일말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콰아아아아앙!
뻗어진 공격에 로한의 기체는 곧바로 붉은 섬광만을 남기며 역소환되었고, 그는 붕-뜬 육신과 핏물이 역류하는 입안을 혀로 훑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니.
“……쿨럭! 이딴 걸 맞고 다시 싸우러 갔다고? 염병, 진짜.”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그대로 마수의 시체 위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