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85화 (85/197)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거기, 조심해!”

“지나갑니다!”

계급과 계급이 얽히고, 평화롭던 마을의 흙바닥에 군화들이 뒤엉켰다.

그 곁을 지나던 단테의 뒤에서 클리에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변종…… 죽인 다음에 닻에 매달아서 바다에 수장시켜 버릴 거야.”

실로 섬뜩한 말이었으나, 뒤따르던 로한과 리베라, 유엘과 페고르는 옳게 된 방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마수들의 물량 공세가 변종과 연관이 없다는 건, 누가 봐도 개소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도착했습니다.”

앞서 걸어가던 세실이 말하기 무섭게, 곧 일련의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청사 앞에 다다랐다.

단테는 힐끔 세실을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안내를 끝낸 후 살짝 단테의 뒤로 가서 섰다.

그녀는 한 달 전부터 그에게 반말하지 않았다.

물론 특임대의 지휘권을 그가 가진 덕도 있겠으나 심경의 변화도 만만치 않은 듯했다.

‘뭐…….’

하지만 단테의 감흥은 딱 그뿐.

그는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비단 제국군뿐만이 아닌, 법국, 연합 왕국, 심지어는 공화국 군인들이 어지럽게 섞여 경계를 서는 곳은 다름이 아닌 마을의 시청이었던 건물이었다.

군인들은 곧 그들을 발견하곤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길.”

이윽고 그들은 제각기 부하들을 건물 내부로 올려다보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로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개판이야.”

인력 낭비도 이런 인력 낭비가 없다.

그러나 그런 로한의 반응과 달리, 그들의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일종의 주도권 싸움인 것이다.

“올라오시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곧 내려온 이들이 그들을 회의장으로 인솔해 갔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 원래는 접객실로 쓰였던 곳인 듯한 방 내부로 들어가자 세르겐을 비롯한 일련의 사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왔군.”

세르겐은 태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곤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 있던 미카엘과 법국의 사제들도 함께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단테의 적안이 그를 훑었다.

세르겐과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한 외견을 가진, 푸른 제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언제나 당당한 얼굴과 큰 제구의 세르겐과 달리 작은 체구에 지친 얼굴을 한 모습 정도라고 할까.

그때 단테가 그를 훑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챈 세르겐이 먼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특임대를 이끌고 있는 단테 소령입니다.”

“충성.”

단테는 가볍게 경례를 올렸고, 뒤이어 세르겐은 곁에 서 있는 노인의 어깨를 친근하게 잡으며 그들에게 소개했다.

“이분은 공화국의 전쟁 장관이자 유일한 대장, 로렁 대장이다.”

“허허, 반갑습니다.”

지친 표정에도 로렁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그들에게 인사했고, 곧바로 단테의 뒤를 따르던 이들은 모두 각이 잡힌 경례를 올렸다.

물론 클리에는 아니었지만.

“충성!”

그리 넓지 않은 회의장에 울린 절도 넘치는 경례 소리는 기강 잡힌 군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그러자 로렁은 어딘가 복잡함이 담긴 미소로 그들을 경례를 받아준 직후 자리에 앉았다.

끼이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장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곧 상석에 앉은 세르겐이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이 많다. 특히 단테 소령은…….”

그의 치하에 모두가 단테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모습이었으나, 누구도 그것을 아니꼽게 보지 못했다.

특히 클리에와 미카엘은 어딘가 묘한 눈이었으니.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클리에는 연합 왕국 측의 자리에 앉아 눈동자를 굴렸다.

단테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단순히 특이하다, 혹은 비범하다- 정도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려, 마찬가지로 알게 모르게 단테를 의식하고 있는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아마 저쪽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겠지?’

지난 한 달간, 그가 이룬 전공은 어지간한 에이스 수십 명이 이룬 것을 합쳐야 가능한 것투성이었다.

단테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으나,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제국 내부에서 단테에게 수여해야 할 훈장이 벌써 10개가 넘는다는 말도 있다고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한편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르겐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여전히 변종에 대한 소식은 없다. 그래도 나름의 희소식은 있지.”

그는 입에 또 하나의 담배를 물었다.

이미 재떨이에 꽁초가 쌓여 있었기에 세실이 그를 노려보았으나, 세르겐은 못 본 척할 뿐이었다.

치익, 습.

곧 자욱한 연기가 탁자 위로 피어나듯 흩어졌다.

그는 폐부 깊숙하게 연기를 삼켰다.

“조금 전, 침공이 모두 멈췄다.”

“……예?”

그의 말에 되물은 것은 미카엘이었다.

언제나 덤덤함을 유지하고 있던 그가 되물을 정도였기에 다른 이들 역시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간 미친 듯이 전선을 좁혀 오던 놈들이 갑작스럽게 침공을 멈췄다면, 당연히 싸할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세르겐도 진심을 담아 희소식이라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새 절반쯤 태운 연초의 끝자락을 질겅- 씹으며 미간을 좁혔다.

“문제는…….”

그때 세르겐의 시선에 로렁의 어두운 얼굴이 들어왔다.

그제야 그는 직접 말을 하라는 듯 말을 멈췄고, 세르겐의 배려에 로렁은 짧은 묵례로 감사를 표한 후 입을 열었다.

“……1시간 전쯤, 몇몇 장성들과 통신이 먹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밀려오는 마수들에게 당했거나 지휘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그제야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로렁은 입술을 몇 번 달싹거렸다.

이것을 이들에게 밝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갈등이 자꾸만 말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곧 그는 결심한 것인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쿠데타인 것 같습니다.”

회의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미카엘의 곁에 앉아 있던 법국의 장교는 사일런스 마법이 제대로 켜져 있나 확인했고, 로한과 리베라, 클리에는 하나같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로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한 로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니.

“아, ×발……. 진짜 이 병신들이…….”

그건 실로 시의적절한 팩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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