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92화 (92/197)

“이야…….”

프란틴의 외곽, 사람과 마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성벽의 망루 위에 걸터앉은 한 소년이 진심이 담긴 경탄을 내뱉으며 거대한 살덩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날뛰는 마수들과 놈들에게 대항하는 군인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에겐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손에 쥔 흰색 베이스에 양쪽 끝이 검정색으로 물든 특이한 볼펜을 딸깍거리던 그는, 곧 노란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곁에 놓아 둔 통신기를 향해 말했다.

“진짜 역겹다. 그지?”

동시에 곧 통신기 너머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감이야. 그나저나 저 살덩이 안까진 정말 못 보는 거야? 이슈페인.〕

“굳이 말로 해 줘야 알아들어?”

이슈페인.

그렇게 불린 소년은 이빨로 볼펜 끝을 씹고는 투덜거렸다.

“아무리 과학이라도 안 되는 건 있는 법이야. 애초에 지금 무리해서 밀어 넣으면 단테 소령에게 걸릴걸.”

〔……하긴.〕

여전히 불만을 머금었으나, 그렇다고 납득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때문에 이슈페인은 피식 웃으며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말했다.

“일단 지켜보자고. 머지않아 알게 될 테니까.”

이윽고, 그는 탁-하고 수첩을 닫고는 실로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저 남자가 뭘 원하는지 알면,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잖아?”

기갑천마

지배하는 자

-크르르.

단번에 두 마리의 가디언을 죽여 버린 단테는 주변을 살폈다.

놈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십이다.

그 말은 고작 두 마리를 죽인 것 따위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미친 듯이 쇄도하는 놈들의 공격을 피했다.

실로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하는 육탄전의 환희는 정적인 단테를 꽤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근.

천마혈광무(天魔血狂舞)는 다른 무공들처럼 폭발을 일으킨다거나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만들고 원기와 피, 내력을 빠르게 순환시킬 뿐이다.

울컥- 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몸 곳곳의 혈관에 빠르게 피를 뻗어 냈다.

동시에 단테의 일반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아진 그의 신체능력과 인지능력이 전투를 보조했다.

한없이 느려진 놈들의 공격을 마주했다.

팔을 뻗어 목을 쥐고 비틀었다.

동시에 놈이 떨어트린 창을 쥐고 그대로 뒤로 던졌다.

-콰직!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바닥을 구르다가 발에 밟혀 바스러졌다.

부질없이 추락한 또 하나의 가디언의 머리통이 이리저리 치이고 나뒹굴다가 구석으로 밀려났다.

피를 피로 씻는다.

죽음만이 자리한 바깥처럼, 이곳에도 서서히 죽음으로 점철되고 있었다.

촤르륵.

단테는 손을 더럽힌 놈들의 핏물을 잠시 내려보다가, 이내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 그는 가디언들의 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놈, 변종을 눈에 담았다.

놈은 여전히 총통의 권좌 위에 앉아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실로 오만한 자태였다.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캬아아!

그 순간 그의 뒤에 서 있던 가디언이 포효를 내질렀고, 동시에 날카로운 손톱을 뻗어 단테를 노렸다.

그러나 이미 규격을 뛰어넘은 인지를 속일 순 없었기에 그는 비스듬히 몸을 틀었고, 곧 그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낀 마수의 손톱은 갈라진 대리석을 부수며 굉음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섬뜩한 소리가 어느새 성문이 닫혀 밀폐된 성채를 울렸다.

대지에 울린 충격에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곧 놈은 아직 남아있는 왼손을 뻗어 단테를 노렸으나.

파아앗!

검은 제복을 입은 단테의 신영이 일순간 사라졌다.

동시에, 그는 가디언의 다리 사이를 통과한 후 툭 튀어나와 있는 놈의 척추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잡기 좋게 되어 있다.

만약 가디언이 단테의 생각을 읽었다면, 섬뜩함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놈들에게 그런 능력은 없었기에, 곧 놈은 산채로 척추가 뜯어지는 감각을 온몸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콰드드득!

-캬, 캬아아아아!

섬뜩한 소리가 울렸고, 곧 고통에 몸을 떠는 가디언이 전기라도 감전된 듯 울부짖었다.

마수라고 한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척추가 통째로 뜯어지는 감각 또한 썩 유쾌한 일은 아닐 테고 말이다.

그러나 단테는 미간을 좁혔다.

당장에 쓰러지리라 생각한 것과 달리, 놈은 고통에 몸을 떨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에 찬 눈을 번뜩인다.

때문에, 단테는 손에 쥐고 있던 놈의 척추를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바닥에 대충 던지곤 생각했다.

‘잠시 간과했나.’

