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81화 (81/197)

의회의 정문을 통과했다고 곧바로 의회 건물이 나오진 않았다.

꽤 긴 도로와 인도가 직선으로 이어지고, 바깥의 피폐한 공화국과 어울리지 않는 울창한 숲과 석상들이 곳곳에 서 있다.

이를 보던 단테는 실소를 흘리며 생각했다.

가난하다더니, 이럴 돈은 있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의회의 앞에 다다랐다.

안쪽에 선 공화국의 군인들은 불필요한 말 대신 그저 기계적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들은 곧 바깥보다 더 화려한 의회 내부로 들어갔다.

“허, 공화국 1년 예산이 여기 있었네.”

로비로 들어온 직후, 로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내뱉은 말이다.

군인들이 들으면 언뜻 도발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적어도 일행들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로비의 중앙에는 거대한 분수가 자리하고 있다.

그 뒤에는 과거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넘어갈 당시의 투쟁이 지극히 미화를 섞어 그려져 있었고, 바닥은 온통 흰 대리석에 천장에서는 온갖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좋게 말해도 사치고, 나쁘게 말하면 돈지랄을 못해서 발정 난 놈들이다.

어지간한 제국 귀족가의 로비가 가난해 보일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흠.”

심지어는 세르겐조차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로비를 훑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클리에가 낮은 목소리로 비웃음을 담아 속삭였다.

“놀랄 만도 해. 나도 처음에는 미친놈들인 줄 알았다니까? 외곽 쪽에선 아이들이 빵이 없어서 굶는데 말이지.”

그녀의 말에 단테는 잠시 내부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망한 나라의 전형이군.’

위정자들의 부패.

국민의 빈곤과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혁명가들.

손에 쥔 권력을 위해 타국에 이권을 넘기는 행태와 그것을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주변 국가들까지.

직접 보진 못했으나, 이 몸의 고향인 데지안 왕국도 같은 절차를 밟지 않았을까.

물론 멸망의 결정타는 마수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철그럭.

군화와는 사뭇 다른, 과거 기사들이 신발에 덧댄 듯한 쇳소리가 로비를 울린다.

모두의 시선이 계단 위로 향했고, 단테를 포함한 모두는 내심 어이가 없다거나 조금은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늦으셨습니다, 세르겐 소장님.”

철그럭.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이미 퇴역을 넘어서 구식이 되어 버린 풀 플레이트 아머를, 그것도 순백으로 칠해진 것을 입고 내려오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말입니다.”

무미건조한…… 아니, 감정을 억지로 삭제시킨 듯 무채색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행히 투구까지 쓰고 있진 않아 얼굴은 볼 수가 있었다.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면 혹 아프냐고 되물었을 법한 창백한 피부, 그와 대비되는 갈색 머리와 번뜩이는 눈동자는 세실의 색보단 조금 더 어두웠다.

일단 외양은 영락없는 기사였다.

‘……?’

그러나 이윽고 내력을 끌어올려 그를 바라보던 단테는 한순간 굳고 말았으니…….

느껴지는 기도가 심상치가 않았다.

초절정에 오르며 더욱 예리하게 닦인 눈과 기감이다.

일전에 로한과 리베라의 경지를 오판했을 때와는 다르게 그가 지금 느끼는 것은 거의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단테의 눈이 저 남자가 범상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뭐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호승심이 달아올라 남자에게 달려든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를 지켜보던 시선이 조금 더 냉철하게 바뀔 뿐이다.

그때 계단을 절반쯤 내려온 남자를 향해 세르겐이 말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그런데 누구신가?”

내뱉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남자인 듯, 세르겐의 얼굴이 웃는 표정에서 무표정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몸에 걸친 검은 색깔의 군복이 꿈틀거리고, 나이와 맞지 않은 거구는 위압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툭.

“그렇군요.”

그의 물음에 계단을 내려오던 백 갑옷의 기사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뒤늦게 실례를 범했다는 듯 절도 있게, 군인보다는 기사에 가까운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남자의 말에 세르겐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네놈이 누군지부터 밝히라는 뜻이다.

물론 대충은 예상이 갔지만 말이다.

그가 알기론 아직까지도 저러고 다니는 미친놈들은 한곳뿐이었으니까.

