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제국군 주둔지에 도착한 직후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제각기 방에 틀어박혔다.
다들 말로 하진 않았으나 내심 지친 탓이었다.
그리고 단테는 꽤 오랜만에 온전한 수련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스읍, 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신공의 구결을 나지막이 읊조리며 마나 하트라 불리는 중단전이 아닌, 하단전을 운용하여 심상을 가다듬었다.
혈도를 따라 내력이 내달린다.
이제 이 몸에도 지극히 익숙해진 토납과 운기를 곁들이며, 어느새 단테는 심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거대한, 하나하나가 민가 한 채와 맞먹는 거대한 육신을 가진 마수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는 내력을 끌어 올리고, 곧 목에 흔들리는 벤데타를 불렀다.
섬광이 번뜩인다.
곧 검은 거인이 단테를 잡아먹듯 품고, 묵빛 내력이 몸을 감싸며 단테는 벤데타의 또 하나의 심장이 된다.
무의식 안에서 벤데타가 외쳤다.
……마수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자고.
단테는 답했다.
좋다고.
콰아아앙!
벤데타의 거대한 육신이 대지를 딛고 도약한다.
검도 뽑지 않은 채 맨손으로 마수의 목을 틀어쥐고는, 그대로 부러트렸다.
-끄르륵!
거대한 사마귀와 같은 모습으로 날개를 펄럭이고 다리를 사방으로 비틀던 놈은 목이 뒤틀린 채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단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손에 검이 쥐어진다.
단테는 내력을 흩뿌리며, 해일처럼 밀려드는 거대한 마수들을 향해 검을 긋고, 베고, 찔렀다.
핏물이 터진다.
비명이 울리고.
거대한 육신이 추락하며 지축을 흔드는 모습에 미간이 좁혀진다.
그렇게 얼마나 베고 또 베었을까.
문득 단테의, 벤데타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시선을 올리자, 실로 익숙한 4쌍의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심상으로 만든 전장에서 단테는 놈의 이름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이트메어.
그의 손으로 베어 버린, 아둔하고도 버러지와 같은 네임드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뚜욱, 뚝.
단테의 검이 꽂혔던 심장에서 핏물이 흘렀다.
분명 놈의 핏물은 다른 색이었을 진대, 유달리 검고 묽었다.
그때 놈이 부리와 같은 입을 열어 말했다.
-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망령된 인간이여.
기갑천마
밤 산책
복수를 품었다기엔 덤덤하다.
기만을 담았다기엔 무심했고.
예언이라기엔 하찮다.
단테는 고개를 들었다.
묵빛 액체가 단테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콕피트 너머로 나이트메어를 바라보았다.
그러며 생각했다.
……저것은 과연 무엇인가.
심상이 만든 번뇌인가, 그게 아니면 부질없이 스치는 과거의 편린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테는 어느새 손에 쥔 거대한 창을 비스듬하게 올려 허공에서 날고 있는 놈을 겨냥했다.
그에겐 없던 무기였으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창을 쥔 오른팔의 검은 갑주가 철그럭거리며 흔들린다.
동시에 관절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케이블이 도드라지고, 이내 내력을 머금은 벤데타의 검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파앙!
창에 담긴 내력이 허공에 긴 선을 그리는 잔상을 남기며 뻗어진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직선으로 쏘아진 창대는 송곳처럼 쏘아져 단번에 놈에게 닿았다.
보랏빛 방어막은 펼쳐지지 않는다.
푸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손쉽게 놈의 심장에 창이 박히고, 4쌍의 날개를 가진 반마반조의 거대한 육신이 하릴없이 대지로 추락한다.
쿵.
거대한 가죽이 둔탁한 소리를 울린다.
동시에 대지에 늘어진 나이트메어의 검은 핏물이 대지를 미끄러지듯 달려 단테의 군화에 닿았다.
‘군화?’
시선을 내린다.
언제 벤데타에서 내린 건지, 대지를 그 자신의 두 발로 딛고 서 있었다.
동시에 군화에 검은 핏물이 물들고 차오른다.
그리고 그것에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을 바라본 그때.
문득 핏물 너머로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흑발에 적안이 아닌, 잿빛에 잿빛 눈을 가진 사내가 서 있었다.
천마라고 불리던 때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했다.
시간을 역재생하듯, 점점 과거로 그를 인도했다.
‘……여긴.’
