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87화 (87/197)

단테의 근처에 앉아 있던 클리에는 결국 짜증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으아아악! 진짜 가지가지 하네!”

그러나 지금만큼은 그 누구도 그녀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세실마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로렁 대장을 바라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곧, 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미카엘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라도 상상을 초월한 공화국의 머저리 짓에 익숙해질 순 없었는지,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 더욱 희게 변했다.

“적기라고 여겼겠지요.”

로렁 대장은 가뜩이나 좁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일국의 전쟁 장관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이 나약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긴 시간 동안 탄압받던 군부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공화국의 군인들은 나라를 지킴에도 끊임없는 탄압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은 왕국 때에 권력을 휘둘렀던 군부의 힘을 두려워하는 의원들과 민중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죠.”

그것을 알기에, 군부는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지워진 책임과 의무에 신경을 쏟으며 그저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총통은 선을 넘었습니다.”

로렁은 마치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그저 허심탄회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그는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마 카트린…… 그 아이가 구심점일 겁니다. 판단력과 통솔력이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니, 이왕이면…….”

그제야 모두의 표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뒤늦게나마 세르겐이 왜 평온한지 깨달은 것이다.

단테는 세르겐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건가.’

사실 제국과 법국, 연합 왕국의 입장에선 일장일단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더욱이 다른 2개의 국가와 달리, 그들은 카트린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기억을 되짚어 안대를 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은 여자였다.

‘썩 유능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가치는 있었던 여자다.

물론 능력적으로 유능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구역질이 나는 총통보단 낫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톡톡.

단테는 팔걸이의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곁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향했다.

눈가를 살짝 덮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적안이 흔들린다.

때문에, 세르겐이 그의 의견을 물으려던 그때.

콰아앙!

“크, 큰일입니다아!”

곧 회의장이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제국군의 병사 한 명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뒤늦게 경비들이 그를 끌고 나가려 했으나, 이윽고 내뱉어진 말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췄다.

“프, 프란틴……! 프란틴이!”

회의장 안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닿고, 곧 병사는 척후 부대가 보낸 급보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으니.

“마, 마수들에 의해 함락되고, 처, 처음 보는 괴물이 도시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뭐라고?”

순간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특히 로한은 허허 웃으며 권총을 뽑았다.

미친놈은 죽이는 게 낫다고 말이다.

하지만 곧 병사가 품 안에서 급보를 꺼내 세르겐에게 건네자 그들은 곧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을 할 수 있는 마수들이 마수들을 잡아서 하늘에서 떨어트리고, 전투 끝에 죽은 마수들의 살점이 한데 모여 거대한 구형의 무언가를 만들었다…….”

하나같이 전례가 없는 일들이었다.

때문에 회의장 안에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정적만이 맴돌 뿐이었다.

그러나 그때.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군화가 나무판자에 닿은 후 떨어지고, 곧 검은 코트의 끝자락이 펄럭였다.

그는 정보를 가져온 병사의 곁을 지나 회의실을 나서며 근처에 서 있던 장교에게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에, 예?”

“격납고로 달려가서 말해라.”

내딛는 걸음에 목에 걸린 흑옥이 흔들린다.

동시에, 계단을 향해 걸으며 덧붙인다.

“프란틴으로 간다.”

기갑천마

무너지는 수도(1)

프란 공화국의 영토는 제국이나 연합 왕국에 비해선 비교적 작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적인 기준에서 작은 영토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이 곧바로 비행함에 올랐음에도 수도인 프란틴까지 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프란 공화국 소속 비행함, 접근합니다!〕

그사이 이변을 감지한 공화국의 일부 함대가 그들에게 접촉한 후,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 합류하자 곧 함대는 군단급으로 불어났다.

물론, 제국과 연합 왕국, 법국과 공화국의 비행함들이 뒤섞이고 명령 체계도 정해지지 않아 그리 큰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함대를 이룬 그들은 더욱 박차를 가해 프란 공화국의 수도인 프란틴으로 향했다.

폐허가 된 마을과 도시를 지나고. 때때로 무리에서 낙오한듯한 비행형 마수들을 마력포로 찢어발겼다.

추락한 핏물이 대지를 적셔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어두운 새벽의 장막이 걷히고 여명이 떠오르는 하늘에 비행함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뜨겁게 달아오른 마석들에서 푸쉬이이…… 하는 연기가 흐를 정도였으나,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맙소사.”