“제 이름은 미카엘 솔 도미니온스.”

여타 국가들이 내세우는 귀족의 이름과는 다르다.

솔과 도미니온스.

전자는 태양신 솔라를, 도미니온스는 천사의 계급 중 하나인 주품천사를 가리키는 룬어였다.

그리고 그때 스스로 미카엘이라 밝힌 남자는 말을 마치겠다는 듯 가볍게 덧붙이니.

“법국의 7번째 깃발을 쥐고 있는 기수입니다.”

‘법국.’

순간 단테의 시선이 남자를 훑었다.

기갑천마

새로운 특임대

7번째 깃발이든 뭐든 모르겠지만, 법국이라는 단어가 귓가를 스치자 곧 셀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재생되는 듯했다.

그들의 배후가 법국이라는 말.

‘물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을 한 이부터 적이었던 여자다.

물론 삶의 끝자락에 법국에게 엿을 먹이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악의를 품었다는 가정도 배제할 수 없다.

‘그건 블랙 가드도 마찬가지고.’

단테는 블랙 가드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호의의 이유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과정을 모두 보았다면 그의 정체 역시 이미 특정했을 터.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또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문제다.

때문에 단테는 대외적인 침묵을 택했다.

한편 단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에 세르겐은 스스로를 제7 기수라고 밝힌 미카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수라……. 아직도 법국은 그런 칭호를 쓰던가. 슬슬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그것은 제가 정할 것이 아닙니다, 소장님. 다만 전 제게 이어져 온 과거의 영광을 받들 수 있어 기쁠 뿐입니다.”

미카엘의 어조는 덤덤했으나 그 안에는 깊은 신앙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때로 공감할 수 없는 신앙은 거부감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왜, 아예 영광을 이어서 말도 타고 싸우지. 그리고 너희 제발 나이트 프레임 좀 천사 모양으로 그만 만들어. 하다못해 겉에 칠하는 색이라도 바꾸든가! 너희들이랑 가까운 전선 애들이 눈 아파 죽겠다잖아.”

그리고 클리에는 그런 거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여자였다.

실로 공격적인 어조였기에 뒤에서 지켜보던 세실 등을 비롯해 단테 등도 내심 말다툼을 예상했으나 정작 미카엘은 한없이 평온했다.

“각국의 상징색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왜들 싸우고 계십니까들.”

계단의 위쪽, 그들이 향하려던 2층에서 어딘가 느끼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계단 위쪽을 향했고, 곧 시야에 들어온 남자를 본 단테는 가볍게 모습을 훑었다.

고급스러운 정장과 코 아래에 기른 수염, 포마드로 올린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인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체구가 조금 작다는 점일까.

그 외에는 꽤 평범했다.

조금은 짜증 날 정도로 느끼하게 생긴 것을 빼면 말이다.

“어서 올라오시지요. 마련한 차가 식겠습니다.”

단테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모른 채, 중년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문제는 느끼한 얼굴과 어조 때문인지 딱히 호감이 가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 남자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총통이군.’

아니나 다를까, 세르겐은 무어라 더 말을 하려던 클리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말했다.

“그만해라, 클리에.”

“쳇.”

아무리 그녀라도 세르겐의 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물론 지위보단 친분에 더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

“중재에 감사드립니다, 소장님.”

“됐네. 올라가지.”

미카엘의 감사를 넘기며 세르겐의 필두로 제국군은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2층에 다다르자 곧 기다리고 있던 총통이 웃으며 세르겐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소장님. 직접 얼굴을 뵙는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군요. 어째 더 정정해지셨습니다.”

“총통도 마찬가지요.”

둘은 가볍게 악수를 마주한 후 곧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꽤나 긴 복도를 지나, 끝자락에 다다르자 소규모 회동에 사용하는 듯한 작은 회의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총통은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안에 들어선 그들은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연합 왕국과 법국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러자 총통은 마치 주선자라도 되듯이 웃으며 말했다.

“자, 인사들 하시지요. 이쪽은 법국에서 오신 분들이고…….”

이어진 소개는 간단했다.