단테이기 이전의 천휘가 대지 위에 서 있다.
그는 스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장발에도 개의치 않고 시선을 옮겼고, 곧 보이는 중원의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평원이 길게 나 있다.
그리고 그런 평원의 위로는 마수와 무림인들의 시체가 뒤섞여 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언젠가의 전장과 너무나 비슷한 풍경이 아닌가.
솨아아아아아.
때마침 정적을 뚫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그의 뒤로 아주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다.
-맹주라……. 이제 의미가 없는 말이죠.
고개를 돌리자 예상한 얼굴이 천휘의 눈에 밟혔다.
백옥과 같은 피부에 남색 빛이 도는 검은 장발이 그의 눈동자에 맺혔다.
이윽고 환하게 웃은 남궁연희는 그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저도 여기서 죽어야겠네요.
마치 과거를 복기하듯 내뱉은 말이다.
천휘는 무심결 그녀에게 답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까드득, 까드드득.
입을 연 그 순간 남궁연희의 모습은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엔 반쯤 얼굴이 일그러진 거귀가 검은 입을 쩍-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본능적으로 내력을 일깨우며 과거의 자신처럼 놈을 노려보았다.
입술을 깨문다.
동시에 심상이라는 것도 잊은 채 놈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그때.
-휘.
천휘의 등 뒤로 남궁연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부드럽게 그의 등을 끌어안은 그녀의 손길이 정신을 깨웠다.
-그래도 죽을 때는 혼자가 아니라서 좋네요.
그래, 분명히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그런 말을 했지.
이젠 흐릿해진 기억이었다.
천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나마 심상임을 잊었던 그의 잿빛이 검고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현실을 자각한 천휘…… 아니, 단테는 눈을 뜨고 앞에 선 거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부디 그들이 영면에 들었기를 바랐다.
비단 그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마제천도, 그 외에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망령이 된 이들에 그들이 속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이 지옥에 떨어진 건 자신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까드득.
이미 심상이라는 건 자각한 후였다.
때문에 단테는 그저 가벼운 손길로 거귀의 입안에 내력을 터트리니.
쩌적.
너무나 손쉽게 거귀의 육신이 허물어져 버렸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가 뜨자, 보이는 것은 마수들의 시체들이 널브러진 평원이 아닌 10평 남짓한 방이었다.
“하아…….”
숨을 내뱉었다.
창가에 비친 달빛이 불 꺼진 방바닥에 길게 늘어지고, 단테는 몸에 절은 땀 속에서 무심결 조소를 흘렸다.
“개꿈을.”
정확히는 꿈이 아니라, 운기조식을 하며 내면의 번뇌와 마주친 것이었으나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우웅!
그때 복부에 자리한 하단전이 만족스럽게 울렁거렸다.
눈을 감고 혈도를 따라 내면을 살피자 꽤나 충만하게 차오른 내력이 단테를 반겼다.
굳이 가늠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초절정에 닿았나.’
번뇌를 깨트린 것이 마지막 벽을 넘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일까.
과거 초절정에 닿았을 때 벽은 분명히 경지에 대한 고민이었을 터인데…….
실로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도 썩 기꺼운 일이다.
이제 벽을 하나만 더 넘으면 화경에 닿을 수 있으리라.
그러면 전생의 경지는 완전히 회복하는 셈이다.
만약 중원의 무림인들이 이 속도를 보았다면 경기를 일으키며 비결을 토해 내라며 천라지망을 펼치지 않을까.
무림인들이란 본디 내력 증진을 위해선 가족도 쉬이 팔아먹는 작자들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자 실소가 터졌다.
단테는 가부좌를 틀고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정갈하게 놓여 있는 수건을 들어 가볍게 목덜미와 얼굴을 닦고는, 탁자로 향해 물 잔을 쥐었다.
막 방에 들어왔을 때 따라 놓고 몇 시간이나 내버려 뒀기 때문인지, 물 잔에 담겨 있던 물은 미지근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단테에게 거슬리는 점은 아니었기에 그는 반쯤 채워진 물을 단번에 삼켰다.
몇 시간의 운기토납으로 텁텁해진 입이 조금이나마 회복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상체에 묻은 땀을 대충 닦아내곤 새 셔츠에 팔을 끼워 넣었다.
털썩.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방구석에 놓인 의자에 몸을 앉히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낡은 고성의 부서진 종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얼마나 묵묵히 앉아 있었을까.
