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천마-78화 (78/197)

단테는 변종에 대한 정보를 숨기지 않았다.

숨겼다면 열차에서 세실에게 말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공론화가 되지 못한 것은 태반의 사람이 그 말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 그것도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마수라니, 누가 그것을 쉬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의 말이 맞았군.”

세르겐은 격납고로 걸어온 단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일단 타지.”

그들은 본성의 외곽에 공병들이 지어놓은 임시 격납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중형급 사이즈를 가진 비행함이 눈에 들어왔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이미 격납고 안에는 세실과 유엘, 페고르 역시 대기 중이었다.

세르겐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경례를 받아넘기곤 비행함에 올랐다.

그렇게 회담에 동행할 이들이 모두 비행함에 오르자 곧 함내 방송이 울렸다.

〔5분 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자질구레한 탑승 안내는 모두 흘려들었다.

세르겐은 함께 오른 이들을 제외하고 단테에게 말했다.

“얘기 좀 하지. 단테 소령.”

“예.”

이미 예상한 바였다.

때문에 다른 이들도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들의 객실로 향했다.

끼이익.

함내 지휘관용으로 만들어진 객실로 향하자 꽤 넓고 쾌적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겐은 단테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한 후 물었다.

“차로 하겠나, 아니면 커피?”

“차로 주시죠.”

커피를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벼운 찻물이 더 끌렸다.

세르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테에겐 차를 놓아 주고 자신은 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한 모금 머금었다.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곧 세르겐이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네. 어쩌면 신은 이 대륙의 종말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과거 나이트 프레임이 등장하고 점차 발전했을 때 사람들은 희망을 품었다.

잃었던 영토를 수복하고 최초로 네임드를 죽였을 때 인간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몸을 의탁한 수많은 이종족들 역시 머지않아 전쟁이 끝나리라 생각했다.

“50년일세.”

세르겐은 찰랑거리는 독주를 또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금 군인이 된 이들은 전쟁 이전의 세상을 알지 못해. 아니, 애초에 나조차도 희미하지.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면 과거의 기억은 점차 옅어지겠지.”

전쟁은 많은 걸 앗아 간다.

지금 당장에도 전쟁을 지탱하는 수많은 인력과 자원들은 고갈되고 있을 것이다.

한계는 있기 마련이니.

“…….”

단테는 묵묵히 그의 푸념아닌 푸념을 듣고 있었다.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또한 의문을 품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50년간 전쟁을 지탱할 자원, 인력.’

확실히 이질적인 구석이다.

그러나 단테는 구태여 티를 내지 않고 되물었다.

“본론이 뭡니까.”

그때 우웅- 소리와 함께 비행함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동이 객실을 뒤덮고 때때로 벽 너머에서 승무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게 다시 5분 정도 흘렀을까.

이윽고 진동과 소음이 멈췄다.

세르겐이 입을 연 것도 그 순간이었다.

“잡을 수 있겠나.”

구태여 사족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미 이전에 덧붙인 사족으로도 단테를 피로하게 했음을 깨달은 터였다.

지금 필요한 건 물음과 대답뿐이었다.

“묻진 않았으나, 최근에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테는 파르필라의 절망 어린 표정과 세르겐의 지친 표정이 겹친다는 생각을 하며 덤덤하게 화답했다.

“놈은 제 손으로 찢어 죽일 겁니다.”

얼마나 엄청난 재생력을 가졌든, 또 얼마나 대단한 정신 제어 능력을 갖추고 있든지 전혀 상관없다.

이미 놓친 상대를 다시 놓칠 정도로 단테는 멍청하지 않았다.

“찢고, 찢고, 찢어서 가루로 만들어도 재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어느새 단테의 붉은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세르겐은 그런 단테의 모습에 묵묵히 남은 술을 입가에 털어 넣곤 덧붙였다.

“이번 회담에서 자네의 역할은 중요하네. 잘만 하면 단번에 2계급 특진도 노려볼 수 있겠지. 훈장은 덤이고.”

뒤이어, 세르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에 놓인 병을 꺼내 힙 플라스크에 술을 다시 채우며 중얼거렸다.

“물론 머리는 조금 아프겠지만.”

쉬이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말에 단테는 살짝 미간을 좁혔으나, 굳이 묻진 않았다.

어차피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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