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89화 (89/197)

단테는 새롭게 나타난 최상급 마수가 카트린을 노리려던 순간, 곧바로 도약해 그대로 놈의 더러운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미처 피하지 못한 최상급 마수의 육신이 허공에 붕- 뜨더니, 이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던 건물들을 부수며 폐허의 잔해 속으로 뒤섞였다.

-콰과과과광!

“끼에에엑!”

최상급 마수쯤 되면 어지간한 마수들은 능히 깔아뭉갤 정도로 거대하다.

그 때문에 단테의 주먹에 대지로 추락한 놈의 몸에 깔려 뭉개진 하급 마수들의 육신이 짓눌리며 흐른 핏물이 대지를 적셨다.

-우어어어!

과연 최상급 마수는 최상급 마수라는 것인지 놈은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감히 건방지게 자신을 공격한 하찮은 벌레를 찢어 죽이겠다는 듯 주먹을 든다. 그러나 그 순간.

파앙-!

공기가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기체가 허공을 가르며 놈을 향해 뻗어지듯 날아왔다.

당연히 그것을 잡으려 손을 뻗는 놈이었으나…….

〔윽, 넌 내가 본 괴물 중에 제일 역겨운데?〕

그때 거대한 근육질 거인과 같은 모습을 한 놈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은색 섬광이 번뜩이고 놈의 등에 긴 상처가 터졌다.

푸슛!

좁고 긴 상처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러나 정작 놈을 벤 리베라-모스트리의 통신기에선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울린다.

〔……너무 질기네.〕

물론 그 말을 들은 최상급 마수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등 뒤에 있는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 것은 놈에겐 최악의 선택지였으니.

〔그런데 너, 깡 좋다.〕

리베라는 자신을 향해 뻗어진 주먹을 아주 가볍게 피한 직후, 어느새 놈의 뒤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힐끔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나였으면 등이 좀 잘린다고 단장을 등지진 않았을 텐데.〕

악동과 같은 장난기를 머금은 목소리에 묘한 위화감이라도 느낀 건지, 놈은 뒤늦게 고개를 뒤로 돌리며 단테를 다시 바라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도 한참 늦은 후였다.

콰드득!

벤데타의 손아귀가 근육질로 가득 찬 두꺼운 목을 틀어쥐었다.

동시에, 검은 혈관을 연상시키는 케이블을 따라 단테의 내력이 질주했다.

뿌드득-거리는 목덜미의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려던 마수는 곧 귓가를 스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닥쳐라. 시끄럽다.〕

분노도, 성가심도 없다.

다만 그저 정말로 시끄럽기에 내뱉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본능에 각인된 무언가를 일깨웠다.

-우어어어!

두려움이 섞인 괴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단테는 멈추지 않았다.

고름이 섞인 얼굴은 핏물이 닿지 않아 서서히 메말랐고, 곧 단테는 마치 작은 공을 쥔 듯한 손 모양으로 단번에 놈의 심장을 찔렀다.

푸슉- 따위의 피육음이 귓가를 스쳤다.

동시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던 놈의 아킬레스건을 리베라의 모스트리가 끊자, 놈은 단테의 손에 심장이 꿰뚫린 모습 그대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쿠웅!

폐허 위를 구르던 시체들이 거대한 육신이 허물어지며 뒤덮였다.

여전히 전장에는 온갖 양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 공간만큼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숨을 죽이던 시민들도, 강습병들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던 중하급 마수들도, 하다못해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법국의 기체들도.

사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단테의 압도적인 무력이었으나, 그렇기에 경이로운 것이다.

툭.

하지만 정작 단테는 꿈틀거리는 놈의 심장을 잠시 내려보다가 곧 쓰레기를 버리듯 바닥에 던지곤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한 방향은 당연하게도, 조금 전 죽인 곰을 닮은 마수 위에 편하게 누워있는 카트린 준장의 기체였다.

쿠웅-거리는 진동과 함께 앞에 다다른 단테는 곧 시선을 내렸고, 동시에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던 카트린은 단테의 접근을 눈치채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상황이 급하니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이윽고 뜬 한쪽 눈에는 서서히 꺼져 가기 전, 마지막 불씨처럼 타오르는 의지가 서려 있다.

