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86화 (86/197)

“와아아아아아!”

“카트린 준장님 만세!”

카트린 준장의 반쪽짜리 시야에 환호하는 민중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분명히 탈주범인 그녀를 발견하면 체포해야 할 헌병들이 경례를 올렸고, 곧 공화국의 수도 프란틴으로 무혈입성한 그녀를 반긴 것은 다름이 아닌 수도 방위군 12연대장 헤튼 대령이었다.

“충성, 르위의 영웅을 뵙습니다.”

“영웅은 무슨…….”

그의 인사에 비록 안대를 썼다고는 하나, 여전한 미모를 가지고 있던 카트린의 얼굴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그러나 혁명의 구심점이 스스로를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녀는 묵묵히 헤튼이 준비한 군용차에 올랐다.

부우웅!

이윽고 대로를 따라 차가 달리고, 그들은 빠르게 의회 앞에 도착했다.

그러자 곧 헌병들에게 머리채를 틀어 잡혀 개처럼 끌려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쓸데없이 고급인 정장과 굶고 있는 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이 기름진 몸뚱어리는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

그들은 바로 총통과 의원들이었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

“이, 이건 내란이야! 내란이라고오!”

마치 저들이 과거의 귀족과 왕족들을 끌어내렸을 때와 같이 울부짖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곁에 앉아 있던 헤튼이 조소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입니다.”

이번엔 카트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를 좀먹는 쓰레기들.

그들을 지칭하기에 이것보다 잘 맞는 말은 없으리라.

그때 선두에서 끌려 가던 총통의 시선이 카트린에게 닿았다.

“이, 이 빌어먹을……! 지금 공화국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입으론 저런 애국자가 없다니까.”

다친 눈이 욱씬거렸다.

카트린은 문득 저 멍청하고 탐욕스러우며 무능한 놈들의 명령에 죽어 나갔던 수많은 부하를 떠올리며 이빨을 짓씹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총통을 데리고 가던 헌병은 방향을 바꿔 그녀의 앞으로 그를 끌고 갔다.

“준장님.”

뒤이어 헤튼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권총을 받아 쥐었다.

철컥.

“아, 아으으으!”

묵직한 장전 음이 울리자, 총통은 그제야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카트린은 끝까지 추악한 놈을 내려다보며 미간에 총구를 겨눴다.

“족히 5만은 넘을 거다. 내가 준장에 오르기까지, 네 머저리 같은 명령에 죽어 간 병사들이.”

“사, 살려……!”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고, 곧 타앙-! 하는 소리와 함께 총통의 뒤통수에서 핏물이 터져 나갔다.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처형이었으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군인들 누구도 총통을 안타깝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아아아아아!”

“총통이 죽었다아아!”

아니, 오히려 그들은 환호했다.

그것이 진심이든, 주변에서 언제 총구를 들이밀지 모르는 군인들에 의해 강제된 것이든 말이다.

“후…….”

죽은 총통의 시체가 광장으로 끌려갔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시작된 처형은 광장에서 다른 의원들의 목숨을 모조리 끊음으로써 끝이 날 것이다.

“일단 비상시국을 선포하시고 빠르게 남은 군부를 장악하시죠. 모시겠습니다.”

“그래야겠지.”

그런 그녀의 곁에는 헤튼을 비롯한 믿을 만한 장교들이 서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인도와 호위를 받으며 의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때.

-좋아, 날씨.

귓가로 바람이 스치듯, 소녀인지 소년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때문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와아아아아아!”

“이 쓰레기 같은 놈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분노한 민중과 그들을 통제하는 헌병들뿐이다.

하지만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목소리가 아닌가.

그녀는 민중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연히 주변의 장교들이 우려 섞인 눈으로 되물었으나, 정작 카트린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뭐냐, 대체 뭐지?’

직감이 울리고 있다, 무언가 위험하다고.

점점 물 온도를 높여 가는 것처럼 빠르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

카트린의 눈동자에 한 소녀가 맺힌다.

백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마치 옷을 대충 흉내 낸 듯한 옷을 입은 소녀는 웃고 있었다.

정확히 그녀를 바라보며 말이다.

그리고 그때.

소녀가 말했다.

-죽어. 벌레.

기갑천마

프란틴으로

재앙은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의회라는 이름의 왕궁에 앉아 있던 총통은 알고 있었을까?

그토록 무시하고 짓밟아 놨던 군인들에게 머리가 꿰뚫릴 거라는 걸.

카트린을 비롯한 군인들도 몰랐을 것이다.

여태까지 단 한 번의 마수 침공도 겪어 본 적이 없는 공화국의 수도가 하필, 거사를 일으킨 날에 침공받으리라는 걸 말이다.

“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앙!

시민들의 괴성과 폭음이 울렸다.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집은 무너져 폐허가 되었고, 사방으로 퍼진 파편에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맑기만 했던 하늘은 구름 너머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마수의 그림자에 가려져 어둡게 변한다.

수백에 달하는 거대한 육신이 대지로 추락하는 모습은 가히 지옥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카트린은 백발을 가진 소녀조차 잊은 채, 그저 멍한 눈으로 의회 위로 추락하는 마수를 바라볼 뿐이다.

이윽고 놈의 발이 의회의 거대한 원형 돔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온갖 돌과 나무, 자재들이 흩날렸다.

뿌득- 따위의 소리가 울리며, 움츠린 놈의 상체가 서서히 펼쳐졌다.

근육질의 몸에 도드라진 혈관이 터질 듯 부풀었다.

동시에 얼굴이 통째로 녹아내린 듯 누런 고름을 흘리는 놈은 잠시 주변을 살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지척에서 바라본 카트린을 비롯한 장교들은 그저 멍한 눈으로 자욱한 먼지 너머의 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최, 최상급 마수?”

