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밝아 오는 여명이 차가운 대지 위에 자리하자, 핏물과 광기에 몸을 맡긴 마수들은 부르르 육신을 떨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급, 중급 가리지 않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비행함들을 향해 포효했다.
-캬아아아아!
-케에에엑!
그것은 차라리 본능에 가까웠다.
뇌리에 각인된 적개감에 불이 붙어 야성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 순간.
〔포대 개방!〕
선두의 비행함에서 발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미친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쉽게 가늠이 가지 않는 클리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씨익 입꼬리를 올린 채, 바닥에서 짖어 대는 괴물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전부 갈아 버려!〕
“예!”
명령에 곧바로 화답하는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그리고 직후, 그녀가 탄 비행함의 모든 포문이 열리며 거대한 마력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우웅!
우우웅!
오직 상대를 갈아 버리고 분쇄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마력포들이 차오르는 열기에 포대를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머지않아 클리에의 단 한마디가 덧붙여지니.
〔쏴!〕
콰아아아아아앙!
콰과과과광!
즉시 불을 뿜은 수백 개의 포대의 끝자락에서 천벌과도 같은 섬광이 번뜩였다.
곧 대지로 추락한 마력포는 그야말로 거대한 굉음을 터트리며 마수들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키에에에엑!
-끄륵! 끄르르륵!
〔좋아! 더 갈겨! 갈겨 버려!〕
광기에 찬 클리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포대가 녹아내려도 상관이 없다는 듯 외쳤고, 승무원들은 그녀의 명령에 착실하게 따랐다.
그리고 그 순간.
〔길고 길었던 어둠 속에 나의 주, 나의 등대, 나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운 여명을 선물하시니.〕
다른 비행함과 달리, 황금색과 흰색으로 점철된 채 중간을 날던 곳에서 일련의 무언가가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대지를 향해 추락한다.
이윽고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기관총의 손잡이를 쥐고 있던 병사가 하늘을 보았다.
자꾸만 내려가는 철모 너머로, 여명을 머금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처, 천사?”
제각기 여러 쌍의 날개가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펄럭였고, 손에 쥔 삼지창과 거대한 검들도 번뜩였다.
만약 그에게 조금의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나이트 프레임이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쿠어어어어어!
그때, 선두로 대지로 추락…… 아니, 강림하던 기체를 향해 긴 팔을 가진 상급 마수가 팔을 휘둘렀다.
마치 채찍처럼 뻗어진 놈의 팔은 어지간해선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또한 위협적이었다.
-아!
비단 일개 병사뿐만이 아닌,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태반의 군인들이 탄식했다.
그가 죽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가로되, 그것은 우리에게 첫 번째 기적이리라.〕
무미건조한…… 아니, 덤덤하지만 믿음이 담긴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그가 손에 쥔 검이 일순간 섬광을 흩뿌렸다.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 뜰 수밖에 없었다.
서걱, 툭.
그리고 그사이,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잠깐 시야를 잃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천천히 눈을 떴고.
“……아아.”
이윽고 눈에 가득 들어오는,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는 상급 마수와 마침내 대지에 강림한 천사들을 확인하자 다시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상관없다.
전장에서 신이란……. 목숨을 구해 주는 이들이니까.
그리고 그때.
-끼기긱!
어느새 마수들만이 가득한 상공으로 떠오른 클리에의 연합 왕국 비행함의 후면 격납고가 열렸다.
-휘이이잉!
바람이 머리를 스치고, 곧 언제 함장실에서 격납고까지 내려왔는지 모를 클리에가 몸을 가볍게 풀며 시선을 내렸다.
실로 혼잡한 전황이 속속들이 시야에 밟혔다.
쓰러지는 군인들과 마수, 핏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인간과 포효하는 짐승…….
그것들을 찬찬히 살피던 그녀의 시선은 곧 모습을 드러낸 최상급 마수에게 닿았다.
잠시 놈을 지그시 바라보던 클리에는 이윽고 살기 어린 미소를 머금은 채로 통신기를 쥐었다.
“어이, 단테. 듣고 있어?”
창공의 바람이 찰나의 정적을 메워 주었다.