검은 하늘에 흘러가듯 떠도는 구름을 보는 것도 그리 오래 할 짓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잠을 자기에는 해가 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새로 단 문의 뻑뻑한 경첩이 소리를 울린다.
임시로 단 조명이 어스름하게 복도를 밝히고, 그곳을 지나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야간 당직을 서고 있던 병사와 부사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경례를 올렸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무슨 일이십니까, 소령님.”
사수인 중사가 묻자 단테는 말했다.
“산책을 좀 하려고 하는데.”
“병사를 붙여 드립니까?”
“됐다. 혼자 가지.”
애초에 제국군의 주둔지이기도 하고, 만약 습격이 온다고 해도 초절정의 무력과 벤데타를 쥔 자신을 해할 사람은 쉬이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답에 말을 건넨 중사도 그가 에이스 파일럿임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명단에는 적어야 합니다, 부디 양해를.”
“그래.”
출입한 사람의 명단에 단테 드 헤로이스라는 이름이 적혔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간부용 숙소로 개조된 건물 밖으로 나섰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군화가 디딘 대지는 밤새 녹았다 얼기를 반복했는지 살짝 젖어 있었다.
그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본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충성! 제국에 영광을.”
때때로 야간 당직을 서고 있던 병사들이나 장교들이 단테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그렇게 몇 개의 문을 지나 본성에 다다르자, 어느 정도 개조가 끝난 다른 곳과 달리 여러 자재가 널브러진 공사터와 같은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몇몇 성곽은 아예 파괴되어 있었고, 곳곳에 설치하다 만 마석과 장비들이 천에 싸여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테는 이윽고 입에서 흐르는 흰 입김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결 낫군.”
경지에 다다른 것과 별개로, 때때로 스치듯 지나가는 무림의 기억은 유달리 단테의 감정을 움직였다.
그것이 단순한 굴곡인지, 아니면 가슴에 박힌 못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이다.
그럴 땐 종종 산책하곤 했다.
그렇게 얼마나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슬슬 하늘이 남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카샤트 산맥의 끝자락에 달이 걸리자 단테는 발걸음을 돌렸다.
슬슬 방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쿨럭!
어디선가 들려온 기침 소리에 단테는 본성에서 막 나온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기침이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좁은 골목 아래로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단테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돌계단을 디딘 군화 소리가 좁은 틈을 울린다.
그리고 꽤 깊이 아래로 내려간 단테는 곧 코를 스치는 피 냄새에 천천히 내력을 끌어 올렸다.
이윽고 완전히 지하에 다다른 단테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눈앞에 드러난 참상을 응시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감옥이었다.
열차를 습격한 자유 프란의 레지스탕스들을 수감하기 위해 임시로 수습했다고 했었던가.
터벅.
단테는 앞으로 걸었고, 의자에 앉아 포커를 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군인들에게 향했다.
탁자는 쓰러져 있고, 의자 역시 모조리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런 가구들 위에는 군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손을 뻗어 상처를 살핀다.
모두 정확히 목이 찔려 죽었다.
그것도,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일격에 말이다.
문제는 그 흔적이 너무나 기이했다.
‘단검이라기엔 너무 상처가 좁다.’
모두 긴 선이 아닌, 점에 가까운 구멍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단테는 그것을 기억한 후 감옥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
밀폐된 공간이기에 외부로 환기가 되도록 설계했는지, 공기의 흐름이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공기에는 입구와 비견할 수 없는 짙은 피 냄새가 함께 묻어났다.
고민은 필요가 없다.
앞으로 걸었고, 곧 내부의 조명이 깜빡거리는 감옥 안으로 들어선 단테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이건…….”
잡아 온 레지스탕스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본국으로 송환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기에, 내부에도 꽤 많은 군인을 배치했다고 들었다.
“모두 총은 꺼내 보지도 못했나.”
단테는 시선을 옮겨 모두를 살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총은 고사하고 저항한 흔적조차 없다.
거기에…….
‘거의 동시에.’
모두가 거의 같은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쿨럭!
저 멀리에서 단테의 귓가를 스쳤던 기침 소리가 다시 울렸다.
고개를 들어 감옥의 끝을 바라보자 곧 단테는 아주 미약하게 숨을 헐떡거리는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경을 쓰고, 차가운 인상을 가진 여자, 셀리였다.
