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눈을 뜬 단테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동시에 밀려오는 고통이 그의 몸을 따라 저릿하게 흘렀다. 뿐인가.
뻐근한 감각이 뼈를 울렸다.
거의 반사적으로 내력을 살피자 꽤 많이 비어 버린 단전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의식을 잃었을 때 벤데타가 움직인 동력은 그의 내력인 듯싶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지만.
서서히 검게 물들었던 시야가 되돌아왔다.
동시에 벤데타의 메인 코어인 검은 심장이 짧은 간격으로 두근거리며 주인을 반긴다.
‘여기는…….’
콕피트 너머는 어둡긴 했으나, 분명히 조금 전 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잠시 주변을 살핀 단테는 곧 이곳이 벤데타의 기억 마지막의 살덩이 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찮고도 하찮구나.
그때 그의 귓가로 스스로 여왕이라 자처한 변종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다가올 도태의 과정을 받아들이거라.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이.
놈은 단테를 끝냈다는 확신이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음과 동시에, 비루한 인간들에게 내뱉는 선전포고를 중얼거렸다.
꽤나 유쾌한 기분이라도 되는 양 선율처럼 흥얼거리는 놈을 바라보던 단테는 이윽고 굳어 있던 육신을 가볍게 풀었다.
끼기긱.
다시금 제어권을 되찾은 손끝이 부르르 떨리며 단테의 움직임에 호응한다.
두근.
단테의 심장과 벤데타의 심장이 함께 울렸고, 곧 그의 의지에 따라 뻗어진 손끝에서 살덩이들이 너무나 손쉽게 찢어져 추락한다.
콰드득!
막 그들을 향해 재앙을 터트리려던 여왕의 백색 동공이 벤데타를 향해 돌아갔다.
유쾌했던 감정은 사그라들고, 머지않아 의문과 놀라움이 빈자리를 차지한다.
-죽지 않았던가.
여전히 무미건조하지만 오만한 목소리다.
단테는 입을 열었다.
동시에 찢어진 벤데타의 입 역시 위아래로 움직이니.
〔여왕이라…….〕
피식.
단테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가당찮구나.〕
이윽고 자신을 올려보는 모든 이들을 가볍게 훑은 단테는 나지막이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빨리 끝내야겠군.’
아무래도, 생각해 볼 것들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기갑천마
사람인지 헷갈린다니까
클리에가 대지에 닿은 순간, 벤데타는 이미 여왕에 의해 삼켜진 후였다.
〔빌어먹을! 야. 내가 신을 안 믿은 지 꽤 돼서 말이야. 너희 비둘기들한테 좀 물어보자. 양심적으로 저게 말이 되냐?〕
멍한 눈으로 여왕을 바라보던 클리에의 입에서 거친 욕지거리와 함께 나지막이 욕이 내뱉어진다.
〔……신은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미카엘은 그렇게밖에 답하지 못했다.
그 자신의 신앙은 둘째 치더라도 저 광경을 바라보며 그 누가 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은 ‘괴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켜보던 그 단테 소령조차 작은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그때.
비행함 위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세르겐 소장의 참담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뚫고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전군, 퇴각한다.〕
그 말은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는 말이었으며, 동시에 패배를 시인하는 확언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그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손을 뻗었고, 곧 프란틴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찮고도 하찮구나.
치욕적이고, 모욕적이며, 분노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그저, 다가올 도태의 과정을 받아들이거라.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그들은 감히 화답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그들은 하찮은 개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으니까.
〔제기랄. 제기랄…….〕
〔신이시여, 저희를 구원하소서.〕
3국, 아니 공화국까지 4국의 모든 군인이 공유하는 통신 회선에선 수없이 많은 이들의 읊조림이 울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욕지거리와 존재조차 희미한 신을 부르짖는 소리까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콕피트 안의 의자에 몸을 묻은 로한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젠장.”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손에 든 라이터를 들어 입가에 문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곧 끝이 붉게 물들며 타들어 가고, 로한은 콕피트 내부에 서서히 차오르는 회색 연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결국 뒈졌네. 나 죽기 전에는 안 죽을 줄 알았는데.”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때마침 로한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리베라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진짜 죽었네?〕
꽤 긴 시간 동안 리베라를 알아 왔던 로한이었기에 그녀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문득 시선을 돌려 세실이 탄 기체를 바라보았다.
기체 아틀라스에 탄 채, 그저 묵묵히 여왕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지금 어떨까.
로한은 그런 생각을 하며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아마 여왕에게서 살아 나갈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할 테니까, 최소한 정보라도 남겨 주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필 제4 원로인 게 짜증 나긴 하지만.’
그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지금 사적인 감정으로 보고를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는 건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로한이 막 통신기를 쥐던 그때였다.
멈칫- 하고 여왕의 몸이 멈췄다.
동시에 거대한 살덩이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은 듯한 여왕은 허공에서 서서히 추락하는 살덩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죽지 않았던가.
영문의 모를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여왕의 시선을 따라 살덩이로 향했다.
분명 콰득- 하는 피육음과 함께 추락하는 핏물을 본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때.
〔여왕이라…….〕
실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리며 무언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벤데타임을 깨달은 그들은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니.
〔가당찮구나.〕
마찬가지로 로한은 품속에서 반쯤 쥐었던 통신기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콕피트 구석으로 던졌다.
텅그렁!
물론 원로가 내건 ‘계약’ 때문에 아예 부수진 못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그러고는 로한은 어느새 대지로 추락하는 단테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하여튼 사람인지 헷갈린다니까.”
그건 실로 유쾌한 혼잣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