곧 제국군 비행함에 타고 있을 단테의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에서 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있잖아. 내기나 하나 하자고.”
특임대의 대장이 된 단테였으나, 클리에는 여전히 존대하진 않았다.
물론 고집이 아닌 여러 가지 정치적인 퍼포먼스이긴 했지만…….
뭐, 그건 둘째로 두고.
〔내기라면…….〕
단테도 아예 흥미가 없진 않은 듯 되물었다.
클리에는 어느새 격납고에 가득 찬 강습병들을 살짝 돌아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 보는데, 누가 먼저 저 최상급 마수를 죽이는지 말이야.”
‘겸사겸사, 네 실력도 한번 보고.’라는 말은 삼켰다.
그녀의 말에 단테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확인. 그럼 나 먼저 출발할게.”
네임드를 죽인 에이스라면, 이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지.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곧바로 통신기를 껐고, 곧 미끄러지듯 앞으로 걸어 창공에서 그대로 맨몸을 던졌다.
“꺄하아아아악!”
창공에 내던져진 그녀의 머리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군복의 끝자락은 공기를 머금어 펄럭거렸다.
마수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식사에 환호하듯 입질을 하고, 최상급 마수는 흥미를 가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자!”
클리에는 환호가 담긴 외침을 터트렸고, 곧 마나를 머금은 한 마디가 울려 퍼지니.
“갱플랭크.”
해상에서 백병전을 할 때, 배와 배 사이를 잇는 널빤지의 이름이 읊조려지며 그녀의 육신이 섬광으로 번뜩였다.
그리고 다시금 마수들이 그녀를 보았을 땐.
콰과과과과광!
지상에 자리한 건, 양손 대신 거대한 포대를 가진 거대한 기체뿐이었다.
그 안에서 클리에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니…….
〔자, 어디 우리 에이스님 실력이나 볼까!〕
그건 단테를 향한 도발이었다.
기갑천마
이 정도인가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크르르르.
마수들은 전장 한복판에 난입한 새로운 기체를 경계하듯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 그녀와 마수들의 대치를 본 공화국 군인들은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위치가 좋지 않았다.
애초에 연합 왕국의 비행함이 부유하고 있던 상공부터가 마수들의 바로 위였다.
그런 비행함에서 떨어진 그녀의 기체는 당연하게도 마수들의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당장 지원을 하고 싶어도 상황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많기도 하네.〕
홀로 마수들에게 둘러싸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여유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타국의 기체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기체가 유달리 도드라지는 것이다.
원래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장착된 거대한 대포는 과거 전함에 자리했을 주포를 가져다가 박은 듯 조금은 낡은 느낌을 흘렸다.
그러나 뿜어내는 위압감은 그것과 비교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었으니.
콰드드득!
곧 그녀의 빈틈을 노려 뒤를 치려던 마수가 주포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자 마수는 이빨을 드러내며 주포를 씹어 댔고, 바로 그 순간.
〔-흐.〕
클리에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곧 그녀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섬광이 번뜩이며 일순간 마수의 시야가 붉은색, 아니 어쩌면 황금색으로 뒤덮이고.
콰아아아아앙!
곧 비스듬하게 아래로 향해 있던 왼쪽 주포에서 뿜어진 폭음과 함께, 마수의 머리였던 것이 그대로 터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검은 핏물이 대지 위에 뿌려지고, 푸른빛을 띠는 뇌의 파편이 굴렀다.
그리고 직후.
-캬아아아아아아아!
-키에에! 키에에에에에!
마수들의 괴성이 울렸다.
동족의 죽음에 애도하는 것이 아닌, 새로이 드러낸 적의 공격에 적대감을 머금는다.
머지않아 놈들은 대지를 박차고 그녀의 기체, 갱플랭크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아…….”
“틀렸어.”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궤도차를 이끌고 진창과 시체 밭을 뚫던 공화국의 병력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멀었다.
시선을 돌려 법국의 기체들을 응시했으나 그들도 마찬가지다.
이대로라면 허망하게 그녀를 잃으리라.
하나, 곧 그것이 기우임을 그들은 깨달았다.
-끼기긱!
클리에는 밀려오는 마수들의 돌격에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알아야 할 건, 그녀의 기체가 가진 특수성이었다.
