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 아니, 눈꺼풀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좁디좁은 공간 사이에 낀 단테는 생각했다.
명칭이야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사방이 어둡다.
꿈틀거리는 놈의 울림을 제외하면 고요해서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어둠에 적응한 단테의 시야에 데구르르 굴러가는 놈의 눈동자만이 들어왔다.
적의는 었다.
단지 단테를 바라보며 찢어진 동공을 굴릴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손수 눈동자를 찢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쩌어어억!
이윽고 단테에 의해 길게 찢어진 동공이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이 마치 길을 열어 주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피차 서로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
그런 놈의 처지에서도 자신의 공간 안으로 발을 디딘 그를 구태여 거부할 이유가 없으리라.
응당 그래야지.
삼키기 편하라고 직접 기체에서도 내려 주었건만.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분명히 눈을 뜰 수 있게 가로로 갈라져 있던 살덩이는 어느새 붙어 있었고, 다시 앞을 보자 살덩이를 뭉쳐 만든 듯한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허.”
단테는 그것을 바라보며 실소하곤, 이내 발걸음을 앞으로 향했다.
터벅-.
군화가 핏물이 맺히는 계단 위를 디디고, 곧 단테는 놈이 직접 열어 준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두어 계단쯤 내려갔을까.
갑작스럽게 주변이 검게 변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단테가 서 있는 공간은 계단이 아닌 드넓은 공동이었다.
시선을 올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곧 이곳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마을’의 모습을 한 거대한 고깃덩어리들…… 정도로 표현하면 옳을까.
만약 비위가 안 좋은 사람이 보았다면…… 아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꿀렁,
뼈로 된 나뭇가지에 내장으로 된 잎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강물에는 피와 고름이 흘렀고, 바닥은 핏물이 덜 빠진 살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을 끄는 건 역시 마을과 그 중앙에 자리한 성이었다.
마수의 가죽으로 뒤덮인 지붕. 벽돌은 두개골이고, 마을에서 흔들리는 깃발은 인간의 가죽이다.
‘……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군.’
그가 본 죽음이 족히 수만이다.
그중 그가 직간접적으로 얽힌 죽음은 족히 1만은 되리라.
그런 단테마저도 눈앞의 광경에 무심결 미간을 좁힐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철퍽.
묵묵히 이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단테의 귓가로 무언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올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자, 곧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철퍼덕!
검붉은 가죽을 두른, 마치 기사와 같이 생긴 괴물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공간은 어둡다.
하지만 내력으로 인해 앞을 볼 수 있는 단테는 저 기사의 모습을 한 것이 무엇을 형상화한 건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할 버러지가, 꼴에 제 유모를 죽인 것에 대해서 분노했다는 건가.”
의도적으로 놈을 도발한 건 단테였다.
제 유모를 벤 묵월참으로 뻗어진 거인의 팔을 베었으니까.
그리고 놈은 검은 기사…… ‘벤데타’의 모습을 형상화한 마수를 보냄으로써 그 답을 대신했다.
꿀렁!
발을 질질 끌며 단테에게 다가온 벤데타를 닮은 살덩이가 그를 향해 적의를 내보였다.
진짜 벤데타와 맞먹는 크기를 가졌기에 천장에 닿을 듯이 거대했다.
이윽고 단테와 시선이 맞은 그놈은 곧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우어어어어어!
벌어진 입안에 묽은 침이 긴 실선을 그리며 위와 아래를 연결했다.
동시에 검은 가죽을 뒤집어쓴 놈은 그대로 대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목표는 정해져 있다.
단테는 곧바로 대지를 박찼다.
콰지지직!
주먹이 단테를 대신해 살점에 꽂혔다.
검은 가죽에 핏물이 튀어 오르고, 공간이 뒤흔들렸다.
그러나 정작 단테는 놈의 주먹 위에 올라타 그대로 팔을 따라 도약했다.
그것을 뒤늦게 발견한 놈이 자유로운 왼손을 뻗었으나, 이미 단테는 놈의 어깨를 통해서 왼손이 반격하리라는 걸 눈치챈 후였다.
부우웅!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쇄도하는 팔은 그 자체로 적잖은 위협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단테는 너무나 손쉽게 자신을 잡아 찢으려는 손을 피한 후 왼손의 손등을 디뎌 순식간에 놈의 얼굴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기가 찼다.
검은 가죽 안에는 온갖 마수들의 살점이 뒤엉켜 있었다.
그중에는 벌써 부패가 시작된 놈도 있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우웅!
그때 놈의 면상에 주먹을 박아 넣으려 내력을 끌어 올린 순간, 목덜미에서 흑옥이 번뜩였다.