……괴물은 괴물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리라는 듯, 놈은 입을 쩍 벌린 채 단테를 향해 허리를 돌렸다.

키에에에- 따위의 울부짖음과 함께 말이다.

만약 놈들이 정말 순리를 따르는 하나의 생명이었다면 척추를 통째로 드러내는 상황에서 그저 아프다고 비명만 내지르진 않겠지.

하긴 생명체라고 해도 딱히 의미는 없나.

애초에 모두 찢어 죽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단테는 놈에게 도약함과 동시에 무릎으로 얼굴을 짓이겼다.

익숙한 감촉과 함께 핏물이 튀고, 뇌로 추정되는 회색의 조각이 바닥을 굴렀으나 그는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히려 기울어 져가는 놈의 시체를 발판 삼아 도약했다.

-우어어!

-캬아아아!

그 모습에 가디언들은 기회라고 여겼는지, 곧바로 그를 향해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하나같이 손에 창을 쥐고 있던 주제에 공격하는 모습은 제각기 달랐다.

몇몇 놈들은 꼬리를 뻗었고, 아예 그를 뒤쫓아 뛰어오르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몇몇은 창을 던졌다.

그러나 단테가 아무런 생각 없이 도약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저 수십 마리의 가디언들을 보다 빠르게 확실하게 도륙하기 위함이었다.

일일이 잡아 죽이는 결과는 같겠지만, 수가 조금 많지 않은가.

찰그랑.

곧 그의 손끝이 거대한 샹들리에가 닿았다.

단테는 여전히 미친 듯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의 울림을 느끼며 샹들리에의 끝자락을 쥐었다.

묵직하고 서늘한 감촉이 썩 나쁘지 않다.

-캬아아아아아!

-우어어어!

시선을 내리자, 가디언들의 역겨운 면상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일반의 파일럿이라면 생명을 담보로 하고 감내해야 할 공격들이었으나, 놈들은 자신에게 닿지 못하리라.

우우웅!

흔들리던 묵색의 내력이 손끝에서 일렁거렸다.

이윽고 단테의 발치에 닿은 가디언들이 그를 단번에 찢어 죽이겠다는 듯 입을 쩍- 벌렸으나, 곧 단테는 그대로 샹들리에의 끝자락을 내력을 담아 찍어 눌렀다.

쩌저적!

기적이라 불리는 수많은 기현상들을 일상적으로 일으키는 동력은 단연코 내력이다.

당연하게도 거대한 샹들리에를 추락시키는 일 정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단테는 뒤늦게 무너지는 샹들리에와 천장을 확인한 가디언들을 힐끔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어느새 추락하기 시작한 샹들리에를 가볍게 놓고 덧붙였다.

“조금 따가울 거다.”

고작 이따위 공격으로 놈들이 치명상을 입으리라는 팔자 좋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의 틈 정도는 충분히 벌어 주리라.

본디 공화국 의원들의 사치를 보여 주던 쓸데없이 크고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는, 그의 손에 의해 천장째로 바닥에 추락했다.

당연하게 지상에서 뛰어오른 가디언들도 그것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앙!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키는 가디언들의 위로 광기로 점철된 눈을 번뜩이는 단테가 빠르게 추락했다.

콰드득!

제일 먼저 몸을 일으켰던 놈의 머리를 반쯤 뭉개고, 그대로 몸을 공중에서 돌려 뻗어지는 창을 피했다.

동시에 회수되는 창대의 끝자락을 잡고 그대로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쿠어어어!

‘여전히 시끄럽군.’

그렇게 생각한 단테는 놈의 위턱과 아래턱을 잡아 그대로 찢어 주었다.

목에는 아래턱만 간신히 붙들려 떨렸고, 오른손에 쥐여져 있던 위쪽 턱을 던져 달려드는 가디언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당연히 잠깐이지만 단테를 놓친 놈의 결말은 죽음이었다.

대지를 디디고, 다시 뛰어올라 괴물을 죽인다.

때때로 눈먼 공격에 맞아 군복이 찢어지고 핏물이 튀었으나, 압도적인 학살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0분? 아니, 15분쯤 지났나.

-끼에에…….

마지막으로 바닥을 기던 가디언이 숨을 헐떡였다.

족히 수십 마리가 넘었던 변종의 장난감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꿈틀거릴 뿐이다.

콰직!

단테는 꿈틀거리던 놈의 머리를 가볍게 터트리고, 그대로 손끝에 묻은 핏물을 털어 냈다.

피와 땀에 젖어 버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고 성 내부를 응시하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변종과 그뿐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사방에 쓰러진 가디언들을 바라보았다.

꼴에 최상급 마수라고 불리지만, 바깥의 그것보단 약한 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단테는 반쯤은 걸레짝이 된 코트를 벗어 던졌다.