갱플랭크는…… 아니, 연합 왕국의 나이트 프레임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상체 장갑에 비해 하체가 비대하다는 게 특징이다.
혹자들은 그것을 보며 기술적인 한계라고 지껄이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콰득!
이윽고 갱플랭크의 발이 마치 대지에 박히듯 단단히 고정되었다.
비대한 기체의 허벅지가 꿈틀거리고, 곧 기체는 완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선다.
물론 그것은 남들이 보기엔 한없이 무모하게 보일 뿐이었다.
밀려오는 쓰나미에 조각배로 대적하는 어부가 그러할까.
그러나 그 순간 콕피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곧 노이즈가 섞인 목소리가 마수들의 포효를 뚫고 군인들에게 닿으니.
〔내가 바보니? 혼자 이러고 서 있게.〕
콰과과과과광!
뒤이어 그녀의 주포가 전방을 겨냥한 채 일순간 폭음을 울림과 동시에 허공에서 일련의 기체들이 빠르게 강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군인들은 그것의 정체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건…….”
“스, 스파이더?”
때마침 마수의 등으로 추락한 스파이더가 8개의 다리를 유려하게 움직이며 대지로 도약했다.
그리고 진창에 파박- 하고 발을 박은 그 순간 등에 달린 기관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다다다!
콰지지직!
일순간 집중된 화력에, 하급 마수들의 머리와 몸이 터져 나가며 핏물이 터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놈들의 손에 진짜 벌레처럼 짓눌리는 스파이더들도 많았으나, 그 순간에도 연합 왕국의 격납고에서 강습하는 스파이더의 수는 적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다!
-쿠어엉! 쿠어어어어!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을 종횡하며 마수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등에 달린 기관총과 마력포로 화망을 형성하고 마수들의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가 기다리던 강습병들은 스파이더 따위가 아니었다.
이윽고 마수들의 시야가 어지러워진 사이 케이블로 연결된 일련의 기체들이 적당한 높이까지 내려오자 어깨에 달린 케이블을 끊었다.
허공에 붕 떠 있던 기체는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하고, 곧 대지를 디딘 후 쿠웅- 하는 묵직한 소리를 울렸다.
〔제독님. 명령을!〕
그들 역시 팔 대신 주포를 달고 있거나 거대한 마력포를 들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클리에는 그들에게 등을 맡긴 채, 시선을 돌려 서서히 움직이려는 듯한 최상급 마수를 응시했다.
〔단번에 끝낼 거니까. 시간을 벌어.〕
묘하게 흥분된 목소리다.
그녀의 명령에 마지막 한 명까지 강습을 완료한 병력들은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화답했다.
〔……예, 제독님!〕
배에서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듯, 이 자리에서 그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녀는 선원들의 믿음을 대가로 승리라는 보물을 가져오리라.
철컥!
연합 왕국의 기체들이 밀려오는 마수들을 향해 포를 겨눴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바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뻗어진 포격은 실로 엄청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연합 왕국의 강습병들이 발을 디딘 곳은 마수들에게 지옥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다!
피직!
거대한 마수들의 다리 사이를 종횡하며 놈들의 배와 다리에 탄환을 박아 넣었다.
때때로 등이나 다리에 발톱을 찍고, 틀렸다 싶으면 자폭도 서슴지 않는 스파이더들이 먼저 발목을 붙잡았다.
그뿐인가.
콰아아아앙!
퍼어엉!
스파이더들을 짓밟고 무언가를 준비 중인 클리에에게 향하려 해도, 그녀를 감싸듯 서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병력을 뚫기란 마수들로서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쿠우우웅!
묵직한 발걸음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전장에서 미친 듯이 싸우던 군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드리운 그림자의 진원지로 향했고, 곧 한 군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 아아아…….”
경외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 그건 최상급 마수의 움직임을 뜻했다.
놈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사 천사와 강습병들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는지, 고개를 꺾어 팔을 휘둘렀다.
퓌이잉!
거대한 팔이 허공에서 공기마저 찢어발긴 채 뻗혔다.