눈앞의 광경을 본, 정상적인 사고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작’ 마석이 조금 심하게 과열된 것을 신경 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족히 수백, 수천에 달하는 비행 마수들이 프란틴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일국의 수도답게 거대한 도시 전체의 하늘을 포위하듯 뒤덮은 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그 물량이 아니었다.

“저건 도대체……?”

“끔찍해.”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다른 누군가가 화답했다.

꿈틀.

프란 공화국의 의회는 과거 프란 왕국 당시의 왕성을 철거하고 지어졌다.

당연하게 수도가 확장된 이후에도 도시의 중앙을 지켰다.

이전의 왕성보다 더욱 크고, 웅장한 모습을 한 채 말이다.

꿈틀.

그런 의회가 반쯤 무너졌다.

온갖 사치스러운 장식과 동상들이 즐비했던 정원은 땅이 뒤집히고 파헤쳐져 흙바닥을 드러냈고, 사방에 튄 건물의 부산물들이 바닥을 굴렀다.

꿈틀.

그리고 아직 간신히 원형을 유지 중인 의회 위로 떠 오른 붉은 구체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듯, 핏줄과 같은 무언가를 꿈틀거렸다.

그제야 회의장 안에서 보고를 들었던 모두는 정찰 부대가 말했던 ‘무언가’의 정체가 저것임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끼에에에!

구름 위를 날던 비행형 마수가 갑작스러운 포효와 함께 구름 아래로 급하게 강하했다.

동시에 성벽에 남아 있던 마력포들이 허공을 향해 포대를 돌렸으나 놈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일정 이상 하강한 놈들은 발밑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마수를 그대로 대지로 추락시켰다.

“마수를 떨군다는 게…… 저런 뜻……?”

콰아아아아앙!

족히 의회와 비견될 법한 크기를 가진 거대한 육신이 민가 사이로 추락하자, 빈약하게 짝이 없이 세워진 건물들은 과자가 부스러지듯 박살이 났다.

동시에 일렁거리는 흙먼지는 너머로 아직 죽지 못한 이들의 비명과 고통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

분명히 참혹하다.

사색이 되어 골목 사이를 달리는 노인.

폐허 속에 몸을 숨기는 어린아이들과 그저 멍한 눈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그들 중 마수를 실제로 본 이들이 몇이나 될까.

분명히 긴 전쟁이 이어짐에도, 전선이 고착된 이후 수도의 사람들에게 마수란 존재하지만 볼 일은 없는, 관측하지 못한 막연한 두려움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여기는 안전하겠지, 따위의 안일한 생각을 했던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광경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매우 섬뜩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언제 자신의 국가 또한 이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마수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각 말이다.

그러나 단테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건 바로 놈들이 전략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골치 아파지는군.’

단순히 하늘에서 침투하는 것.

조금의 지능이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전략이다.

그리고 놈들에게 지능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궤가 달랐다.

보통 마수…… 아니, 네임드라고 해도 놈들은 기만적인 책략대로 움직이기보다 일종의 사냥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성이 존재함에도 본능을 기반하여 행동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달간 이어진 마수들의 대대적인 침략. 그리고 틈이 생기자 곧바로 밀어붙인다니.’

방공망에 틈이 생긴 이유가 지속된 침공으로 전선이 무너져서일지도, 아니면 쿠데타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한 확실한 건 있었다.

‘놈들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단테의 적안에 위기감이 스쳤다.

중원에서와 달리, 놈들은 쉽사리 대륙을 무너트리지도 못했으나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의 시야 너머에 곧 비행 함대를 발견하고 접근하는 일련의 마수들이 들어왔다.

“격납고를 열어 주십시오.”

때문에, 그는 곁에 서 있던 세르겐에게 말하곤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단테의 말에 세르겐은 고개를 끄덕였고, 뒤이어 정신을 차린 이들 역시 단테를 따라 격납고로 향했다.

쿠웅!

그들이 복도를 지나 거의 격납고에 다다랐을 때, 함대와 마수가 격돌했는지 일순간 함내에 진동과 떨림이 울렸다.

그러나 격납고에서 단테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강습병들의 표정에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격납고에도 외부를 볼 수 있었기에, 그들도 이미 바깥의 상황은 인지한 후였다. 다만 그들은 보았을 뿐이다.

“꺄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아직 프란틴 내부에 살아 있는 시민들이 많았다.

비록 외곽이었으나, 여전히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군인들 역시 적지 않았다.

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기며.