그리고 단테가 읊조리기도 전, 갑작스럽게 섬광을 번뜩이며 벤데타가 살점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궁!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검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제야 단테는 0세대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기이한 이 기체가 바라는 것을 깨닫곤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감히 찢겨 죽으면 그만일 마수 따위가 자신의 모습을 베꼈다는 게 말이다.
동시에 벤데타가 단테에게 드물게도 칭얼거렸다.
빨리 저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달라고.
‘어이가 없긴 하다만.’
마침 단테도 바라던 바였기에 단테는 끌어 올린 내력을 벤데타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어어어!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나타난 벤데타에 당황한 듯한 살점으로 기워진 놈이 입을 쩍 벌리며 몸을 비틀려고 했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후였다.
콰드드드득!
순식간에 팽창한 벤데타의 오른팔에 도드라진 케이블들이 단테의 내력을 울컥- 받아먹었다.
이윽고 뒤로 당겨진 주먹은 앞으로 뻗어짐과 동시에 놈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고, 곧 핏물이 터짐과 함께 검은 가죽 안의 살점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벤데타의 감각을 따라 단테의 오른손에도 피륙을 때리는 듯한 느낌이 스쳤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육신은 허공에 날아가듯 뒤로 밀려나며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콰과과과광!
두개골과 가죽으로 이뤄진 집 수십 채를 무너트리며 놈의 육신이 살점 위를 나뒹굴었다.
동시에 검은 연기가 흐르고, 벤데타는 망설이지 않고 대지를 박찼다.
철퍽-! 소리가 울리고, 놈이 막 일어나려는 찰나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그 위에 드리웠다.
어느새 벤데타는 날카로운 손끝으로 놈의 목덜미를 틀어쥔 상태였다.
뿌득!
목덜미를 지탱하던 단단한 검은 가죽이 짓눌려 깨졌다.
놈의 목이 부러지고, 잠깐 부르르- 떨던 녀석은 이내 붉은 안광을 잃은 채 그대로 쓰러졌다.
〔쯧.〕
때문에 단테는 물론 벤데타도 어이가 없다는 듯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나름 겉모습에 신경을 쓴 도발인지라 기대를 했건만 너무나 싱겁게 끝나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때.
마치 서서히 뜨는 여명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스쳤다.
곧 고개를 든 단테는 그제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가.〕
입꼬리를 비스듬이 호선을 그렸고, 주인의 생각을 읽은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흡사 흥분.
또는 광기.
이윽고 단테와 벤데타의 시선이 공동을 뒤덮고 있는 천장에 닿았고, 그와 동시에 수십, 아니 족히 수백은 될 검은 기사들이 대지로 추락했다.
모두 하나같이 벤데타를 빼다 박은 듯한 외양이었다.
조금 전 죽인 놈은 단순히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꽉- 하는 소리를 내며 벤데타는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그리고 곧, 벤데타의 콕피트 안에서 떨어지는 놈들을 바라보던 단테의 귓가로 일전에 들었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스쳤다.
-죽어. 여기서. 너.
확신이 담긴 목소리다.
때문에, 단테는 기꺼이 놈의 말에 화답을 건넸다.
〔기다려라.〕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백발을 가진 소녀의 모습을 한 그놈은 다름이 아닌 이 공동의 중앙에 자리한 저 성채 안에 있으리라고.
스윽.
단테의 의지를 따라, 벤데타의 발이 대지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동시에 천장에서 추락한 수많은 괴물이 그를 포위했다.
그 순간.
쿠웅.
벤데타의 검은 다리가 살점으로 만연한 대지를 디뎠다.
머지않아 거대한 공동이 일순간 정적으로 가득 차고, 곧 서서히 밀려드는 묵빛 내력이 일대를 뒤덮으니.
콰과과과과과광!
천마가 선언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지금 이 순간, 핏물과 살점으로 이루어진 왕국의 주인은 놈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말이다.
기갑천마
거짓된 것들
쿠웅.
내디딘 일보가 나지막이 공간을 울렸다.
묵직함과 동시에 경건하며, 정적임과 동시에 파괴적이다.
단테의 의지를 삼킨 벤데타의 걸음이 대지에 닿았다.
이윽고 내력은 검은 물결이 되어 흩어지니, 그것은 하나의 재앙이 되어 그릇된 공간을 뒤덮었다.
쩌저적!
바닥을 이루고 있는 살점들이 꿀렁-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을 뱉어 냈다.
그리고 곧 지각이 변동되듯 솟구친 대지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괴물을 다시금 천장으로 돌려보낸 후 그대로 압사시켰다.
-우어어어!
콰지직!
고통에 내뱉은 울부짖음과 살과 가죽이 찢고 짓눌리는 섬뜩한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곧 벤데타의 머리 위로 고름과 핏물이 섞인 붉은 비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단테는 생각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꿈틀!
