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다다다당!
두꺼운 허벅지가 수많은 마수가 추락해 구덩이가 생겨 버린 폐허 속으로 박아 넣은 하체를 지탱했다.
손에 쥔 기관총이 허공에서 강하하는 비행 마수의 날개를 집중적으로 찢어발겼다.
〔젠자아아앙!〕
로한의 기체 레기온의 모든 탄환은 모두 그의 마나다.
물론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마나 용량을 가진 그였기에 지금은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이렇게 많아아!〕
그들이 프란틴에 강습을 성공한 직후, 함대는 끝이 없이 구름 너머에서 날아오는 비행형 마수들에 의해 한발 물러선 후였다.
그 과정에서 법국의 기체들이 일부 합류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제공권을 빼앗긴 것이다.
물론 그리 암담한 상황은 아니었다.
일차적으로 지원군에 힘을 입은 공화국 군대-수도 방위군의 생존자들이 다시금 상공을 향해 포를 쏘아 대기 시작했고, 로한을 비롯한 강습병들 일부 역시 비행 마수들을 견제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놈들의 추락을 막을 순 없었으나 제국군에는 마수와 비견될 ‘미친년’이 존재했다.
〔꺄하하핫!〕
리베라는 실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전용기 모스트리의 특성을 살려 그야말로 귀신처럼 움직였다.
추락의 충격으로 당장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들을 찢어발기는 것부터, 때때로 지상에 근접한 비행 마수의 날개를 잡아 뜯기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같은 제국군들마저도 일순간 오한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상급 마수의 목에 창을 찔러 넣으면서도 세실의 시선은 단테의 뒷모습에서 떠나지 못했다.
콰과광!
그의 검은 기체가 폐허가 된 잔해를 짓밟고 앞으로 쏘아지듯 내달렸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고, 곧 거대한 곰과 같은 모습을 한 마수가 그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어지간한 기체와 맞먹는 크기를 가진 놈의 육신은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자아냈다.
저런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어- 따위의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서걱.
그러나 단테가 탄 벤데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놈의 손목을 베어 버렸고, 곧 고통과 분노로 입을 벌리는 놈의 혀를 잡아 그대로 뜯어냈다.
-쿠어어어억!
단번에 뿌리까지 뽑혔는지, 길게 늘어진 검은 혀가 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 뒤를 따르듯 핏물이 흩뿌려지고, 단테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얼굴을 단번에 쥐고 터트렸다.
파앙!
풍선이 터지듯 두개골이 일그러지고 뇌수가 흘렀다.
이윽고 거대한 육신이 기울어지고 다시금 먼지를 일으켰으나, 단테는 전혀 개의치 않고 도시의 중앙으로 향했다.
〔괴, 괴물이네요. 정말로.〕
세실의 뒤를 따르던 유엘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젠 동기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벤데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세실은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때 진동이 울린다.
쿠구구궁…….
단테가 단번에 찢어 죽인 거대한 곰 마수의 시체는 지나간 단테와 뒤따르던 세실의 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 좌측에는 거대한 교회가 있었다.
세실의 시선이 교회를 향했다.
정확히는, 교회 너머에서 날아오고 있는 무언가를 향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녀가 교회를 본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콕피트가 반쯤 뜯기고, 왼쪽 팔과 다리가 날아간 공화국의 나이트 프레임이 교회를 부수고 날아와 곰을 닮은 마수 위로 추락했다.
“쿨럭!”
콕피트가 뜯어졌기 때문일까.
고통이 섞인 핏물이 목에 가득찬 기침이 울렸다.
이윽고 뒤에서 일어난 이변에 단테는 고개를 돌렸다.
“……흐, 망했어.”
그리고 곧 드러난 콕피트 안에서 자조적인 중얼거림을 내뱉는 파일럿을 본 단테는 안광을 번뜩였으니.
‘저 여자는…….’
그건 다름 아닌.
‘카트린 준장.’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으니까 말이다.
기갑천마
무너지는 수도(2)
쿠웅!
태양신 솔라를 모시는 거대한 교회의 태양 십자가가 하릴없이 추락했다.
동시에 사방으로 자욱하게 흩어진 먼지들이 시야를 어지럽게 가렸다.
끼이익…….
카트린이 탑승한 나이트 프레임의 기체가 몸을 일으키려는 듯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윽고 멈췄다.
