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함에서 내린 제국군이 격납고를 나서자, 곧 회담장까지 그들을 데려갈 의전차들이 도열되어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던 대령 계급의 군인은 세르겐을 비롯한 제국 군인들을 발견하자 작게 숨을 들이마시곤 말했다.
“전군, 경례.”
충성!
꽤 우렁찬 목소리가 격납고 밖을 울린다.
그러나 제국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단테의 뒤에 서 있던 리베라가 모두의 생각을 중얼거렸다.
“와, 경례에 저렇게 영혼이 없을 수도 있구나.”
단테가 무심결에 피식할 정도로 적나라한 평가였다.
그런 동시에 제국군 모두가 느끼는 공화국 군인들의 태도이기도 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죽하면 그들과 대동한 일부 병사들은 ‘그래도 경례는 올려 주네.’ 따위의 시선을 보낼 정도니 오죽할까.
물론 아예 불쾌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공화국의 수준이 그렇지, 뭐.’ 정도의 감흥일까.
세르겐은 성큼 앞으로 걸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경례를 올렸던 대령이 그에게 다가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르겐 소장님. 공화국 수도 방위군 12연대장 헤튼 대령입니다.”
“반갑소, 헤튼 대령.”
대령은 무어라 형식적인 말을 더 내뱉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세르겐은 그런 대령이 말을 내뱉기도 전에 능숙하게 덧붙였다.
“피차 알건 다 아는 사람들끼리 귀찮게 미사여구 붙이지 말고 곧바로 이동하지. 의회까지 잘 부탁하네.”
“예.”
다소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으나, 오히려 대령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드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타시지요. 모시겠습니다.”
세르겐은 고개를 끄덕이며 헤튼이 직접 열어 준 차 안으로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군, 경계 대형으로!”
제국군의 병사들은 제국 비행함이 있는 격납고 근처에 자연스럽게 경계 대형을 펼쳤다.
단 한마디에 일련의 병사들이 움직여 격납고를 둘러싼 모습은 매우 일사불란하였기에, 공화국 군인들에게 제국 군인들의 훈련 상태를 자랑하기엔 충분했다.
‘……허.’
때문에 헤튼 대령은 반쯤은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그들을 훑었다.
팔다리가 다 잘린 군부의 장교로서는 꿈같은 장면이었으니.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모두가 차에 오르자 그는 호위 행렬의 선두에 있는 차에 몸을 실었다.
“출발한다.”
내부에서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자, 곧 그들이 탄 차량은 작은 진동과 함께 대지를 달려 격납고 일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부우웅- 소리가 들리며 공화국 도시 대로를 달렸다.
나름 의전 차량이라고 신경을 썼는지 승차감은 나쁘지 않았다.
“아스렌의 차가 더 낫긴 하지만.”
“맞아요. 엄청 비싼 거던데.”
단테의 중얼거림에 리베라가 화답했다.
그들이 탄 차에는 운전을 맡은 공화국의 병사와 조수석에 앉은 로한, 뒷좌석에 앉은 단테와 리베라가 전부였다.
익숙한 조합이었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물론 단테가 어색함을 쉬이 느낄 성격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단테는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려 공화국의 수도인 프란틴의 모습을 살폈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곳에 다다르면 그곳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 하나의 작은 유흥이 된 탓이다.
그러나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프란틴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단테가 내린 평가는 실로 간결했다.
‘이미 한계군.’
공화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내심 추측했던 일이었으나, 수도의 모습까지 보자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본디 망국에 다다른 국가라도 최소한 수도는 그나마 낫기 마련이다.
애초에 위정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선 최소한의 민심이라도 잡기 마련이고, 대개는 자신들이 머문 지역의 민심을 중점으로 살피니까.
공화국은 그 최소한의 관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루틀담이 더 낫게 보일 정도일까.
단테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의식적으로 생각의 끈을 끊었다.
구태여 복잡한 정세 따위를 머리에 담을 생각이 없었기도 할뿐더러, 어차피 의회에 다다르면 머리 아픈 생각을 많이도 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다시 얼마나 달렸을까.
프란틴 대로를 달려, 거대한 기사 동상들이 서 있는 공원 사이를 지나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탄 차가 멈췄다.
그러고는 운전병을 맡은 공화국의 군인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불량한 태도에 순간 로한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고, 리베라 역시도 웃음 사이로 가라앉은 눈동자를 굴렸으나 정작 단테는 개의치 않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불쾌함에 병사 하나의 목을 비튼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다만 단테는 로한에게 눈짓할 뿐이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알아서 처리하라는 정도의 시선이리라.
‘굳이 자질구레한 일에 나설 이유가 없지.’
그런 생각을 한 단테의 군화가 의회 앞의 석조 벽돌을 디뎠다.