법국 측은 미카엘보다 조금은 조촐한 갑주를 입은 2명의 기사와 안경 쓴 조금 유약해 보이는 여사제가 일행의 전부였고, 연합 왕국 측은 척 보기에도 근육이 대단해 보이는 구릿빛 사내 5명이 서 있었다.

“이거, 제국군은 오랜만에 보는걸. 여전히 샌님 같아.”

“그래도 저 법국 놈들보단 제국이 차라리 낫지.”

저들 딴에는 낮춘다고 낮춘 목소리였으나, 문제는 방이 좁은 탓에 대놓고 들린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없이, 정말 평온했기에 화보단 그저 실소만 흘렀다.

단테는 방 내부의 분위기를 살폈다.

정돈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법국.

조용하고 규율이 흐르는 분위기의 제국.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군기가 옅은 연합 왕국.

각국의 개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공화국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단테의 시선은 어느새 상석에 앉아 쓸데없이 우아한 척을 하며 차를 마시는 총통이란 놈을 바라보았다.

무능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게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게 어느 정도는 분위기가 가라앉자, 그들은 작은 회의장 안의 원탁에 제각기 국가를 구분해 앉았다.

아무리 소형이라곤 하나 일단은 회의장이었기에 모두가 앉을 정도의 크기는 된 덕분이었다.

“크흠.”

조용한 분위기 속, 총통의 헛기침이 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어려운 와중에도 공화국을 구원하기 위해 와주신 각국의 호의에 프란 공화국의 총통인 저는…….”

“총통.”

그러나 한창 분위기를 잡아 가며 말을 내뱉던 총통의 말은 세르겐에게 끊기고 말았으니…….

그는 어느새 품에서 꺼낸 궐련을 입에 물며 말했다.

“지각한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굳이 괜한 인사치레는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떤가.”

대충 해석하자면, 어쭙잖게 입 털지 말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총통의 표정이 흔들렸으나, 다른 이들 역시 세르겐의 말에 공감하듯 그를 바라보자 총통은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치익, 습.

세르겐은 입에 문 궐련 담배에 불을 붙였고, 그와 동시에 어느새 클리에가 원탁에 팔을 기댄 후 물었다.

“그래서, 피해는 어떤데?”

클리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답을 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자 총통은 눈동자를 살짝 굴리다가 잠깐의 뜸을 들였다.

“……그 마수, 그러니까 변종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과거 아르틴 왕국의 영토를 바라보는 곳이었습니다. 마수의 영토임에도 마수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기강이 해이해진 곳이죠. 제 불찰입니다.”

이윽고 모두의 눈에 한심함이 맴돌았다.

겉으론 자신의 불찰을 입에 담지만, 그 이면에는 군부의 무능을 성토한다는 걸 깨닫지 못할 이는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때문에 클리에는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어떻게든 무능을 포장하려는 총통에게 말했다.

“그래서, 얼마나 뒈졌냐니까?”

뒤이어 세르겐도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결국 총통은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드, 듣기론 1개 사단 정도.”

“1개 사단이면…… 하, 진짜…….”

1개 사단.

각국마다 사단을 엮는 단위는 조금씩 달랐으나 최소 3천 명을 기준으로 잡는다.

즉,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그 정도가 눈먼 변종의 먹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세르겐과 미카엘의 시선 역시 좋을 순 없었다.

“큼, 그래도 공화국의 희생을 발판 삼아 여러분들이 그 변종을 사냥해 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어지는 말은 화룡점정이었다.

때문에 클리에를 비롯해 총통을 처음 보는 이들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세르겐에게 시선을 옮겼다.

“됐고. 어떡할 거야, 할아범?”

“흐음.”

세르겐은 입에 문 담배를 뻐끔거리다가, 허공에 물음을 던졌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단테?”

그의 물음에 단테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클리에의 푸대접에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총통을 바라보며 물었다.

“놈의 행적은?”

“목격자가 말하길 사라졌다고…… 그런데 자네는 또 왜 반말을…….”

“넌 조용히 하고.”

총통을 침묵시키는 건 클리에의 몫이었다.

그녀의 말에 그는 언제 당당하게 나불거렸냐는 듯 입을 닫았고, 곧 미카엘이 단테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단테…… 그렇군요. 당신이 그분이셨군요.”

이미 단테라는 이름은 대륙에 알려진 지 오래다.