족히 수십 마리가 솟구친 대지에 휘말려 다시금 천장으로 처박혔다.
그중 절반이 즉사했고, 나머지 절반은 제멋대로 해체되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단테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많기도 하구나.〕
이유는 간단하다.
천마군림보에 의해 죽은 놈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마수가 여전히 꿈틀거리며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으니까.
때문에 그는 곧 미간을 좁히며 내력을 거뒀다.
‘놈들을 죽이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힘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그가 구태여 제 발로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이딴 벤데타를 흉내 낸 허수아비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소녀의 모습을 한 괴물을 죽이는 것이었으니.
때문에 그는 일대를 잠식했던 내력을 거두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콕피트 안에 들어찬 검은 액체의 찰랑거림이 부드럽게 몸을 스치고, 곧 벤데타의 안광이 번뜩였다.
쿠웅!
철퍼억!
천장은 끊임없이 벤데타를 베낀 같잖은 마수들을 뱉어 냈다.
그것들을 본 벤데타는 불쾌한 골짜기라도 느끼는 듯이 묵빛 액체를 거칠게 흔들며 그에게 칭얼거렸다.
그것을 확인한 단테는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느꼈지만, 어느 순간부터 벤데타가 자신에게 의지를 담아 표현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단순한 기체가 아니라는 건 처음 얻었을 때부터 자각하고 있었으나, 한 번쯤은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을 잡아 죽이는 것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파앙!
살덩이를 터트리듯 내달렸다.
조금 전부터 천장에서 추락하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니 슬슬 잔챙이들을 잡아 죽일 시간이었다.
허리에는 검이 흔들렸다.
그러나 단테는 마수라고 불러 주기도 아까운, 그저 단단한 가죽 안에 살덩이를 쑤셔 넣어 만든 인형에게 검을 쓸 필요성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주먹을 뻗어 제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마수의 얼굴을 틀어쥐고는 잡아 뜯었다.
콰드드득-!
섬뜩한 울림과 함께 놈은 일말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우우웅!
단테의 내력을 삼킨 벤데타의 케이블들이 미친 듯이 팽창하고 수축했다.
동시에 진짜 벤데타를 포위한 수많은 가짜의 틈 사이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유기적으로 이어진 갑주가 흔들렸다.
때때로 놈들의 손톱과 이빨이 벤데타의 몸을 찢고 뜯기 위해 뻗어졌으나, 단테는 단 한 번의 일격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놈들을 도륙했다.
가죽이 찢어진다.
고름이 터지고.
살점이 녹아내린다.
콰과과과과과광!
단테의 손에 던져진 괴물의 몸이 붕 뜨며 가죽과 뼈로 만들어진 집들을 부쉈다.
강물에 시체가 떠다니다 쌓여 섬이 되었고, 천장에서 추락하던 괴물은 떨어지는 족족 한줌의 혈수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우, 우어어어어!
단테는 구태여 죽인 허수아비들의 수를 세지 않았다.
그에게 수적 열세는 진즉에 의미가 없어진, 부질없는 변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검은 갑주 위로 고름과 핏물이 미끄러지다 추락했다.
이윽고 단테는 마지막으로 숨이 붙어 있던 마수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렸다.
콰득-거리는 피육음과 함께 놈은 그대로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다른 가짜들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단테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핏물과 고름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붉게 흐르던 강물은 어느새 쌓인 마수들에 의해 서서히 범람하고 있었고, 온갖 시체들을 기워 만든 마을은 그저 하나의 묘지로 변해 있었다.
사실 애초에 훑을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애초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잡아 죽였으니 말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봐도, 마치 모공처럼 뚫려 있는 공간들조차 더 괴물들을 뱉어 낼 힘이 없는지 잔뜩 오므려진 상태였다.
꽉.
주먹을 폈다가 접었다.
동시에 이내 핏물로 점철된 손을 털었다.
벤데타의 주먹이 흩어낸 핏물은 죽어 버린 가짜들의 위로 흩뿌려졌다.
이내 단테는 걸음을 옮겼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귀를 스쳤다.
이젠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시체 더미를 지나 앞으로 향했다.
그가 향할 곳은 정해져 있다.
다름이 아닌, 이 공간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성채.
무심한 발걸음에 핏물이 맺히고, 곧 성채 앞까지 다다른 단테는 벤데타의 안에서 실로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그것을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여태까지 보았던 것들과 조금은 달랐다.
이 공간의 모든 것은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건물, 자연, 생명, 땅과 하늘까지.
그리고 성채 역시 살점과 장기,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건 같았다.
다만 결정적으로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회의 뼈대를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첨탑인가.’
프란 공화국의 의회를 바로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기에, 잠시 훑어보자 단번에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놈은 의회의 좌측 첨탑 부분을 제멋대로 사용해 하나의 성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쿠구구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단테를 반기듯 성채의 문이 열렸다.
