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위치는 실로 절묘하다.
레벤스라트 제국, 카리튼 연합 왕국, 솔라 법국과 모두 맞닿아 있었기에 대부분의 국경 경비대는 각 국가의 군인들과 수시로 마찰을 일으키는, 이른바 기피되는 부대였다.
“하암…….”
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졸리다. 다음 교대 언제냐?”
“몰라. 알아서 오겠지.”
척 보기에도 군기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두 남자의 대화가 오갔다.
그들 중 한 명은 계속 하품이나 내뱉으며 담배를 태울 따름이었다.
혹자가 본다면 둘을 질책하고, 비난할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이나마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다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이 근무하는 곳은 1년에 마수가 열 번이나 나올까 말까 한 곳이었으니까.
“우리 제대 언제냐?”
“2년 뒤.”
“얼마 안 남았네…….”
나오는 마수들조차도 태반이 하급 마수다. 과거 창을 들고 싸울 때면 모를까, 하급 마수쯤은 마력포로 몇 개 갈기고 궤도차로 밀어 버리면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한 달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이니, 군기가 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때 경비를 서는 초소 의자에 앉아 하품이나 하며 담배를 태우던 군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카트린 준장 소식 들었어?”
“카트린이면…… 르위의 영웅?”
카트린 준장이면 공화국 내에선 꽤 유명했다.
일개 병사로 시작해 장교로 올랐으며, 갓 소령으로 진급한 때에 투입된 르위 평원에서 기갑 부대를 이끌고 돌진해 아군 방어선을 지킨 영웅.
물론 제국이나 법국, 연합 왕국에선 차고 넘치는 공훈인지라 높은 훈장을 받기도 뭐한 일이었으나 그들이 그것을 알 리는 없었다.
“그분이 왜?”
“듣기로는 1년간 외곽 지역을 돌다가 무슨 사고를 쳐서 수감 되었는데.”
그는 어느새 끝자락에 다다른 담배를 대충 초소 바닥으로 던져 버리곤, 후- 하는 숨결과 함께 덧붙였다.
“탈옥한 모양이더라고.”
“탈옥?”
실로 놀라운 소식이었으나, 정작 말한 병사도 듣는 병사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조소를 머금을 뿐이다.
“윗대가리들 하는 거 보면 그럴 만도 하지.”
“내 말이.”
공화국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이들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카트린 준장이 군에 몸담은 세월이라면,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에 충성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그녀가 탈영할 정도라면, 더 말이 필요하겠는가.
“에휴, 이러다가 정말 어디로든 합병되는 거 아닌지 몰라.”
“이왕 될 거면 난 법국으로.”
“큭큭, 누가 솔라 신도 아니랄까 봐…….”
둘의 대화는 다시금 가벼운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러나 그때.
“어?”
서 있던 병사의 시선이 지평선에 닿았다.
그리고 곧 눈을 게슴츠레 뜬 그는 저 멀리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말했다.
“경보 울릴 준비해. 뭔가 온다.”
“끙차!”
그의 말에 앉아 있던 병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보 마법이 각인된 마도구로 연결된 버튼을 누를 준비를 끝냈다.
스윽.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는 순간 미간을 좁히고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어린아이?”
그건 바로, 백색의 장발을 늘어트린 채 맨발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웬 어린아이였다.
때문에 뒤에서 버튼을 누르려던 병사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린아이라고? 저 방향에서?”
그들이 경계하는 방향은 현재 아무런 국가도 없는 온전한 마수의 영토다.
그러니 저쪽에서 어린아이가 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치는 않은 일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둘은 고민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앉아 있던 병사는 경보 대신 통신기를 쥐고 무전을 연결했고, 이내 연결된 장교에게 말했다.
“제13 초소입니다. 현재 경계 지역에서 웬 어린아이가 접근 중입니다. 예, 예……. 확실합니다. 어린아이입니다.”
이윽고 그는 통신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어딘가 껄끄러운 표정이었다.
“데려오라는데.”
“……우리가?”
“그럼 누가 있어.”
“하아.”
역시 병사들의 주적은 언제나 간부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껄끄러운 일에 짜증을 내면서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소총을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초소에서 나와 지뢰가 없는 지역으로 걸었다.
터벅터벅.
흙과 자갈을 뚫고 발목 정도로 자란 수풀이 군화에 닿는다.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는 어린아이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설마, 마수는 아니겠지?”
“넌 인간 모습을 한 마수도 봤냐?”
“하긴.”
마수는 태반이 거대하고 기괴하게 생겼다.