제일 가벼운 일만 읊어도 나이트메어를 죽인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단테가 또 다른 네임드를 죽인 데다가 지금 말하는 변종을 최초로 발견한 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물론 총통은 딱히 체감이 되지는 않는지 짜증과 모멸감이 담긴 얼굴로 그들을 훑었으나 원탁에 앉은 이들 중 누구도 총통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변종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존재를 확인한 후 서류로 대략적인 보고를 받긴 했습니다만, 직접 본 경험을 공유받고 싶습니다.”

미카엘은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단테를 대했고, 그는 그런 모습과 조금 전 계단에서 느꼈던 기도에 내심 흥미를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설명은 간결했다.

놈의 무력은 형편이 없으나, 주변의 마수를 지배함과 동시에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인간에게도 일부 정신 지배가 통하는 듯했다고 말이다.

“……흠.”

“허, 진짜 가지가지 하네.”

당연하게도, 원래 인생을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로한이나 늘 웃음이 헤픈 척을 하는 리베라, 거기에 미리 사실을 전달받은 세르겐이나 세실 정도를 빼면 모두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이내 클리에가 입을 열었다.

“반드시 공화국 영토에서 잡아야 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맞는 말이지.”

그녀의 말에 미카엘과 세르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공화국에서 잡지 못한 채 타국으로 넘어가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어느새 총통은 뒷전이었다.

아니, 사실 총통은 모르는 사실이었으나 이 자리에 그가 있는 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거였지, 사실상 제국과 법국, 연합 왕국의 협상 테이블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세르겐은 다 태운 담배를 품에서 꺼낸 휴대용 재떨이에 대충 털고는, 탁자에 놓인 식은 찻물로 입을 헹궜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말했다.

“공화국에 이미 3국이 주둔한 이상, 또한 그 변종이 인간 소녀에 가까운 외형을 한 위험 개체인 이상 이 일은 일개 국가가 나설 일이 아닐세.”

“옳으신 말씀입니다, 소장님.”

“뭐, 계속해 봐.”

세르겐은 시선을 돌려 단테를 보았다.

“제국군은 네임드나 지역 정화 등 위험한 임무에 투입할 부대를 필요로 할 때, 특임대라는 걸 임시로 창설하지.”

처음 이 자리가 만들어질 때부터 계획한, 그리고 비행함에서 단테와 나눈 대화에서 확정한 계획을 입에 담으니.

“이번엔 특임대 차출 범위를 3국으로 넓히는 걸 제안하겠네. 그리고 그 특임대의 지휘관으로는…….”

그제야 단테는 세르겐이 비행함에서 했던 말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단테 소령을 추천하지.”

기갑천마

에이스님, 실력 좀 볼까?

-캬아아아아아!

마수의 괴성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며 숲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처참한 비명과 굉음만이 자리한 전선은 점점 한계로 치닫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공화국 특유의 푸른색으로 도색 된 나이트 프레임이 궤도를 덜덜거리며 앞으로 내달렸다.

수없이 돌아가는 궤도 사이로 진창이 된 대지에 박혀 있던 돌덩이들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내뱉은 괴성과 손에 쥔 102mm 구경 라이플이 무색하게도…….

-끄레레레륵!

콰아앙!

곧 솟구친 중급 마수의 공격에 허공으로 날아오른 나이트 프레임은 뒤이어 입질한 상급 마수에게 단번에 씹혔다.

〔아아아악!〕

콕피트에 안으로 강한 산성을 가진 침이 흘러 들어가 파일럿의 육신을 녹였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에 동화율은 끊어지고, 곧 사람이었던 핏물이 콕피트 사이의 틈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쏴! 쏘란 말이야!”

콰아아아앙!

이름 모를 포병 장교의 외침에 수십문의 마력 포대가 미친 듯이 불을 뿜었다.

궤도차에 탑재된 포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공화국 군인들의 얼굴엔 일말의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끄, 끝이 보이지 않잖아…….”

“대체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그들의 규모는 사단급이지만, 인근 대대와 연대에서 차출된 인원까지 합치면 족히 4천을 넘었다.

그러나 밀려오는 마수의 수가 워낙 압도적이었다.