시체 사이를 지나 그녀의 앞에 다다른 단테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곧 그녀 역시 깨진 안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그를 응시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아…… 아으…….”
그러나 목을 찔리며 성대까지 함께 다친 건지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하나 단테는 그녀의 입 모양을 바라보며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눈에 담았다.
입이 중간쯤 열렸다가 이내 다물어진다.
그렇게 내뱉어진 단어는…….
“법국.”
단테의 덤덤한 목소리가 시체들로 가득한 감옥 내부를 울렸다.
그의 말을 들은 셀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테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연합 왕국의 스파이더가 열차를 덮쳤다.
그리고 레지스탕스들이 제국의 감시망을 피해 열차에 올랐다.
……아무래도 리스울의 말은 어느 정도 옳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륙 내부에서 마수와의 전쟁을 방해하는 온갖 개짓거리가 벌어진다고 했던가.
“기억하지.”
단테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문득 그녀의 옆방에 이미 죽어 있는 장 피르를 보았으나 그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감옥 밖으로 향했다.
그의 그림자가 깜빡이는 조명에 늘어져 셀리에게 닿았다.
셀리는 서서히 흐려지는 눈을 감았다.
마치,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단테의 부름을 받은 일련의 군인들과 함께 세르겐이 달려와 그들의 모습을 살피곤 미간을 좁혔다.
“이런…… 제기랄, 한 방 먹었군.”
기갑천마
그렇게 부르지 말랬거늘
제국군의 공화국 내 주둔지는 루틀담 외곽, 카샤트 산맥에 이어진 작은 산 끝자락에 세워져 있다.
지금은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낡은 고성을 보수하여 자리 잡은 그들의 분위기는 실로 최악이었다.
다름 아닌 제국군의 주둔지 내부, 경계가 삼엄하게 배치된 임시 감옥 내부에 있던 죄인들은 물론, 족히 20명은 넘는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전투로 잃었으면 모를까, 이런 식으로 입는 손실은 군인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곧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용의자로 단테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최초 발견자가 범인이라는 건 꽤 인기가 있는 반전이었으니까.
그러나 세르겐은.
“거론할 가치도 없다.”
……라며 장교들의 의심을 일축해 버렸다.
하지만 당시 새벽에 어째서 밖에 나갔는지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고, 결국 때마침 본국에서 도착한 군종 의사의 소견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상 단테 소령님이 범인일 수가 없습니다.”
입구에서 포커를 치던 병사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단테가 막 숙소를 나서던 때라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거기까지 밝혀지자, 당연히 단테를 의심하던 다른 장교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로한은 한마디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심한 놈들…… 에휴.”
당연히 장교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귀족이다.
평민에 불과한 로한의 말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으나, 뒤늦게 3명 전부 에이스 파일럿임을 깨닫자 그들은 빠르게 분노를 조절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는 싱겁게 마무리가 된 지 이틀쯤 흘렀을까.
똑똑.
초절정에 오른 몸을 더욱 예리하게 벼르는 데에 집중하고 있던 단테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틀었던 가부좌를 풀고 방문을 잡아 열자, 곧 로한이 웬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읽어 보랍디다.”
그의 말에 편지를 펼치자, 곧 유려한 필체로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곧바로 달려가지요. 답장 부탁드립니다.」
살짝 시선을 내리자, 익숙한 이름도 보였다.
아스렌 벤투스 드사 노스라.
열차에서 만난 엘프이자 마피아.
로한은 리베라가 쉬고 있는 옆방을 힐끔 바라보곤 말했다.
“리베라는 좋다던데.”
“음.”
다른 것이라면 구미가 당기지 않았을 터이나, 식사라면 내심 마음이 동했다.
하다못해 중원도 천리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니.
거기까지 생각한 단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도록 하지.”
“그럼 나오십쇼.”
“뭐?”
단테는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되물었으나, 로한도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이 편지, 조금 전에 받았습니다. 가능하면 오늘도 좋다던데요.”
“맞아요, 얼른 가죠! 소령님!”
뒤이어 리베라가 준비를 마친 듯 방에서 튀어나와 덧붙이자, 단테는 잠시 수련과 미식을 저울질하다가 몸을 돌렸다.
“금방 나가지.”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러자 로한과 리베라는 서로의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방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먹을 거엔 또 잘 꼬셔지네.”
왜인지 허탈하다는 리베라의 목소리가 복도만을 울릴 뿐이었다.