전기가 나간 전등처럼 깜빡거리던 안광이 꺼졌고, 뜯어진 콕피트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이윽고 체념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이미 기체의 왼쪽 팔다리가 날아갔다.
그 말은 곧 그녀의 왼쪽 팔다리에도 엄청난 대미지가 축적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숱한 전투로 수없이 겪은 고통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쿨럭!”
기침을 내뱉자, 핏물이 입가를 따라 길게 흘러내렸다.
동시에 아랫배와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시선을 내리자 곧 그녀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흐, 망했어.”
어쩐지, 기체에서 박살 난 건 왼쪽 팔다리인데 오른팔에 감각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다.
그녀는 텅 비어 버린 오른팔과 뜯겨 나간 콕피트의 조각이 꽂힌 배를 바라보며, 더욱 강해진 고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친 사실을 보기 전에는 몰랐을, 진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이다.
아마 급격하게 시야가 흐려지고 몸에 힘이 빠지는 이유도, 배와 오른팔의 출혈 때문이리라.
“읏.”
그녀는 잘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겨우 들어 품속에 찔러 넣었다.
잠시 주머니를 뒤지자 곧 찾고 있던 주사기 하나가 딸려 나왔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손으로 주사기의 바늘 끝을 허벅지에 찔렀다.
이윽고 내부의 약물이 몸에 밀려들어 가고, 한결 노곤해진 몸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때.
쿠우웅!
거친 발걸음과 함께, 교회가 무너지며 일대를 뒤덮은 흙먼지를 꿰뚫으며 거대한 마수가 걸어왔다.
마치 다 잡은 먹잇감을 깔보듯 천천히 걸어온 놈의 발이 교회의 파편을 짓밟는다.
다름 아닌, 일전에 의회를 박살 냈던 놈이었다.
황금으로 제작된 태양 십자가는 얼굴에서 떨어진 고름 섞인 침에 녹아내렸다.
꿀렁거리는 근육에는 상처들이 즐비했으나 그마저도 너무나 빠른 속도로 재생이 되고 있었다.
카트린의 시야에 놈의 모습이 들어온다.
거대한 거인과 같다.
다만 얼굴에는 입을 제외한 어떤 이목구비도 없이 누런 고름으로 가득 찬 모습이 역겨울 뿐이다.
진통제 덕분일까.
어느새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최상급 마수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는 와중에도 떨지 않았다.
다만 덤덤한 시선으로 그저 생각할 뿐이다.
‘이쯤 했으면…… 된 건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실감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언젠가 들었던 상관의 말을 떠올렸다.
-자네는 아마 오래 살진 못할 거야. 쓸데없는 생각 그리고 책임감이 많거든. 그런 부류는 대개 일찍 죽어.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둘 다 없이 살았더라면 쿠데타 따위 하지도 않았겠지.
“쿨럭.”
기침에 또다시 피가 섞였다.
그 상관도 그리 오래 살진 못했다.
웃긴 점은 그의 성격이 자신과 꽤나 닮았었다는 걸까.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탈옥하고 들었던 수많은 소식 중 ‘그’가 공화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으니까.
머릿속에 흑발과 적안,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이를 알고 놀랐지.’
처음 마주했을 땐 그저 동안의 노장인 줄 알았다.
무력을 보았을 땐 그저 경외감에 차올랐고, 그가 떠날 땐 진심으로 제국이 부러웠다.
‘그래도 알릴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일의 원흉과 저 살덩이의 정체를 그에게 알리고 죽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여기까지인 듯했다.
스윽.
이윽고 마주의 그림자가 콕피트 바로 위에 드리웠다.
그녀는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때.
콰아아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마치 살덩이가 허공에 날았다가 대지에 박힌 듯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머지않아 우어어어-거리는, 고통과 두려움이 섞인 괴성이 터졌다.
기다리던 죽음도 고통도 전무하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떠 앞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본 그녀는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도 실소를 터트렸다.
“하핫.”
유쾌한 웃음이다.
그녀는 어느 정도 감각이 돌아온 왼팔로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작은 불씨가 담배의 끝자락을 붉게 물들이고 곧 회색 연기가 폐부로 밀려들어 가니.
그녀는 시야를 채우는 검은 기체를 응시하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또 신세를 져 버리는 건가…… 거참.”
꺼져 가던 눈에 일순간 생기가 맴돌았다.
동시에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문 채 꽤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그…… 아니, 단테를 기다렸다.
해 줄 말이 많다.
‘빨리 와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리 길게 버티긴 힘들 듯싶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