가슴팍에 매달린 훈장들이 철그럭- 따위의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훈장 따위에 의미를 둔 적이 없으니.

터벅, 터벅…….

내딛는 걸음의 뒤로, 가디언들의 핏물이 길게 이어졌다.

마치 레드카펫과도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어느새 그는 시체들을 지나 권좌에 앉아 있는 변종의 앞까지 다다랐다.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들자, 곧 붉은 눈동자에 온통 백색으로 점철된 소녀가 가득 담겼다.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그는 계단을 올라 소녀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어떠한 저항도 없이, 가느다란 목덜미는 우악스러운 손안에 단번에 들어왔다.

동시에 자신의 가디언이 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녀석의 입이 열렸다.

-인간, 벌레.

살려 달라는 애원.

구차한 저주.

부질없는 분노.

그 어떤 것도 담기지 않았다.

단지 사실을 나열하듯 읊조려지는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칠 뿐이다.

단테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초절정에 오르며 일전과 달리 내력은 충분하다.

재생력 따위, 개의치 않는다. 찢고, 찢고, 찢어발기다 보면 죽지 않겠는가.

도드라진 손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가 소녀의 목을 부러트리려던 그때였다.

-우리. 진화. 선택.

-인간. 도태된 가축.

이윽고 소녀의 모습을 한 괴물의 하얗디하얀 눈동자에 그가 맺혔다.

괴물은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한 듯이.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단테는 깨달을 수 없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 강한가?

어째서, 인간은 도태되었는가?

어째서, 우리에게 저항하는가?

수많은 물음이 될 수 있기에, 단테는 괴물의 말에 귀를 담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해 줄 수 있는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죽으면 알게 될 거다.”

어느새 미친 듯 두근거리던 심장은 가라앉은 지 오래다.

동시에 늘 그러했던 무미건조한 단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틀어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부러트린다.

콰득!

소녀의 목덜미가 비틀리다가 기울어지고, 육신을 지탱하는 힘이 빠졌다.

단테가 이변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죽었다고?’

그렇게 주먹으로 찢고, 갈아도 죽지 않고 도망쳤던 녀석이 고작 목이 부러졌다고 죽는다고?

말이 되지 않지 않은가.

동시에 단테는 시선을 뒤로 올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 순간 곧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가 샹들리에가 무너지며 뻥 뚫린 천장 너머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 하나의 눈에 닿았다.

꿈뻑-.

눈동자가 한번 감았다가 떠지고, 동시에 단테의 귓가로 아주 익숙한 소녀의 목소리가 스치니.

-나는 지배. 지배하는 자.

비로소 단테는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소녀의 목을 부러트릴 때였는지 모른다.

그는 시선을 내려 손아귀에서 녹아내리고 있는 썩은 살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직후 무너지는 천장을 바라보며 단테는 목덜미에서 흔들리던 마스터키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외쳤다.

“벤데타-!”

섬광이 번뜩이고, 그 순간 무너지는 살점이 그들을 완전히 뒤덮었다.

동시에 소녀의 목소리가 검은 시야 너머에서 울리지만 들리지 않았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귀가 멍했고, 곧 단테의 몸을 묵빛 액체가 감쌌다.

그리고 동시에 벤데타의 검디검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며 그에게 내력을 갈구했고.

울컥.

이윽고, 반쯤은 본능적으로 내력을 삼킨 벤데타의 안광이 붉게 변하며 입을 벌리고 밀려드는 살덩이들을 향해 포효하니.

-쿠어어어어어어어!

그것은 흡사 괴물이었다.

기갑천마

비일상이 일상이 된 시대

프란틴은 여전히…… 아니, 어쩌면 전보다 더욱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단테가 살덩이 안으로 집어 삼켜진 이후 마수들이 더욱 발광을 했기 때문이다.

타다다다다!

연합 왕국의 함대에서 강습한 스파이더들은 진짜 거미처럼 건물의 벽들을 오가며 사격을 퍼부었다.

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은 제공권이 밀릴 땐 하늘에서, 지상이 밀릴 땐 지상에서 전투를 이어 나갔고, 골목 사이로는 국적조차 뒤섞인 병사들이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갈겨어어!”

“으아아아아!”

이미 마수들의 눈이 돌아간 지 오래였기에, 아무리 제공권을 되찾고 수적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담보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치열한 싸움의 선두에 선 것은 당연하게도 각국의 에이스들이었다.

〔뒈져어!〕

콰아아아아앙!

로한의 손에서 불을 뿜은 거대한 마력포가 입을 쩍 벌린 채 군인들을 집어삼키려던 마수의 머리를 터트렸다.

동시에 그런 로한의 기체-레기온의 등을 밟고 리베라의 모스트리가 솟구치듯 날아올랐다.