뒤이어 리베라 역시 차에서 내리자 로한은 사선으로 몸을 지탱하던 안전띠를 풀고는 고개를 돌렸다.
“야, 길틴 병장.”
“……예?”
“얼굴이랑 계급, 기억했다.”
“그, 그게 무슨…….”
“무슨 소리긴.”
로한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곤,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다음에 만나지 않기를 바라. 나도 어지간하지만, 저 단테 소령님이 무지막지한 사이코거든? 잘못 걸리면 네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 그런……!”
본디 사람을 건드릴 땐 가족까지 건드리는 게 효과적이다.
로한은 사색이 되어 뭐라고 말하려는 길틴 병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곤 차에서 내렸고, 그런 로한을 바라보던 단테는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로한은 한결 낫다는 표정으로 단테의 뒤에 섰고, 곧 먼저 차에서 내렸던 세르겐과 세실 등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로한의 표정을 보니 대충 상황이 보이는군.”
세르겐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로한의 뒤에서 사색이 된 표정을 짓고 있는 길틴 병장의 얼굴을 훑다가 피식 웃고는 마치 들으라는 듯 말했다.
“잘했네. 주제를 모르는 놈들에겐 적당한 매가 약인 법이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의 말에 답한 것은 단테였고, 근처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공화국 군인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주제를 모르는 놈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으니까.
“소장님.”
때문에 잠시 의회의 입구에서 세르겐 소장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 돌아오던 헤튼 대령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미간을 좁혔다.
……원래부터 공화국과 제국은 앙숙이다.
단지 군부는 최소한 의회와 달리 현실을 볼 줄 알았기에 최소한의 대우를 해 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발을 넘긴다는 말은 되지 못하리라.
헤튼 대령의 미간이 좁혀졌다.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이 도적 새끼가.’
그의 생각과 주변 군인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세르겐이 주둔군 사령관이 된 이유를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과거, 국운을 건 카샤 왕국과의 전쟁에서 빈틈을 노리고 서부를 빼앗은 아크레데 가문의 당주가 그 아닌가.
그는 상징이었다.
제국에겐 공화국에게 얻은 승리의 상징이었고, 공화국에겐 제국에 대한 증오를 불태울 상징이었다.
그러나 정작 세르겐은 여유롭게 헤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되물었다.
“왜 그런가, 대령?”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가증스러운 얼굴.
나이에 걸맞지 않은 거대한 체구와 달리 능글맞은 노인네다.
으득.
아무리 공화국 내부에서도 반쯤 버린 자식 취급을 받는 군부라고 하나, 이런 취급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그는 이빨을 갈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최소한 공화국의 명예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말씀은……!”
그러나 그때.
“이야, 할아범! 오랜만이네!”
헤튼의 뒤에서 어딘가 발랄한 목소리가 울렸고, 그러자 세르겐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과 반가움이 섞인 얼굴로 너털웃음을 흘렸다.
“거참, 타이밍하고는.”
기갑천마
제독과 기수
“엥? 뭐야, 그 기분 나쁜 표정은.”
세르겐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척 보기에도 제국이나 공화국의 군복이 아닌, 다른 국가의 군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갈색과 검정이 적절히 배합된 군복을 입은 그녀를 보며 너털웃음을 흘리던 세르겐이 답했다.
“아니다. 그나저나, 네 녀석은 여전히 버릇이 없구나.”
“흥, 제국의 샌님들이나 예의를 따지지.”
세르겐의 말에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단테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녀의 외관을 훑었다.
제국이나 공화국의 흰 피부와 달리 구릿빛을 띠는 피부.
갈색이 섞인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남자처럼 짧게 잘려 있고, 틱틱거리는 말과 달리 황금빛 눈동자에는 세르겐에 대한 호의가 맴돈다.
단테의 시선이 곧 그녀의 입술로 향했다.
이성적인 매력이나 끌림을 느낀 건 당연히 아니었고, 유달리 반짝거리는 장신구 때문이었다.
‘귀걸이…… 아니, ‘입걸이’ 같은 건가.’
그녀의 입술에는 작고 얇은 황금 링이 끼워져 있었다.
그는 곧 그걸 피어싱이라고 부른다는 걸 기억했다.
그리고 그때, 단테와 그녀의 시선이 맞닿았다.
“어라?”
순간 황금색 눈동자에 흥미가 맴돌았다.
그러고는 그녀는 세르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려 물었다.
“이쪽은 못 보던 애인데, 혹시…….”
“그래, 단테 소령이다.”
“……우와!”
흥미가 확신이 된 순간, 그녀는 빠르게 단테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그가 뭐라고 반응할 새도 없이 눈을 번뜩이며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야! 네가 단테 소령이구나!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17살 맞아? 겉모습은 나보다 오빠인데? 아, 노안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야. 성숙하고 잘생겼다는 뜻이…….”