지난 50년간 바뀌지 않은 진리이자, 일종의 학습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간부도 손쉽게 허가해 준 것일 터.
“어, 다 왔네.”
어느새 그들은 소녀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할 수 있었다.
소녀는 그가 관측했던 때에서 멈췄는지, 묵묵히 평원에서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음.”
두 병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척 보기에도 어린 소녀인데 문제는 알몸이라는 점이다.
다행히 달이 뜨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더 접근하기엔 문제가 있었다.
“어쩌냐?”
“뭘 어째. 저러고 살아서 여기까지 온 게 용하네. 쯧!”
그렇게 말한 병사가 겉에 입은 군복을 벗었다.
그리 길진 않아도 소녀의 허벅지까진 가려 줄 길이는 되리라.
그는 뒤에선 병사에게 총을 건넨 후, 소녀에게 걸어갔다.
“얘, 안 춥니?”
왜인지 고향에 있는 딸이 생각났다.
그는 어느새 소녀가 인근 마을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녀의 눈이 자신을 본다.
벗겨진 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몸을 움츠리는 듯한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아파 왔다.
‘나쁜 일이라도 당한 건가?’
가엾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렇기에 얼른 몸을 가려 주리라 생각하고 다가선 그였다. 그러나 완전히 소녀의 앞에 다다른 그는, 이내 느껴지는 위화감에 살짝 시선을 내렸다.
“……어?”
밤에 흐려진 시야로 실루엣만 보였던 그녀의 몸이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소녀다. 다만…….
“아, 아무것도 없다고?”
성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신체적 특징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본능적인 괴리감을 느끼고 총기를 쥐려 손을 뻗었으나.
‘아.’
고개를 돌려, 꽤 먼 거리에서 자신을 보는 동기를 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총기를.
그리고 그때.
-인간.
뇌 속으로 소녀의 읊조림이 스쳤다.
어딘가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전달은 병사의 코에서 코피가 흐르도록 만들었으니.
“아…….”
무심결 시선을 내렸다.
소녀의 뽀얀 발이 보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했던 생각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를 깨달았다.
‘평원을 걸어왔으면 발이 멀쩡할 리가…….’
비단 그뿐 아니라 수많은 이상함이 있었으나, 인간의 피륙이 그것을 가렸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소녀는 읊조렸다.
-죽어.
그리고 그 순간.
콰과과광!
대지를 뚫고 솟구친 거대한 뱀이 단번에 병사를 집어삼켰고, 뒤에서 서 있던 병사가 다급히 랜턴을 켜 전방을 비춘 순간.
“이, 이게 무슨……!”
그는 손에 쥔 총기를 바닥에 떨군 채,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
그의 랜턴에 비춘 평원에 보이는 것은 단번에 동기를 삼킨 거대한 뱀과, 저 멀리서 밀려오는 일련의 마수들이었으니까.
순간, 병사는 시선을 내렸다.
총이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단번에 총구를 입에 물고 눈을 감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콰직!
총성이 울리고, 뒤통수에서 선홍빛의 살점과 뇌가 터진다. 그리고 허물어진 육신을 바라보던 소녀는 중얼거렸다.
-인간. 약해. 그 남자. 어째서?
그리고 그건, 태어날 때 죽음을 선사할 뻔한 남자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앞에 있는 벌레들은 모조리 죽게 되겠지만 말이다.
기갑천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드사 노스라의 보스 파르필라와의 만남이 끝난 후 단테는 별다른 임무 없이 온전히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손에 쥔 초절정이라는 경지를 다듬을 시간을 얻었다.
목에는 여전히 검은 흑옥이 목걸이에 매달려 흔들렸다.
그는 늘 그렇듯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스읍, 후.
입을 반쯤 열고 운기토납을 이어 갔다.
초절정에 이르러 단단해진 단전이 단테의 인도를 따라 밀려오는 풍부한 내력을 포식했다.
번뇌나 심마는 없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단전의 꿈틀거림에 무심결 웃을 정도로.
그렇게 수련을 하던 단테의 뇌리에는 점차 한 가지 의문점이 자리를 잡았다.
그건 다름이 아닌 로한과 리베라…… 아니, 본질적으로 이 세계의 무력적인 부분이었다.
겪어 보지 않고는 쉬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처음 이 세상에 떨어진 단테만 해도 모든 걸 보이는 대로, 혹은 이전의 단테가 가졌던 기억을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조차 그저 이 세계의 특성이겠거니, 하고 넘어간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벌써 이곳에 온 지가 1년이 넘었다.
