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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천마-90화 (90/197)

울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테의 육신을 뒤덮은 묵빛 액체가 흔들렸다.

그는 초절정이 되며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내력을 가늠하며 빠르게 돌진했다.

앞을 가로막지 않아도, 움직이는 마수는 모조리 잡아서 뜯고, 찢고, 베고, 짓눌렀다.

그 덕분에 그가 지나간 자리엔 오직 죽음만이 가득했다.

-우, 우어어어!

-끼끽! 끼기기긱!

그쯤 되자 두려움을 모르던 마수들의 뇌리에도 ‘공포’라는 감정이 학습되기 시작했다.

놈들에겐 실로 낯선 광경이었을 터였다.

본디 그들에게 인간이란 벌레이니까.

때때로 죽는 동족이라 한들, 벌레에 잘못 쏘여 죽었다는 감흥일 것이다.

그것은 작게 보면 헤프닝이고, 크게 봐도 사고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공포가 학습된다.

그 어떤 벌레도 지금처럼 동족을 학살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무심결 뒷걸음치며 머뭇거림에도 마수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것인지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죽음을 피해간 마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쿠구구구구.

〔프란틴 동쪽 성벽, 넘었습니다!〕

마침내 제공권을 일부를 확보한 연합 함대의 비행함이 프란틴 상공으로 밀고 들어왔다.

곧 지휘함에 오른 클리에의 거친 외침이 통신기를 가득 채웠다.

〔갈겨! 갈기라고!〕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소령님이……!〕

〔이 멍청한 새끼들아! 여태까지 보고도 모르겠어?〕

통신기 너머에서 그녀의 답답한 심정이 온전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클리에는 드물게 구릿빛 피부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누가 누굴 걱정해? 쟤 괴물이야! 알아서 피하든 맞아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든 할 테니까 일단 쏘고 보라고!〕

〔아, 알겠습니다!〕

함내에서 제독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그녀가 일갈하자 곧 부함장은 비행함 내부 통신기를 들고 그녀의 명령을 사수들에게 전달했다.

〔전 사수, 단테 소령의 최대한 단테 소령의 앞쪽을 겨냥하고 포격해라!〕

말이 앞이지, 조금만 삐끗해도 자칫 아군을 죽일 수도 있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부함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연합 왕국의 비행함들은 비행 마수들을 견제할 최소한의 화력을 제외하곤 일제히 포대를 지상으로 겨눴다.

클리에는 부함장에게 완료되었다는 통신을 받자, 곧바로 외쳤다.

〔갈겨어어어!〕

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쏘아진 수십, 수백 발의 마력포가 단테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수많은 마수를 그야말로 갈아 버렸다.

민가는 물론, 공화국의 구획 일부를 통째로 평지로 만들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었기에 자욱한 연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지축을 흔드는 폭발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동시에 뒤늦게 연합 왕국 함선의 뒤를 쫓은 다른 비행함들이 프란틴 상공으로 들어왔다.

꽈악.

세르겐은 의자 끝을 쥐었다.

동시에 침을 삼키며 마수와 단테를 한꺼번에 삼켜 버린 연기 너머를 지그시 응시했다.

‘저 정도 화력은.’

나이트 프레임에 한해선 제국에 비견할 국가가 없지만, 비행함과 마력포를 다루는 건 연합 왕국이 제일이다.

그리고 특히 클리에 제독이 이끄는 함선의 화력은 가히 왕국에서도 수위를 다툰다.

……웬만한 마수들은 단번에 녹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비단 세르겐뿐만 아니었다.

지상에서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검은 연기에 닿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쿠웅!

정적으로 가득 찬 대지 위로 묵직한 울림이 스쳤다.

이윽고, 서서히 바람에 흩어지는 검은 연기 사이로 거대한 갑주가 철그럭거리니.

〔설마 했는데…….〕

클리에의 목소리가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리고 곧 포격으로 인해 굴곡진 평지 위로 벤데타가 우뚝 서니.

견갑에 매달린 보랏빛 천이 휘날렸다.

눈가에 맴도는 안광이 번뜩였다.

빈틈없이 연결된 기체의 육신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가볍게 몸을 털었다.

스윽.

이윽고 그의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 조금 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살덩이를 눈에 담았다.

어떤 장기를 형상화하지도 않은, 단순히 수많은 살점을 뭉쳐 만든 듯한 그것은, 어느새 도약하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단테는 확신했다.

저 안에 그날 놓친 괴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꿀렁!

의회를 지지대 삼아, 프란틴의 상공에 자리한 거대한 살덩이의 바깥에 긴 선이 그어졌다.

가로로 그어진, 언뜻 상처처럼 느껴지는 그것은 곧 쩌저적……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의 거대한 눈이었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치솟았다.

검은 동공을 감싸듯 자리한 흰자는 인간의 그것과 닮아 있었으나, 동시에 너무나도 괴리된 모습을 하고 있다.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내 동공 주변을 감싸는 살덩이까지 함께 뜯은 모습이 저러할까.

데구르르, 놈이 눈알을 굴렸다.

머지않아 단테를 발견한 눈동자에 일순간 핏줄이 도드라진 순간, 단테는 그 즉시 대지를 박찼다.

콰직! 콰과광!