“소장님.”
그러나 단테는 그 말을 다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시선을 돌린 채 세르겐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소개를 안 했군.”
그녀와 달리 세르겐은 단테의 성격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살짝 들어가 말했다.
“이쪽은 클리에 드 말렌메리 소장.”
“연합 왕실 함대의 제9 제독이야. 조금 무례했으면 사과할게.”
그녀, 아니 클리에도 눈치가 없진 않았기에 덧붙였다.
그런 그녀의 말에 단테는 무심결 중얼거렸다.
“연합 왕실이라면…….”
곧바로 연상되는 국가가 있다.
그러자 클리에는 네가 생각하는 그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했다.
“연합 왕국 맞아.”
카리튼 연합 왕국.
그 이름을 떠올리자 자연히 뇌리에 있는 정보가 재생되듯 머릿속을 스쳤다.
과거 같은 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3개의 왕국이 40년 전 즈음에 마수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왕국을 합쳤다고 했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곧 카리튼이라는 이름의 기원도 알 수 있었다.
‘카그렌, 리베아토나, 트리나.’
3개의 왕국이 합쳐진 이름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눈앞의 클리에를 내려다보았다.
아마도 이 여자가 연합 왕국 측의 주둔군 사령관이리라.
그러나 그때. 단테와 시선을 마주한 클리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잡다한 말들이었다.
가령 네임드, 나이트메어를 잡은 게 사실이냐는 것부터 전용기에 대한 소문을 늘어놓는 둥…….
단테는 귀찮음에 대충 대답을 넘겼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일말의 불쾌감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거기에 반말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명분은 나이와 계급이었다.
“나 스물일곱 살인데? 거기에 제독이고?”
잠깐이지만, 그녀를 본 단테의 평가는 간결했다.
‘귀찮은 여자다.’
그렇게 생각한 단테는 살짝 시선을 돌려 리베라를 응시했다.
차라리 리베라가 백번 낫다.
무언가를 숨기고 바보인 척 연기하는 것과 아예 바보인 건 또 달랐으니까.
개인적으로 단테에게 더 익숙한 유형은 전자였다.
그때 보다 못한 세실이 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오랜만입니다, 클리에 제독님.”
“어? 너도 있었네?”
클리에는 세실과도 안면이 있는 듯, 단테와는 달리 반가움만을 담은 얼굴로 화답했다.
그런 그녀에게 세실이 뭐라고 덧붙이려 했으나.
“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세실, 너 올해 몇 살이지?”
“어……. 스물다섯 살입니다.”
“뭐야! 곧 있으면 애 낳을 나이네!”
“애, 애라뇨! 그런…….”
그러나 세실조차도 클리에의 활발함에 금방 잡아먹히고 말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볼 세르겐이 아니다.
“크흠, 그쯤 해라.”
“아, 그런가?”
잠시 잊고 있었으나,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어디 으슥한 주둔지나 무도회장이 아닌 공화국의 수도에 자리한 의회의 앞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공화국을 지켜 주기 위해 파견된 주둔군이었고 말이다.
당연히 이런 헤픈 모습을 보여 줘서 좋을 리는 없다.
“역시 앉아서 얘기하는 게 낫긴 하지.”
물론 클리에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작은 폭풍이 지나가자, 그들은 벙찐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헤튼 대령의 곁을 스쳤다.
그리고 세르겐은 그의 곁을 지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운이 좋군, 대령.”
“……아.”
이윽고 세르겐을 위시한 그들은 이미 열려 있는 의회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헤튼 대령은 조금 전 세르겐의 도발을 받아쳤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새삼 깨달았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도 바보가 아니다.
비록 대령과 소장, 준장을 포함하면 2계급 차이라지만 국격의 차이까지 합치면 둘 사이의 간격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더욱이 이미 망할 의회 놈들이 주둔군까지 나라 안에 들인 상황에 마찰을 일으켰을 때 저들에게 좋은 명분이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내면에 자리 잡은 자존심과 열등감이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을 충동질했다.
만약 클리에 제독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세르겐은 이걸 빌미 삼아 또 다시 공화국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으리라.
……확신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어차피 공화국은 망한다.’
얼마 전 제안받은 일에 대해 고민을 하던 그였으나 오늘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는 멀어지는 제국군과 연합 왕국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이내 자신의 차에 올랐다.
“상사.”
“예, 대령님.”
그의 부관이자 믿음직한 수족인 상사가 백미러로 시선을 맞추고, 헤튼은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며 말하니.
“카트린 준장님께 답해라. 혁명에 합류하겠다고.”
“……알겠습니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공화국의 또 다른 혼란을 알리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