그렇기에 점점 이 세계를 뒤덮은 괴리감을 직면하고 있었다.
무력적인 부분이 그랬다.
물론 다른 걸리는 것도 많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 그의 머리를 채운 건 그것이었다.
로한과 리베라는 기체를 조종하는 실력뿐만 아니라 일신의 무력도 갖추고 있다.
종종 그들이 취하는 자세나 단련된 몸을 본 그로선 확신이었다.
그러나 점점 원래의 경지에 다다를수록 그것이 묘하게 맞물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분명 로한과 리베라는 부정할 수 없이 쓸모가 있는 진짜 무인에 속한다.
그러나 초절정에 다다르기 이전부터 단테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력에 비해 육체가 따라 주질 않는 건가.’
그들의 내력은 초절정일지 몰라도, 경지는 그보다 낮은 절정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실질적인 무력은 이미 단테가 절정에 달했을 때도 이길 수 있었을 정도로 격차가 켰다.
그렇기에 고민이다.
그것이 과연 의도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은 것일까.
일단 블랙 가드는 중원의 무림인.
그러니까 자신과 같은 이들이 만든 조직이라는 것은 확정한 가설이다.
블랙 가드의 조직도는 체계적이고, 철저히 위에 닿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조원이라고 칭하는 조직의 최하위 구성원조차도 정예로 유지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점조직을 준 조직원으로 기용한다.
‘그런데…… 그 조원들의 우두머리인 조장급들조차도 그렇다면.’
의도된 것이다. 단테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원로, 그리고 당주라고 불리는 수장은…….’
……완전한 무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아마 딱 그 정도가 한계인 이른바 다운그레이드된 무공을 전수했으리란 가설을 덧붙인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후 고개를 저었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같았다.
둥지에서 나이트메어를 뚫고 내단을 삼키던 그 순간부터 단테는 새로이 이 대지 위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인 건 놈들이 내게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인가.’
물론 찾아오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야 찾아가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 썩 기다릴 법했다.
그래, 가령…….
‘로한처럼.’
눈을 떴다.
그러자 곧 10평 남짓한, 그가 머무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이 길어졌나?’
단테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땀에 젖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하도 수련을 할 때 땀을 흘리곤 해서 요즈음은 웃통을 벗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콰아앙!
단테의 방문이 부서질 듯…… 아니, 부서져서 바닥을 굴렀다.
곧 리베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단장, 큰일…… 어머!”
그러나 단테의 모습을 본 리베라는 언제 심각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그 자리에 멈춰 빠르게 단테의 몸을 훑었다.
이제 열일곱 살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체구는 둘째로 치더라도 선명하게 도드라진 근육 사이로 땀이 흐르는 모습은 그녀의 장난기를 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야, 몸 좋네요? 하긴…… 우리 중에 몸이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녀는 주섬주섬 바닥에 널브러진 문짝을 들어 문 자리에 대충 끼워 박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어때? 연상은 취향이 아닌가?”
본심이 담긴 중얼거림을 읊조렸다.
그래도 나 정도면 예쁜 편 아닌가, 따위의 말을 말이다.
단테도 그걸 부정하진 않았으나, 딱히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 큰일이라는 건 뭐지?”
“아, 그거.”
너무나 칼 같은 거절.
내심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으나 리베라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은 듯 곧바로 업무적인 자세로 돌아온다.
“저번에 단장이 말했던 그 변종. 공화국 외곽에 나타난 모양이에요. 덕분에 모든 주둔군 수뇌가 모여서 회의한다던데, 소장이 단장을 데려오라고…….”
그녀의 말을 들은 단테는 탁자 위에 놓인 시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리베라는 덧붙였다.
“30분 뒤까지 격납고로 오라던데.”
격납고라면 아마 비행함에 태우려는 것이리라.
단테는 대충 시간을 가늠했다.
30분이면 샤워를 하고 제복을 갖춰 입기엔 충분한 걸 넘어 많은 시간이다.
때문에 단테는 찬장에 놓인 수건을 들고 화장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
“10분 내로 나오지.”
그때 리베라가 무언가 말을 덧붙이려 했으나 단테가 말했다.
“진심이 아니라면, 얘기를 꺼내지 마.”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다.
때문에 리베라는 되물었다.
“진심이라면?”
이윽고 단테의 적안과 리베라의 은안이 허공에서 마주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단테는 곧 화장실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감춰. 내가 볼 수 없도록.”
그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여러모로.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리베라는 아주 시원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음, 그래야 단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