온갖 오물이 묻어 뒤엉킨 털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당장이라도 그들을 모조리 날려 버릴 듯한 바람 소리에 머금었던 희망이 다시금 꺼져갈 무렵.
〔준비 끝이다!〕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던, 정확히는 마나 하트를 한계까지 끌어 올리고 있던 클리에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꿰뚫었고, 그녀는 찰나의 순간 뻗어지는 팔을 바라보며 웃음을 머금고 나지막이 속삭였으니.
시그니처(Signature).
함대사격(艦隊射擊).
작은 떨림과 함께 그녀의 주포에 한계까지 끌어 올린 마나가 맺혔다.
그것들은 하나하나 섬광으로 이루어진 포탄이 되어 뻗어질 순서를 기다렸고, 곧 그녀가 말을 끝마치자 빠르게 쏘아지기 시작했으니.
콰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광!
양팔에 달린 주포가 마치 기관총이라도 되는 양, 날아오는 놈의 팔을 향해 무수한 섬광을 흩뿌렸다.
처음엔 스쳤던 포탄은 다음엔 적중했고, 이윽고 털을 녹이고 살점을 꿰뚫으니.
-우어어어! 우어어어어어!
놈의 괴성이 울렸다.
그럼에도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포탄으로 쓸 마나는 넘쳐났으니까!
콰과과과과과광!
퍼어어엉!
곧 클리에는 단신으로 화망을 만들어 냈다.
분명 마나로 뻗어 낸 섬광임에도 살점이 녹고 찢어져 검게 그을린 연기는 과거의 흑색 화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휘둘린 팔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놈의 육신은 자욱하게 일어난 검은 연기에 가려져 실루엣만이 보일 뿐이었다.
클리에는 어느새 서서히 멎어가는 포격과 함께 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탈력감을 만끽해야 했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놈이 죽지는 않았어도 치명상은 입었으리라 생각했다.
근거 없는 허풍이 아니었다.
이미 수차례의 최상급 마수를 사냥한 그녀였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하나 그때.
-우어어어어어어!
갑작스럽게 연기 너머로 울린 괴성과 함께, 흰색의…… 아니, 붉은 무언가가 묻은 채찍과 같은 것이 연기를 꿰뚫었다.
그리고 곧 그것은 클리에의 바로 앞을 스친다.
파아아아앙!
눈으로 보고, 후에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곧 걷힌 연기에 그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으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너무 하지 않아? 자기가 유령선의 선장인 줄 아나!〕
마치 채찍처럼 흩날리던 흰색은 다름이 아닌 뼈가 드러난 놈의 팔이었다.
얼굴은 하이에나에 몸은 원숭이를 닮은 놈 주제에 가뜩이나 썩어 문드러진 얼굴을 우악스럽게 구기며, 팔꿈치 아래로 살점과 근육이 녹아내려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어깨만으로 채찍처럼 사용한 것이다.
실로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
파앗!
클리에는 일순간 눈을 찡그렸고, 곧 놈의 뒤에서 무언가 섬광이 뻗어짐을 느끼며 시선을 최상급 마수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직선을 그리던 황금빛의 삼지창이 놈의 어깨에 정확히 꽂힌다.
파아악!
-우어어어어어!
핏물이 터졌다.
그러나 뒤이어 허공에 떠오른 법국의 기체, 흰색과 황금색으로 도색한 천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걸레짝이 된 놈의 어깨 관절부로 미친 듯이 창을 던졌다.
1개가 꽂혔다.
2개가 꽂히고.
3개, 4개, 5개…….
늘어나는 창들은 결국 놈의 어깨와 팔 사이의 근육을 끊었고, 곧 추욱 늘어진 팔이 보잘것없이 바닥에 끌린다.
“와아아아아아아!”
“죽여어어!”
당연하게도, 공화국의 군인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마수들을 향해 밀려들었다.
여명이 떠오르고, 그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단테의 뒤로 로한이 물었다.
“내기한다면서요. 단장, 저러다가 지겠는데?”
“우어어어어어어!”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제국군의 비행함, 격납고였다.
그런 그들의 뒤로는 수십의 나이트 프레임들이 강습 직전의 정비를 마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그들이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3국이 합동하는 작전인 만큼, 미리 손발을 맞춰 보자는 취지였다.