아니나 다를까, 단테가 대지를 박찬 그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는 그대로 매몰되고, 곧 거대한 손처럼 생긴 붉고, 푸른 살덩이가 단테를 잡기 위해 뻗어졌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거인의 살가죽을 벗긴 듯 꿈틀거리는 근육은 당장이라도 벤데타를 틀어쥘 듯했다.

때문에 클리에는 물론 세실과 리베라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려던 그때.

단테는 흘러가듯 유려한 움직임으로 거인의 손을 피했다.

그러고는 곧 놈의 손등 위에 올라 어느새 뽑혀 있는 검을 내리니.

〔살덩이를 끌어모아 인간을 흉내 낸다고 한들, 결국 괴물일 뿐이지.〕

비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울린다.

괴물이 인간을 흉내 낸다라…….

이 얼마나 가당찮은 짓인가.

인간답지 않은 인간들이 만연한 세상에서, 진짜 괴물임에도 인간을 흉내 내는 모습은 진정한 의미로 우스웠다.

스릉.

때문에 단테는 검을 들었다.

동시에 그는 일전에 놈의 유모를 죽였던 그 검격을 다시금 그으니…….

그것은 놈에게 보내는 선전포고임과 동시에, 이뤄질 미래를 암시했다.

-네 유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너 또한 내 손에 죽으리라고.

백월신공(白月神功).

묵월참(墨月斬).

이윽고 늘어져 있던 검이 궤적을 따라 길게 반월을 퍼트렸다.

나아가 그어진 살점은 길게 뻗어진 검로에 일순간 움찔거리다가 핏물을 터트리며 대지로 추락하니.

쿠우우웅!

포격으로 인해 파인 구덩이에 마수의 살점과 핏물이 가득 찼다.

단테는 일격에 놈의 팔을 끊어 버렸고, 그가 탄 벤데타는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떨어지는 그 순간 공격을 당하리라.

데구르르르르…….

그것을 아는지 놈은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그때.

〔일단…….〕

단테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가고, 곧 벤데타의 발이 추락하던 살덩이를 밟고 앞으로 뻗어지니.

검은 기체는 하나의 긴 잔상을 남기며 단번에 놈의 앞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정확히 놈의 검은 동공에 자리한 단테는 곧바로 기체를 역소환하며 덧붙였다.

“이 역겨운 눈부터 뜯어 주마.”

동시에 그의 손이 동공에 깊게 박혔고.

콰그그그그극!

실로 섬뜩한 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다.

기갑천마

서로를 죽이고자

일개 인간의 손이 거대한 눈동자의 동공에 길고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찍어 내려진 자리에는 핏물이 터졌고, 곧 밀려오는 고통에 거대한 살덩이가 부르르 떨렸다.

눈에서 터져 나온 핏물이 뿌려지듯 흩날렸다.

원래대로라면 단테의 몸에 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감히 단테에게 닿지 못했다.

치이이익!

일전에 수많은 마수의 핏물이 그러했듯, 그의 몸을 맴도는 호신강기에 타들어 가 녹아내릴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때. 고통에 신음하던 놈은 무언가 결심한 듯 꿈틀거렸다.

〔……어, 어어어!〕

〔소, 소령님! 위험합니다!〕

놈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다.

지상과 공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군인들의 외침에, 단테는 곧 자신을 감싸는 그림자를 느끼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스스슥.

마치 가둬서 압사시키겠다는 듯, 놈의 눈꺼풀이 빠르게 닫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막아! 일단 갈기고 보라고!〕

그것을 본 클리에의 다급한 명령에 잠깐 멈춰 있던 함대의 포대가 살덩이를 향했다.

그러고는 그녀는 곧바로 부함장에게 모든 권한을 대리시킨 후 격납고를 향해 내달렸다.

‘제기랄! 그러니까 왜 기체에서 내려서는……!’

그녀도 단테의 무력을 모르지 않았다.

연합 왕국의 정보부가 보내온 정도를 읽었기에, 그가 과거 초인이라 불렸던 이들처럼 싸울 수 있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도가 있다.

애초에 초인들이 마수를 성공적으로 막아 냈다면 어째서 나이트 프레임이 개발되고 어째서 그들이 사장되었겠는가.

콰아아아앙!

퍼어엉!

〔화력을 집중해라!〕

지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세실은 눈앞을 가로막는 마수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리곤 강습 부대의 모든 화력을 반쯤 닫힌 살덩이의 눈꺼풀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니.

쿠구구궁!

지하에서 솟구친, 단테를 덮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붉고 푸른 팔들이 그들의 포격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찢어지고 갈라져도 또 다른 살덩이가 나와서 막아 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인간들은 아득한 과거에 실존했었다는 마계의 존재를 떠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잠시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세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단테를 알고 있는 모두의 머리에 공통된 의문이 떠올랐다.

‘어째서, 피하지 않지?’

그 순간.

살덩이의 눈꺼풀이 단테와 눈동자를 동시에 삼켰고, 이내 갈라졌던 선마저 사라졌다.

그때 비행함에서 떨어져 쿠웅-! 소리와 함께 대지를 디딘 클리에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외쳤다.

〔제기라아알!〕

분함을 짓씹은 목소리였다.

동시에 프란틴을 뒤덮은 마수들이 일제히 포효하며 더욱 날뛰는 신호탄이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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