스스스.

마치 아지랑이처럼, 혹은 연기처럼 비스듬하게 거리를 내달리며 마수들을 죽였다.

놈들의 분노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찢고, 베고, 죽일 뿐이다.

〔히.〕

모스트리. 룬어로 도깨비.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전장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코 그녀였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2조, 17구획까지 전진. 3조는 백업해!〕

〔예! 소령님!〕

세실의 명령에 따라 전진한 강습 2조는 빠르게 구획에 산개, 날뛰는 마수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시에 3조가 백업하며 들어가자 위태로운 전장과 달리 꽤나 순조롭게 놈들을 싹쓸이할 수 있었다.

산 넘어 산인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세실, 상황은 어떠냐.〕

그때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세실의 귓가로 세르겐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음 같아선 딸의 안위를 물어보고 싶은데, 공과 사를 웬만해선 구분하는 편이니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물론 세실이 그것을 모르진 않았으나 그녀는 세르겐보다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았다.

〔단테 소령이 살덩이 내부로 진입한 후, 갑자기 마수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바람에 건물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다치고 있긴 합니다만…….〕

잠깐의 망설임.

그러나 이윽고 내뱉어지는 진실.

〔오히려 상대하기는 쉬워졌습니다.〕

단편적으로 보자면 흉폭해진 마수는 분명 민간인들에게 재앙이다.

아니, 보병들에게도 재앙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이트 프레임을 탄 기갑 장교들에겐 아니었다.

……마수들은 교활하다.

분명히 파괴적인 본능과 명령에 이끌려 인간과 마주하지만, 놈들은 이성이 아예 삭제된 꼭두각시들이 아니다.

때때로 마주하는 피식자를 기만하고, 또 농락하는 것이 놈들이라는 포식자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과 마주하는 기갑 장교들은 그것을 제일 가까이에서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놈들에게 이성 따위 없었고, 단순히 미쳐 날뛰는 괴물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공격은 직선적이고 또한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프란틴의 피해는 더욱 커지겠지만.’

안타깝지만 그들이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세실이 잠시 숨을 고른 이들에게 전투를 속행하라 명령하려던 그때였다.

〔어?〕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유엘의 목소리가 울렸다.

당황과 함께 묘한 두려움이 섞인 그것을 들은 세실이 유엘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 유엘이 말했다.

〔소령님, 저거…….〕

끼기긱- 소리를 내며 유엘이 탄 기체의 손끝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찬가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니.

‘살덩이가…….’

쩌저저적!

거대한 눈동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듯, 의회 위에 자리를 잡은 살덩이가 갈라지고 있었다.

거대한 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놈은 핏물을 흘렸고, 곧 꿈틀거리는 혈관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켰다.

그 모습은 혐오적임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뭐야. 단테가 해낸 건가?〕

통신기 너머로 클리에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러나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세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지?’

단테가 내부로 들어간 지 길어야 30분을 조금 넘겼다.

그사이에 놈을 죽였다고?

물론 단테라면 가능할 일이다.

하지만 왜일까, 이리도 불안한 이유는.

그리고 머지않아…….

꿈틀.

서서히 찢어진 살덩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본 세실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건…….〕

단테가 놈을 죽인 게 아니다.

그 증거로 거대한 살덩이는 생명을 잃지 않고 그저 또 다른 무언가로 만개하고 있었다.

꿈틀.

살덩이가 마치 피어나는 꽃잎처럼 갈라졌다.

바닥에 닿은 그것은 이윽고 중세 귀부인의 치마처럼 바닥에 끌리고, 곧 살덩이 안에서 눈을 뜬 무언가가 나지막이 읊조리니.

-나는 지배하는 자.

〔네, 네임드?〕

〔아니.〕

그것을 들은 페고르가 무심결 중얼거렸으나, 세실은 고개를 저었다.

저건 네임드가 아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직감이 미친 듯이 외치고 있었다.

저건 ‘고작’ 네임드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세실의 직감에 확신을 더하듯, 살덩이 안에서 눈을 뜬 무언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덧붙이니.

-첫 번째 여왕.

동시에 프란틴의 모든 마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병사들의 총탄이 몸에 박혀도, 나이트 프레임들의 칼날이 목을 꿰뚫어도 그저 경배할 뿐이다.

-지배의 여왕이니라.

아직 만개하지 못한 씨앗에 불과할 때 여왕은 보았다.

결국 인간이란 종족은 도태되어 마땅하고, 그 빈자리엔 그들이 서리라.

이 비옥한 대지는 그들에게 너무나 과분했기에.

그제야 인류는 깨달았다.

여태까지 그들이 마주했던 적들은, 그저 첨병에 불과했던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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