다만 출발하지 못하는 것은 현장의 지휘권을 가진 단테가 묵묵히 전황을 살피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연습부터 최상급 마수라니……. 거참.”
격납고의 문은 열린 지 오래다.
하지만 로한은 휘날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머리를 신경질 섞인 손으로 대충 정리하며 살짝 뒤를 보았다.
그때였다.
“이 정도인가.”
단테의 중얼거림이 내뱉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 서 있던 리베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석 중이셨구나?”
하긴 궁금할 법도 하다.
타국의 전투법을 상공에서 주욱 내려다본다는 게 그리 쉽게 오는 기회도 아니고.
그러나 슬슬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라는 걸.
때문에 단테는 소형 통신기를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세실 소령.”
〔예.〕
그녀에게 갖춰 주던 최소한의 예의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당연하다는 듯 화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휘관이 그였으니까.
“우리가 투입해 강습 지점을 확보한다. 직후 강습하도록.”
〔예, 부디 행운이 있으시기를.〕
세실은 실로 그녀답게 간결한 어조로 행운을 빌었고, 단테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가자.”
직후.
제국군의 비행함 격납고에서 3명의 사람이 검은 제복을 펄럭거리며 빠르게 대지로 추락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섬광이 흩뿌려지고.
콰아아아아앙!
자욱한 먼지와 함께, 거대한 3개의 기체가 마수들의 시체 위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기갑천마
군단과 도깨비
에이스(Ace).
과거에는 단순히 포커 게임이나 어느 분야의 베테랑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대군주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나이트 프레임과 기갑 장교의 등장으로 인해 그 뜻은 빠르게 변모했다.
비단 제국뿐만이 아닌, 전 대륙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수많은 전선과 사선(死線)에서 살아남은 군인,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이 얻는 칭호이자 하나의 직위가 바로 에이스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 기체보다 더욱 게걸스럽게 마나를 삼키는 전용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만큼의 실력과 경험을 요구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가 인정된다고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시그니처(Signature)의 유무였다.
그것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오갔다.
혹자는 과거, 초인이라 불리었던 이들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파일럿이 기체와 완전한 동화를 이뤘을 때 얻는 선물이라 말했으며, 혹자는 그저 우월한 혈통의 증명이라고 했다.
……누구의 의견이 옳은 것인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들 중 누구도 시그니처를 말할 때 현존하는 기술의 극한임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발현과 출력, 나아가 위력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아무리 약한 시그니처라도 상급 마수 수십은 우습게 도륙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에이스는 개개인이 귀중한 전략 무기쯤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웬만큼 미친 전선이 아니라면, 에이스는 3명 이상 함께 붙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화국 군인들은 이 자리에 네임드가 등장하는 건지, 실로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 에이스가 5명이나…….”
“꿈인가?”
‘고작’ 최상급 마수가 나타난 전선에 5명의 에이스가 등장했다는 건 이례적임을 떠나 최초로 있을 일이니까 말이다.
쿠구궁.
대지를 디딤과 동시에 울리는 진동과 연기 그리고 마수와 마주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거대한 실루엣을 보여 주는 3개의 기체를 본 공화국 군인들의 눈에 처음으로 희망이 싹텄다.
그들이 국가를 갈가리 찢어발기든.
주둔군으로서 어떤 이득을 취하든.
또 선의를 가지고 전장을 지원하러 온 거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서서히 밝아 오다 이젠 완전히 하늘에 자리한 태양처럼 상처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암울한 미래를 걷어 줄 수만 있다면, 또 다른 내일을 약속받을 수 있다면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공화국의 이름 모를 지휘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통신기를 쥐고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여태까지 자신의 명령을 묵묵히 따라 주던 자식들과 같은 병사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제군, 정말로 마지막이다.”
새벽의 전투가 시작된 이래.
“해가 떴다! 집으로 돌아가자!”
그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은 채, 막사 밖으로 나서 꽤나 오랜만에 자신의 기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비록 늙어 버린 몸뚱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병사들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그를 바라보던 장교들은 묵묵히 공화국의 경례를 울렸다.
“충성! 인류에게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