단테는 그녀의 말을 끊지 않고 다만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팔을 잃은 채 진통제에 의지하여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는 그녀의 말을 간결함과 동시에 공손했다.

이미 그를 인정한 지 오래다.

존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전투가 시작된 후, 1시간쯤 지났을 겁니다.”

죽어 간 이들이 내뱉은 정보를 취합하고, 직접 본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을 한데 모아 그에게 진실을 전달한다.

“다행히 쿠데타를 위해 병력을 모아 온 터라 초기에는 어느 정도 응전이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이 일의 원흉이라 추측되는 ‘그녀’를 찾았죠.”

그때를 회상했다.

이 일의 원흉이라 생각된 백발의 소녀를 찾은 후, 카트린은 뒤늦게 병력을 수습하고 합류한 헤튼 대령과 함께 소녀를 죽였다.

……아니.

“죽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녀에게 꽂힌 화력은 엄청났다.

어지간한 최상급 마수는 단번에 녹여 버릴 정도였으니 공화국으로선 비장의 한 수였고, 당연하게도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마수의 시체들이 의회를 향해 모여들었습니다.”

소녀는 죽지 않았다.

걸친 옷이 열기에 녹아내린 후 그들은 그 괴물이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수많은 살점은 소녀를 심장으로 삼아 저렇게 크기를 키워 나간 것이다.

어느새 카트린의 숨이 서서히 느려졌다.

그녀는 점차 흐려져, 이젠 단편적인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단테를 향해 덧붙였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혀, 중요한 모든 정보에서 누락된 그녀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카트린 준장.〕

이윽고 단테의 입이 열렸다.

그는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아주 간결한 답을 내뱉으니.

〔쉬어라.〕

그의 말을 들은 카트린은 무심결에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의자에 완전히 몸을 묻은 그녀는, 언제 다 태웠는지 모를 담배의 필터를 씹으며 눈을 감고는 답했다.

“……부디, 자유를.”

부디 자유를.

단테는 그 단어를 곱씹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어떤 것일까.

단테는 곧 간결한 결론을 내렸다.

‘마수가 없는 세상.’

벤데타의 검은 심장은 그의 생각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두근거렸다.

동시에 단테의 기체가 대지를 디딘 후 단번에 도약하니.

콰아아앙!

일순간 대지가 진동함과 동시에 파편이 죽은 마수들의 위로 추락했다.

당연히 그를 혼자 보낼 순 없었기에, 리베라와 강습병들이 그 뒤를 바쁘게 쫓았다.

다만 세실은 시선을 내려 쓰러진 기체 안을 응시했다.

프란 공화국의 푸른 제복을 입은 여자.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없었다.

왼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카트린의 숨은 이미 멎어 있었다.

하지만 세실은 보았다.

‘……후련해 보여.’

그녀는 웃고 있었다.

환한 웃음도 아니지만, 너무나 평온한 웃음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마치 이제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세실은 손에 쥔 창을 들고 저 멀리, 게걸스럽게 크기를 키워 가는 거대한 살덩이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앞으로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기갑천마

무너지는 수도(3)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아남은 곳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거주 구획이었다.

평소라면 자동차와 마차, 사람들의 웃음이 오갔을 거리였으나 지금은 오직 죽음과 절망, 공포와 두려움만이 자리할 뿐이다.

“끄아아아아악!”

“트, 틀렸어.”

골목 사이사이,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 아래에는 살아남은 군인들과 시민들이 몸을 움츠리며 숨을 죽였다.

노인과 손녀.

남편과 부인.

군인과 아들.

갑작스럽게 다가온 재앙에 대항하기에, 일개 인간들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그들은 눈앞의 참상을 마주하고서야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게걸스럽게 벌리는 입.

어지간한 2~3층 건물들은 발밑에 두는 거대한 크기와 인간을 간식거리처럼 삼키는 모습을 본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실금했으며, 누군가는 분노로 입술을 짓씹었다.

그들 중 전쟁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참혹하리라 생각한 이들도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국의 수도에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말과 같다.

때문에 그들은 수도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그저 바깥의 참상을 듣고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전선이 밀리던 시대는 지났다.