다만 의도한 것인지 벤데타가 들어가기엔 문의 크기가 작았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단테는 벤데타를 유지하던 내력을 거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의 몸은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고, 곧 대지를 디딘 그의 군화에 핏물이 튀었다.
단테는 걸치고 있는 군복의 옷자락을 가볍게 털었다.
그러고는 이내 열린 문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간을 제대로 흉내 내는군.’
마치 저택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웃기지도 않은 노름이지만 이번만큼은 기꺼이 어울려 줄 생각이다.
터벅, 터벅…….
내디딘 발걸음이 점점 성채 안으로 들어갈수록 군화 바닥을 적시던 핏물이 멎어 갔다.
부패하고 썩은 살점이 없어졌다.
채 스무 걸음을 걷기도 전에 곳곳이 갈라진 대리석 바닥이 그를 반겼다.
“허.”
그리고, 이내 성의 모습을 눈에 담은 단테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살점과 더러운 핏물, 고름으로 점철된 바깥과 달리 성의 내부는 고풍스럽기 그지없었다.
원래 의회에 있었던 듯한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흔들리고, 갈라지고 깨진 대리석이 발치에 걸렸다.
뿐인가.
성의 입구를 지나 내부에 다다른 단테를 반긴 곳은 다름이 아닌 성채의 홀이었다.
마치 왕의 대전을 보는 듯한 구조와 길게 도열한 최상급 마수, 가디언들은 지금 자신이 제국의 황제라도 알현하러 왔나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가관이야.”
하지만 단테를 실소하게 만든 주된 원인은 그와 대척점에 앉아 있는 놈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눈가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곧 쓸려 넘어간 머리로 인해 완전히 드러난 붉은 적안에 놈의 모습이 맺혔다.
여전히 백색으로 점철된 놈이다.
백발에 백안을 가진 그놈은 총통이 앉았을 권좌 위에 앉아 묵묵히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휘이잉- 하며 불어온 바람에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빛이 반짝거린 순간, 단테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가디언들이 제각기 안광을 터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놈들의 체구 역시 그렇게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인간보다 머리 한두 개가 더 큰 정도일까.
……그리고 그때.
소녀의 외향을 한, 최초로 인간과 닮은 모습을 한 마수가 입을 열었다.
-너. 위험.
여전히 멍청하고도 짧은 어휘력이다.
단테는 목걸이 안에서 당장이라도 소환해 달라고 말하는 듯한 벤데타의 울림을 무시하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거대한 마수를 상대할 때라면 모를까, 저렇게 작은 놈을 죽일 땐 차라리 맨몸이 편하다.
-죽어.
동시에, 무미건조한 명령이 내려지자 도열하고 있던 가디언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으니.
단테는 목덜미에서 웅웅거리는 흑옥을 거칠게 잡아 군복 안에 밀어 넣고는, 단전 안에서 잠자고 있던 내력을 끌어 모아 터트렸다.
손끝을 말아 쥐고, 동시에 적색의 눈동자의 동공이 순간 묵빛으로 차올랐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군복이 처음으로 찢어질 듯 부풀고, 가죽 너머로 힘줄이 도드라졌다.
이윽고 그를 향해 가디언들이 날카로운 창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옅은 숨결을 내뱉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니.
천마혈광무(天魔血狂舞).
과거, 중원에서 애용했던 무공을 상기하며 읊조렸다.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리고, 내력과 함께 질주하는 기혈은 순간적으로 그의 육체 능력을 미친 듯이 끌어 올렸다.
동시에, 그는 눈앞까지 다다른 놈들을 향해 대지를 박찼다.
단테의 육신이 창끝을 스치고 빠르게 놈의 가슴 앞에 다다랐다.
당황한 듯한 가디언이 오른손을 뻗어 단테의 등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대처였다.
-커거걱!
뻗은 주먹이 가디언의 가죽을 스치고 심장을 단번에 터트렸다.
동시에 단테는 앞으로 기울어지는 놈의 어깨를 디뎌 공중에 떠오른 후 가까운 가디언의 눈알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우어어어!
눈알이 터짐과 동시에, 뺨과 이마에서 혈관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손끝에 내력을 밀어 넣어 그대로 놈의 얼굴 가죽을 뜯어 내렸다.
콰드드득- 따위의 섬뜩한 울림이 성안을 울렸으나,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퉤.”
순식간에 최상급에 달하는 가디언 두 마리를 끝낸 단테는 어느 순간 입가에 맺힌 핏물을 뱉어 냈다.
동시에, 적색과 묵빛이 섞인 눈동자를 번뜩이며 주춤거리는 가디언들에게 읊조렸으니.
“덤벼라. 죽든가.”
그건, 실로 섬뜩한 도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