기체에 탄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폐허 틈에서 숨을 죽이며.

이 지옥이 지나가길 바라는 이들이 있으리라.

강습병들은 자신들을 무표정으로 지나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격납고 앞에 선 단테의 뒤에 섰다.

끼긱.

우우우웅.

제각기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눈을 뜨고, 케이블에 매달린 궤도차에 오른 보병들은 총기를 든 채, 보다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신께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 마수들을 꿰뚫은 제국군의 전함이 프란틴의 외곽 상공에 떠올랐을 때.

터벅.

의회 위에 둥지를 튼 살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격납고의 끝자락에 발을 디뎠고.

파아아아앙!

곧 몸이 기울고, 검은 코트를 펄럭거리며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뒤를 이은 리베라와 로한의 기척이 느껴지고, 머잖아 강습하던 유엘이 외쳤다.

〔소, 소령님! 앞에-!〕

단테의 시선이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 너머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때마침 지상에 마수를 던지고 올라오던 비행 마수 한 마리가 부리를 벌리며 단테를 집어 삼키려 했다.

거리를 가늠한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윽고 단테는 목에서 느껴지는 검은 흑옥의…… 아니, 정확히 그 안에서 웅얼거리는 벤데타의 의견을 들었고, 곧 피식 웃으며 허공을 박찼다.

파앙!

뻗어진 발길질이 단테의 몸을 조금 앞으로 밀어 넣자, 곧 그의 육신은 거대한 부리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케이블에 연결된 나이트 프레임으로 강습하던 세실과 유엘과 페고르가 경악하며 다급히 기체를 운용하려 했으나.

‘어?’

세실의 시선이 뒤따라 하강하던 로한과 리베라에게 닿았다.

놀람에 창을 뽑아 든 그녀와 달리 그들은 단테가 먹힘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기체의 시력으로 확대된 그들의 표정은 전혀 뜻밖이었으니.

‘……웃고 있어?’

둘 다…… 웃고 있었다.

로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고, 리베라는 눈물까지 터트린 채로 단테를 삼킨 비행 마수를 비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세실의 시선이 비행 마수에게 닿았다.

강하하는 그들과 달리 하늘로 떠오르던 마수는 벌써 고개를 위로 올려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끼에에에에!

이변은 없었다.

놈은 그저 맛 좋은 먹이를 먹음에 만족하는 듯 드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실가 지금이라도 창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창을 든 그때.

콱.

짧디짧은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하늘을 날던 마수도, 세실과 강습하던 모든 이들도 마수의 배를 바라보았다.

작은 점이 생겼다.

그리고 곧 서서히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처럼 뱃가죽을 집어 삼켰다.

-끼, 끼에에엑?

당황한 놈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다급히 허공에 멈춰 섰으나, 회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놈을 집어 삼킨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묵환강(天魔默丸鋼).

무미건조한, 때때로 정적이라 느껴지는 단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웅거리는 내력의 흐름이 일순간 회전했다.

-끄레에르에게!

부리가 진동하고, 날개가 뒤틀리며, 거대한 육신이 허공에서 추락했다.

배에서 시작된 거대한 균열은 이윽고 거대한 공에 휘말린 낙엽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퍼어어어엉!

놈의 거대한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적잖은 높이에서 핏물과 내장, 뼈와 고름이 폭죽처럼 비산했다.

그리고 그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이 아닌 단테였으니.

휘이이잉!

그의 몸을 따라 묵빛의 아지랑이가 스쳤다.

분명히 마수의 배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였음에도, 몸은 물론 제복에도 어떠한 변화가 없었다.

〔대, 대체 저분은…….〕

무심결 중얼거린 강습 파일럿의 목소리에 세실은 답하지 못했다.

다만 멀어지다 대지에 가까워지자 ‘벤데타’라고 중얼거리는 단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세실 소령.〕

그 순간 단테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쿠우우웅!

검은 갑주를 입은 채, 서슬 퍼런 안광을 터트리며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 찬 대지에 선 벤데타가 프란틴에서 몸을 일으켰다.

〔단번에 저 살덩이에게 접근하겠다.〕

콰드드득!

그는 주변 민가를 기웃거리던 마수의 목을 단번에 잡아 부러트리곤, 때마침 대지를 디딘 그녀에게 덧붙였다.

〔엄호를 부탁하지.〕

비록 무미건조하지만 어째서인지 신뢰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그녀는 손에 쥔 창에 녹색 마나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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