오죽하면 최근 소문으로 도는 변종이 이 전장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일까.

콰아아아아앙!

또다시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진 마력포가 하급 마수들 사이로 떨어졌다.

그 즉시 웬만한 집 한 채와 맞먹는 마수들의 육신이 터지며 사방으로 핏물과 살덩어리, 내장을 흩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쿠우웅!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쓰러진 나무와 진창을 울렸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마수의 모습에 반쯤 정신을 놓고 마수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병사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가 드리웠다.

거대한 마수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을 한낱 개미처럼 오연하게 내려다보며 침을 흘렸다.

턱에 늘어진 털을 따라 떨어지는 침은 바닥에 닿아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사람과 마수가 뒤섞인 핏물과 섞여 대지로 스며든다.

이윽고 놈이 거대한 입을 벌렸다.

쿠어어어어어어!

목젖이 떨리고, 내뱉어진 거대한 포효는 서서히 남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아래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선언하는 듯했다.

이 자리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이다.

“아, 아아…….”

“저건……! 최, 최상급 마수가 어째서!”

그리고 곧 놈의 정체를 깨달은 공화국 군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족히 작은 산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와 하이에나와 원숭이를 어설프게 합친 듯한 기괴한 모습의 놈은 이미 수차례나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낸 최상급 마수였기 때문이다.

쿠웅, 하는 소리가 울리고, 곧 바닥에 고정된 마력포의 포대가 진동으로 고개를 숙였다.

뒤이어 공화국 군대의 지휘관은 다급히 외쳤다.

“후퇴 한다! 후퇴해야 해!”

이미 지난 새벽 갑작스럽게 진군한 마수들을 막아 내는 2시간 사이 족히 천 명이 넘게 죽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급 마수가 전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최상급 마수까지 나타난다면 공화국 나이트 프레임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지금 후퇴하면 최소 도시 2~3곳은 포기해야 합니다! 족히 10만은 죽을 거라고요!”

“제기랄!”

콰앙!

부관의 말에 탁자를 내려쳤다.

그도 모르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부하들을 모조리 죽게 만들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남색 하늘의 색이 점점 연해졌다.

해가 뜨고 있음에도, 정작 그의 눈앞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그는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이대로 다 죽는 건가…….”

군인의 책임과 인간으로서의 생존 욕구가 충돌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다 한들 공화국이 과연 자신의 죽음을 제대로 추모하고 기억할까.

‘그럴 리가.’

오히려 무능하다며 두고두고 회자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피해망상 따위가 아니다.

르위의 영웅인 카트린 준장마저 감옥에 처넣는 놈들이 아닌가.

‘……제기랄!’

결국 마음을 정했다.

지휘관은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후퇴를 다시 입에 담으려는 찰나…….

“어?”

갑작스럽게 울리는 부관의 새된 목소리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떠 고개를 치켜들었고, 곧 지휘부 막사를 가득 덮는 일련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건……?”

비행함이 창공에 떠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초에 새롭게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비행함은 고작 3척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놀란 이유는 그중 선두에서 돌진하는 비행함 때문이었다.

〔자, 놀아 보자고!〕

과거 바다를 떠돌던 전함보다 거대하고 진보된 비행함의 통신기에서 울리는, 노이즈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혼잡한 전장 상공을 울렸다.

곧이어 구름을 꿰뚫고 완전히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비행함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공화국의 비행함이 아니야…….”

눈이 있다면 그 정도쯤은 알 수 있다.

애초에 공화국에는 저렇게 큰 비행함이 1대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뒤늦게 어벙해진 지휘관의 곁에서 부관이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외쳤다.

“주둔군들입니다!”

공화국에 주둔 중인 제국, 법국, 연합 왕국의 비행함이다.

그것을 확인한 지휘관은 실로 복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명장은 아니었으나 무능하지도 않았기에 외쳤다.

“후퇴는 없다! 각 부대에게 산개해서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라고 해!”

“예!”

한층 밝아진 부관이 일선 장교들에게 통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지휘관은 마른 침을 삼키며, 어느새 후미가 보이는 3대의 비행함을 지그시 응시한 채로 생각했다.

‘부디…….’

이권 침탈이고 지랄이고, 제발 이기게만 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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