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말하면 최상급 마수가 나타난 전장에서의 전투는 밤까지 계속되었다.
우두머리가 죽어 일순간 주춤거렸다 한들 인간에게 꼬리를 말 놈들은 아니었기에, 이전보단 아니었으나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마수들이었다.
그러나 인명 피해는 현저히 적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상급 마수에 의해 제한적이던 제공권이 풀림과 동시에 무차별적인 폭격과 함께 각국의 에이스들이 날뛴 덕이다.
그렇게 지원을 간 전장의 상황이 일단락되고, 수도로 복귀한 직후 단테를 비롯한 그들에게 별 의미도 없는 공화국 훈장이 주렁주렁 배송되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특임대의 첫 전투는 순항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조금 전의 전투가 앞으로 고생길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타다다다다당!
〔진짜, 거지 같아서 못해 먹겠네에에!〕
로한은 눈앞에서 밀려오는 무수한 마수들의 공격에 미친 듯이 기관총을 갈기다가 이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외쳤다.
〔유엘!〕
〔네, 넵!〕
다급한 외침에 후방에서 보조하던 유엘이 달려왔다.
그는 촉수를 뻗는, 마치 파리지옥을 닮은 상급 마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대충 몸으로 막아 봐!〕
〔뭐, 뭐라고요?!〕
〔고기 방패 하라고!〕
고기 방패라는 신랄한 어휘 선택에 유엘은 순간 망설였으나, 어느새 군인이 된 그녀의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손에 쥔 거대한 미스릴 소드를 뻗으며 촉수를 베고, 놓친 촉수는 몸으로 막아 냈다.
〔끄윽……!〕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그리고 때마침 준비를 끝낸 로한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엎드려!〕
유엘은 곧바로 미스릴 소드를 놓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듯이 엎드렸다.
그러자 로한은 어디서 뜯어 왔는지 모를 거대한 마력 포대를 놈에게 겨누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뒈져어!〕
좋게 말해서 임기응변으로, 나쁘게 말하면 야매로 만든 휴대용 마력포가 울컥- 들어오는 로한의 마나를 포탄으로 변환하여 눈앞의 상급 마수에게 쏘아졌다.
그리고 곧 놈은 잿더미가 되어 쓰러졌다.
〔허억, 허어억……!〕
로한은 두근거리는 마나 하트를 애써 진정시키고 끄응……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엘을 바라보았다.
〔괜찮냐?〕
〔아뇨…… 죽을 거 같아요.〕
상관에게 내뱉기엔 더럽게 정직한 답이었으나, 이번엔 로한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굳이 유엘이 아니라 단테나 리베라에게 등을 맡기고 싶었는데.
‘자연사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최소한 사람한테 죽고 싶다고!’
로한은 눈앞의 전장을 바라보았다.
단테와 리베라는 물론 주요한 모두가 곁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 멀리에서 밀려드는 최상급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염병.〕
그들이 최상급 마수를 죽인 후,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공화국은 근 한 달 사이에 유례없는 마수 침공을 마주하고 있었다.
로한은 다시금 밀려오는 놈들을 향해 총구를 들며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꺼낼 수밖에 없었으니.
〔이러다가 진짜 공화국 망하겠네!〕
그리고 그날, 블랙 가드 측에선 제10 단장이기도 한 단테에게 전해진 정보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공화국, 국토 4분의 1 상실.」
기갑천마
망국의 시작
뿌드드득!
벤데타의 거친 손길에 사마귀와 닮은 모습을 보였던 최상급 마수의 목이 부러졌다.
동시에 세실이 이끄는 강습병들이 놈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긴다.
-끼, 끼기기.
톱날과 같은 이빨을 달싹거리던 놈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윽고 생기를 잃었다.
그러자 단테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곧바로 벤데타를 역소환했다.
짧은 섬광이 번뜩였다.
곧 그의 코트 자락이 하늘 위에서 흔들리고, 목에 걸린 흑옥이 반짝였다.
단테는 그대로 대지로 추락했으나 정작 대지에 발을 디뎠을 땐 어떠한 소음도 없었다.
다만 핏물이 군화에 살짝 닿아 질척거리는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다.
“하아…….”
드물게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내뱉어진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노곤함이 가득한 얼굴은 꽤나 오랜만에 단테가 지쳤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저릿한 몸을 가볍게 풀며 생각했다.
‘지랄맞게도 오는군.’
한 달이다.
고작 한 달 사이, 어림잡아도 수백의 상급 마수와 수십의 최상급 마수를 잡아 죽였다.
중급 마수나 하급 마수들은 셀 수도 없다. 더욱이 놈들은 공화국의 사방에서 밀려오고 있었으니.
즉, 그들도 한 달간 거의 매일 전투를 지속했다는 뜻이다.