50년이란 시간 동안 인류는 마수들과의 전쟁에 적응했고, 위태롭지만 나름의 평화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평화는 필연적으로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

전선에서 몇 마리의 마수가 죽었든.

옆집의 아들이 군인으로 나가 시체로 돌아오든.

그들에게 전쟁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어쩌면 고리타분했을 시대적인 흐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비로소 오늘 깨달았다.

-끼이익, 끼기기긱!

마침내 울타리는 무너졌고, 현실을 외면하며 얼마 남지 않은 풀들을 씹어 대던 양들은 늑대들에게 사냥당할 일만 남았다는 걸 말이다.

콰아아아앙-!

귓가를 때리는 폭음에 건물이 무너지고 폐허가 된 잔해 아래에 또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 노인은 품 안의 손녀를 꽉 끌어안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탄식했다.

“프란이…… 무너지는가.”

그것은 언뜻 회한이었으며, 동시에 잃어 가는 것에 대한 원통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과 사람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건물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 할아버지!”

노인의 품을 의지한 채, 밀려오는 두려움을 참고 있던 손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벽을 가리켰다.

동시에 몇 안 되는 군인들 역시 그쪽을 바라보았고, 이내 눈에 체념이 스쳤다.

쿠구구구궁!

쩌저적!

동시에 골목의 하늘이 어둡게 물들었다.

벌써 밤이 찾아온 건 아니었다.

그저 누런 이빨을 드러낸 마수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뿐.

-크르르르르.

톱니처럼 살짝 말려진 이빨 사이로 세 갈래로 찢어진 혀가 꿈틀거린다.

세 쌍의 눈은 제멋대로 얼굴에 붙어 있고, 온갖 짐승을 억지로 떼어다 붙인 듯한 모습은 혐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 아아아…….”

“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은 이미 희미해졌다.

거대한 포식자의 앞에 선 나약한 피식자.

본능에 박힌 절대적인 먹이사슬이 외쳤다.

너희들에게 남은 것은 그저 가축처럼 죽는 것뿐이라고.

그야말로 압도적인 공포.

노인은 품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손녀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동시에 저 멀리 무너진 벽 사이로 보이는, 짓밟힌 태양 십자가를 향해 빌었다.

‘부디 죽음의 끝자락에서 이 작은 생명만은 데려가지 마소서.’

하지만 늙은 손은 떨렸다.

바닥으로 추락하고 짓밟힌 태양 십자가가 그러하듯, 신의 구원 역시 같으리라는 걸 짐작하기에.

그리고 마침내.

-크르르륵!

게걸스럽게 입을 벌린 놈의 대가리가 골목 안으로 밀어 넣어지고, 두려움에 섞인 비명이 막 물꼬를 트려던 찰나.

멈칫.

거대한 마수가 그대로 멈췄다.

동시에 마치 갈고리에 꿰여 끌려가는 짐승과 같이 놈의 몸이 벽과 함께 뒤로 튕겨진다.

-콰과과과과광!

울리는 폭음과 무너진 벽의 잔해가 바닥을 구른다.

동시에, 그들은 건물째로 끌려간 마수의 최후를 바라보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콰득! 콰드드득!

놈은 바닥을 굴렀다.

그 위에는 마수의 꼬리를 틀어쥔 채 발버둥 치는 놈의 놈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거대한 검은 거인만이 자리해 있었다.

-끄케에에에!

콰드득! 콰득!

괴성을 터트리며 팔다리를 흔들고 꼬리로 검은 기체의 허벅지를 때렸다.

그러나 정작 놈을 아주 깔끔하게 찢고 있는 기체는 일말의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깜빡거린 수조차 샐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찰나의 시간. 마침내 거인이 일어났고, 곧 그들의 발치에 묽은 액체가 닿았다.

“오, 시, 신이시여…….”

시선을 내린 노인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낡은 가죽 신발에 닿은 그것은 다름이 아닌 마수의 핏물이었으니까.

파앙!

그리고 다시금 노인과 사람들이 시선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건, 시체라고 부르기도 뭣한 살점들과 인근을 뒤덮은 엄청난 핏물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