언뜻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했고, 얼굴에 고름을 흘리는 마수라면 공화국의 외곽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놈이다.

당연히 놈을 단번에 알아본 그들의 얼굴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짙은 절망이 머물러 있었다.

그건 카트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륵.

지끈거리다 못해 뜨겁게 달아오르는 눈의 통증에 안대를 끌어 내렸다.

그러자 곧 비어 버린 안구와 안대로 가린 흉터가 모습을 드러냈으나,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아.”

다만 안대를 벗었음에도 완전해지지 않는 시야 너머로 무너지는 공화국의 수도를 눈에 담을 뿐이다.

쿠구구궁!

하늘에서 마수들이 추락했다.

이윽고 대지에 다다른 놈들은 거대한 육신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가볍게 머리를 튼 후 사방에서 비명을 내지를 뿐인 인간들에게 게걸스러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핏물이 튀었다.

죽음이 자리하고, 서 있기도 힘든 진동이 발밑을 흔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쿠데타를 위해 대동한 일부 기갑 전력과 수도 방위군들이 다급히 반격했으나, 애초에 허를 찔린 상황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했다.

라이플을 쥔 나이트 프레임의 팔이 꺾이고, 뻗어지는 촉수에 콕피트가 꿰뚫려 쓰러질 뿐이었다.

“주, 준장님!”

곁에 서 있던 헤튼 대령이 다급히 그녀의 팔을 틀어쥔 채 외쳤다.

뒤이어 몇몇 나이트 프레임들이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마수들을 피해 달려왔다.

하지만, 카트린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소녀를 찾아야 해.’

뒤늦게 머리를 스쳤다.

침공이 있기 직전 보았던 백색의 소녀가 말한 두서없는 읊조림.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 참사를 일으킨 건 다름이 아닌 그 소녀라고 말이다.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

인간의 악의를 마주한 벌레.

결정된 죽음에 매달린 밧줄.

수많은 섬뜩한 생각이 뇌리에 박혔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 섞여 있던 소녀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그 빈자리엔 패닉에 빠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나약한 인간들뿐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보았다.

구름 너머에서 비행형 마수들이 온갖 괴물들을 추락시켰다.

때때로 던져진 중급 마수와 하급 마수들은 추락함과 동시에 터지며 바닥을 기었으나, 그마저도 놈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신이시여.’

전례가 없는 공격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한다고 종용하는 장교들을 무시하며, 자신을 향해 손을 뻗던 파일럿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체를 빌려줄 수 있겠나.”

〔예?! 하, 하지만…….〕

온갖 비명과 폭음, 그리고 총성이 자리한 가운데에도 그녀의 입 모양을 보았는지, 외부 회선으로 연결된 통신기를 통해 파일럿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도망을 칠 수는 없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끌어 내렸던 안대를 다시금 묶으며 어느새 바닥에 닿은 기체의 손바닥에 덤덤한 발걸음으로 올라탔다.

“감옥에 갇히고, 그것에 반발한 부하들이 탈옥하자며 찾아왔을 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네.”

그녀가 감옥에 갇힌 이유는 의회의 결정이었다.

르위의 영웅이라 불리는 주제에 네임드 하나 죽이지 못하고 제국에게 손을 벌렸냐는 조롱이자, 동시에 그토록 많은 이들을 죽였다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더러운 꼬리 자르기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감옥을 나섰다.

그리고 쿠데타를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번뇌가 그녀를 괴롭혔다.

……과연 무너지기 직전의 나라를 뒤엎는 것이 옳을까? 그리고 그렇게 뒤엎는다고 해서 무언가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도, 목숨이 아까워서도 아니다.

그저 그녀가 바란 것은 하나뿐.

“최소한, 후대에 프란이란 이름을 남겨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시선이 콕피트를 넘어 파일럿에게 닿는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 빌어먹을 상황부터 수습해야 하지 않겠나.”

그녀의 말에 파일럿은 눈을 감았다.

침을 삼키고 손을 들어 콕피트와 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곧 빠르게 회전하던 마나 하트를 서서히 멈춘 채 기체와의 동화를 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끼이이…….

이윽고 거대한 기체의 움직임이 멈추고, 제국과 달리 전면에 부착된 콕피트의 입구가 삐걱거리며 내려왔다.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파일럿은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자유를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프란 공화국의 상징과도 같은 경례에 카트린은 그를 지나치며 어깨를 두드렸다.

털썩.

에이스들이 사용하는 기체와 달리 양산형이었으나 문제 될 건 없었다.

자리에 앉아 마나 하트를 활성화하자 곧 통신기에서 처절한 파일럿들의 외침이 울렸다.

〔끄아아아악!〕

〔며, 명령을! 명령을……! 아아악! 내, 내 팔!〕

기체의 손상은 곧 파일럿에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태반의 파일럿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후.〕

짧게 호흡을 내뱉은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뛰어내려 피신하는, 이 기체의 파일럿을 눈에 담은 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카트린 준장이다.〕

동시에 처절함과 절망, 혼돈만이 자리했던 통신에 찰나의 틈이 생겼다.

〔지금부터, 시민들의 퇴로를 연다. 비단 파일럿뿐만 아니라 총을 들 수 있는 놈들은 뭐라도 들어서 갈겨라. 그리고 근처에 백색 머리를 가진 소녀를 본다면…….〕

스릉- 소리와 함께 허리에 매달린 거대한 미스릴 소드를 뽑으며 덧붙이니.

〔즉시 모든 화력을 집중해서 제거한다.〕

그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