그 증거가 눈앞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쿠웅!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곧 검은 쇼트커트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자.
클리에가 바닥에 쓰러진 걸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론 다급히 연합 왕국의 장교들이 달려갔다.
“제독님!”
“으아아아아! 차라리 죽여! 날 대포에 매달아서 쏘란 말이야아!”
그러자 클리에는 바닥에 누운 모습 그대로 욕지거리가 섞인 발광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일국의 제독이라기엔 실로 우스운 광경이었으나, 사실 그녀 정도면 얌전한 편이었다.
“헤, 헤헤헤…… 히히.”
찌이익!
클리에보다 더욱 가까이 들려오는 어딘가 소름 돋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죽인 사마귀 형상의 마수의 육신을 찢고 있는 리베라가 보였다.
그녀는 정신이라도 나간 듯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으로 아주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놈을 해부하고 있었다.
그런 광기 어린 모습에 멈칫할 법도 했으나, 단테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적당히 해라.”
“넹.”
그러자 리베라는 언제 그런 미친 짓을 했냐는 듯이 손에 쥔 단검을 대충 바닥에 버리곤 단테에게 걸어왔다.
물론 지친 것까지 거짓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끼긱, 쿵!
꽤 묵중한 울림이 대지를 따라 흩어지고, 곧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들자 3세대 나이트 프레임, 아틀라스에서 세실이 말했다.
〔곧 소각이 시작되니, 타시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쪽 팔을 아래로 내렸다.
관절부가 살짝 흔들리고 장갑 밑에서 케이블이 흔들렸으나, 단테와 리베라는 그딴 걸 신경 쓸 사람들이 아니었다.
“으아아…… 돌아간다아.”
오히려 리베라는 세실이 내민 아틀라스의 손바닥에 엎드려 차가운 미스릴 합금에 볼을 비볐다.
물론 단테는 자리에 서서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지만 말이다.
-크르륵…… 끼엥!
콰아아앙!
단테가 마지막 최상급 마수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소강상태가 된 전장이었으나, 그래도 곳곳에 살아 있는 마수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화국 병력들의 몫이었다.
끼기긱-거리는 궤도를 통해 분투하는 공화국 나이트 프레임들이 비록 구식에 가까운 것들이라지만, 파일럿들의 능숙한 조종에 의해 그마저도 정리가 되고 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테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차라리 네임드가 나을 정도야.”
“동감…….”
곁에 엎드려 있던 리베라가 작게 동조했다.
네임드는 최소한 빨리 죽이면 되는데, 무작정 수로 밀고 들어오는 공격에는 아무리 정예인 그들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막 전장 후방을 지나던 그들의 곁으로 붉은 기체가 따라붙었다.
그것이 로한의 기체, 레기온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기에, 세실을 비롯한 강습병들은 순순히 그가 단테의 곁에 나란히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끼긱, 쿵!
그렇게 세실의 기체 손바닥 위에서 이송되고 있는 단테의 곁으로 다가온 로한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편해 보이심다?〕
“응, 엄청 편해. 너도 올래?”
당연하게도 답을 내뱉은 건 리베라였고, 그녀의 말에 로한이 뭐라고 화답하려던 그때 단테가 말했다.
“괜찮나?”
〔어……. 예, 뭐.〕
뭐라고 또 틱틱거리려던 로한은 괜찮냐는 단테의 물음에 얼떨결에 답했고, 그 모습에 물은 단테는 그럼 됐다는 듯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그들은 후방을 지나, 주둔군이 머무는 마을에 다다랐다.
“지나가겠습니다! 부상병이에요!”
“야! 거기 나이트 프레임 지나가는 곳이라고 이 새끼야!”
전장과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으나, 조금 전 끝난 전투로 실로 복잡하기가 그지없다.
한때는 국경보다 조금 안쪽에 있는 시골 마을이란 것밖에 특이 사항이 없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전선이 쭉 밀려 버린 탓에 텅 비게 된 마을이다.
당연하게도 군 입장에서는 위치도 절묘하고 이미 비어 버린 마을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들은 그곳을 주둔 기지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내려 드리겠습니다.〕
주둔지인 마을에 도착하자, 세실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팔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앙!
쿠우우웅!
저 멀리, 조금 전까지 전투가 벌어졌던 평원의 하늘을 장악한 일련의 비행함들이 무수한 마력포로 시체들을 소각하기 시작했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군인들과 마수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 불태워 버리고 나면, 곧 싸늘한 죽음만이 그곳에 자리하리라.
실로 비인도적이라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짓이었으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군인들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동료의 시체가 마수와 함께 타들어 가는 것도, 이젠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되어 버린 세상이었으니까 말이다.
……죽음이 익숙해진 세상.
딱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기에, 저 멀리서 울리는 폭음과 빛들에 군인들은 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단테를 비롯한 일행도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